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서론 II
신명기 1:
이 신명기는 요단강 동편 모압 평지에서 모세가 행한 세 번의 설교로 구성되어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중에 1장부터 4장까지가 첫 번째 설교인데, 주로 요단강 동편의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인도했던 그 은혜를 회상하고, 그 기업의 땅에서 신실하게 살라는 권면으로 되어있습니다. 두 번째 두분은 대략적으로 5장부터 28장까지인데.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지켜야할 율법이 해설되어있습니다. 그리고 29장부터 34장까지는 마지막 설교인데, 언약을 갱신하고 그리고 장차 그들의 배교와 하나님의 회복의 약속들을 말씀하시고 그것을 노래로 지어서 대대로 불러서 그들이 배교해서 고난을 당할 때도 하나님의 회복의 약속을 믿도록 그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설교 중에서 두 번째입니다. 첫 번째는 5장부터 10장까지인데, 그것은 주로 언약을 체결하는 내용으로 되어있습니다. 제일 뒤가 아마 10장이겠지요. 이 앞에 강론할 때 제일 뒤는 10장이 되겠는데, 여러분이 성경을 펴 보시면은 9장 후반부부터 10장에는 무슨 말이 기록되어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배교해서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40주야를 굶었고 그때 하나님이 돌 판에 쓰신 법을 주어서 법계에 넣어서 메도록 하고 그리고 10장 8절을 보면은 법계를 멘 레위지파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셨다 그런 말이 기록되어있지요. 마치 시내산 처음에 언약체결 장면처럼 제일 끝에다 그걸 넣었지요. 나중에 보면은 그 내용 까지도 상당히 달라요. 출애굽기하고는 내용이 달라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거듭거듭 배교했는데도, 하나님이 거듭거듭 모세를 불렀고 그렇게 해서 돌 판에 쓰신 법을 주어서 법계 속에 넣고 그것을 레위인보고 메게 하고 그것을 멘 레위지파로 백성들을 축복하게 했지않냐. 그러니까 언약체결적인 내용들이 5장부터 10장의 주가 되죠. 그러니까 5장에 뭐가 있지요? 십계명이 있지요. 십계명이 있는 것은 출애굽기와 신명기입니다. 왜냐면 언약체결이 출애굽기와 신명기의 강조점인데, 출애굽기는 하나님의 백성 됨의 언약이고 백성을 삼으신 언약이고, 신명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가나안 땅에서 살아야될 율법이 기록되어있어요. 그러니까 내용이 조금씩 다릅니다. 이제 11장에는 두 번째 설교의 두 번째 단란입니다. 이제까지 구분법은 방금 말했던 5장부터 10장까지 첫 번째 단락을 도덕법의 해석, 그리고 그 이하는 시민법의 해석, 그 뒤에 가면 의식법의 해석 이런 식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만, 그런 것은 출애굽기는 그렇게 구분이 가능할는지 몰라도 신명기는 그런 법전에 대한 문제보다는 가나안 땅의 부요함, 가나안 땅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봉사할 것인가 그것이 주가 되기 때문에 그런 법 형식으로 구분하는 것보다는 내용으로 구분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래서 11장부터 13장까지는 대적을 완전히 멸하고 오직 여호와께만 속하라하는 그런 내용들로 되어있습니다. 이 법을 지키면은 그렇게 되는 것이어요. 그리고 대적을 멸하고 여호와께 속한 백성에게 주신 복이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주신 택하신 곳에서 자기 백성을 먹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에서 주신 복이요, 그리고 하나님의 친히 그들 중에서 판결하시고 통치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이 시행되는 것이 가나안 땅에서의 그들의 온전한 삶입니다. 그것이 17장부터 19장까지는 주로 그런 법전들로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20장부터 22장은 그렇게 산다할지라도 사람은 혹시 이런저런 실수를 할 수 있거든요, 그래도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생명을 온전히 보호해 주신다하는 그런 문제들이 20장부터 22장까지에 있는 법의 내용들입니다. 그리고 23장부터 26장까지는 총괄적으로 여호와의 총애의 회원이 되는 법과 그리고 그 백성이 여호와의 회원으로써 누리는 법들을 쭉 이야기하고 있고, 그리고 이제 27장부터 28장까지는 바로 이 복을 마지막에 확정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언약을 확증하고 복과 저주를 말하고 있는 것이 27장부터 28장까지입니다. 그리고 29장부터 끝장까지는 언약갱신과 장차 배교와 갱신에 대한 예언들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그 중에 몇 군데만 골라서 보십시다. 그리고 다음에 차례차례 보시도록 하고요. 가령, 11장을 보면은 주보를 보십시오. 애굽 군대를 하나님이 어떻게 멸망시켰는가, 그것만 말하면 좋겠는데 다담과 아비람이 범죄해서 하나님이 심판했거든요 그런 것을 말씀하시면서 내 법도를 지켜라 그렇게 말을 해요. 그리고 그 땅은 하나님이 연초부터 연말까지 항상 복을 주신 땅인데 그 땅을 그리신 산과 에발산에서 복과 저주를 선포하도록 하나님의 언약의 땅으로 성별 해져야 합니다. 그러니까 다담과 아비람은 애굽군대가 아니고, 루우벤 자손이지요 그래도 그들도 범죄 하니까 죽었어요, 이방인들도 죽고 장자계통도 범죄 하니까 죽었어요.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 항상 눈을 두시고 그 땅을 복 주시겠지만 은 만일 그 땅도 범죄 하면은 그들이 심판 받아요. 그래서 그 땅에 그리신 산과 에발산에서 복과 저주를 선포하면은 아멘으로 대답함으로 그 온 땅을 하나님 앞에 그렇게 성별해 드린 것이 11장이어요. 여기 보면은 대적한 애굽도 죽었고, 다담과 아비람도 죽었지요. 만일 그들이 범죄 하면은 그들이 죽을 것이어요. 그런 문제들이 핵심이 되어있습니다. 가령, 12장을 보면은 그들을 둘러싼 사방 신들을 다 멸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에서 예물을 드리고 노비와 레위인과 함께 먹고 기뻐하라. 완전히 의식 법이지요. 이런 것도. 의식법아님니까 누구보고 먹고 즐거워하란 말. 물론 그런 12장은 14장 이하의 내용과도 상응할 수 있습니다. 택하신 것을 먹게 하심, 생각할 수 있지만은. 그 다음 13장을 보면은 거짓 선지자와 그 유혹을 받은 성읍을 멸하라고 되어있거든요, 그러니까 실은 12장도 오직 여호와께 속한 복에 대한 이야기여요. 먹고 마심에 대한 강조보다도, 여호와께 속한 자들의 복은 무엇입니까? 