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강해
신명기 3
바산왕 옥을 정복한 것을 무엇과 비교해서 말씀하십니까. 2절을 보십시오. 헤스본에 거하던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행한 것같이 그들에게 행하라. 그렇게 명령하고 있고. 6절도 보면은, 우리가 헤스본 왕 시혼에게 행한 것 같이 모든 성읍과 사람들을 진멸했다.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여기 바산 왕 옥에 대한 정복은 바로 이전에 정복했던 헤스본 왕 시혼의 정복과 비교해서 말씀하신다.
괄호 속에 설명은 무엇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까. 9절을 보면은 괄호가 있는데, 아르논부터 헤르몬 산까지 정복했는데 왜 헤르몬 산을 시돈 사람들은 시룐 이라 칭하고 아모리 족속은 스닐이라 그렇게 칭했다. 그런데 누가 정복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정복하고 헤르몬 산이라 그렇게 붙인 것이지요. 특별히 11절을 보면은, 르바임 족속의 남은 자는 바산 옹 옥뿐이었으며 그의 침상은 철 침상이고 이렇게 크다. 보니까 굉장히 거인 족을 쳤다는 이야기지요. 그러니까 괄호 속에 있는 설명들은 한마디로 강력한 이방을 쳤다는 그런 말입니다. 강한 이방을 이겼다 그런 말이어요. 왜냐면은 2장과 3장의 전체적인 주제가 이렇게 강력한 왕을 이긴 하나님께서 앞으로 전진 그랬다 그 말입니다. 그 다음에 12절부터 17절, 두 번째 문단입니다. 정복한 땅을 두 지파 반에게 주었다 하는 이야기를 반복 구조로 설명합니다. 12절에 보면은, 르우벤과 갓 자손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길르앗의 남은 땅과 옥의 나라를 므낫세 반지파에게 주었습니다. 바산을 옛적에는 르바임 땅이라 칭하였는데, 르바임은 11절에도 르바임 족속의 남은 자, 그렇게 되어있고. 그리고 그 앞에 2장 20절에서도 이곳도 르바임의 땅이었더라. 전에 르바임이 거기 거하였는데, 암몬 족속이 그것을 정복했다. 보니까 르바임 족속이 무슨 족속인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은, 철침상이 있는 것을 봤을 때, 거인족이구나. 그것은 알겠지요. 항상 가나안 족속은 아낙 족속이든지, 키가 크고 힘이 세다. 거인 족속이다한 것이 반복되는 설명이니까, 르바임 족속이 무슨 족속인가는 몰라도 거인 족인데 그 중에 남은 유일한 왕이 바산왕이었다. 그런데 침상이 굉장히 큰 철침상이었는데, 암몬 족속의 땅이었던 랍바땅에 있지 않느냐 그렇게 지금 말하고 있지요. 그런데 여기 보니까 르우벤, 갓, 므낫세에게 주었습니다. 그 다음에 괄호를 해 놓고 르바임 땅이라 칭하였는데 므낫세의 아들 야일이 그술을 치고 그렇기 때문에 바산을 하못야일이라 칭했다. 괄호가 닫아져있지요. 15절 보면은, 내가 마길에게 길르앗을 주었고,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에게는 길르앗에서부터 어디어디까지 쭉 주었다. 한 번은 거꾸로 설명하고 있지요. 한 번은 르우벤, 갓, 므낫세 지파. 그리고 괄호해 놓고 므낫세 중에서도 야일, 야일이 강력한 적을 쳤어요. 르바임 족속을 치고 얻었어요. 괄호 닫아놓고, 그 다음 마길도 므낫세 족속이어요. 15절에. 그 다음 16절에 르우벤, 갓 자손 또 이야기하고 있지요. 두 번 반복해서 두 지파 반에게 주었다는 이야기를 하고있습니다. 특별히 여기 개인이 언급된 사람들은 특별히 용장들이지요. 자기들이 정복한 땅을 자기들의 새로운 이름으로 붙인 유명한 자들입니다. 그 다음 18절부터 22절을 보면은, 요단 저편의 안식을 위하여 싸우라는 내용으로 되어있는데. 여기 있는 내용은 민수기 32장에도 있으니까 그것과 비교하면서 답을 해보라 그런 말입니다. 비교하면은 민수기와 신명기의 각각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어요. 그럼 민수기 32장을 보시면은. 