신명기 강해
신명기 2:1-23
세일산에 있었다고 그래요. 세일산 어디입니까. 에서 족속에게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신 곳이어요. 너희들 요단강 건너가라고 그러니까 겁먹었냐. 여기서들 봐라. 에서족속이 어떻게 기업을 얻었는지 봐라. 여기도 본래는 무시무시한 거인들이 살고있었는데, 에서 족속이 싸워서 이긴 것 아니냐. 또 모압 족속을 봐라. 이것은 혈족으로 하면 한참 멀다. 그런 사람들도 아브라함 계통이다. 내가 기업을 주었고 그들도 큰 거인 족속이고 기업을 얻었지 않냐. 40년을 거기서 교육시켜서 출발해 놓고는 이제 현장답사하고 출발하고 있지요. 그래놓고 가로를 묶어 놓고는 이스라엘 백성의 기업 성취에다가 설명을 해주고 있지요. 그런데 너희들이 건너갈 땅을 두려워하면 되겠냐. 이 말을 지금 하려는 것이지요. 너희 조상들이 들어 가라니까 뒤로 돌아갔다가 40년 동안 벌받았지 않냐. 아무도 못 들어갔다. 그런데 봐라. 너희들은 본 자손이 되어놓고도 겁을 내고 떠냐. 말하자면 너희 조상들은 에서도 기업을 얻었고, 한 다리 건너 롯의 자손도 그렇게 기업을 얻었는데, 너희들은 어째 그럴 라고 그러냐. 이런 현장교육을 시키고 있지요. 회상적이다 그랬지요. 4장까지 회상에다 강조가 주어져 있어요. 그렇게 설명을 하고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그 다음 본문이 재미있는 것이, 13절에 세렛 시내를 건너라, 그리고 14절에 가데스 바네아를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38년 동안이라. 현장 교육 끝나고 나서 건넜다고 그랬지요. 38년 동안 현장교육 끝나고 나서 드디어 건넌겁니다. 건너고 났는데 그때는 어느 때냐. 모든 군인들이 다 죽었다고 이 말을 서너번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 짧은 구절에. 어떻게 반복하고 있습니까. 모든 군인들이 진중에서 다 멸절되었으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쳐서 진중에서 멸하신 고로 필경은 다 멸절되었느니라. 멸했단 말이 세 번 반복되어있지요. 아주 성경 표현법을 보면 여간 재미있게 되어있습니다. 어째서 그랬습니까. 거역했으니까. 다시 한 번 회상시키고 있지요. 38년 동안 너희들이 봤지않냐. 그리고 드디어 건너라 그랬어요. 38년 동안 돌아다니면서 본 일이 무엇이냐. 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속한 자들에게 기업을 줬구나. 또 한 가지는 무엇이냐. 거역한 백성은 몽땅 죽었구나. 그 이야기를 총 반복하고 결론을 맺고 있지요. 그리고 나서 16절에 보니까 또 다시, 모든 군인이 사망하여 백성에서 다 진멸된 후에 한 번더 그 말을 반복하고 나서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자 모압 변경을 지나서 암몬 족속에게로 가라했다. 한 번 강 건너기 전에 38년 동안 훈련했던 현장 교육을 설명하고 나서 그리고 38년 전에 다 죽었던 일을 한 번 설명하고 나서, 그리고 새로 말하기를 이제 건너라. 그리고 한 번 죽었단 말을 또 반복하고 나서, 그 다음에 모압을 지나서 암몬에게 이르라 그렇게 했지요. 죽는 일이 없도록 하라 그런 말이지요. 한 번 반복하고 나서, 그리고 암몬 족속에게 기업을 주었다고 말한다. 가로 속에 말하기를, 이곳도 르바임의 땅이라 하였는데 전에 르바임이 거기 거했기 때문에 그랬다. 암몬 족속은 그 땅을 삼숨밈이라 일컬었으며, 이름을 바꿨지요. 이방 땅을 정복했을 때 그들의 이름으로 불렸던 이름을 바꿨어요. 그러면 아마 이 모압 족속 중에 그 족장이 차지한 사람이어서 삼숨밈이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 당시에 전투에 큰 은혜가 있어 그런 은혜의 이름을 붙였는지. 여하튼 새로운 이름을 붙인 겁니다. 그 백성은 크고 많고, 그 백성은 강하고 많고, 아낙 족속은 키가 크고, 그러나 여호와께서 암몬 족속 앞에서 그들을 멸하셨으므로 암몬 족속이 대신해서 그 땅을 차지했다. 