그들의 이방 신을 멸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여호와께서 이름을 두신 곳에서 예물을 드려야합니다. 왜그럽니까? 여호와께 속했기 때문에. 그런데 그냥 속한 것이 아니라, 거기서 함께 먹고 마시는 백성으로 속한 겁니다. 그러니까 12장부터 13장까지는 대적을 멸하고 오직 여호와께 속하라하는 그런 내용으로 되어있다 그런 말입니다. 신명기적인 특징이 그렇게 되어있다 그런 말입니다. 그래서 거짓 선지자들을 보면은 어떻게 합니까? 만일에 거짓 선지자들의 말이 그 말대로 이루어져도 믿지 말아라. 왜 그라느냐. 너희를 애굽 땅에서 건져낸 여호와를 떠나게 하려고 그렇게 한 것 아니냐. 그러니까 그 선지자의 말이 그 말대로 이루어질지라도 죽여라. 선지자만 죽인 것이 아니라, 어느 한 성읍이 그런 선지자를 받아들이는가 그 성읍을 불질러 버려라. 왜 그렇습니까? 오직 여호와께 속하도록 하기 위해서. 언약 백성 삼으심에 대한 강조점이 11장부터 13장까지의 내용이어요. 거짓 선지자들의 내용도 13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18장에도 있지요. 18장에 보면은 모세가 나와 같은 선지자를 일으키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그런 말이 있지요. 18장에 보면은. 13장에도 거짓 선지자가 있고, 18장에도 거짓 선지자가 있어요. 그런데 정 말이 거꾸로 되어있어요. 13장에는 거짓 선지자의 말이 그 말대로 이루어질지라도 죽여라 이렇게 되어있고, 18장에는 그 선지자의 말이 응하지 않으면 죽여라 이렇게 되어있어요. 거짓 선지자다. 그러면 어느 때는 선지자의 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은 거짓이라 그러고 선지자의 말대로 그대로 이루어져도 거짓이라 그러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란 말이어요. 그러면 이 둘을 합쳐 가지고 거짓 선지자 고르는 법하면 은 안 맞아버려요. 어느 때는 말대로 안 되면 가짜다, 어느 때는 말대로 되도 가짜다 그랬으니까 전부 가짜지요. 묘하지요. 그러니까 근접 문맥을 빼고 읽어버리면은 이해가 안되버리는 것이어요. 자 13장에서 거짓 선지자를 말하는 문맥하고 18장에서 거짓 선지자를 말하는 문맥하고 문맥이 다르다 그런 말입니다. 13장에는 오직 여호와께만 속하라하는 그 문맥에서 말하는 거니까, 거짓 선지자가 천금을 주고 다 이루어져도 너희를 애굽에서 건져낸 그 하나님을 떠나게 하려고 하는 수작이니까 죽여버려라 이런 말이어요. 그러나 18장에 있는 거짓 선지자는 무엇을 말하면서 거짓 선지자를 말하냐면은 나와 같은 선지자를 너희 중에 일으키리니 그 말을 들어라 그래놓고 다음에 거짓 선지자 이야기여요. 그러니까 이것은 나와 같은 선지자을 구별하는 방법이지요. 모세와 나와 같은 선지자를 줄 것인데, 그 선지자는 그 말에 응함이 있어야 되지, 없으면 가짜다 이 말이거든요. 그러니까 이 선지자는 말하자면 하나님이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줄 것인데 그 사람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응함이 있어야 해요. 가령 예수님께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행하신 일에 그가 행하지 않으면 그건 가짜지요. 그러니까 여기서 거짓 선지자들을 고를 때는 거짓이냐 이게 고를 것이 아니라,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주리니 그 선지자는 여호와의 말씀을 이루는 선지자를 줄 것이다 이런 말이지요. 그러니까 문맥이 다릅니다. 그런 것을 빼버리고 읽어버리면 안 맞아버린다 그런 말이지요. 14장부터 16장은 이처럼 대적을 멸하고 오직 여호와께 속한 백성에게 주신 복인데, 특별히 이것은 여호와께서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먹게 하시는 것이 복이지요. 가나안 땅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서 너희들일 먹어라. 이것이 그들의 복입니다. 그 전에는 너희들이 유월절을 다 집에서 지켰는가.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거기다 하지 말고, 내가 내 이름을 둔 거룩한 곳으로 나와라. 말하자면 청와대로 초청한 것이어요. 우리 식으로 하자면 은. 그것이 신명기 복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14장에서도 거룩한 백성이 먹을 음식을 말하는데, 레위기 13장에는 그런 먹을 것들을 죽 이야기해요. 그래서 레위기는 정하고 부정한 것이 핵심이고, 신명기에서는 거룩한 백성이 먹어라. 거룩한 백성의 음식. 이방인은 팔아도 된다. 그러나 너희들은 거룩한 백성이니 먹지 말아라. 이방인과 거룩한 백성을 구별하는데 가 강조점이 있어요. 똑같이 먹을 것이어요. 레위기는 정하고 부정한 것을 구별하는 것이 강조점이어요. 레위기는. 왜냐하면 레위기는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성별해 드림이 핵심이니까. 그러나 신명기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주신 것이 복이거든요. 그런데 이 먹을 것은 거룩한 백성이 먹고 죽어버리면은 먹지 말고 이방인에게 팔아라. 파는 것은 가하다 이런 말이지요. 그러면 우리는 이런 것을 요전에는 이런 해석을 못하니까 어떻게 해석했습니까? 집에서 제사 반찬 가져오거든요, 아들이 객지에서 자취한다고. 그럼 어렸을 때부터 먹어본 맛이라 입맛을 살살 돋구지요. 그런데 분명히 집에서 제사는 지냈을 것인데, 먹을 수는 없고, 버리자니 아깝고. 아 보니까, 이방인은 팔아도 가 아니라, 아 옆집 아저씨 주면 되겠구나. 그러니까 거기서 겨우 자유를 얻고 주는 것이어요. 그럼 지금대로 하면 그거 가져와도 아무 상관없거든요 실은. 물론 아버지야 친척들끼리 나누는 것은 음복한다고 한 상에 참여한다는 의미는 같습니다. 이웃집 준 것하고 친척 갖다 준거하고 달라요. 제사 식을. 다르긴 다른데. 시골에서 아버지가 가져오실 때 내 아껴 뒀다가 말하자면 우리 아들에게 갖다 줘야겠다하고 가져온 것이라, 실은 자취한 아들 배 부르라고 준 것이지, 너도 우리 조상의 한 혈통이니까 네가 제사상에서 못 먹어도 이것이라도 먹어서 효과를 거둬라 그런 식으로 가져온 것은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실은 그것 먹어도 상관없어요. 그런데 그때는 나 못 먹을 것을 개를 줄까 돼지를 줄까 이웃집을 줄까. 고민입니다. 그러다 이런 글을 보니까, 불신자에게는 팔아도 가하니라 그러니까 아 겨우 법전으로 해결했어요. 여기서는 그런 법이 아니라, 거룩한 백성에게는 거룩한 것을 주었으니 성민에게는, 죽어버린것은 사망했으니 먹지 말아라. 그전에는 그 죽은 것을 먹은 자는 부정하니까 진 밖으로 쫓겨 나가야 해요. 그런데 신명기는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죽어버린것은 이방인에게는 팔아도 가하니라. 이방인은 죽은 것 먹고 너희들은 산것 먹어라 이 말이어요. 왜. 너희들은 내 백성이니까. 