가령 사람도 여기서는 이 말하고, 저기서는 저 말하면, 똑같은 말을 아다르고 어다르지요. 똑같은 말을. 그랬을 때 이 사람 두 말했다 그러지요. 똑같은 사건을 두고 말을 바꿔버리면은. 왜냐 하면 그 사람에게 맞춰서 이야기하니까 그렇게 됐을 것이어요. 그것처럼 민수기와 신명기는 하나님 나라 기초를 놓고 있는 율법인데도 하나는 광야 형편에 맞는 내용으로 되어있고, 하나는 가나안 땅 정복을 위해 맞는 내용으로 되어있어요. 출애굽기는 시내산 내용에 맞도록 되어있겠지요. 왜냐하면 이스라엘을 시내산에서 만난 것이 출애굽기지요. 이스라엘을 모압 땅, 요단 강 기슭에서 만나면은 신명기지요.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만나고 대우했으면 민수기지요. 그러니까 각각 그 역사적인 환경과 관계가 있게 되어있다 그런 말입니다. 똑같은 내용이어도. 그럼 민수기 32장을 보면은, 여기서는 요단 저편의 안식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두 지파반이 먼저 기업을 원했어요. 이곳이 좋사오니. 먼저 기업을 원한 겁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책망했어요. 너희 조상들도, 정탐꾼들도 낙심해 가지고 사람을 죽이더니, 너희들이 또 형제들을 낙심케해서 다 죽으려고 그러냐. 모세가 성질을 확 냈지요. 아니라고. 우리가 싸워서 다 이기게 되기까지 돌아오지 않을란다고 그렇게 했어요. 그래서 민수기에서는 계속 싸운다는 이야기가 강조점이 주어지고. 그것을 먼저 구한 사람은 두 지파 반이지 모세가 준것이 아니어요. 먼저 구했어요. 안 싸우고 먼저 얻으면은 나중에 싸운 사람은 얼만큼 힘 빠지겠냐. 그러니까 대단히 책망을 받았는데. 신명기에서는 전혀 그런 내용이 아니어요. 신명기 18절을 보면은, 그 때에 내가 이 땅을 받은 너희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언제 주었는가는 말이 안 나와있는데 주었다. 12절에 그랬지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하셨은즉, 너희 군인들은 무장하고 형제의 선봉이 되어 건너가되. 너무 먹을 것이 많으니까, 육축과 사람은 성에다 두고 가거라. 그렇게 했지요. 그러니까 여기서는 모세가 먼저 말했어요. 이미 기업을 받은 자들에게. 너희들이 선봉이 돼라. 너희들이 기업을 받았지 않냐. 너희들이 전쟁할 때 다 데리고 와서 위험할 것 없다. 사람과 육축이 많으니까 두고 가거라. 그런데 민수기는 두 지파 반이 그것을 요구했어요. 이곳이 좋으니까 우리 처자식은 여기에 둘란다고. 그렇게해가지고 백성들을 낙심시킬 뻔했는데. 여기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고, 너희들이 이미 기업을 얻었으니 선봉장이 돼라. 낙심하지 않게하기위해서 싸우라 그런 말이 아니라, 이미 기업을 얻었으니까 선봉장이 돼라. 그렇게 되어있지요. 그리고 20절에 보니까, 너희에게 주신 것 같이 형제에게도 안식을 주면은, 그 안식은 요단 저편의 땅을 기업으로 주는 것이어요. 그러면은 너희 지역으로 돌아가거라. 그렇게 말하고 나서 21절에 보니까, 여호수아보고 담대해라. 그렇게 했어요. 민수기 32장에서는 그런 여호수아를 다시 담대케하고 그런 이야기는 없지요. 오히려 민수기에서는 가나안 땅의 어떻게 전쟁할 것인가 그런 문제와 관계가 있어요. 그런데 신명기에서는 이제까지 강한 적을 쳤거든요. 이렇게 치신 하나님이 이제는 누구를 통해서 치실 것입니까. 가나안 서편은 여호수아를 통해서 치실 것이어요. 그러니까 여호수아를 담대케 격려한 내용으로 되어있죠. 격려한 내용을 보면은, 이미 두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앞으로 나라에도 행할 것이다. 두려워말아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해 싸우시리다. 그것이 여호수아를 격려하는 말입니다. 앞으로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해 줄 것이어요.
