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강해
신명기 1-4:43
성경 구조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으면 성경을 이해하기 좋습니다. 특별히 성경의 중요한 인물은 모세인데,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체결했습니다. 그 때가 어느 때나면 애굽에서 나와서 시내산에서 그 언약을 체결했지요.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 제일 중요한 장면은 구약에서는 시내산 장면입니다. 그 때 하나님이 언약을 체결하셨습니다. 언약을 체결하고 그 언약의 돌판을 하나님의 성소에다 보관토록하고 신명기를 보면은 매 칠년 초막절에 회중 앞에 읽도록 했습니다. 성경에서 제일 중요한 근본 개념이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체결하셨다 하는 것이 성경에서 제일 중요한 개념입니다. 그러면 창세기는 무엇이겠습니까. 창세기는 하나님이 어떻게 이런 이스라엘 백성을 출생시켰는가, 이스라엘의 기원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창세기에서 말하고 있고, 그리고 출애굽기 초반부는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시고, 시내산에서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건져낸 하나님이 아니냐 그러니까 너희들은 나만 섬기고 절대로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내 말만 들어라. 잘 들으면 복을 주고 안 들으면 저주하겠다. 그렇게 언약을 체결하고 있는것이 십계명을 선언하는 장면이어요. 그리고 그 이후에 역사는 이 언약을 따라서 백성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것을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언약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왕과 제사장에 관한 문제인데, 왕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켰는가 안 지켰는가 그런 것을 이스라엘 역사에서 밝히고 있는 것이 여호수아부터 열왕기아까지이고. 하나님이 제사장 제도안에서 어떻게 자기 백성과 함께하셨는가 그런 것에 강조를 둔 것이 역대기, 그리고 에스라 포로 후기에 쓴 그런 것들이 주로 레위기죠. 제사장적인 문장들입니다. 잠언도 하나님의 시내산 율법이 어떻게 개인적인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될 것인가 그런 것을 말하고 있는것이 잠언이나 시편이나 그런 문제들입니다. 그러니까 구약 성경을 푸는 핵심 열쇠가 시내산의 언약이 핵심이어요. 왜 그러면 그 때 하나님께서 특별히 말씀을 주셨는가. 그 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나라로 조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전에 아브라함도 언약 백성이지만, 그는 개인으로서이기 때문에 그는 시내산에서 나라법으로 준 적이 없지요. 이 일이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에서 완결되지요. 그러니까 성경에서 가장 근본적인 토대는 시내산 언약입니다. 신명기도 그렇게 해석을 해야됩니다. 신명기는 시내산 언약의 갱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어떤 의미에서 갱신이냐면 시내산 언약이 가나안 땅에서 집행된 것이어요. 시내산에서 체결한 언약이 가나안 땅에서는 어떻게 체결될 것인가 그런 의미로 언약갱신입니다. 가령 어떤 왕이 다른 나라를 정복해서 그 나라하고 계약을 맺으면은, 가령 우리 나라하고 미국을 예로 들면, 우리는 미국과 동등인줄 알고있지만은 동등도 아닙니다. 한 대학교보다도 예산이 적어요. 조그만 나라인데. 미국이 우리나라하고 조약을 맺으면은 6.25때도 건져주고, 이런 우리나라를 위해서 행한 일을 이야기하겠죠. 그러니까 당신 절대로 앞으로 소련하고 거래를 하면 안되고, 절대로 나하고만 해야되지 나를 떠나서 중국이나 소련하고 뒷거래하면 안되고 무기 거래살 때도 꼭 내것만 사고 만일에 그렇게 안했다가는 이제 뭐가있겠지요. 그리고 내 말을 잘들으면 앞으로 계속 동맹을 맺어서 보호를 해주겠다. 그러면 여러분 기분이 나쁩니까. 미국이 너무 우리를 째째하게 취급해서. 그런데 실제적인 내용이 그런 것이어요. 그 언약과 비슷하다 그 말이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행하신 일을 말합니다. 내가 아니냐. 그러니까 나만 신이고 다른 것은 신이 아니고 절대로 나만 섬겨라. 만일에 나를 안 섬기고 다른데하고 조약을 맺어 섬기면은 내손에 혼날것이다. 이런 말이지요. 그리고 내말을 잘들으면은 내가 어떤것에서도 너를 보호해주고 복을 주마. 그리고 너희들뿐만 아니라 대대후손에게도 복을 주마. 이렇게 말하면은 그 언약일 대대로 내려가는 것이어요. 그것이 말하자면 출애굽기에 나타난 언약인데. 그런 언약이 모든 성경으 토대를 이룹니다. 우리나라가 미국하고 교류하면 미국 대사관이 여기있지요. 만일에 국가 교류가 없으면 대사관이 없지요. 그런식으로 이스라엘 나라에다 하나님 집을 세우고 그러면은 그것은 완전히 하나님 나라예요. 하나님 집이 있기때문에. 그 중에서도 자기 대리자로 여호수아와 모세를 세우면은 그들은 하나님을 대리하는 자들이예요. 그들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이 다윗 왕권이지요. 다윗왕권은 하나님을 복종하는 왕국으로 있는것이지요. 그런것이 구약의 특별한 성격이라 그런 말입니다. 그것이 신구약에 전부 깔려있는 내용들이 그런 내용들입니다. 근본 언약개념 그것입니다. 그러면은 신명기는 똑같은 언약체결 이야기인데 출애굽기하고 비슷하다. 십계명이이 나오고 있는 것도 출애굽기 나오고 신명기 나온다. 다른데서는 안 나오지요. 그러니까 벌써 언약의 법이 거기있잖아요. 그러니까 분명히 비슷한데. 그런데 출애굽기하고 비교해 보면 달라요. 어떤 점이 다른가. 그것은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소유한단 개념에서 달라져있어요. 출애굽기는 가나안 땅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백성삼으신다는 언약체결이 문제고, 신명기는 가나안 땅을 주어서 누리게 한다는 것이 핵심이어요. 그러니까 출애굽기 언약이 즉 시내산 언약이 모압 땅 언약에서는 바뀌지요. 어떤 의미로. 가나안 땅의 복을 누리는 개념으로 바꿔져있지요. 그래도 토대는 출애굽기 언약이 핵심이어요. 신명기에는 시내산에서 베풀었던 출애굽기에 있는 십계명도 5장에 다시 나온다. 그러면 근본적인 성격은 그런데도, 책의 구조는 어떻게 되어있느냐. 형식상 말하면 모세가 세 번한 설교로 되어있어요. 말씀은 이러하니라 그렇게 출발하고 있지요. 1장 1절도 그렇고 4장 45절도 그렇고 그 다음에 31장 처음에도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니라 그렇게 나오고 있어요. 형식상으론 그렇게 나눌수 있습니다. 모세가 세번 설교했으니까. 어떤의미로 모세가 죽기전에 설교했으니까 모세의 유언적인 설교라고도 해요. 