마치 세일에 거한 에서 자손한테 호리 사람을 멸한 것과 같다. 그러니까 세렛 시내를 건너라 그랬는데, 건너기 전 38년 동안 현장교육과 건너고 나서 이제 최근의 있었던 일을 현장교육시키고 있는 식이지요. 그것이 2장에서 현장교육 시키고 있는 것이지요. 이제 아브라함에게 속한 자들에게 기업을 주신다고 말씀하신대로 그들은 강력한 적군들을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에 싸워서 이겼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군인들은 다 죽었다. 왜. 불순종했기 때문에. 그리고 드디어 24절에 보니까, 너희들은 일어나서 진행하여 건너라. 그리고 헤스본왕 시혼과 싸워라. 이때부터는 천하만민이 너희 때문에 두려워 달달 떨 것이다. 너희 이름이 높아질 것이다. 이제부터 전쟁을 시작하라고 그랬지요. 현장답사 다하고 나서. 이렇게 하면 싸울 만 하지요. 사돈네 4, 8촌도 기업을 얻었는데, 너희들이 누구냐. 내 백성 아니냐. 그런데 왜 너희들은 달달 떨고있느냐. 달달 떨다가 40년 죽은 꼴 안 봤냐. 너희 조상들이 40년 동안 돌아다니고 있을 때 너희 친족들은 어땠냐. 이미 차지하여 누리고 있지 않느냐. 그리고 최근에 모압 족속의 땅을 건넜어요. 그리고 봐라. 이 족속들도 너희 요단강 세렛 시내 건너편에 있었던 에서와 모압 족속처럼 그들도 이렇게 했지 않냐. 그렇게 하고나서 드디어, 오늘부터 건너가 싸워라. 이제부터 내가 너희들을 승리케 하겠고 천하만민이 너희 때문에 떨 것이다. 그렇게 명령을 하셨다. 그리고 나서 26절 이하에 전쟁 한 이야기가 2장 26절부터 3장까지 걸쳐 있지요. 26절 이하에는 시혼 왕과 싸운 것이고. 3장에서는 옥과 싸운 것이고. 그런 이야기가 쭉 기록 되어있지요. 그러니까 나누기를 하자 면은 실은 26장 이하를 3장하고 붙여놔야 더 좋겠지요. 말하자면 2장 24절, 지금 오늘부터 건너가서 싸워라 한 거기부터 그 다음 이겼던 두 왕을 한꺼번에 묶어야 내용상으로는 훨씬 좋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 나눴는가. 자기들 마음이지요. 이건 영감된건 아니라고 그랬지요. 내가 갔고 있는 책으로 해서 그러는구나. 내가 갔고 있는 관제 성경은 24절 앞에다가 요단강 건너편에 정복한 것은 나눴어요. 그리고 우리 성경에 나눠져있기는 26절이 큰 글자로 되어있지요. 고딕체로 나눠졌지요. 이런 것은 인쇄업자들의 편의를 위해서 나눠진 거라고 이야기했어요. 왜 그러는지 잘 모르지요. 우리들은. 그러니까 내용을 보고 나누면은 차라리 2장 24절부터 3장까지 한꺼번에 묶는 것이 훨씬 좋다. 단지 설명은 그렇게 하면서 성경에 있는 데로 단순히 하고싶다 그런 말입니다. 장을 붙여서 나누고 있는데 내용상은 그렇게 해야 훨씬 내용이 묶어집니다. 그렇게 해서 이렇게 요단 강 동편 정복한 이야기를 40년 동안 현장답사 시켰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최근의 일어난 일을 한 번 더 했지요. 암몬에게서. 그리고 나서 정복해라. 그 이야기를 했다. 이 하나님이 이제 그들에게 주실 것이어요. 문제는 방금 내가 설명한 것에서 다 풀어진 것이니까 문제는 안 풀고 글만 읽으면서 결론을 맺겠습니다.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을 얻으라고 명하시고, 출발한 장소는 언약을 체결한 시내 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언약 체결한 백성에게 언약이 있다고 얻으라 그랬지요. 시내산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여기가 오래 머물렀으니 가라. 그런 방식으로 설명했어요. 그러나 광야에서 방황하는 동안, 이스라엘이 여러 날 동안 머무른 후에 기업의 땅으로 출발한 장소는 세일산입니다. 