거룩한 백성에게 주신 음식에 강조지, 정하고 부정한 것이 강조가 아니어요. 똑같은 먹고 마심인데, 미꾸라지는 먹지 말고, 비늘있는것은 먹지 말고, 똑같은 말이 있어도 레위기와 신명기의 강조점이 다르다 그런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문맥을 모르고 성경을 해석해 버리면은 우리는 법전을 해석하는 식이 되버려요. 법전을. 신명기는 거룩한 백성에게 주신 음식인데, 연이어 뭐가 있습니까? 십일조와 초생물을 먹어라 이 말까지 나와 있어요. 그럼 레위기를 보면 또 민수기를 보면은 십일조는 누가 먹어야 됩니까. 십일조 중에 십일조는 누가 먹어야 됩니까. 민수기에 있지요. 레위기에는 그런 말이 있는 게 아니어요. 민수기에서는 십일조 중의 십일조는 대제사장 것이다 이렇게 나와 있거든요. 왜냐면 그런 제도가 있기 때문에 백성이 안 죽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요. 그렇게 되어있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느닷없는 말이 있어요. 십일조와 초생물을 내 이름을 둔 곳에 와서 먹어라. 혼자 먹을 것이 아니라, 고아와 과부와 객과 함께 먹어라. 또 매 삼년에는 십일조를 걷어다가 각 성읍에다 두고 거기 있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와 함께 먹어라 그런 말이 되어있어요. 그러니까 14장에서 먹으란 말도 레위기 13장의 정하고 부정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초생물과 십일조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매 삼년마다 거두어서 성에서 잔치하라 이런 말이 있지요. 그러니까 레위기에 있는 것과는 분위기가 한참 달라있지요. 그럼 십일조 먹으면 되냐 안 되냐. 야단 나지요. 왜냐하면 민수기와 레위기는 못 먹도록 되어있어요. 그런데 신명기는 제사장이 먹어라 그 말이 아니라, 임자가 먹고, 고아와 객과 과부가 먹고 그렇게 되어있어요. 그것도 네 집에서 먹지 말고, 내 집으로 와라. 그 집에서 먹어라. 그리고 그렇게만 먹을 것이 아니라, 3년마다 모았다가 네 성읍에서 유업 하는 모든 자들과 먹고 마셔라 그렇게 되어있어요. 십일조를. 큰일 날 일이지요. 이제 우리 나라 교회 보수교단은 두 가지 꼭 지키는 것이 있지요. 주일 지키는 법, 십일조 지키는 법. 이 두 가지 지키는 법이 있어요. 왜냐하면 안식인을 지킨다 해 가지고 주일을 안식일 개념화 시켜서 지키는 법이 있고, 십일조는 하나만 잘라먹어도 저주가 붙을 것이니까, 그런 꼬박꼬박 내야 되요. 그리고 나머지는 각자 자유. 그런데 안식일 지키는 것도 그냥 교회만 출석하지 각자 자유여요. 천주교 비슷해요. 각자 자유고. 그런데 만고불변하게 하나님이 돈을 밝히셔요. 꼭 문민정부 비슷한가 어쩐 가. 그래가지고 요거 안 냈다가는 저주받아요. 또 그 십일조도 그냥 내면 효과가 없어요. 새벽 기도할 때나 딱 봉투에 넣어 가지고 앞에다 가만히 놔두면 그래야 효과가 더 있지요. 그러니까 완전히 구약 백성 만드는 것이어요. 그런데 구약 백성보다 더 나쁘게 만들지요. 구약도 그런 의미가 아니거든요. 그 전에 어느 교회 갔더니, 한 번 예를 들었지요, 아 어느 교회를 갔더니 그 집사 버렸더라고. 왜야하고. 십일조를 먹어버렸드라고. 도둑놈이라고. 그래서 물어주라고 그랬다고. 내가 볼 때 그 양반이 그럴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제가 한 번 갔지요. 나도 그 날 갈 때 아예 내가 교회 있을 때 주일날 뭐 못 사먹은 걸로 박혀있거든요. 돈 쓰냐 안 쓰냐가 핵심이라고요. 그러니까 자취할 때 연탄불이 꺼져버리면은 헌 의자를 뚜드려 붙고해도 백원 짜리 숯을 못 샀다고. 그것만 사면 쉽게 살릴 것을. 돈 쓰면 안되니까. 그러니까 돈보다 더 힘들게 하루종일 의자 뚜드려 불고해 가지고 불지른다 말입니다. 이렇게 배우기를 그렇게 배웠거든요. 그리스도를 배운 것이 아니라, 구약 율법을 현대화시켜서 배운 것이어요. 꼭 랍비들식으로 배우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그래가지고 그것 지키는 우리는 최고, 그것도 모르는 저것들이 교회냐. 요렇게 본 것이지요. 그런데 그 말도 일리가 있는 것이 거기는 틀리더라도 이것이 성경이냐 아니냐 물어요. 그런데 이쪽 와 보니까, 복음은 복음인데 무슨 복음이어요? 자유복음이어요. 자기 마음 데로예요. 그럼 누군가가 억압을 하면 율법 그러고 자기 마음 데로 살면 복음. 아무 의미가 없어요. 여기는. 저기는 틀리더라도 성경이냐 아니냐 물어요. 그러니까 훨씬 낫지요. 한마디로 하자면 은. 그런데 요쪽 오니까 진짜 아무 것도 없더라고요. 그리고 지금도 이것이 옳다 그러면은 아따 사람이 어떻게 그런 다요. 그러면은 밥이 없어져버려요. 자기 살아야 되니까. 그런데 저쪽은 있더라도 옳으면 그냥 붙어요. 그러니까 일이 되는데. 이쪽은 아무리 옳아도 아이고 그래 갔고 어떻게 한 다요 그러면 어디 가 버리고 없어요. 그럼 저쪽에서는 이 쪽을 어떻게 공격 하냐. 신사 참배한 후손들, 똥물이 어디로 내려갈 것이냐. 다 기기로 내려가지. 그래가지고 다방 내지 출신이, 지금을 예로 들어서 옛말입니다. 자기 딸한테 뭘 가르치겠냐. 요런 식이 돼 있어 가지고. 이 교단은 우상숭배에 별 관심이 없지요. 손을 딱 경례도 잘 하고 맹세도 잘하고.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막 봐버리니까. 이런데 는 교회도 아닌 것으로 봐 버리거든요. 몇 개만 가지고 보니까 엉터리거든요. 그럼 저쪽은 복음이 있냐. 지키는 것은 강력한데, 복음이 있냐 했을 때는 갑갑합니다. 그러니까 큰 문제예요. 그런데 저도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빵도 사 가지고 가고, 가서 굶으면 안되니까, 안 주면 나도 굶을 것인데. 그때는 차도 안 타는 때거든요. 그러니까 토요 일날 일찍 가지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한테 14장을 설교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먹어보라 그러면. 큰일 나겠지요. 이것이 신명기 특징이라 그겁니다. 십일조는 누구 겁니까? 하나님 것이지요. 하나님 것인데 레위지파만 주고 십일조의 십일조를 제사장을 준 걱이아니라, 임자야 내 집으로 와라. 나하고 내 집에서 먹자. 이 말이어요. 십일조를 먹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먹는 탁월한 특권이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특식을 제공해 준 것이지요. 특식을. 더구나 매 3년마다는 하나님 예루살렘 성소에서 먹는 것이라 그 성읍까지 성소 삼아서 네 성읍에 쌓아 놓고 먹어라 그런 말이어요. 누구끼리. 너뿐이 아니라, 네 자녀와, 고아와, 과부와, 객, 레위인이 함께 먹어라. 누구 것을? 십일조를 내 것을. 그것이 신명기 특징이라 그 말이어요. 그런데 우린 십일조만 먹는 것이 아니라 그르지요. 신약에서 설교할 때는. 우리는 그의 피와 살을 먹지요. 그렇게 되어있지요. 그리고 몸으로 산 제사를 드려야 되지요. 전체로. 그런데 이런 본문은 설교를 안해요. 왜? 