그래도 모세가 유언적인 설교를 했다니까, 죽기전에 마지막 말했구나 그런 유언이 아니라, 모세의 직무를 누가 이어 받습니까. 여호수아가 물려받았다고 되어있지요. 그것이 뒷부분에 보면 강조되어있지요. 제일 뒤에도 여호수아에게 모세에게 임한 신이 임해서 그를 담대케 했다고 그런 말이 있지요. 그러니까 이것은 유언이란 말은 그냥 죽기전에 마지막한 말이니까 중요하다 그런 말이 아니라, 모세는 죽어도 상속자가 있죠. 누굽니까. 여호수아. 가령 중국하고 우리나라하고 조약을 맺으면은 중국 임금이 죽어도 그 아들이 대를 이으면은 우리는 누구한테 맹세할 의무가 있습니까. 그 아들한테도 순종해야될 의무가 있지요. 그런 의미로 하나님이 대리왕을 모세에서 여호수아로 옮기고 있어요. 그들은 하나님의 대리자로 서있거든요. 이스라엘은 순종할 백성으로 서 있고. 그렇게해서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에게 모세에게 임한 영이 임했다.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일으킨 적이 없다. 그리고 후계자는 여호수아다 했을때 하나님 나라가 상속되고 있는것이지요. 모세에게서 여호수아에게로.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순종했듯이 여호수아를 순종해야되요. 그런 의미로 유언적이어요. 그것이 히브리서에서는 언약을 유언이라고 말하고 있지요. 유언은 유언자가 죽어야 확정된다. 언약을 유언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그런 것이어요. 어떻든 그 왕들은 죽어도 언약은 대대로 내려갈려면은 그 언약이 상속되면 되지요. 상속되는 것은 전 왕이 죽어야만 완전히 상속되고 죽으면은 후대 왕에게 복종하면 되어요. 그리고 아브라함이 죽어도 아브라함의 아들이 상속하면 언약은 영원한 것이어요. 그런 의미로 예수님은 죽으셨지만은 부활하셔서 하늘 보좌에 앉아있기 때문에 죽었다는 의미로는 모세 비슷하지만은 부활했다는 의미로는 여호수아 비슷해서 그는 땅에서 제자들과 언약을 체결하셨을 뿐 아니라, 그 몸의 죽고 부활하심을 통해서 언약이 영원히 유효하도록 상속되어있지요. 언약의 주가 살아계시기 때문에. 그런 개념을 구약이나 신약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모세가 세 번 한 설교로 되어있는데, 그 세 번 설교도 언약적인 틀로 되어있다. 크게 나누면은, 첫 번째 했던 설교는 하나님이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했던 일을 회상하는 내용에다 강조가 주어져 있어요. 그리고 두 번 설교는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될 법들이 무엇인가 그런 것에 강조가 주어져있어요. 세 번째 설교는 이 언약이 어떻게 계속해서 상속되고 물려받을 것인가 그쪽에 강조가 주어져있어요. 큰 특징들이 그렇단 말입니다. 그러면 언약을 회상한 1장부터 4장까지는 회상만 있는가, 그런 것이 아니라, 회상이 강조를 이루어도 그것까지라도 언약적인 틀을 가지고 있어서 너희들이 정복한 땅에서 말을 잘 듣고 복을 받아라하는 말로 4장이 끝나고 있고 5장은 다시 하나님이 어떻게 요단강 동편을 정복했는가 다시 하나님이 그들에게 어떤 일을 행하신가를 말하고 그 하나님 앞에 너희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 그 다음에 따라있어요. 그래서 그 전식 표현법으로 하자면 동심원적인 물결 구조가 있단 말이지요. 같은 언약적인 사상이 반복되는데 첫 설교는 회상이 강조되고 두 번째는 지키는 법들이 강조되고 세 번째는 언약이 계속 상속되는것이 강조되지마은 내용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어떻게 살것인가, 언약의 하나님은 누구시고, 내가 너희들에게 어떤 일을 했고 너희들은 나한테 무엇을 들어야 되겠고 들으면 어떤 복을 주고 안 들으면 벌을 주겠는가 그런 문제들로 대개 되어있다. 그것이 신명기 구조입니다. 신명기 핵심적인 말은 순종해서 복받으란 말이 핵심이어요. 그래서 시내산 언약이 그 가나안 땅을 상속한다는 배경에 맞도록 조절되어 있다. 그런 의미로 언약 갱신이란 말이어요. 언약이란 것은 한 번 정해지면 불변하지요. 불변하단 말은 취소될 수없다는 의미로 불변하지 언약이 집행되는 상황이 똑같다는 말은 아니어요. 가령 부모가 자식한테, 물론 언약적인 관계는 아니지만은,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하도록 되어있지요. 그건 취소가 안 되요. 그런데도 자식을 위해 행하는 방식들은 달라지지요. 달라져야만 부모가 자식에게 부모 역할을 한다는 의미가 영원히 계속되는것이지 달라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지요. 그것과 같다 그 말입니다. 그런 개념만 가지면 되어요. 그래서 똑같은 법이 있어도 출애굽기는 내 백성 삼은다. 하나님 백성되는 자격을 준다. 거기다가 내용이 주어져 있으면은, 신명기는 가나안 땅에 풍성한 복을 주신 내용이 그 언약의 법에 담경있다. 이제 1장 부터 보십시다. 그 전에 민수기까지는 본문들을 요약하면은 내용들을 선명히 알 수 있었는데 이것은 그렇게 하기 어렵습니다. 신명기는 특징이 달라서. 그래서 문제부터 내고, 그냥 전체적인 해석을 하고 그 다음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교회가 이루어지는지 해석하는 방식으로 했습니다. 자 문제 1번 입니다. 물론 1절부터 8절까지는 보통 구분하자면은 그런 구분법보다는 그냥 서론 그렇게 구분을 해요. 형식상 구분하면 서론하고 그러는데 그렇게 구분 안해도되요. 저는 그냥 내용상으로 제목을 붙였습니다. 1절부터 8까지는 언약 성취를 위한 출발명령이 주입니다. 자 문제 1번입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장소, 장소를 묘사하는 방식, 또 왜 그렇게 그런 방식으로 묘사했는지 그런 의미가 무엇인가 그런 것입니다. 문제 2번은 말씀을 선포한 때는 언제고 왜 때를 그런 방식으로 묘사했는지 그런 말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인도 하신 두 과정, 출발지하고 목적지, 목적지를 왜 또 그렇게 묘사했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 그런것입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 그 말이지요. 왜 하필이면 그렇게 묘사하는가 그런 말이지요. 1번을 보면은 말씀을 선포하신 장소는 무엇인가 그랬는데, 1절을 보면은 모세가 요단 저편 숩 맞은편의 아라바 광야 곧 바란과 도벨과 라반과 하세롯과 디사합 사이에서 이스라엘 무리에게 선포한 말씀이니라. 제일 끝에를 보면은 모세가 요단 저편 모압땅에서 이 율법 설명을 시작하였더라. 끝으로 요약해논 모압땅 그랬는데 1절에 설명하기는 장소를 여기저기 지명들을 언급하고 있지요. 그러면 말씀을 선포했던 장소가 좀 안 맞지요. 무등산 꼭대기에서 말했다거나 가령 하남 우리교회에서 말했다고 하면 좋은데 하남, 여기 월곡동, 저기 임곡동, 어디어디 그 부분에서 말했다 그러면은 조금 기분이 묘하지요. 모세가 말한 장소는 실은 한 지점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인데도 넓은 영역을 설명해줘요. 여기서 말했다고. 