요단 이편을 기업으로 언급한 시작은 민수기에서는 두 지파 반이 요구했고, 신명기에서는 모세가 줬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이미 기업을 받은 지파의 군인들이 백성의 선봉장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민수기에서는 다른 형제들을 낙심시켜서는 안되니까 가서 함께 싸워라 그런 이야기고. 신명기에서는 이미 기업을 받았기 때문에 선봉장이 돼라 그 말입니다. 이미 기업을 받았으니까. 강조점들이 달라 있지요. 신명기에서는 요단강 동편의 기업을 주신 분이 서편에도 주시리라. 이것이 1장부터 4장까지 이야기여요. 주로 회상적이어요.
그들이 기업인 안식의 거처로 돌아간 때는 어느 때냐면은 형제도 안식을 얻으면은, 그것이 신명기 이야기지요. 형제도 안식을 얻으면은. 그럼 민수기에서는 어떻게 설명되어 있습니까. 오히려 민수기에서는 백성들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지요. 18절로 31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각기 기업을 얻기까지 우리집으로 돌아오지 않겠나이다. 여기서는 요단강 저편에 형제에게 준 안식, 요단강 저편에 안식보다도 각 지파들이 기업을 얻기까지는,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어떻든 뚜렷한 비교는 안되더라도 신명기에서 강조점은 우리에게 안식을 준 것처럼 형제에게도 안식을 주면은 돌아 오라. 요단강 저편 안식입니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격려한 이유는 그가 백성을 이끌고 요단강 저편을 정복할 대표자이기 때문에 그래요. 모세가 여호수아를 격려한 내용은 이제까지 행하신 하나님이 앞으로도 하시리라 그런 말이어요. 회상적인 이야기지요. 이제까지 여호와께서 싸우신 것처럼 앞으로도 싸우시리라. 이제까지 하나님이 행하신 일로 격려하고 있어요. 그 다음 23절부터 끝절까지 보면은, 요단 건너기를 모세가 구하는데 하나님이 거절하고 여호수아를 담대케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것을 민수기 20장, 27장에 모세 너는 들어가지 못하고 죽으리라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또 신명기 1장 37절, 3장 26절, 4장 21절 거기서도 모세보고 들어가지 못하게 한 이유가 있어요. 그런데 이 민수기와 신명기를 비교해 보면 민수기는 전체로 민수기적인 내용으로 되어있고, 신명기는 이 셋이 전부 신명기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신명기만 먼저 비교해 볼까요. 1장 37절을 보면은, 여호와께서 너희까닭에 내게도 진도하사 너도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리고 네 종 여호수아는 들어갈 것이니라. 그렇게 되어있지요. 여기 3장 26절에서도, 너희 때문에 내게도 진노했다. 그리고 나는 들어갔으면 하는데 하나님이 내 기도를 안 들었다. 그렇게 되어있지요. 4장 21절도 보면은,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요단강을 건너지 못하게 하셨다. 전부 백성 때문이라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민수기 20장이나 다른곳을 보면은 백성 때문이 아니라, 자기들 죄 때문에 그렇지요. 왜 아론과 모세가 못 들어가는가.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게 되어있지요. 백성들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이제 시편 106편에서는 이 둘을 섞어서 이야기합니다. 백성들이 원망하니까 그 잘못이 모세에게 옮겨져서 그도 못 들어가게 된 것처럼 되어있는데, 거기서는 정당한 이야기여요. 