이런 본문을 설교했다간 성금 들어 올 것 없지요. 다 자기 집에서 먹어버리니까. 그러니까 이것을 전부 헌금 설교한다 그런 말이어요.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의 일로 풀지 않고, 헌금 설교로 풀어버려요. 그러니까 잘못된 것이지요. 이 신명기에 내가 신약시대때는 주의 피와 주의 살을 먹고 마시는데, 땅에 있는 이름을 주신 성표가 아니라, 하늘 보좌에서 우리가 먹고 마셔요. 왜. 관계 적으로는. 그 분도 우리와 간격이 없으니까 거기서 먹고 마셔요. 그리고 우리 온 땅이 주님의 거룩한 성소여요. 우리들은 주의 피와 주의 살로 한 몸으로 나누지, 내 것 네것 있지 않아요, 그러니까 십일조로 함께 먹어라 이렇게 되어있어요. 그것이 신명기에서 말하는 먹는 방식이어요. 어떻게 탁월하게 먹는 복을 주셨는지 알겠지요. 그리고 15장을 보면은 칠 년마다 빚을 면제해 주는 히브리 종에 대한 규례가 나오는데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덧붙여서 처음 난 수컷은 여호와께 드리고, 또 먹는 것이 같이 붙어있지요. 그러니까 종에 대한 해방의 규례도 단순히 종 신분 문제가 아니라, 종을 부요케 할려는 것이 핵심이겠지요. 먹으란 것과 연결되어있지요. 종을 부요케하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똑같은 히브리 종의 규례를 이야기해도 언약 백성을 삼으신 출애굽기에서는 21장에 히브리 종을 해방시키는데 종의 신분 문제를 이야기해요. 출애굽기는. 종이 혼자 왔느냐, 나갈 때 혼자 나가거라. 식구를 데리고 왔느냐, 식구를 데리고 나가거라. 만일 혼자 왔는데 주인이 장가를 보내줬냐, 마누라와 에기를 다 두고 나가거라. 이런 말이 되어있어요. 누가 종이냐. 종의 신분문제를 따 질려는 것이어요. 출애굽기는. 그런데 신명기는 그런 말이 아니라, 종을 어떻게 부요하게 해서 보낼 것인가가 핵심이어요. 그러니까 신명기를 보면은 종이 만일 해방을 받고 나가느냐, 배나 줘서 보내라. 다른 사람보다 배나 수고했지 않나. 한만큼 풍성히 줘서 보내라. 그렇게 되어있어요. 그리고 만일 나가기를 싫어하는가, 평생에 네 집에 두어서 먹고살게 해라. 그리고 히브리 종은 칠 년만에 빚을 전부 면제해라. 그러니까 말하자면 레위기를 보면은 제 칠 년이 안식년이면은, 모든 것을 안식으로 거룩하게 구별하니까요. 신명기에서 제 칠 년은 면제년이어요. 종의 빚을 면제하는 것으로 되어있어요. 그것이 신명기적인 특징이라 그 말입니다. 이런 규례 때문에 종도 안 굶어 죽겠지요. 종만 안 굶어 죽는 것이 아니라, 너희 처음 난 수컷은 여호와께 드리고 그 앞에서 먹어라 그렇게 되어있어요. 첫 것을 먹어라. 그러니까 함께 풍성히 먹는 것으로 주신 것이 신명기입니다 그런 말입니다. 그 다음에 가장 많이 먹는 것은 무엇입니까. 16장에 보니까, 일년 삼차 절기를 지키는데, 주신 복을 따라 하나님께 힘껏 예물을 드리고 노비와 레위인과 객과 과부와 고아와 함께 먹어라. 숫자가 많이 있는데, 자녀, 노비, 객, 레위인, 고아, 과부와 함께 즐거워하라. 이제 축제입니다. 이 축제는 하나님 앞에 힘껏 드려야 합니다. 어떻게? 주신 복을 따라. 그러니까 여러분이 감사 드릴 때 헌금을 많이 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어요 말하자면은. 당연한 일입니다. 감사절기가 아니라도 여러분이 풍성히 받았다면 은 풍성히 헌신하는 것이 맞아요. 그런데 거기 보면 빈손들고 오지 말아라 그런 말까지 있거든요. 가난하면 빈손들고와야 돼지요. 그럼 우린 어떻게 하냐. 작정 헌금이 뭐냐. 외상이 뭐냐. 빚을 내서라도 헌금을 가져와야 되는 것이지. 이렇게 하는 것이 믿음 있는 사람이어요. 그러면 없는데 작정하거든요. 그런 식으로 작정하면 안 맞지요. 그럴 때는 있는 힘껏 하나님 앞에 헌신해도 좋고, 아 만일 수박 샀을 때는 조그만 참외 갔고 오지 말고 수박 갔고 와서 감사한 것이 좋지, 그래도 참외가 더 달답다 그러고는 말하자면 큰 수박 팔아 가지고 조그만 참외 몇 개 사 가지고 오면 안 맞지요. 그건 인간상식에 안 맞다고. 또 풍성할 때 가난한 사람도 풍성히 먹어야 되거든요. 특별히 누가복음은 그래요. 네가 생일을 차렸느냐. 그러면은 동네에서 갚지 못할 자를 초청해서 불러줘라. 그러면 그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할 것이고, 복이 될 것 아니냐. 이렇게 되있죠. 누가복음 같은데 는. 그런데 우리 같으면 그전에 품앗이 해야하니까 초청한 사람 초대해서 먹어버리지, 가난한 사람은 안되지요. 그런데 묘하게 다른 일은 감사 안 하는데 우리 나라 생일감사는 감사헌금을 많이 해요. 각 나라마다 풍속이 다른가봐요. 그것이 제일 중요한 모양입니다. 어떻든 감사가 있으면 감사의 표가 난 것은 상식이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헌금법을 말할려는것이 아니라, 그것하고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네가 풍성히 받았느냐, 절기 때는 풍성한 절기지요. 왜냐하면 무교절 유월절에는 새로운 양식을 먹지요. 그렇지 않아요. 그 다음 오순절에는 첫 수확의 곡식을 먹지요. 칠질절은 마지막 수확의 곡식을 먹지요. 그 때는 주신 복을 따라 가지고 나와라. 내집에서 먹자 그 말이어요. 풍성히 먹자. 그리고 너만 먹을 것이 아니라, 모든 기업 없는 자를 불러모아라. 함께 먹자. 하나님의 집에서 잔치하는 것이지, 헌금 돈 내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남의 상에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제가 이 헌금 기도를 말하자면 성찬기도와 같이 연결시키는 것이어요. 천주교처럼 제사를 지낸다 그런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을 주의 상으로 가지고 나오고, 이것을 주님께서 주신 생명의 양식으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고, 이것을 한 지체된 형제에게 나누어주어서 형제가 그 생명으로 배불러져야 되요. 그러니까 제가 헌금 설교를 성찬 그리고 떡 차리는 것이 돈으로 차리는 것이지요. 구약 같으면 그렇게 안 하고 자기들 예물로 가지고 와 차릴 것이어요. 우리가 주님의 몸에 참여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어요. 그런데 여기서 전부 먹는 이야기만 죽 깔렸지요, 도덕을 멋있게 지켜라 그런 것이 아니라, 순 먹는 이야기지요. 왜 신명기거든요. 가나안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곳에서 함께 먹고 즐거워하자. 내 집으로 와라. 내 집에서 네 집에서 처럼 먹어라. 십일조를. 그런 이야기여요. 그것이 신명기적인 특징이다 그런 말이어요. 그러니까 그 특징을 모르고 신명기를 해석하면은 신명기를 해석한 것이 아니지요. 가령 우리들이 무교절을 해석하는데, 무교절은 무엇이 강조 점이겠어요. 피를 바르고 먹으라면 어디 나오는 이야기 같아요. 출애굽기 이야기지요. 왜냐면 피가 없으면 죽거든요. 그러니까 피를 바르고 먹어라하면 출애굽기 이야기여요. 그러나 새곡식을 먹어라 강조하면 고난의 떡 새곡식을 먹어라하면은 신명기 이야기여요. 