왜냐하면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이미 정복한 땅이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묘사를 하고 있는 것이어요. 그리고 여기보면은 나는 그냥 알기 좋게 요단 동편 요단 서편 그렇게 이야기 할 때가 많지만은 신명기 표현은 그런 표현이 아니라, 요단 이 편 요단 저 편 이렇게 설명되어있어요. 그러니까 요단강을 중심으로 해서 양쪽. 가령 도피성을 만들때도 신명기에서는 온 땅을 똑같이 세 구분 해가지고 그런 식으로 표현을 해버려요. 그러니까 요단 이편 요단 저편 그렇게 말하지요. 그러니까 말씀을 선포한 장소를 여러지역으로 말하고 제일 끝에 결론은 요단 저편 모압땅 이렇게 했지만은 여러 지역으로 묘사한 이유는 그것이 이미 그들이 정복한 땅이 때문에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회상적인 의미가 1장 부터 4장까지는 강조를 이루고 있다 그런 말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은혜의 일을 이루셨는가 이 하나님 앞에 복종해야 할 것 아니냐그런 설명을 한 것입니다. 말씀을 선포한 때를 보면은 2절을 보면은 호렙산에서 세일 산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에까지 열 하룻길이었습니다. 제 사십년 십일월 그 달 초일일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신 명령을 다 고했다. 뭣이라고 말합니까. 말씀을 선포한 때는 첫째 제 사십년 십일월 초일일에, 그 다음 4절을 보면 때는 사십년 초 일일이 어느 때냐? 그 때가 모세가 헤스론에 거하는 아모리왕 시온을 쳐죽이고 그리고 바산 왕 옥을 쳐죽인 후에, 시간적으로 하면 40년 후인데 그때가 또 어느 때냐 하면 사건적으로는 요단 동편에 두 왕을 쳐서 정복한 후다. 그렇게 말해주고 있지요. 그리고 광야의 방황은 끝났고 하나님께서 요단 동편의 두 왕을 정복한 후에 이 말씀을 하셨다. 그런 말이어요. 무슨 말이가 감이 잡히지요. 하나님께서 어떻게 광야의 방황을 끝내고 이미 기업을 주셨는가? 그런 문맥에서 때를 선언하고 있지요. 광야 40년은 끝났습니다. 끝난 때가 어느 때입니까? 요단 동편의 두 왕을 죽였습니다. 그때 말을 했다. 승리의 현장에서 그런 말이어요. 그러니까 광야의 방황은 끝났고, 요단강 동편의 강력한 두 왕을 정복하고 기업을 준 후에 그런 말과 같다. 때를 묘사하는 방식도 회상적인 데가 강조가 주어졌지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주 과정을 보면은 첫째는 호렙산에서 세일산 가데스바네아의 열 하룻 길이었고, 그때가 2차 인도였지요. 말을 안들어가지고 40년을 돌렸지요. 40년이 끝났다고 그랬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두 과정은 호렙에서 가데스바네아까지 그리고 광야 40년, 두 인도하신 것을 회상한다. 인도한 과정까지라도 회상적인데 강조가 주어져있지요. 열하루 만에 가데스바네아로 인도하셨어요. 백성들이 범죄해서 또 40년을 인도했어요. 그리고 마지막 40년 후에 요단강 동편의 두 왕들을 정복했어요. 그리고 이 말씀을 주셨다. 언약의 말씀을. 그러니까 인도한 과정도 회상하는데 강조가 주어져있지요. 또 출발지와 목적지, 목적지의 묘사와 그 의미를 보면은 출발할 때는 2절에서도 호렙산 그렇게 되어있고 6절에서도 보면은 호렙산에서 출발하라 그렇게 되어있어요.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2절에 인도했을 때는 가데스바네아까지 40년을 돌리고 요단 서편에 왔는데 7절을 보면은 어디로 가야됩니까. 호렙산에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산에 거한지 오래니 방향을 돌려 진행하여 아모리족속의 산지로 가고 그리고 아라바 산지, 또 평지와 남방 해변과 가나안 족속의 땅 레바논과 큰 강 유브라데까지라. 보니까 이전에 말했던 언약의 땅들의 경계들을 이야기 하고있지요. 살고 있는 족속은 아모리족속의 산지고 영토를 보면은 아라바산지와 평지와 남방 해변이고 경계를 보면은 가나안 땅 레바논과 큰 강 유브라데까지고. 그러니까 그 경계와 영토와 거기 살고 있는 민족을 주로 이야기하고 있지요. 그런데 가나안 일곱 족속을 이야기하지 않고 주로 아모리 족속으로 이야기하고 있지요. 다른데서는 족속으로 일곱 족속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그렇게 하지 않고 아모리 족속에다 강조가 주어져있어요. 왜 그러냐. 요단 동편의 두 왕이 아모리 왕이거든요. 그러니까 요단 서편도 아모리 족속으로 이야기를 해요. 요단 동편을 이겨주신 하나님이 요단 서편도 이겨주실 것이어요. 표현법이 한참 바꼈다 그런 말입니다. 목적지는 어딥니까. 언약의 땅으로 되어있고. 출발지는 호렙산으로 되어있지요. 그런데 표현하기를 호렙산에 거한지 오래니 그래요. 거기서 얼만큼 거했답니까. 그러나 신명기라 그래요. 출애굽기는 거기 거한지 오래되었다 그런 말보다도 거기서 언약 체결하는 시간을 보내지 거기서 오래 거했으니 가라 그런 말은 아니어요. 그런데 신명기는 이제 이 산에 머물지 말고 저 산으로 가거라. 여기서 오래 머무를 것 뭐가 있냐. 그런 방식으로 묘사를 해주고 있죠. 그런데 그 땅은 어떤 땅입니까.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이지요. 그러니까 목적지를 그렇게 묘사하고 있는 것은 언약 성취를 위해서 그렇게 묘사하고 있는것입니다. 이미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이 그 땅을 주실 것이어요. 그러니까 표현법까지라도 이렇게 달라져 있다. 그 다음에 더 중요한 것 보면, 9절 부터 18절을 보면은 이스라엘이 번성해서 하나님 나라로 조직되어 있는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과 비슷한 것은 출애굽기 18장 13절 이하에도 똑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면은 이 내용들을 비교해 보아야된다. 그 내용들을 섞어서 보충하면 안되고 비교해가지고 그 차이점을 발견해야 돼요. 문제 7번 모세 홀로 이스라엘 짐을 질 수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본문에 보면은. 10절에 답이 있지요.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를 번성케 하셨으므로 너희가 오늘날 하늘의 별같이 많거니와 너희 열조 하나님이 현재보다 천배나 많게 하시며 너희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그런 즉 어찌 나 홀로 너희 괴로운 것과 무거운 것과 짐과 너희 다툼을 감당할 수 있으랴. 짐을 질 수 없다는 말을 두 번하면서 그 사이에 짐을 질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지요. 왜 홀로 짐을 질 수 없습니까. 이 본문에 보니까. 숫자가 너무 많아서. 또 모세가 지는 짐은 어떤 것을 짐진다고 그럽니까. 본문에. 12절을 보면은 능히 너희 괴로운 것, 너희 무거운 짐, 너희 다툼을 감당할 수 있으랴. 주로 재판하는 겁니다. 감당할 수 없어요. 너무 수가 많아서. 그래놓고 수가 많으니까 수좀 줄였으면 좋겠다 그래야 맞을 것 같은데 수가 많아서 짐질수 없다 그래놓고 축복까지 하지요. 