백성들이 하도 그러니까 모세가 성질 내다가 잘못 된 걸로 설명을 합니다만은, 여기서는 민수기는 민수기적인 의미가 있고 신명기는 신명기적인 의미가 있어요. 민수기는 하나님이 모든 대적과 싸우는 것이 민수기지요. 모든 대적과 싸워요. 심지어 누구하고도 싸웁니까. 하나님이 제사장을 통해서 레위인과 싸우고 레위인을 통해서는 백성들과 싸우고 백성을 통해서는 이방과 싸워요. 여러 층층이 싸우지요. 하나님이 아론과 모세하고도 싸웠어요. 그들이 하나님을 하나님 데로 증거 안 했거든요. 그래서 못 들어간다 그렇게 되어있어요. 거기서는 그들의 죄들을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신명기에서는 그런 것이 아니라, 너희 때문에 못 들어간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모세는 사랑해 가지고 나 들어 갈랍니다. 백성 때문에 못 들어갔는데, 좋다. 네 개인적으로는 봐주마. 그리고 비스가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구경이나 해라. 그래서 말하자면 눈으로 보고 얻었어요. 그러니까 모세 잘못은 하나도 없는 것처럼 되어있지요. 왜 그러냐. 여기서는 하나님이 인도자 모세와 여호수아를 세웠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서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신다. 하나님의 은혜의 신실하심에다 강조를 두고 있어요. 너희들은 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말을 잘 들어라. 그것이 신명기 내용인데. 민수기에서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 백성이 하나님을 위해서 싸워야 되거든요. 백성이 하나님을 위해 싸워야됩니다. 만일에 그렇게 못하면 벌받을 것이어요. 그쪽에다가 강조가 주어져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다른 겁니다. 모세가 기도한 여호와는 누굽니까. 보면은 모세가 23절에 기도를 시작했는데,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 시작하셨사오니 천지간에 어떤 신이 이렇게 큰 능력을 행할 신이 있겠습니까. 나로 건너가서 아름다운 땅을 보게 하소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기도한 여호와는 누굽니까. 크신 일을 모세에게 나타내신 분. 어디서 그랬습니까. 애굽에서 구원하기부터 광야로, 요단강 동편까지. 하나님이 크신 일을 나타내길 기다렸어요. 누구를 통해서. 거의 모세를 통해서 했지요. 모세를 통해서 크신 일을 하신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모세가 요단 저편 땅으로 건너가기를 구한 이유는, 구하옵나니 나로 건너가서 아름다운 저 곳을 보게 하옵소서. 이것은 언약 성취를 보고자 하는 것인데, 이제까지 일 하신 하나님께서 요단강 저편에서도 이스라엘을 위하여 일하셔서 복된 땅을 기업으로 주는 것을 보기를 원하는 것이어요. 그냥 경치 좋으니까, 아름다우니까 보자 그런 이야기가 아니지요. 이제까지 크신 일을 나타내셨습니다. 요단강 저편에다 크신 일을 나타내시면은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얻겠지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하나님이 행하신 크신 일, 그 영광을 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여호아께서 모세의 구함을 거절한 이유는, 여기서는 백성 때문에 그랬습니까. 그가 백성의 대표자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거역한 옛 백성은 못 들어가요. 