거기서는 피를 바르는데 신명기는 피를 바르는 것이 강조점이 아니라, 누룩 없는 떡을 먹는 것, 이것이 강조점입니다. 그러니까 그 무엇을 말하려고 는 신명기적인 주제에 따라서 강조가 되어있어요. 그러니까 그런 중심 강조점을 모르고 해석해 버리면은 안 된다 그런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유명한 선배 칼뱅까지라도 그렇게 해석하지 않고 가령, 무교절 그러면은 출애굽기 무교절, 신명기 무교절을 전부 한꺼번에 모아요. 한꺼번에 모아놓고, 거기서 이론을 설명해요. 그렇게 하는 것은 법전을 해석하는 것이지, 각 책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어서 옳은 일이 아니어요. 그렇게 해석하면 은. 거기까지만 읽어도 신명기 강조점이 무엇인가 알겠지요. 맨 먹는 이야기만 있지요. 이제까지 보니까. 그러니까 원수는 죽이고 내 백성으로 너는 내 상에서 먹어라. 절대로 우상에서는 먹지 말아라. 그러면 전부 죽여라. 내상에서 먹어라. 이런 일을 거역하면 다담까지라도 죽여버려라. 내 상에서 먹어라. 나한테만 드려라. 먹데 십일조를 가지고 먹고, 초태생을 갖고 먹고, 절기 때도 내 집에서 먹고, 먹을 때 모든 가난한 자들을 불러모아라. 먹자. 이렇게 되어있어요. 그러니까 신명기에서 레위인들은 가난한 자에 해당이 되어버려요. 민수기에서 레위인은 높은 자가 되어있지요. 대제사장이 있습니다. 레위인이 가까이 오면 죽여야 됩니다. 레위인이 있습니다. 백성이 가까이 오면 죽여됩니다. 그 간격을 넘으면 하나님은 진노하는 대장으로 죽여요. 그들은 이방인과 싸워야 되지만, 이스라엘 안에도 많은 간격이 있어요. 민수기어요. 하나님은 진중에 계시거든요. 싸우는 분으로. 그런데 신명기는 풍성한 복을 주는데, 레위인은 기업이 없지요. 그들은 가난한 자에 해당이 되어요. 그들은 백성의 축복에 참여하면 되어요. 반드시 레위인을 빼 놓지 말아라 하는 이유가 그것이어요. 그러면 이런 것은 분명 헌금이야기는 직접 아니더라도, 복음서에서 이야기하고 있지요. 복음을 봉사하며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했더니, 내가 너희에게 육체적인 것을 거둔다 할지라도 과하다 하겠느냐. 내가 신령한 양식으로 뿌렸는데. 그렇게 바울이 이야기하고 있지요. 그건 당연한 이야기여요. 단지 하도 우리 교육자들이 중 시중하듯 잘못되어 가지고 별 항목을 붙여 가지고 하고, 또 여전도회 그러면 무슨 항목들이 많은 지 교회에서 목사 생활비를 주고도 그 뒷바리지에 모든 것이 다 들어가요. 그런 일이 몹시 잘못되어있어요. 그런 것은. 그런데 동시에 아 그것이 잘못됐구나. 우리는 진짜 배웠다 해 가지고 생활비 얼마, 딱 주고는 이거면 생활은 되니까 그 다음은 입 닦는 것이지요. 그 다음은 나머지는 전부 내 것. 그리고는 자기 집에 일이 있고 즐거워도 먹어버리는 것이어요 다. 말하자면. 그래도 그 사람들은 가끔 감사 헌금하니까 알지요. 헌금봉투 올라오니까. 아 그 집 무슨일 있었구나. 우리는 그것도 안 올라오니까 모르지만 은. 그래놓고는 생활비는 넉넉히 드렸으니까 나머지는 뭐, 우리가 시장 봐 줄게 뭐여. 그리고는 입을 닦아버리는 것은 한 몸의 교제 방식이 아니지요. 그러니까 극과 극으로 가면은 안 되고, 정당한 분별력을 가지고, 그렇게 해야되는 것이지요. 요새는 과도하게 긁어모았어요. 그리고 예수 믿는 것이 뭣이 믿음 좋냐. 목사 봉사하는데 항목을 많이 알고, 그것이 여전도회 회장으로 제일 중요한 것처럼 되어 버렸어요. 자 전부 그것이 틀렸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강조점이 다르다 그런 말이지요. 여러분이 분명 풍성하게 되었으면 나누는 것이 좋아요. 여러분이 풍성하게 되면 복음의 수호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어요. 단지 거기다가 품목을 붙여서 그렇게 하는 것이 신앙의 척도가 되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교회를 가르치는 것이 몹시 잘못되었다 그런 말이지요. 그러니까 여기서 보니까, 절기 때는 더 많이 가져다가 전부 초청하고 내 집에서 먹어야 된다. 내가 너한테 이 복을 주었으니까 그 복받은데로 내 집에 와서 함께 먹자. 그러니까 하나님의 한 상에서 먹고 마시자 그런 이야기여요. 그것이 신명기 이야기입니다. 나중에 풀 때 더 자세히 보면 알겠습니다. 그 다음 17장부터 19장까지 보면 은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친히 판별하신 땅이지요. 그런데 17장 처음을 보면은, 흠있는 것은 여호와께 드리지 말라 그러니까 이것도 먹는 이야기, 의식 법이구나 이렇게 생각하지만 은 뒤에 보니까 다른 신을 섬기는 자는 죽여라 하고 판결의 법을 이야기해요. 그럼 여기서 흠있는 것은 여호와께 드리지 말라 그 말은 단순한 의식 법이 아니라, 바로 이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고 이 하나님의 판결을 받는 백성으로 살라 그런 말을 하기 위한 것이어요. 하나님은 단순히 존재적으로 있는 분이 아니라, 자기 백성의 예물을 받으시고 자기 백성의 봉사를 받으신 분으로 거기 계시면서 자기 백성을 판결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어요. 그 뒤에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지 않으면은 하나님을 왕으로, 재판장을 취급하는 것이 아니어요. 그러니까 여기서는 단순한 의식 법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의식 법, 시민법, 도덕법 이렇게 나눌 것이 아니라, 신명기적인 특징으로 구분하는 것이 훨씬 신명기를 해석할 때 맞습니다. 그러니까 17장 1절에 흠있는 것은 여호와께 드리지 말라 이 말은 의식 법이 아니라, 이 분이 누구입니까. 자기 백성의 경배를 받으면서 그 들중에 계시면서, 판결을 베푸시는 분이시다. 그런 말이니까 판결 법이 나오지요. 그런데 이 판결도 누가 합니까. 제사장의 판결을 따르라 그랬지요. 그것이 가나안 땅의 복이어요. 만일에 그 판결을 안 따르면은 하나님이 죽이라고 그렇게 되어있어요. 왜 하나님은 제사장을 통해 판결을 베푸시는 분이니까. 그리고 그들 중에 왕을 세울 때도 이 왕도 하나님의 대리 왕이어야 되지, 스스로 왕이 되어서는 안돼요. 그러니까 말을 많이 두면 안되고, 돈을 많이 가지면 안되고, 마누라 많이 얻으면 안됩니다. 이것은 연산군처럼 성적인 타락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라, 솔로몬이 많은 결혼을 통해서, 국제 결혼을 통해서 외국의 신들을 끌어드렸어요. 그런 의미로 많은 결혼이고. 그리고 말을 많이 기르고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아라. 가령 애굽과 군사동맹을 해야되겠지요. 그렇게 하려면은. 그런 식으로 하지 말아라. 그리고 율법들을 항상 곁에 둬 가지고 백성 위에 군림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해라. 그러면은 그 땅이 잘될 것이다. 왜. 하나님이 왕이시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특징들이 그런 것입니다. 