하나님이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시려니와 이 보다 더 많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모세의 축복은 하나님이 허락하신데로 더욱 번성케 하기를 원한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조직을 제안한 사람은 여기서는 모세지요. 너희 중에 이러 이러한 자를 뽑아라. 출애굽기에서는 그렇게 이야기 않지요. 모세 장인이 와서 보니까 자기 사위 혼자 재판하고 있어가지고, 백성들이 쭉 줄서가지고 차례 기다리느라 피곤하고 모세는 혼자 재판하느라 피곤하고. 안되겠어요. 그러지 말고 조직을 갖춰라. 거기서는 덕망있는 사람을 뽑아서, 여기서는 지혜로운 사람을 뽑으라 그랬는데 거기서는 덕망있는 사람을 뽑으라 그랬어요. 그러면 당신도 피곤하지 않고 백성도 피곤하지 않고 빨리 자기 집으로 갈 수 있지 않느냐. 거기서는 법이 집행되는 것이 핵심이어요. 혼자 재판하니까 재판을 받을 수 없어요. 거기서는. 그것이 핵심이어요. 수가 많고 적고 하는데 강조점은 아니지요. 혼자 피곤할 만큼 그렇게 일하지 말아라 그 말이었어요. 출애굽기는 핵심이 언약 체결, 하나님의 법이 집행되는 나라 그것이 강조점이기 때문에 그렇지요. 그리고 이 내용이 출애굽기에서는 시내산 전에가 그런 내용이 있지요. 바로 시내산 전 장면에 이 내용이 있고, 바로 이 조직된 나라에 하나님께서 나라 왕으로 임하셔서 너희들이 지킬 법은 이것이다 선언해 주고 있어요. 그런데 신명기에서는 배열을 거기다 두고 있는것이 아니라. 시내산을 출발하라. 6절에 그렇게 말했지요. 호렙에서 출발하라. 그 뒤에다가 이 말을 배열을 시켜놨어요. 그러니까 이것은 시간적인 순서로 배열한 것이 아니라, 신명기적인 순서로 배열해 놓은 것입니다. 즉, 그들이 하늘의 별처럼 번성하고 가나안 땅을 상속도록 했다 그런 문맥에다 배열해 놨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얻으라고 그랬는데 누구한테 얻으라고 그랬느냐. 번성하고 번성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얻으라고 그랬다. 번성하고 번성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려는 것이어요. 그리고 그것을 충고한 사람도 출애굽기에서는 이드로가 와서 충고했지요. 왜냐하면 세상 나라가 다 그렇게 되어있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것이 아니라, 모세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자기 혼자 이스라엘 백성의 재판과 어려운 것, 짐진 고통스러운 것을 감당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너희들중에 지혜로운 사람을 뽑아가지고 그렇게 하도록해라. 여기서는 이미 시내산에서 법을 받은 백성으로 지혜로운 백성으로 이야기하고 출애굽기에서는 지혜에다 강조를 두지 않고 덕망있는 자를 뽑아라 그렇게 되어있어요. 여기서는 지혜로운 자를 뽑아라. 그렇게해서 그들의 두령들로 삼아서 함께 짐지도록 했습니다. 모세와 그 함께한 지혜자들의 직무를 보면은 16절에 나와있는데 그들을 백성들의 어른으로 삼아가지고 너희 재판장들에 명하여 이르기를 재판장들이 되는 것이지요. 왜? 이들이 하나님 나라니까 그런단 말이어요. 그리고 이 재판도 보면은 출애굽기는 당신이 혼자 판결하니 백성들이 판결을 받을라고 피곤하지 않냐. 그러니까 십부장이 판결해서 부족하면 백부장에게, 백부장이 판결해서 부족하면 천부장에게, 그래도 잘 모르겠으면 나한테 와라. 이것이 출애굽기 방식이었어요. 말하자면 법은 조직법하고 비슷하게 되어있어요. 물론 17절에도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 있거든 내게로 돌리라 그렇게 했지만은 출애굽기는 점점 상급심으로 올라간 그런 구조로 되어있고 신명기는 그런 구조는 없어요. 그러니까 하나는 조직이고 하나는 이 법이 온 백성에게 누려지도록 하는것이 차이점이지요. 신명기적인 특징으로 바꿔진 것이지요. 분명히 모세한테 묻기는 물어도 어려우면은, 그러지만은 십부장이 판결하기 어려우면은 백부장에게 그런 상급심제도를 신명기에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뭐라고 말합니까. 오히려 강조된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아 타국인 까지라도 그렇게 재판할 것이고, 17절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 즉 너희는 재판의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보지 말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렇게 말했지요. 하나님의 판결을 집행하는 사람들이지요. 물론 어려우면 모세한테 와야되지만은 십부장, 백부장, 천부장 등급을 둔데다 강조가 주어져 있지 않다. 신명기에서는 모든 재판장들이 다 제자들이다 하는 것이 강조점이어요. 십부장, 백부장, 천부장은 있어도 이 사람들에게 상급심 하급심 제도를 둔 것이 아니라, 이 모두다 재판장인데 이 재판에는 이방인까지 참여해야된다. 공평히 판결하고 절대로 사람의 낯을 보지 말아라, 하나님이 재판장이니까. 그러니까 출애굽기하고는 강조점이 달라져 있지요.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을 재판의 나라로, 재판 등급을 둔 나라로 조직되고, 재판이 모든 백성에게 신속히 집행되는것이 강조점이고, 신명기는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나고, 하나님의 판결이 모든 두령들을 통해서 집행될 수 있도록 그런데다 강조가 주어져있다. 그러니까 똑같은 재판법이어도 내용이 신명기적으로 바껴있지요. 그러니까 그런 차이점들을 비교해서 못 읽으면은 여기 있는것 신명기에 있으면, 신명기에 있는것 출애굽기에 있으면 뭐하러 똑같은 이야기를 해요. 또 맞춰보면 맞지도 않는것을. 그것을 서로 틀린것을 합쳐서 보충하면 안된다 그런 말입니다.
그래서 질문은 재판장들인데 문제 10번 출애굽기와 신명기의 하나님 나라 특징은? 출애굽기는 조직된 나라고, 조직에가 강조가 되어있고, 신명기는 하나님의 지혜가 통치하고 하나님이 통차한 것에 강조가 되어있어요. 조직이 아니라. 그래서 출애굽기 18장은 시내산 전에다가 그 조직된 나라에 하나님이 왕으로 임하셔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렇게 말씀하고 있고. 그리고 신명기는 그것이 아니라, 가나안 땅을 얻으라고 명령했어요. 누구에게? 하늘의 별처럼 번성시킨 백성에게. 가나안 땅의 상속과 그리고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판결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히 집행되는 데다 강조가 주어져 있다. 공평에가. 비교를 해 보십시오. 그 다음 19절 부터 33절을 보면은, 정탐꾼과 그들의 거역에 대한 이야기를 쭉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민수기 13장부터 14장에도 있지요. 