이제는 순종한 새 백성과 새로운 대표자가 들어가지 옛 백성은 못 들어간다. 그래서 그가 옛 세대의 대표자이기 때문에 거절한 겁니다. 모세에게 요단 건너편 땅 사방을 보게 하신 의미는 바라봄으로 얻게 한 것이지요. 발로 들어가지는 못했지만은 약속한 것을 봤어요. 봄으로 그는 얻은 것입니다. 너는 못 들어가니까 구경이나 해라 그런 이야기가 아니겠지요. 여호수아를 담대케 하신 이유는 아까 설명한 것처럼 모세는 못 들어가는데 여호수아 그가, 이 본문에 설명되어있지요. 그가 이 백성을 거느리고 건너가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그가 새 백성의 대표자이기 때문에 여호수아를 담대케 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를 담대케 하는 모세의 명령은 무엇인 것 같습니까. 여기 28절 보면, 여호수아에게 명하고 그를 담대케 하며 그를 강건케 하라. 그렇게 했어요. 어떻게 봐서는 명령하는 것이 담대하고 강건케하는 것이 되겠고, 요단강 땅을 정복하는 것이 명령이고 담대케 하고 강건케하는 것은 다른 이유도 될 수 있을 것이어요. 이 본문에서는 어떤 것이 담대케 하는 것입니까. 21절에도 이제까지 행하신 하나님이 앞으로도 행할 것이다 하는 것이 여호수아를 담대케 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모세가 기도할 때도, 이제까지 크신 권능을 나타내신 하나님이여 요단강 저편에서도 크신 일을 나타내사 아름다운 땅을 얻게 하소서. 그렇게 하고 있지요. 이제까지 1장부터 4장까지의 핵심은 이제까지 하나님이 행하신 크신 권능, 회고적인 것이 강조점입니다. 이 하나님이 앞으로도 하실 것이다. 그러니까 말을 잘 들어라 하는 이야기지요. 그러니까 모세의 명령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라는 명령이겠고. 구체적으로 그를 담대케 하는 격려는 이제까지 이스라엘을 위해서 하나님이 크신 일을 행하셨으니 앞으로도 행하시리라 하는 것이 그를 담대케 하는 것이어요. 방금 문제 답이 설명된 것이 주보 본문입니다. 바산왕 옥도 헤스본왕 시혼처럼 이스라엘을 대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도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손에 붙이셨고 백성은 시혼왕에게 행한 것처럼 성읍과 사람을 다 멸하고 모든 육축과 탈취물을 소유물로 취하였습니다. 이하동문 했다 그 말이지요. 그리하여 요단 이 편 땅을 아르논에서 헤르몬산까지 아모리 족속의 땅을 다 취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멸한 바산왕은 거인족인 르바임 족속의 유일한 남은 자였고 그가 사용한 큰 철침상은 암몬 족속의 성읍에 보전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마 그전에도 전쟁에서 한 번 암몬 족속에게 졌던가 모르겠어요. 바산왕 옥이. 침대는 빼앗겼는데. 그래서 일부러 그 성읍을 언급하는지 모르겠어요. 왜냐면은 이스라엘이 친 사람들은 이 암몬 족속은 모압과 암몬이지요. 이 앞에는 무엇을 말했습니까. 모압과 암몬에게 기업을 주었다. 그들도 강력한 적을 치고 기업을 얻었다. 그것을 말했거든요. 그러니까 여기서는 큰 철침상도 복습한 것 같아요. 바산왕 옥은 거인족 중의 유일한 자인데 그 전에도 전쟁해서 암몬 족속에게 졌던 모양이어요. 침대는 거기에 있긴 한데. 그렇게 큰 적이 아니냐. 이렇게 설명한 것 같아요. 이스라엘이 얻은 땅을 모세가 두 지파 반에게 기업으로 주었다. 힘있게 싸운자들. 여기서는 야일과 길르앗같은 사람들은 그들이 정복한 땅을 얻었고 그곳 이름을 새 이름으로 불렀지요. 