가령 19장에 보면은 도피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서 보면 땅 전체를 세부 분으로 부분하고 세 성읍을 도피성으로, 공평의 원리가 주어져 있지요. 세 구분하고. 고속도로를 닦아 가지고 도중에 죽는 일이 없도록 해라. 부지중에 범죄한 자까지라도 하나님의 판결로 죽지 않을 것이다. 왜. 도피성이 있으니까. 도피성 때문에 부지중에 범죄한 자까지라도 이 땅에 살아남아요.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 터를 옮기지 말아라. 아무리 가난한 자라도 하나님이 주신 기업의 터를 누가 옮겨버리면 안돼요. 그리고 만일에 거짓 증인을 세워 누구를 죽이려고 하면은 반드시 그 모함한 자를 죽여야 다수결 때문에 안 죽어 없어질 것이어요. 왜. 하나님이 그 땅을 통치하시니까. 그것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이어요. 거짓 증인에 대한 이야기도. 그러니까 문맥을 따라 읽으시라 그 말입니다. 자 그 다음에 20장을 보면 은, 전쟁시에 하나님이 생명을 온전히 보호하시는 일이 20장부터 22장까지 있는데. 그럼 전쟁시에 안 죽는 법을 20장에 이야기하고 있고, 22장에는 형제 물건을 잃어버려으니 이렇게 이렇게 해서 찾아주어라. 그런 이야기 죽 있어요. 자 무슨 말입니까. 전쟁시에는 어떻게 합니까. 제사장이 백성을 불러 놓고 이야기해야 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느니라. 힘내라 그런 말이지요. 그 다음 장군들은 백성한테 뭐하고 말합니까. 자 이러이러한 사람은 돌아가거라. 군인이라 그런 말하지요. 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기는 직분이라,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느니라, 염려 말아라. 그리고 장군들은 백성한테 이야기합니다. 이 중에 장가가서 1년 미만된 사람, 또 집을 지어놓고 그 집에 한 번도 잠도 못 잔 사람 있는가. 그렇게 죽는 법은 없다. 가서 낙성식하고 집에서 일년 푹 살고 오라. 포도나무를 심어놓고 한 번도 열매를 맛 본적이 없는가, 그렇게 죽는 법은 없다. 가서 포도 맛보고 나중에 오라. 그리고 그런 일도 없는 여기서 두려운 이 있느냐, 두려워서 죽을 것 없다. 집으로 돌아가거라. 자 전쟁 나서 이런 사람 죽어요 안 죽어요. 전쟁은 국가의 위기를 당한 거고, 안식을 빼앗기는 건데 이런 사람들이 안 죽는다 그런 말은 시작한 일을 결단코 빼앗기지 않을 것이어요. 어떤 경우도. 복을. 그것이 전쟁 때 주는 복입니다. 자 그럴 뿐만 아니라, 전쟁이 나면은 이방인이라도 막 죽이면 안되어요. 먼저 화평을 말해야 되요. 화평하면 종으로 삼아 부리면 되고 세금을 받으면 되어요. 그리고 만일 화평 안 하면 전쟁을 해야 되겠는데, 그 때도 어른만 죽여야 되고, 어린아이들과 여자들은 남겨둬야되요. 가나안 땅 백성들은 모두 죽여됩니다. 가나안 땅 밖의 백성은. 이방인도 살지요. 심지어. 화평하면 전체로 살고, 화평 안 하더라도 그들이 국가를 이루도록 남자들은 다 죽지만, 여자와 아이들은 살아요. 그리고 전쟁 할 때라도 온 들판을 황무지 만들면 안돼요. 과실나무는 찍어서 무기를 삼으면 안되고, 과실나무 아닌 것만 무기를 삼고, 과실나무는 놔둬라. 그래야 네가 먹을 거 아니냐. 이렇게 되어있어요. 전쟁 할 때도 황무지가 안 될 것이어요. 전부 여기 보니까 생명의 보전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방인까지라도 안 죽게 하겠다. 그런 약속으로 되어있지요. 신명기적인 특징이라 그런 말이어요. 가나안땅의 복이어요. 아무도 모르게 죽는 사람이 없을 것이어요. 만일 증인 없이 죽었는가, 제일 가까이 그 줄을 제 가지고 길이를 제 가지고 제일 가까이 있는 성읍의 장로가 그 피 값을 갚아야 해요. 그래야 그 땅이 하나님 앞에 벌을 안 받을 것이어요. 왜. 그러니까 아무도 안 본데서 죽는 사람은 없을 것이어요. 반드시 그 피로 봉을 받을 것이어요. 그렇게 되어있지요. 그 다음 22장은 자질구레한 율법들인데, 형제 물건을 잃어버렸는가, 형제 나귀가 쓰러졌는가, 그냥 지나치지 말아라. 그런 이야기들이지요. 그리고 만일에 아내가 미운가. 좋다고 살다가 미우니까 장가갈 때 처녀 아니었다고 만일에 그렇게 비방하면은 그 남자는 세금 내야되고, 벌금 물어야되고, 평생을 이혼해서는 안되고, 버리면 안 되어요. 그렇게 되어있지요. 그리고 만일에 간음한 자는 죽여야 되게 지만은, 만일에 그가 처녀를 간음했으면 은, 그 여자는 평생 쫓겨나면 안되어요. 처녀 때는 좋다고 그러다가 도중에 쫓아낼 수 없어요. 비록 아비의 후실은 아비가 죽어서 없어질 지라도 그 후실은 천하게 취급받지 않아요. 여기서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아비의 후실을 범하지 말아라. 이게 레위기 20장이나 그런 부분에 나오면은 18장 부분에 나오면은 그것은 가나안 백성의 성적인 삶과 대비된 구조여요. 거기서는. 가나안 백성은 부정해도 너희들은 거룩해야 되니까, 그런 것이 성적인 도덕인데. 이 신명기 문맥은 그런 문맥이 아니라, 쭉 흐름이 하찮은 물건도 잃으면 찾아줘야 되지요. 형제가 봐 줘야되요. 그렇게 되어있지요. 그리고 내 데리고 살다가 미움받은 여자도 절대로 쫓겨나지 않아요. 처녀때 건드렸다가 도중에 쫓아낼 수 없어요. 만일에 죽었으니까 후실일지라도 그렇게 마음대로 다루면 안돼요. 그런 문맥이 신명기 문맥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생명을 완전하게 보호해주시는 것이지요. 거기서 보면은 곡식 종자도 섞어서 심지 않지요. 짐승도 섞어 버리지 말고. 모든 것은 각자 자기 위치에서 생명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보살펴 주신다 그런 이야기여요. 이런 이야기는 요새 유전공학을 설명할 그런 구절로 인용할 구절은 아니어요. 일단 가나안 문맥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지금 과학 법칙의 원리를 제공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가나안 백성이 어떻게 생명의 질서를 지키고 부요케 될 것인가 하는 이야기를 지금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어요. 그리고 23장부터는 여호와의 총애에 들어가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기 보면은 여호와의 총애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여호와의 총애는. 사생자는 못 들어가지요. 제일 못 들어가는 것은 누구입니까. 신이 상한 자는 여호와의 회원이 못 되지요. 생산력이 없으니까. 그리고 누가 못 들어갑니까. 여호와의 백성을 미워하는 자들이 못 들어가요. 누구? 아말렉 같은 사람들. 모압과 암몬 백성들. 하나님의 백성을 광야에서 죽이려고 했거든요. 그러나 신세를 졌으면 은, 몇 년 전에 졌더라도 누굽니까. 애굽 백성은 십대가 지나면 들어와라. 왜. 너희들이 거기서 종살이했으니까. 그렇게 되어있어요. 지금은 그런 규례가 없지요. 