그것과 비교하면서 답을 쓰면은 양쪽 내용을 강조점을 잘 알 수가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정복할 민족을 여기서는 19장에서는 뭐라고 말하냐면은 아모리족속 그렇게 말했지요. 아마 민수기에서는 한 족속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가나안에 여섯이든 일곱이든 그 구체적인 족속들에게 강조를 주었을 것이어요. 민수기는. 그런데 신명기는 묘하게 아모리 족속 그래요. 아까 말했지요. 지금 요단강 동편에 정복한 왕들은 아모리 왕들이어요. 그러니까 이쪽을 이긴 하나님이 저쪽도 이겨줄 것이어요. 그러니까 요단강을 건너가 정탐하는데 아모리 족속의 산지를 정탐했다고 되어있어요. 가령 하나님이 아말렉과 영원히 싸우시리라 하는 그 말은 아말렉이 첫 대적이기 때문에 아말렉이라 그런 것이지요. 출애굽기에서. 그러니까 마지막 멸망시킬때 아말렉처럼 이야기를 해버려요. 아말렉과 대적해 싸우리라. 그러면 대적해 싸울것 없지요. 왜냐하면은 시내산 가기전에 아말렉족과 만나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졌거든요. 그 때 다 이겨버렸지요. 그런데 대적해서 싸우긴 뭐하러 싸워요. 그보다 강력한 민족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데 그것이 첫 대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어요. 여기서도 아모리족속의 산지로 가란 말은 신명기적인 표현법이어요. 그러니까 여기있는 정복한 사람들이 아모리족속이면은 가나안 땅을 건너가서 아모리 족속의 산지를 정탐한다고 하면은 뻔한 것이지요. 그래서 정탐하는 땅도 보면은 정복할 민족 아모리 족속의 산지로 가라. 이렇게 묘사를 한다. 그리고 27절에도 보면은 아모리족속에 손을 붙여 멸할려고 우리를 인도했다 그런 말을 하고 있지요. 그 다음에 정탐을 보내자고 제안한 사람은 누구냐. 민수기에서는 모세가 제안했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모세가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백성들이 이야기했어요. 그럼 누구 말이 맞냐. 둘다 맞아요. 역사적인 사실로는 민수기가 더 맞고, 신명기적인 내용은 백성이 다 가보자 하는 것이어요. 민수기에서는 항상 하나님이 앞서 인도하시지요. 하나님이 앞서 싸우시고.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 정탐꾼을 보내서 한 것이 이스라엘 정탐 내용이어요. 거기서는 불신앙의 내용이라는 것은 없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백성들이 가보자고 그랬어요. 21절에 두려워 말라. 가서 얻으라 그러니까 너희가 다 내앞으로 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보내어 가보고 와야겠다. 벌써 여기서부터 불순종이 일어났을 뿐 아니라, 자기들이 자기 대표자 뽑아서 가보고 왔는데 가보고 온 뒤로도 원망했어요. 그러니까 할말없지요. 자기 대표자 눈으로 보고 와서 좋은 대답을 했는데도 원망하면 할말없지요. 하나님이 아모리 족속의 산지는 이미 정복해 주셨지요. 그리고 가서 정복해라 두려워말라 그러니까, 아이고 안되겠다 가보고 오자고 그랬다고. 가보고 자기 대표자가 좋다고 말하는데 또 안들었다고. 그러니까 이거 할 말이 없지요. 민수기에서는 하나님이 정탐꾼을 보내라고 그랬어요. 그런 차이점이 있다. 정탐 전후에 백성을 격려한 자와 격려 내용을 보면은 여기서는 모세가 막 격려해요. 그런데 민수기에서는 정탐꾼 특히 갈렙의 증거가 그들을 격려하지요. 그런 점이 차이가 납니다. 여기서는 언약의 증보자로 모세가 강조되어 있고, 민수기는 정탐, 신실한 정탐꾼 갈렙의 증거가 강조가 되어있어요. 신명기에서는 강조점이 정탐에가 강조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하심. 그 하나님이 이렇게 주셨지 않느냐. 왜 너희들이 보고 왔어도 그러느냐.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하심에 강조를 두려니까 그래요. 격려한 내용도 보면은 24절에 정탐하고 와서 에스골 골짜기를 정탐했다고 그러지요. 그 땅 과실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땅이 좋았더라. 그렇게 보고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올라가기를 즐거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민수기를 보면은 백성들이 올라가기를 즐거이 하지 않았다는 말이 먼저 나온것이 아니라, 정탐꾼들이 가니까 사람들이 무시무시 하더라. 악한 보고를 하는것이 앞서 있어요. 그런데 신명기는 백성들이 26절에 올라가기를 즐거이 안했다 그렇게 해 놓고 27절에 보니까 그리고 원망했다. 하나님이 우리를 미워하니까 아모리족속 손에 붙여 죽이려고 했다. 그리고 드디어 28절에 와서야 우리 형제들도 말하기를 아낙 자손같은 사람이 거기있다고 그러더라. 정탐들의 내용을 뒤에다 붙여 놨어요. 민수기는 이 정탐 내용이 앞에 붙어있어요. 민수기 내용은 정탐들의 내용을 듣고 백성들이 낙심하고 원망했고, 이것에 대해서 신실한 정탐인 갈렙의 격려가 뒤따라 있어요. 악한 정탐과 신실한 정탐이 대비되어있어요. 그것 때문에 백성들이 낙심했는데. 여기서는 백성들의 낙심을 앞에다 두고 그리고 우리 형제들도 갔다 와서 하는 말이 거기 무시무시한 거인들이 있다고 안그러냐. 오히려 정탐들의 보고는 뒷쪽에 돌려놨어요. 그러니까 여기는 강조점이 백성들의 배반에다가 강조를 두고 있는것이지요. 정탐꾼들 말 들어보기 전부터 원망하는 말을 앞에 내놔버렸거든. 누구든지 이 말을 읽으면은 아이 들어보지도 않고 사람들 원망하구만 생각들겠지요. 그러나 민수기를 읽어보면 이사람들 갔다와서 쓸데없는 말해서 사람들 낙심시켰구만 이렇게 들리겠지요. 순서가 그렇게 되어있으니까. 신명기에서는 그렇게 조절되어있다. 하나님이 그렇게 복을 주셨고 40년을 인도하셨고 이렇게 다 했다. 요단강도 이미 다 정복했다. 그리고 나서 정복하라 그러니까 우리를 죽이려고 그러는구나. 갔다와서 최고 좋은 에스골 골짜기의 포도를 보고 좋더라. 그런데 아예 처음부터 낙심해가지고 우리를 죽이려고 미워서 그랬구나. 원망부터 했다 그 말입니다. 그리고 봐라. 우리 형제들도 갔다와서 거기 큰 거인들이 있다고 안하디야. 그러니까 백성의 배반에다 강조를 두고 있다. 하나님이 그렇게 복을 주셨는데. 그러니까 여기서 강조점은 누가 이제 격려합니까. 정탐들의 격려가 아니라, 언약의 중보자인 하나님을 대신해서 백성을 인도하고 하나님의 대리자인 모세가 격려하고 있다. 어떻게?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29절보니까 내가 말하기를 무서워말라. 30절에 너희 앞서 행하시는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인도하셨다. 그때처럼 지금도 싸우시리라. 광야에서도 너희들을 인도하셨다. 아버지가 아들을 아는 것처럼 인도했다. 그는 너희 앞서 행하시는데, 여기서는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이 강조예요. 30절도 앞서 행하고 33절도 앞서 행하시지요. 어떻게 합니까. 너희 장막둘 곳을 찾으시는데,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이 아니냐. 이제까지 출애굽부터 광야를 통과해서 여기까지 왔던 하나님의 은혜로 격려하지요. 