그 때에 기업을 얻은 군인들에게 모세가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기업으로 주었은즉 너희는 형제의 선봉이 되어 건너가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처럼 너희 형제에게도 안식을 주시어 요단 저편의 땅을 기업으로 주시리니 그 때에 너희는 기업으로 돌아가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때에 모세가 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를 다음과 같은 말로 담대케 했습니다. 백성에게는 무엇으로 권했습니까. 너희에게 안식을 준 것처럼 형제에게도 요단 저편의 안식을 주시면 돌아 오라. 그렇게 말했고. 그리고 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에게는 무엇이라고 또 말했습니까. 이제까지 하나님이 행하신 것처럼 앞으로도 행하실 것이다. 그렇게 말했지요. 백성에게는 너희에게 기업을 준 것처럼 형제에게도 요단 저편의 안식을 주실 것이다. 그러면 돌아가라. 대장한테는 이제까지 하나님이 크신 일을 행한 것처럼 네가 친히 보았지 않느냐. 앞으로도 그렇게 하실 것이다. 그런 말로 담대케 했다. 모세는 자기에게 나타나기 시작한 이제까지 여호와의 권능의 일이 요단 건너 기업의 땅에서 온전히 나타나는 것을 보기를 원하여 여호와께 간구하였습니다. 기도 내용이 그렇지요. 여호와여, 주의 종에게 주의 크신 권능을 나타내기 시작하였사온데 이런 큰 권능은 세상 어떤 신도 못합니다. 그러니 요단 건너편에서도 이런 큰 권능을 행하셔서 나로 아름다운 땅을 보게 하소서. 그렇게 기도하고 있는 것이지요. 여호수아를 담대케 할 때도 이제까지 하신 하나님이 앞으로도 하시리라. 그랬지요. 그렇게 구했다. 여호와여,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함과 ?할 신이 어디 있습니까. 주의 크심과 권능을 종에게 나타내기 시작하셨사오니 나로 요단을 건너가 아름다운 기업을 보도록 그렇게 하옵소서. 기도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백성까닭에 모세에게 진노하사 기도를 듣지 않으셨습니다. 모세는 거역한 옛 세대의 대표자이기 까닭입니다. 그러나 모세에게 산에 올라가 요단 저편 땅 사방을 보게 하심으로 그 땅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 전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주신 땅을 두루 사방으로 보았지요. 그렇게 함으로 주신 것을 얻었다 그 말입니다. 그리고 모세 후계자인 여호수아를 명하여 담대하고 강경케하라 했다 그 말입니다. 언약에 신실하신 여호와를 믿을 때에만 그가 담대하고 강경하며 그가 백성을 거느리고 건너가 모세가 본 땅을 그들의 기업으로 얻게 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만일게 담대치 못하면은 그 일을 못해요. 어떻게 하면 담대할 것인가. 여호와를 신뢰해야되는데, 어떤 여호와입니까. 이제까지 이스라엘을 위해서 큰 일을 행하신 분. 그 분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 모든 말을 회상적으로 백성들에게 말하였다. 전부 옛 날을 회상한 방식으로 이야기해요. 이랬었느니라 하고. 왜 그 말을 하냐면 4장 이야기를 하려고 그런 것이어요. 자 이제까지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으니 너희들이 이렇게 하나님을 잘 순종한 말을 지켜야 할 것 아니냐. 언약 체결을 위해서 이제까지 모든 일을 회상하고 있는 것이어요. 회상한 일은 이미 강력한 이방 족속의 땅을 아브라함에게 속한 자들에게 주셨음을 말했지요. 누구누구. 에서, 모압과 암몬. 그랬지요. 또한 거역한 옛 세대를 심판하셨음을 백성들에게 상기 시켰습니다. 옛 군인들은 다 죽었다. 그런 말을 몇 번 했지요. 그리고 여기서도 회상하고 있지요. 너희 때문에 나도 못 들어간다고 그 말을 반복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에서든 모압이든 암몬이든, 그리고 이미 요단강 동편에 줬다. 