세일산은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신 곳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에서 자손을 괴롭게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광야 40년 동안 함께 하시고 복을 주셔서 아무 것도 부족함이 없었음을 회상시키시고, 에서에게서 아무 것도 공으로 취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세일에서 거하는 그들의 동족에게서 떠나 모압 길로 행하였습니다. 모압을 괴롭게 말라. 여호와께서 모압에게 아르를 기업으로 주셨느니라. 그리고 기업 얻은 의미를 가로 붙이고 설명을 했다. 이제 세렛 시내를 건너라 말씀하셨다. 그때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난 후 38년 후며, 그 시대의 군인들이 여호와께 불순종하다가 다 멸절한 때이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손으로 치사 필경은 다 멸절시키셨다. 모든 군인이 백성 중에서 다 진멸된 후에 성경이 그들의 멸망에다 강조를 두니까 저도 할 수 없이 성경 본문대로 멸망했단 말을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이어요. 사건적으로 보도하면 다 죽었다 한마디면 끝나요. 그런데 형제들이 기업을 얻었단 것도 반복 하지만은, 불순종한 백성이 죽었다는 말도 몇 번 반복시키면서 결론 맺고 다시 출발하자 그러니까 저도 그 말을 해야 돼지요. 모든 군인이 백성 중에서 진멸되었어요. 여호와께서 암몬족속에게 이르라 명하셨다. 그러나 암몬을 괴롭게 해서는 안 되는데, 여호와께서 그 땅을 롯자손에게 기업으로 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괄호 해 놓고 에서때부터 그렇게 이하동문으로 기업을 얻었다고 설명한다. 그 후에 아르논 골짜기를 건너서 헤스본 왕을 치고 그 땅을 기업으로 얻으라고 명하셨다. 이제부터 천하만민이 이스라엘의 명성을 듣고 떨며 근심하리라 말씀하셨다. 그러면 어떻게 전쟁하냐. 헤스본 왕 시혼에게 평화의 말을 올렸습니다. 이 평화의 말은 길을 열으란 말입니다. 여기서는 다른 게 아니어요. 항복하란 말이 아니라, 길 여란 말이 평화의 말입니다. 신명기 22장에서 너희들이 적과 전쟁할 때 먼저 평화의 말을 먼저하고 했을 때는 그 때는 길 열라는 평화의 말이 아니라, 항복하란 평화의 말이어요. 평화의 말도 그 내용에 따라 항복하란 말인지 길 열라는 말인지 다르지요. 우리나라 사람보고 일본이 길 열라고 그랬지요. 우리가 중국좀 칠라니까. 처음에는 길 열라는 이야기였지요. 항복하란 이야기는 아니지요. 그러니까 이 문맥에서는 길좀 열어라 그런 이야기였어요. 아무런 피해가 없이 지나갈 것이니, 에서와 모압처럼 길을 내어주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실은 에서와 모압이 길을 열어주었습니까. 민수기를 보면은 막았지요. 그런데 신명기에서는 그들이 길을 열어주었다고 이야기를 해요. 왜냐하면 신명기에서는 에서와 모압과 암몬을 아브라함에게 속한 자에다 설명을 두고있고, 그러니까 그들이 길을 막았던 일은 아무 상관없이 설명을 해버려요. 그런데 민수기는 광야의 장애물로 설명을 해요. 민수기에서는. 그러니까 그들이 장애 했던 내용을 설명해요. 그런데 여기서는 그들이 기업을 주었고, 그들이 길을 잘 열어주고, 갈 때 도와준 것처럼 이야기를 해요. 그러니까 안 맞는 말이지요. 그리고 괜히 우리가 봤을 때는 헤스본왕 시혼은 싸우려고 괜히 빌미 찾은 것같아요. 이 앞에 두 사람은 양보 안 했다고. 에서와 모압이 길을 양보 안 했어요. 민수기에서는. 그런데 여기서는 우리가 이제까지 올 때, 사람들은 다 우리한테 길을 열어주고 잘해줬는데 당신도 길좀 열어라. 안 열어주니까 이제부터 전쟁. 이렇게 되어있다 그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성품을 강팍케 하셨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그 땅을 얻어 기업으로 삼으라 하셨다. 이스라엘이 그 명대로 그들을 멸하고 그 모든 성읍을 다 취하였다. 