너희 하나님은 너희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인데, 애굽에서 싸우셨고, 광야에서 품에 안으셨고, 그리고 지금도 앞서서 너희 장막 칠곳을 찾으시고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인도했던 하나님이 아니냐. 하나님이 이제까지 행하셨던 언약의 신실하심을 회상시키지요. 그것이 격려입니다. 그런데 민수기에는 이런 말은 없어요. 오히려 어떤 말을 합니까.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그 갈렙의 담대함에다 강조를 두지,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셨느냐에 강조를 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들의 밥이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면 우리가 정복해 이기리라. 놀라지 말아라. 갈렙은 그렇게 격려하지. 모세처럼 하나님이 너희들을 앞서서 이렇게 품에안고 인도하셨는데 지금도 너희에게 그렇게 하실것 아니냐. 그런 언약의 신실함으로 격려를 안 한다. 그러니까 비교해 보면 아시겠지요. 그래서 신명기 1장부터 4장까지는 하나님이 이제 까지 너희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에 대한 회상에다 강조를 두고 있다. 여기 신명기에서 정탐의 보고 내용은 좋다. 그 한가지만 이야기 했지요. 그리고 거기 큰 거인이 있더란 말은 나중에다 붙여놨지요. 그러니까 여기서 핵심적인 문제는 그 땅이 좋더란 말이 너희들이 스스로 뽑아서 보낸 대표자들이, 한마디로 너희들이 가서 보고 네 눈으로 보고온 바가 아니냐. 그런 이야기어요. 얼만큼 좋더냐. 거기가 강조예요. 정탐 내용에가. 그리고 백성들이 가기 싫으니까 우리 형제들도 말하기를 거기 거인이 있다고 그러지 않더냐. 그건 뒤에다 붙여놨다. 그리고 백성의 원망의 내용은 무엇이고, 회보와 원망의 순서는 어떻게 되는것인가. 백성의 원망의 내용은 하나님이 우리를 죽이시려고 그런다. 그렇게 되어있고. 회보와 원망의 순서는 민수기는 먼저 보고가 있고 그걸 듣고 백성들이 원망했고. 신명기는 백성들이 먼저 원망하고 정탐꾼들의 보고는 뒤에 부록으로 붙여놨다. 완전히 순서가 바껴있지요. 그걸 보면은 이 신명기의 강조점을 그냥 알수 있지요. 너희들이 그렇게 배반했다 그런 말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데. 34절부터 46절을 보면은 이제 여기서는 그들이 벌받은 것을 죽 설명하고 있어요. 거역한 세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그 중에도 하나님이 베푸신 언약의 신실하심. 그들은 배교했어도 하나님은 신실하시죠. 그 문제를 말하고 있다. 이 것은 민수기 14장 14절부터 45절에 같은 내용이 있는데 그것을 비교해보면은 양쪽 특징을 잘 알수가 있다. 여기서 진노내용을 보면은 34절부터 보십시요. 이 악한 세대 사람들중에는 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자가 하나도 없으리라.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여호와를 순종하였은즉 볼것이다. 여기서는 악한 세대 전부와 순종하는 갈렙. 그것이 대비되어있지요. 진노는 무엇이지요. 하나도 못 들어간다는 이야기어요. 그런데 민수기는 하나도 못 들어갈 뿐만아니라, 열두 정탐꾼은 본대로 죽었지요. 여호수아와 갈렙은 빼놓고 열 정탐꾼이 죽었습니다. 그렇게 되어있어요. 진노중에 베푸신 은혜는, 갈렙은 들어가고 거기는 안 나타나요. 자 여기보니까 못 들어간다는 말을 두 번으로 나눠서 설명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악한 세대는 못 들어가고 갈렙은 들어간다. 36절까지 한 단락이고. 또 누가 못 들어가요. 너희때문에 나도 못 들어가고 내 종 여호수아는 들어간다. 누가들어갑니까. 여호수아와 함께. 너희들이 죽으리라한 그 어린 아이들은 들어간다. 그러니까 못 들어가고 들어간다는 말이 두번 반복되어있지요. 불순종한 모든 백성들은 못들어가고 순종하는 갈렙은 들어가고, 그러면 여호수아는 완전히 빠져버렸으니까 여호수아는 순종 안했는가. 여호수아는 어디다 대비시켜서 말하냐면은 모세 대신에 여호수아는 들어간다는 말에다 여호수아를 설명해요. 누구를 대표해서. 죽으리라고 한 백성을 대표해서. 그렇게 두 부분으로 나눠져있지요. 그것이 진노중에 베푸신 은혜예요. 그러면 실은 정탐꾼들이 못들어가리라 했을 때 모세도 못들어간다고 말한 적이 없거든요. 모세가 못 들어간 것은 무리바 반석에서 성질 내불고 우리가 너희에게 물을 주랴. 그래서 못 들어간다고 그랬지, 가데스바네아에서 정탐꾼 보냈다가 원망해서 뒤로 돌아가 있을 때 그 때 너도 돌아가라 그런 적이 없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모세가 못 들어간 것을 모세 개인의 잘못을 싹 빼버리고, 너희들이 원망하고 못 들어간다고해서 나도 덩달아 못 들어간다 이렇게 핑계를 했어요. 그러니까 모세가 남 핑계대는 것처럼 보이지요. 자기 잘못이 엄연히 있는데. 이것이 신명기라 그런 말입니다. 모세가 왜 못 들어갑니까. 백성의 대표자이기 때문에. 새로운 대표자를 보내시고, 언약에 신실하거든요. 그러면 몽땅 못 들어가는데 갈렙혼자 남은다고 하나님이 신실하셔요? 몽땅 못들어갈때 대표자 모세도 못 들어가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어떻게? 언약을 지킨 갈렙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모세 대신에 모세 부하인 여호수아를 새로운 대표자로 세우시고, 그리고 그 때는 수에 칠 가치도 없었던 어린아이들, 좌우를 분별하지 못했던 사람들, 그들은 들어간다. 그들이 새로운 육십만으로 들어가지요. 이것이 신명기의 핵심이란 말입니다. 이전 시대는 죽었지만은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셔서 새 백성을 불러 들일것이어요. 지금 새 백성보고 들어가라고 명령하고 있는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서는 백성이 하나님 앞에 원망했기 때문에 모세도 못 들어간 것처럼 설명하고 있어요. 읽어보면 알겠지요. 비교를 해 보면. 그러니까 이렇게 차이가 나니까, 이 문서들이 기원이 다르구나. 자유주의자들은 그렇게 볼려는 것이어요. 기원이 다른 것이 아나라, 언약의 갱신 때문에 그렇다. 이것은 옛 언약의 대표자인 모세와 불신한 옛 백성, 그리고 모세를 상속하는 여호수아와 그리고 함께 이제는 새로운 백성이 계속되고 그 땅을 얻는것. 언약의 갱신 문제에다 강조를 두고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백성에대한 진노의 시작과 증가는 하나님이 뒤로 돌아가 40절에 그렇게 말씀하시고. 45절에 보면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셨다. 그런데 민수기는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셨다 이런 말보다도 법계는 진중에 있고 그러니까 법계와 함께 모세도 거기있고 백성들만 산으로 올라갔어요. 민수기의 인도는 핵심이 법계지요. 여호와의 법계에요. 