그러나 거역한 세대는 다 죽었다. 그런 일을 1장부터 지금까지 쭉 3장까지 이야기하고 있지요. 이제까지 언약에 신실하신 여호와께서 언약의 남은 부분을 이제 완성하실 것이다. 이러한 여호와께 백성이 온전히 신실하여 요단 건너편의 기업을 얻으라고 명한다. 그런 후에 4장에서 가나안 땅의 언약을 말한다. 그 땅에서 언약의 법을 지키고 여호와만 섬겨 복을 받으라고 명한다. 그렇게 해서 첫 설교가 끝나요. 그래도 강조점은 회상적입니다. 4장 1절을 보면은 규례와 법들을 듣고 준행하라. 지켜 행하라. 13절을 보면은, 그 언약을 반포하시고 지키라 명하신 십계명이 아니냐. 하나님은, 24절,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 너희들이 범죄 하면 죽으리라. 그러나 회개하고 구하면은 만나리라. 그런 이야기를 쭉 하고 있다. 39절, 40절을 보면은, 오직 여호와만을 순종해서 복을 받고 잘 살아라. 그리고 혹시 범죄 하면은 도피성에 도망쳐서 살아라 했고 한 단락을 끝맺고 있다. 그리고 이제 4장 44절부터 다시 새로운 설교를 시작하는데 또 언약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전일을 회상하는 것이 44절부터 49절, 그리고 가나안 땅에서 지킬 십계명을 강론하고 있는 것이 5장부터 들어간다. 그러니까 동심원적인 물결구조를 가지고 있는데도 첫 설교는 이전의 일들을 회상하는 일이 강조고, 두 번째 설교는 그들이 지킬 법을 강론한 것이 강조고, 세 번째 설교는 영원히 이 언약의 법이 어떻게 보전되고 계속될 것인가. 그 쪽에다가 강조를 주고 있다. 이스라엘을 위하여 이방에 권능을 행하신 하나님께서, 이제까지 어떤 이방입니까. 애굽에 행했지요. 세일산에서 사는 호리 족속에게 행했지요. 암몬 족속을 위해서도 행했지요. 여러 이방들을 쳤어요. 하나님께서. 이것을 모세는 뭐라고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종에게 나타내기 시작하셨사오니, 여호수아에게 말할 때는, 이제까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네가 눈으로 잘 봤지않냐. 그런 이야기들이지요. 즉 이스라엘을 위해서 이방에 권능을 행하신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대표자로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부활시킴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역사를 온전케 하셨다. 이전에는 이방을 치심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행하셨는데, 이제는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심으로 교회를 위해서 행하셨다. 그것이 생명의 역사가 완전하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교회는 이 하나님께 신실하여, 아직도 죽음이 왕처럼 역사 하는 이 세대를 이기고 그리스도의 영광의 나라를 볼 때까지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된다. 그것이 1장부터 4장까지 말하자면 하는 메시지어요. 이스라엘을 3장에서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이 크신 일을 나타내기 시작했는데 가나안 저편에서도 그 크신 일을 나타내시어서 아름다운 땅을 얻게 하소서. 그렇게 되어 있지요. 이제까지 크신 일을 하신 하나님께서 이제까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너희 눈으로 봤지 않냐. 애굽에서, 광야에서, 요단강 동편에서 어떻게 했는지 봤지요. 다 이방족들 하나님의 나라를 방해하고 그 길을 막고 그런 자들을 전부 죽였지요. 