지금은 예수만 믿으면 누구든지 회원이 되지만은 구약 때는 그런 방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생명이 충만할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이 회중에 없을 것이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회중에는 창녀와 미동, 남자 창남이 없을 것이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총애에는 서로 이익 단체처럼 그렇게 이자를 취해서는 안돼요. 이방인에게는 이자를 취해도, 형제끼리는 그렇게 하지 말아라. 그리고 배고픔과 형제에 맞춰서 먹어라. 그러나 거기서 낫을 들어 도둑질하지 말아라. 그러니까 여호와의 총애의 공동체에 대한 설명들을 하고 있지요. 여기서 형제에게 이익을 취하지 말라 그 말은 지금 경제의 원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지요. 신명기적인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가나안 땅에 생명의 공동체로 주어졌고, 그러니까 초대 교회도 많이 거둔 자나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다는 말이 이를 말함이니라. 부자들이 자기 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를 주니까. 말하자면 옛 언약의 완성으로 이야기해요. 지금도 교인끼리는 이자받지 말아라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어요. 교회 특질을 이야기 해 주고 있는 것이어요. 이자를 받으려면 받겠지요. 그러나 이익 단체로 취급하지 말라. 그전에 우리 아버지가 그러시대요. 야 느그들은 품앗이하니까 좋겠다. 그런데 좋기는 좋다만 은 가다가 왔다가 다 없어지겠다. 너는 저 사람거 사먹고, 저 사람은 네것 사먹고 얼마큼 좋냐. 그런데 서로 사먹었다면 결국 없어질 것 아니냐. 그런데 우리는 이자는 안 받아도 한 몸으로 살으니까 많이 거둔 자나 적게 거둔 자나 만나를 거둘 때 그렇게 했고, 서로 평균케 한다. 고린도 후서 8,9장에 그런 이야기를 해요. 이자를 받지 말란 말을 지금도 신약 교회는 서로 이자( ) 하면 안 되는가 그런 법을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공동체가 아니냐, 이방인들은 그 밖에 있으니까 거래해라. 너희들은 그렇게 하지 마라. 어떻게 해야되겠어요. 부자가 가난한 자를 구제해야 되겠지요.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신자한테 돈 안꿔줘요. 여기 보니까 이자 받지말라고 그랬거든요. 꿔줘도 이자도 못 받고, 불신자한테 꿔주면 이자 꼬박꼬박 내고 십일조도 낼 것인데. 이렇게 해 가지고 그것 가지고 좋은 말로 가까운 사람끼리 돈 거래했다가 사람까지 잃으니까 우리 신자끼리 거래하지 맙시다. 얼마나 멋있는 말입니까.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말이지요. 가까운 사람사이 일수록 돈거래 조심하십시다. 괜히 돈이 사람가르는디. 그런데 형제는 형제의 고난에 동참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그것은 하도 형제끼리 그런 일이 벌어지니까 하는 상식에서 우러나온 말이지 성경에는 형제끼리는 모든 고난의 경우에도 함께 한다 그런 경우에서 여기서 이익을 취하지 말아라. 생명의 공동체를 두고 하는 이야기지, 경제원리를 두고 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럼 신자끼리 물건을 사고 팔고 할 것인가. 좋기는 좋아요. 그러나 신자라고 해서 물건을 사도록 강요해서는 안되지요. 왜냐면 물건은 다양하거든요. 그러니까 교회에서 바겐세일 하면 안돼요. 교회는 자기들이 수확한 것을 가지고 구제해야되지. 교회 장소를 빌려서 대기업의 후원을 받아 가지고 값싸게 팔아 가지고 그 이익금을 여전도회가 하나도 안 쓰고 교회 헌금해야되겠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교회를, 여전도회를 장사집단으로 만든 적이 없어요. 개인들이 사업하는 것과 교회 기관들이 사업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물건이 싸도 안 좋은 것 있고 비싸도 좋은 것 있지요. 그러나 교회가 어떤 목표를 정해놓고 그런 물건을 많이 사는 것이 신앙이 있는것처럼하는 것은 좋지 않다. 교회는 그런 기관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성도들이 이자받고 꿔줘도 좋다더라. 동시에 우리가 한 형제니까 서로 사업상 얽히도록 해서는 안되고, 특별히 계원을 서로 모집해서는 안 된다. 성도들의 모임이라는 것은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어야되지, 돈 얼마 낸 사람만 자격이 있고 그런 것은 교회에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우리 남전도, 여전도회도 회비 안 낸 것은 말하겠지만 은 회비 3회 이상 미납자는 회원권을 정지함 그런 것은 없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다른 단체하고는 전혀 특징이 다른 겁니다. 전혀 특징이 다른 것이어요. 그럼 회원에 가입하면은 그 동안 안낸것 전부 물어낼 것 열 달 참석 안 했으니까, 그렇게 안해도 된다. 그러니까 앞으로 회비 안내도 된다 그런 말 아니어요. 무슨 말이냐 하면은 자기 힘껏 교회에 참여하는 것이지, 그 회비를 다 내야만 자격을 획득하고 그런 것하고는 전혀 다르다. 회비는 정해지죠 우리 활동하려면은. 그러나 회비를 안 내면은 회원권에 제약을 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니까 이런 구절들은 경제원리로 해석하지 말고. 신명기 문맥은 너희가 생명의 공동체가 아니냐, 이방인에게는 이자를 받아라, 형제끼리는 그러지 말아라 그런 이야기지. 교회 믿는 신자끼리는 이자도 안 받는 것이다. 그래서 사장이 내 돈 다 꿔가서 이익을 많이 보면서도 본전만 딱 주고 그것만도 감사 하요. 그렇게 입 딱 닦으면 안되죠. 자기 이익에 나도 참여해야지요. 당연히 이자내야 되지요.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이런 문제들을 그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경제원리로 풀면 안되고 신명기에서 생명의 공동체란 원리로 풀어야 된다. 그리고 정당한 분별력을 발휘해야 되요. 여러분이 서로 도와주는 것은 좋지만, 형제 됨을 빌려서 여러분이 과도한 거래는 되지 않도록 은 조심해라. 그런데 사는 사람은 물건이 조금 안 좋더라도 오늘 비싸니까 사야되겠다. 좋으면 얼마나 좋고 나쁘면 얼마나 나쁘답니까. 그것은 아주 타당한 이야기여요. 경제는 경제고 신자는 신자이지, 물건이 불신자 것이 훨씬 좋은데 나 저거 살란 다고. 여러분 자유여요. 그래도 여러분이 신자가 누구인가 생각하면은 조금 싼거 그러나 신자는 형제 됨을 빙자해서 깨진거팔면 안되죠. 그 다음 여기 보니까 24장에 아내를 좋다고 얻었다가 미웁다고 버렸다가 또 좋다고 얻었다가 그런 형편없는 짓 하면 안됩니다. 