그런데 신명기는 하나님의 언약 갱신과 친밀한 교제에가 강조가 주어져있어요. 그러니까 너희 기도를 듣지 않고 그렇게 묘사하고 있어요. 그리고 백성이 피했어요. 누구한테 피했습니까. 44절 보니까. 아모리족속한테 피했다고 그러지요. 그 다음 민수기하고 비교해보면. 민수기는 어느 족속한테 피했는지 한번 보십시다. 민수기 14장을 볼까요. 도망쳤는데 43절을 보니까, 아말렉인과 가나안인, 호르만까지. 완전히 틀리구만요. 아말렉인과 가난안인으로 되어있지요. 민수기는. 아마 이들이 구체적으로 만났던 족속들이 이런 족속들이었을 것이어요. 그런데 신명기는 아모리 족속한테 쫓겨가지고 도망쳤다 그렇게 되어있어요. 어디서는 이겼습니까. 요단 동편에서 이겼지요. 요단 동편에서는 이겼는데, 요단 강을 건너지 못하고 쫓겨난 것처럼 이렇게 되어있다. 그러면 민수기에서는 요단 동편을 정복한 적도 없지요. 가데스바네아에서 들어가려다 쫓겼지 요단강을 정복한 적도 없지요. 처음부터 쫓겼으니까. 그런데 신명기는 요단강 동편을 정복했고 그 후에 말씀하셨는데, 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어떻게 언약 갱신때문에 표현방식이 바껴있는지 비교해 보시면 재미가 있습니다. 이제 묹제를 풀어보니까 1장에서 말하고자 하는것이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요. 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호렙에서 아모리 족속의 산지 가데스까지 그리고 광야 40년 후에 요단 저편까지 그렇게 인도했습니다. 요단 저편의 강력한 아모리 두 왕을 정복한 후에 승리의 현장에서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게티스버그 연설 비슷하다. 남북전쟁 승리의 현장에서 노예해방에 대해 이야기 하면은 민주주의자들에게는 아주 멋있는 장면이지요.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정복한 이 땅이 아모리 두 왕의 땅이어요. 모세가 요단 저편 모압 땅에서 선포한 말씀은 다음과 같다. 실은 요단 이 편 해야 맞겠지요. 아직 요단 안 건너가고 설명하니까. 요단 저편, 마치 이미 정복한 것처럼 그런 표현법을 쓰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요단 저편까지 인도하신 은혜를 회상시켰지요. 그렇게 신실히 인도했습니다. 거역한 세대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은혜에 신실하심을 증거하고, 3장까지가 그런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들로 언약에 신실하여 요단을 건너 얻을 땅에서 복을 받고 잘살라고 4장에 말씀하심으로 첫 회상에 강조가 주어져 있는 첫 번 설교가 끝납니다. 그럼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어떻게 나타났는가.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들어가도록 호렙에서 백성에게 명령했지요. 명령도 그냥 출발이 아니라, 조상들에게 약속한 땅을 얻도록 어느 쪽으로 전진, 그렇게 말했지요. 그것도 언약의 신실하심이고. 그리고 그들을 하늘의 별처럼 번성시키시고 하나님의 판결을 집행하는 두령들을 세워서 하나님 나라로 조직한 것도 은혜에 신실하심이죠. 그렇게 번성케했다. 여호와께서 크고 두려운 광야를 통과하여 이스라엘을 아모스 산지 가데스까지 인도하시고, 그들에게 들어가라 명하셨으나 백성들은 정탐들을 앞서 보내 땅을 정탐한 후에 들어가자고 말했습니다. 정탐들이 에스골 골짜기의 과실을 가지고 와서 그 땅의 좋음을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백성이 여호와를 거역하고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미워하심으로 아모리 손에 멸하시려고 애굽에서 인도해 냈다 그렇게 원망했습니다. 정탐들의 보고도 그들을 낙심케했다고 뒤에 덧 붙였습니다. 어떻든 여기서는 백성의 원망이 앞에 놓여있습니다. 모세는 다시 여호와의 신실하심과 능력으로 백성들을 권면했습니다. 그 신실하심과 능력은 무엇입니까. 너희 앞서 행하시는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싸운 것처럼 이제도 싸우실 것이고 광야에서 아들처럼 너희들을 인도하신 것처럼 지금도 인도하시고. 그래도 백성들이 여호와를 안 믿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번 결론으로 반복하고 있다. 여호와는 너희 앞서 행하시며 너희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이 아니시냐. 백성이 믿지 않았단 말을 한 번 하고 나서, 32절 이 일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였다. 그는 너희 앞서 행하시며, 그들의 배교를 먼절 말하고 나서 다시 하나님이 앞서 인도하신다고 반복하고 있지요. 그렇게 하신다. 하나님이 이처럼 미리 명령한 악한 세대를 진노하사 한 사람도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시고, 오직 온전히 순종한 갈렙만 들어가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백성까닭에 그들의 지도자인 모세도 언약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언약의 신실하신 여호와께서는 새로운 세대에게 그 땅을 기업으로 얻어줄 새로운 지도자로 여호수아를 세우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다. 여기서는. 거역한 백성에게 길을 돌이켜 홍해길로해서 광야로 들어가라. 퇴각명령을 했지요. 백성들이 범죄하였음을 고백하고 다시 싸우리라 말하고 경솔히 올라갔습니다. 여기서 한자 말로 천자에 올라갔다 그랬지요. 한부로 올라갔다 그 말이어요. 한부로 기세등등하게 올라갔다는 표현법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과 함께하지 않으셨다. 백성이 아모리인에게 패하여 여호와께 통곡하였으나 여호와께서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않으셨다. 이런 표현법도 신명기적인 표현법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민수기는 법계는 움직이지 않고, 본진에 있고 백성들만 건방지게 올라가다가 쫓겨왔다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이제 이것이 어떻게 오늘 우리에게 적용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조상들에게 가나안 땅을 언약하신 하나님께서 새 언약의 대표이신 그리스도와 그에 속한 교회에게 하늘을 기업으로 주심으로 자신의 신실하심을 온전케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저주의 죽음이 되도록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시므로 말미암아 부활하여 하늘을 기업으로 상속받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라서 순종의 길을 걸으며 세상을 이긴 자가 오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해야 되는데, 그 하나님은 누굽니까. 