그것이 하나님이 행하신 큰 일이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이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은혜의 일을 어디서 극점에 도달하게 되냐면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을 통해서 이제는 자기 백성을 위한 생명의 역사를 완성시켰다. 그것이 이스라엘을 위한 일이고 거기에 교회가 참여하지요. 자 이제 앞으로도 우리들은 예수께서 오시면은 나타날 그 영광의 나라를 봉사하고 살아요. 마치 요단강을 앞에 두고, 너희들이 이전 일을 잘 회상해라. 하나님이 얼만큼 큰 일을 하셨냐. 그러나 거역한 자는 몽땅 죽었지않냐. 그러니까 자 여호수아야 너 힘을 내라. 지금 우리에게 이 메시지가 그런 것이어요. 아직 예수께서 재림하는 영광은 감추어져 있어요. 그래도 우리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목표는 거기어요. 그러면은 우리들은 무엇을 돌아봐야 되겠어요.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시는 하나님 높으신 이름위에 보좌 우편에 앉으셨어요. 우리가 항상 이것을 회상해야 됩니다. 우리을 그 영광을 눈으로 보도록 까지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이어요. 그것이 우리의 믿음의 담력이지요. 그렇게 해라. 그 말입니다. 우리들은 예수께서 구약때는 모세가 여호수아를 담대케 했어요. 모세는 죽지만은 여호수아가 할 것이어요. 모세는 누구 때문에 죽었는가. 자기 백성의 죄 때문에 죽었지요. 대표자로 죽었어요. 여호수아는 새 백성으로 일을 이었어요. 예수님은 자기 백성의 죄를 대신해서 죽었지만은 하나님은 그를 살리셔서 영광의 날을 상속토록 했어요. 영광의 나라를. 그렇게해서 우리도 여호수아, 우리의 구주되신 예수를 따라서 남은 전쟁을 감당하도록 한다. 이 전쟁은 이 이긴 전쟁은 전리품이나 주어라는 그런 전쟁이어요. 그것이 우리에게 맡겨진 것이다. 예수를 믿는 것이 우리의 담력이어요. 그것이 신명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메시지다. 그런 말입니다. 출애굽기나 신명기, 특히 언약 체결적인 책들을 봤을 때, 물론 다른 것도 그와 관계가 있습니다만은 그걸 신약적으로는 그 당시 종주권 언약, 그것이 성경 언약의 토대입니다. 승리하는 왕과 그에게 항복한 왕이 언약을 맺으면은 왕이 나는 누구라. 나는 너희를 이렇게 이렇게 일한 왕이 아니냐. 그러니까 너 딴 마음 품지말고 나만 잘 섬기면은 대대로 네 나라를 보호해 주고 복을 주겠다. 그러나 만일에 반란을 일으키고 잘못하면은 망하리라. 그렇게 해서 그 언약판을, 우리같으면 국가 조약 맺어놓고 도장 찍는 것처럼, 말하자면 이런 흑판에다 그걸 써가지고 자기 신전들에다 보관하는, 그것은 영원한 언약에 신들이 증거가 되는 것이어요. 그리고 만일에 그 언약의 판을 바꾸거나 돌판을 깨뜨리거나 하면은 벌받을 것이어요. 그것이 말하자면 그 당시 승리한 왕과 복종한 왕의 언약 체결이어요. 그 당시는 그것이 나라간의 가장 강력한 언약이기 때문에 바로 그 언약 체결 방식을 모세가 쓰고 있다. 가령 우리사람이 하나님 했을 때 성경의 여호와를 하나님 이렇게 번역했으면은 아 한국말을 갔다 썼으니까 성경이 한국어가 된 겁니까. 아니지요. 히브리 사상은 하나님이 그 하나님인데 우리나라 말로 하나님 갔다 붙인 것이지요. 우리가 쓰는 언어가 그런 것이니까.
'구약 구속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신명기 강해 5 (0) | 2024.06.22 |
|---|---|
| 신명기 강해 4 (0) | 2024.06.15 |
| 신명기 강해 2:1-23 (2) | 2024.06.03 |
| 신명기 강해 1-4:43 (5) | 2024.06.01 |
| 신명기 서론 II (0) | 2024.05.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