그러나 그들 곁에 있는 암몬 족속의 땅은 손대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여기서부터 전쟁을 했는데, 이들은 가나안 족속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모리 족이어요. 그래서 쳐들어간 겁니다. 실제로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강팍케 해서 전쟁 하도록 했습니다. 그들이 시혼 왕을 쳤을 때 그 옆이 암몬 족속의 땅인데 거기는 건너가지 않았다. 그런 말이어요. 바로 옆인데도. 왜냐하면 조상 롯에게 준 기업이거든요. 그들이 순종했다는 데다 강조를 두고 있지요. 여기서는 두려워했다는 말이 한 번도 없지요. 그냥 단박 쳐서 다 정복했고 힘이 흘러 넘치는데도 암몬 족속의 땅은 손대지 않고. 순종해서 얻었단다 설명하고 있어요. 이처럼 아브라함에게 속한 자들에게 이미 기업으로 주신 땅을 순회케 하시어, 이제 설명입니다. 여호와께서 강한 족들을 멸하고 그들에게 이미 기업을 주셨음을 이스라엘에게 알리시고, 그리고 순종치 아니한 그 이전 시대 군인들이 다 죽었음을 이야기하시고 이제 헤스본왕 시혼과 전쟁하여 기업을 얻으라 말씀하셨다. 이 전쟁 이 후에 이스라엘이 만국 중에 두려움이 될 것을 말씀하셨다. 왜냐. 이제부터 하나님이 열국을 정복할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순종하여 그들을 대적하는 시혼 왕을 온전히 멸하였으나, 암몬의 땅은 손대지 않았습니다. 순종하였습니다. 우리한테 어떻게 적용됩니까. 하나님께서 그 언약에 신실하심을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서 온전히 성취하셨다.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에게 하늘의 영광을 약속하셨다. 이 약속을 가진 교회는 그 영광을 보도록 까지 믿음으로 싸워서 그것을 얻어야한다. 우리는 에서, 암몬, 모압, 이스라엘 정도가 아니지요. 우리들은 이스라엘에게 기업을 준 사실도 알지요. 그 조그마한 나라가. 지금도 이스라엘 백성을 특별히 하나님이 민족으로 보전한 이유도 알지요. 안 망하고 돌아가고 있지요. 여전히 민족으로 보전되어있는것도 기적 같은 일이지요. 어떻든 마지막에는 이스라엘 백성도 민족으로 돌아오겠지만은 구약 약속대로 하면은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번영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일이 사실이어요. 구약이 보고 있는 안목이 거기까지 본다 그 말입니다. 우리는 구원적으로만 해결하니까 구약을 전부 신약에다만 맞추고 있지만은 역사의 종점까지도 그림자를 드리워져야 맞다. 우리들은 그보다 더 큰일을 보는데 그냥 이전에 혈통을 떠난 아브라함의 백성이 기업 얻은 정도가 아니지요. 그들이 얻은 것은 땅의 기업이었지만은 이제 하늘의 기업을 아들 안에 주셨어요. 우리보고는 그 기업을 얻으라고 명령하셔요. 어떻게. 싸움으로 얻습니다. 어떻게 싸웁니까. 바로 이 분과 동행하고 세상의 죽음과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에서 예수께서 천하만국의 주가 되셨다고 증거하고 그렇게 함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긴 것이 아니라 죽어요. 그렇게 하면은 순교해요. 그래도 그것이 이긴 것이지요. 왜냐면 예수의 이름을 시인하니까. 어떻게 시인합니까. 우리의 생명을 걸고 그가 생명의 주라고 시인해버려요. 그러니까 죽음까지라도 우리를 미혹 못 해버린다. 그렇게 싸워 이기는 자들이 예수의 부활의 나라, 하늘에 속한 영원한 기업을 상속을 받는다. 우리들은 이 구약 백성보다 증거가 더 많다. 이제까지 모든 역사가 우리에게 증거 한다. 허다한 구름같이 둘러싼 증인들이 우리에게 증거 한다. 그러나 그들이 믿고 싸웠어도 우리가 아니면은 그들이 믿었던 소망은 의미가 없다. 예수께서 안 오셨으면은. 우리는 예수께서 오셨거든요. 