이 민수기를 말데로하면. 우리 앞서서 인도하신 하나님이지요. 예수께서 앞서 그 길을 걸으셨고 지금도 자기 백성을 영광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냥 애굽에서 큰 일을 행하시고 광야를 통과한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고 아들을 죽은자 가운데 내어 주시고 그의 부활를 통해 하늘의 기업을 얻도록 하시고 우리로 이 기업의 동행자로 봉사케하십니다. 그러니까 실은 여호수아에게 이루어진것이 예수에게 이뤄진 것이지요. 세 백성을 불으셨는데 교회가 그렇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행한 일을 기억 못 하고, 광야에서 행한 일을 기억 못하고, 가나안 땅의 젖과 꿀이 흐르는 포도를 가지고 와서 먹어 보고도 배반을 하면은 하나도 못 들어간 것처럼, 만일 우리들이 주님의 피와 살에 참여하는 교제의 능력을 누리고 예수의 부활의 능력의 영이 우리안에 계시는데도 만일 죽을까 두려워서 원망하고, 낙심하고, 그리고 믿음으로 오는 나라를 위해서 전쟁하지 못하면은 우리는 영원히 들어갈 길이 없다. 왜냐하면은 이제 예수의 더이상 언약의 중보자가 없기 때문에. 구약 때는 모세가 죽으면은 상속자를 줘서 했고, 그 후에 상속자들도 있는것이다. 다윗도 있고.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마지막 상속자는 누구냐. 아들이시고, 이 아들 안에서 가나안 땅이 아니라, 하늘이 상속되었기 때문에 더이상 상속도 없는것이다. 교회는 바로 이 주님이 앞서서 인도하시고 우리는 따라가도록 되어있다. 만일에 이런 믿음에도 동행 안 하면은 영원히 버림받을 수 밖에 없어요. 그걸 조심하라 그런 말입니다.
2장입니다. 2장에서는 에서와 롯 자손에게 주신 기업을 현장 방문하는 내용입니다. 순회 교육시키고있는 것이어요. 그런데 이 순회교육을 언제부터 시켰다고 그러냐면은 이 신명기문맥은 너희들이 광야에서 방황할 때도 그런 교육시켰다고 이야기해요. 읽어보시면 알겠습니다. 먼저 문제를 보십시다. 에서와 롯 자손 모압 족속에게 주신 기업입니다. 우리는 신명기 23장에 사생자는 여호와의 총애에 못 들어온다고 하니까, 모압과 롯 이렇게 생각하기 쉬워요. 아주 배려먹은 집안이지요.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그들도 롯에게 속했다 하는것이 성경의 해석이어요. 그러면 왜 그들은 못 들어간다고 하느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갈때 그들이 막았지 않느냐. 그것 때문에 못들어간다고 하지, 종자때문에 못 들어간다고 성경은 이야기 안해요. 오히려 종족때문에 기업을 받는다. 롯에게 속했거든요. 롯은 누구에게 속했습니까. 아브라함에게 속했기때문에. 그래서 그렇다. 에서와 롯의 자손인 모압 족속에게 주신 기업을 현장 방문 시켰습니다. 자 돌이켜 광야로 들어가 오랫동안 거한 곳은 어디라 그럽니까. 1절에 보니까 홍해길로 광야로 들어가서 오랫동안 세일산에 두루 행하더니 세일산에서 말하기를 너희가 여기 거한지 오래니 이제 드디어 진행해라 그렇게 말했지요. 처음 언약 성취를 위한 출발은 호렙산으로 되어있는데, 이제 광야 여행을 끝마치고 두 번째 할때는 어디서 출발합니까. 세일산에서 출발하라고 그런다. 우리는 광야를 빙글빙글 돈다고 알고 있는데 세일산에서 오래 있고, 세일산에서 출발하라고 그런다. 그럼 세일산이 무엇이냐. 뒤에서 죽 설명하고 있지요. 너는 또 백성에게 이르기를, 세일산에 거하는 너희 동족 에서를 두렵게하지 말아라. 내가 그 땅 세일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그리고 모든 것을 돈주고 사 먹어야 한다. 왜 돈주고 사먹야 되는가. 하나님이 광야에서도 너희에게 하나도 부족함이 없게 했지 않느냐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나서 에서 족속이 어떻게 대했는가는 싹 빼버리고 그냥 에서 족속을 떠나서 어디로 갔습니까. 모압족속에게로 갔다. 그렇게 되어있지요. 그 다음에 에서 족속도 오지 못 하도록 막았지요. 민수기를 보니까. 그런데 그 이야기는 싹 빼놨어요. 강조점은 어디만 주어져 있습니까. 그들도 너희 형제아니냐. 너희 형제에게 기업을 줬지않느냐. 또 너희들은 광야에서 하나도 부족함이 없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너희 형제는 세일산에서 이미 기업을 얻고 부자인데 너희들이 광야에서 지나다가 배고프면 허겁지겁 먹어버려야되요. 그리고 오히려 형제에게 내놓아라 그래요 돼요. 그런데 ?은 그렇게 안하고 광야에서도 너희들이 아무런 부족이 없지 않았느냐, 40년동안. 실제로 그렇게 말하고있지요. 그러니까 돈 주고 사먹어야 되고, 아무것도 부족한 게 없으니까, 그래놓고 어떻게 했단 말은 없고 뒤로 돌아서 모압백성에게 갔어요. 그렇게 되어있지요. 그러니까 세일족에게 줬고 비록 그들이 아직 얻지는 못했지만은 광야에서 풍성히 주었고 40년을 돌때 배고파 죽은 사람이 없지 않냐. 이미 기업 준 이야기를 지금 현장조사 시키고 있는것이어요.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모압 족속에게 이르렀는데, 내가 롯 자손은 아류를 기업으로 주었다.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기업을 어떻게 얻었는가 설명하기를 거기 아주 키가 큰 사람들이 살았어요, 아낙족 사람같이 엠 족속이 있는데 그들도 아낙 자손같이 키가 커요. 그러기 때문에 아낙 자손이 살고 있는곳이 르바임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은 그곳 이름을 르바임이라 불렀다. 말하자면은. 큰 사람들이 사는곳, 거인촌 하는 식으로 불렀다 그 말입니다. 그러나 모압 사람들이 그들을 정복하고 새롭게 이름을 붙였는데 아마 이 이름은 새로운 승리의 이름일 것이어요. 자기들이 이름을 붙였을 것이어요. 그래야 맞겠지요. 거인촌을 정복하고 ?하니까 아마 그런 이름을 붙였을 것이어요. 이런 것은 ?의 단어들을 찾아보면은 이런 언어 유희, 언어 표현법에서도 여기 나타난 은혜를 알수있겠지요. 호렙 사람도 세일산에 거하였는데 에서 자손이 그들을 멸하고 거기 거했다. 어떻게?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주신 기업의 땅에서 행한 것과 일반이었느니나. 그리고 가로 닫아놨지요. 그러니까 이것은 말하자면은 요단강 동편에서 했는데도 나중에 편집해서 완결시키기는 실은 요단강을 건너 다 정복하고 난 뒤로 한것 같지요. 그리고 이 가로 본문은 단순히 모압 족속을 위한 가로 본문이 아니라, 세일 족속까지 가로 본문이지요. 에서 족속까지 가로 본문이지요. 어떻게 몰아붙여 이야기합니까. 마치 이스라엘이 기업을 얻은 것처럼 에서 족속도 세일산에 있는 호렙 족속을 쳐서 그 땅을 정복했고, 모압 족속도 말하자면 엠 족속이란 큰 무시무시한 족속이 살았는데 그곳을 정복하고 자기들이 도시 이름을 붙여 그렇게 했다. 누구처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기업의 땅에서 행한것처럼 똑같이 그렇게했다. 어떻게 했다고요? 싸워서 이겼다 그런 말이지요. 하나님이 주셨는데 그들이 싸워서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