그리고 장가든 자는 일년동안 군대도 가지 말고 자기 아내를 즐겁게 하고, 그리고 맷돌은 정장품목에서 배제해야 됩니다. 굶어죽어버리니까. 그리고 유괴범은 죽이란 말은 요새도 유괴범은 제일 나쁘다 그런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노략질하는 자는 죽여야되요. 그리고 진은 거룩하기 때문에 문둥병은 진밖에 둬야되고 전쟁 할 때 소변을 보면 흙으로 묻어야 되요. 여호와는 거룩하니까. 이런 이야기들이지요. 품삯은 당일에 준 것도 가난한 자가 탄식하지 않도록. 여러 규례를 담고 있습니다. 지금도 주급이나 월급으로 계산하면 도둑이라 그런 말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루치의 양식이 기본 양식이지요. 부족한 것도 하루 부족하고 해지면 깨끗하고 음식도 하루예요. 그런 단위로 말하기 때문에 그날의 품삯을 계산해서 그가 밤새껏 품삯 때문에 근심하지 않도록 해라. 그런 이야기들이지요. 25장을 보면은 아무리 고약한 나쁜 놈이어도 40 이상은 때리지 말아라. 그러면 천하게 되버리니까. 그러니까 죄인도 보호를 받겠지요. 매는 맞아도 살겠지요. 40은 고난의 수니까.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머리가 좋아서 39대 까지만 때려요. 그래서 바울이 매 맞은 이야기를 할 때 40에 하나 감한 매를 세번 맞았다. 그렇게 되어있지요. 왜냐면 혹시 잘못 세어서 더 때리면 큰일 나거든요. 율법을 안 어기려고 그렇게 조심했어요. 하나 여유를 둔 것이어요. 그대신 세 번 연속 때리면 되지요. 안식일 날도 오리 못 가면 쉬었다 오리가면은 하루에 백리도 가지요. 그러니까 방법은 여러 가진 인데. 이런 규례를 주셨다 이런 말이지요. 이제 악인이라도 안 죽을 것이어요. 그리고 싸움할 때 제일로 잡아서 안 될 것이 허리끈 잡으면 안됩니다. 말하자면 우리 식으로 알기 좋게 그러면 손을 잘라버려라. 이렇게 되어있어요. 그러면 싸울 때 자식은 아버지 편들고 마누라는 일단 남편 편드는 게 정상이어요. 히브리 법에도 그렇게 되어있어요. 우리 나라 법도 남편이 간첩인데 아내가 안 일러 받쳐도 안 죽어요. 왜. 한 가족 공동체기 때문에. 그건 국가보다 더한 연합이기 때문에 그 일로는 안 죽어요. 그런데 아무리 마누라가 남편이 싸우다 죽게 되었다 해서 다른 남자 허리끈을 잡는가 손을 잘라버려라.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게 제일 나쁜 죄인 것처럼. 왜 그래요. 여호와의 총애에 대한 이야기지요. 총애가 생산되지 못하도록 일을 벌리는 것은 잘라 버려야되요. 그렇게 해서라도 남자 생식력은 보전해야 되요. 그런 이야기여요. 그러니까 이건 싸움 이야기가 아니라, 여호와의 총애를 보전하는 이야기라 그런 말입니다. 그리고 26장 제일 끝에 보니까 또 먹는 이야기로 마무리 되어있지요. 여호와의 회중은 하나님의 첫 것을 먹는 백성이어요. 그리고 삼년마다 십일조를 먹게 되어있어요. 다시 먹는 이야기를 말하고. 하나님의 백성 삼으신 언약을 확언함으로 끝난다. 그리고 28장에는 다신 가나안 땅을 언약의 땅으로 성별해야 되요. 그리신 산과 에발산에서 율법을 선언해야 되고, 그런데 특별히 열 가지 저주가 선언되어 있지요. 28장에 지키면 복이고 어기면 저주어요. 그렇게 해서 언약에 대한 확증과 경고를 주고 있다. 언약에 대한 확증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돌에다가 회칠하고 회칠한 돌에다가 언약의 율법을 쓰고 그 양쪽 산에서 율법을 선언하면 아멘 대답해야 되고 그 복은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성문에서 복을 받고 들판에서 복을 받고. 복이 많이 있어요. 언약에 대한 축복과 저주를 말함으로 경고하는 것이 끝이다. 그리고 나서 29장부터 31장은 그러나 너희들이 그렇게 못 지킬 것이다. 그러면서 언약 갱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리고 너희들이 못 지켜도 하나님이 너희들에게 복을 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노래를 지어서 부르도록 31장에서 말하고 있지요.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제일 끝에는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의의 백성이 어떻게 승리 할 것인가 하는 그 승리에 대한 복으로 모세가 그 예언을 끝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일 끝에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둔 적이 없었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모세를 대망하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끝내고 있어요. 이것이 신명기 전체적인 내용입니다. 이제 다음부터는 한 장씩 문제를 내고 하는데 이번에는 율법 집이라서 그전에는 본문을 요약을 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게 못하고 문제만 내고 제가 그 다음 따로 설명을 하고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전에는 본문을 요약하고 문제를 냈지요. 왜. 그전에는 사건 중심이니까. 사건을 요약하면 알기 좋은데. 이제는 율법을 강론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요약하다가는 요약 못 해버려요. 이제는 문제만 내고 전체적인 설명을 요약해서 하고 그렇게 할 것입니다. 신명기를 전체적으로 읽으십시오. 그리고 부분부분을 다시 읽으면 됩니다. 문맥을 떠난 해석이란 것은 해석이 아닙니다. 방금 신명기의 흐름을 알았지요. 그러니까 똑같은 율법이 있어도 다른 데 것과는 뉘앙스가 달라있어요. 신명기에서는. 신명기적인 특징을 가지도록 해석을 해야된다 그런 말입니다. 본문을 자세히 읽으면 신명기적인 특징, 무슨 특징이라고 했지요.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름으로 복을 주셨다. 내집에서 먹고 마시라고 복을 주셨다 하는 그리고 이 복은 어떤 경우에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 너희들이 범죄 하면 잃어버리지만 은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너희들을 돌이켜주실 것이다. 이런 말이 전체적으로 색칠이 되어있어요. 강조점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만일에 모세 오경에 다른데 똑같은 기사가 있는 줄 알면은 그것을 찾아 비교해보면은 그 차이점이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어요. 비교해 보면은. 나중에 본문을 풀면서 는 그런 차이점을 비교하면서 말씀드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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