그가 친히 증거 하시고 이제까지 구약의 증인들이 증거해 주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들이 이 믿음의 경주를 경주하지 못하면은 우리들은 흘러 떠내려갈까 조심하고 멸망 받을 까 조심해라. 히브리서가 그렇게 말씀하고있다. 우리는 증거가 너무도 확실하지요. 먹고 마실 때마다 주의 피와 주의 살의 교제로 먹지요. 구약 때는 썩어질 양식을 먹었습니다만, 우리는 썩지 않는 아들의 몸의 뜻에 참여해요. 그런데 여전히 죽음이 왕처럼 활동하고 있지요. 그래도 우리들은 그분이 생명의 주라고 고백하므로 죽을 수 있다. 그것이 우리의 이김이다. 이제 이렇게 진짜 이길 때가 있을 수 있어요. 구약처럼. 쳐서 멸절해라 하면 이길 수 있어요. 싸움은 이렇게 안 하겠지만은 이렇게 이길 때가 있어요. 언제입니까. 예수께서 재림하시면은. 지금은 우리들이 주님의 사랑으로 나라를 세우니까 사랑으로 죽지만은 그 때는 오셔서 원수를 불못에 던지면은 우리보고도 함께 불못에 쳐 넣으라고 그래요. 구약 때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원수와 싸우니까 이스라엘이 싸웠지요. 그러니까 안 싸우면 가짜예요.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이 그 아들의 죽으심을 따라 세우니까 우리들은 싸우면 안되고, 사랑해야 돼요. 그러나 역사의 종점에 도달해서 그 나라를 완성할 때는 모든 대적자를 불못에 던질 때는 우리들은 그때도 하나님 사랑해야지. 불못에 던집니까 하고 있으면 안 된다 그런 말입니다. 그때는 예수님이 밀면 우리도 덩달아 한 대씩 치면은 같이 불못에 떨어질 것이어요. 왜냐. 하나님과 동행하니까. 그러니까 구약에 있었던 일은 종말론적인 싸움, 이건 구약 당시의 완성이지요. 구약 당시의 하나님 나라지요. 그런 것을 주님께서 오셔서 그 나라를 완성시켜 나타냈을 때 아마 이런 방식으로 나타나겠지요. 모든 대적자를 치라고 그럴 것이어요. 하늘의 천사들도 칠 것이고, 백성들도 대적할 것이어요. 모두 불못에 넣을 것이어요. 그러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지금은 주님처럼 사랑하고 수고함으로 이 나라를 이겨나가야 된다. 세상을. 그러니까 역상의 조망은 이런 구약까지라도, 선지서가 아니라, 이런 구약까지라고 실은 역사의 종점까지 조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그 나라를 가져 오시면은 백성은 그런 방식으로 봉사해내야 돼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수와 싸우는 것만 알았지,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만민을 포용하는 이런 나라를 세운신다는 의미를 몰랐다. 대적한 것이어요. 바울도 대적했지요. 바울이 가짜여서 대적한 사람이 아니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새로운 일이 시작됐을 때는 믿어야 돼요. 이 전 것으로 새것을 해석하면 안돼요. 항상 새것으로 이전의미를 완성적으로 해석해 줘야해요. 그러니까 나중에 예수님이 야 돌격. 이제 예수님 재림했을 때 천사들이 싸우고 우리들은 칼들고는 안 싸울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말하자면 세계가 적그리스도의 세력에 넘어져서 정치와 종교와 경제가 한 권세 아래 있어서, 말하자면 기독교적인 세력을 핍박했을 때는 어떤 의미로 중동 전쟁이 일어날 지도 몰라요.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탁월하게 기독교 국가가 되면은. 그렇게 했을 때 말하자면, 하나님이 싸워라 했을 때 하나님 사랑해야 되는데 울고 있으면은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의 나라로 오는 나라를 봉사하기 때문에 걸려 넘어져 버려요. 무슨 말이지 알겠지요. 그러니까 구원 역사에서 오시는 하나님을 믿고 동행해야 된다. 역사의 조망은 거기까지 펼쳐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