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구속사

이름을 예수라 하라

찬미예수님 2021. 6. 5. 05:49

이름을 예수라 하라

마태복음 1장, 이사야 7, 9(이사야712)

 

* 설교 개요

1. 하나님이 지으신 이름

2.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자

3. 성령으로 잉태된 자

4. 임마누엘

5. 이름을 예수라 함

 

마태복음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인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그 구원역사를 온전케 하신 것을 증거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옛 언약 역사에서는 아브라함에게 이땅을 너에게 주리라.’ 하신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다윗으로 진행된 옛 왕국은 이 족보에서도 말씀한 것처럼 그들의 범죄 때문에 바벨론으로 옮겨졌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은혜에 진실하시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이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새로운 질서로 완결하시기를 기뻐하셨고 이전 역사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그 나라를 삼으셨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백성으로 교회를 세우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교회(안에) 영원히 함께 하시리라고 그처럼 말씀하는 것이 이 마태복음에서 증거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제 이 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에서 어떻게 성취하시는가?’하는 문제를 오늘 본문에서 강론하겠습니다. 여기서는 물론 다른 구절를 중점으로 잡을 수도 있겠지만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름을 지어주신 기사를(18-25) 중심으로 강론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경륜을 탁월하게 진행시켰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 족장들에게 이름을 주신 기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물론 창세기 5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이름을 사람이라 지었다 또 아담이 사람과 아담, 이런것을 그냥 상호 교환적으로써서 아담은 개인의 이름이면서도 온 인류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그렇게 지어져 있습니다.) 창세기 17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아브라함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시고 또 특별히 그의 아내 사래라는 이름을 사라라고 바꾸어 주시고 그리고 나중에 이스라엘의 조상으로 부름받은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개칭해 주고 거기서도 하나님께서 이름을 주신 그런 사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가나안 땅으로 불러들이시고 마치 아담때 에덴 동편으로 쫓겨났던 인류중에 이제 새로운 인류를 부르셨을 때 아브라함을 머리로 삼으신 것처럼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으로 불러들이시고 그 가나안 땅에 친히 나타나셔서 경배를 받으시고 친히 말씀하시고 그의 집에 들어가셔서 함께 먹고 마시고 이런 교제 가운데서 함께하시면서 이땅을 너에게 주리라 그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아들이 없었는데 나중에 아들을 낳을 무렵을 당해서는 이제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주므로 그로 만민의 구주가 될 수 있는 그런 존귀한 은혜로 만민의 아버지로 그렇게 이름을 붙여주시고 그리고 사래에게도 사라라고 이름을 바꾸어주셔서 그가 존귀한 자의 어머니로, 생명의 어머니로, 왕비로 그렇게 칭해질 것을 거기 나타내셨습니다. 그 이전에도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구원역사를 진행시켰지만 그때는 조상들이 후손에게서 이어질 그 약속을 믿고 또 소망하고 그렇게 이름을 붙였습니다. 아담이 자기 아내 이름을 하와라고 붙인것이나 또는 노아의 아버지가 자기 아들에게 하나님께서 안식을 주시리라고 그렇게 노아라고 붙인 것이나 그런때는 그 족장들이 자기 아내나 자기 후손에게서 이루실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소망하고 또 믿고 그렇게 붙였던 것이고 하나님이 친히 이름을 붙여준 기사는 처음 아듬과 그리고 하나님께서 새인류의 조상으로 부르신 아브라함 그리고 이스라엘의 조상으로 확정된 야곱, 그들에게 친히 이름을 붙여주셨습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낳기도 전에 이름이 붙여진 사람은 이삭이었습니다. 이삭은 웃는다는 말인데 나중에 아브라함의 가정을 보면은 이삭이 젖뗄 때, 젖 뗄 무렵에 잔치했을 때 사라가 그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나에게 내가 아들을 낳으리라고 그처럼 믿을 사람이 있었겠는가? 그러나 내가 다 늙어서 아브라함에게서 아들을 낳았으니 이 소식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나와 함께 기뻐 웃으리라 그리고 그 웃음에 동참하지 아니하고 비웃었던 이스마엘과 그 어머니는 쫓겨났던 것이지요. 그리고 사라의 웃음에 함께 참여해서 웃었던 사람들은 쫓겨난 사람들이 아니지요. 아브라함의 기쁨의 잔치집에 참여해서 함께 즐거워했던 사람들이지요. 이처럼 아브라함에게 한 씨를 주겠는데 그 씨의 출생때문에 기뻐 웃으리라고 그렇게 말씀하면서 낳기전에 지어준 이름은 이삭뿐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이처럼 구약역사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 족장들을 통해서 구원역사를 가나안 땅에서 집행시키시고 그 역사를 다윗 때 천하 이방인들이 다윗의 권세에 복종케하심으로 완성하셨는데 이제 이 은혜의 일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인 예수에게서 완성시키실 때 하나님께서 이제 이름을 지어주신 기사가 여기 나타나있습니다.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고 또 그에게 씨를 주셔서 이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이처럼 씨가 가나안 땅에서 왕노릇하는 이 권세 때문에 천하만민이 그 권세에 복종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복을 받으리라고 약속했던 하나님께서 이전에 다윗의 왕국은 멸망했지만은 하나님은 진실하신 하나님이셔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예수를 보내셨고 이제 낳기도 전에 친히 이름 붙이심을 통해서, 그의 구원사역을 여기서 지시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렇게 붙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해석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것이 이름을 예수라 하라하는 그런 뜻입니다. 구약에도 물론 이런 이름들이 있었습니다. 또 신약에도 이런 이름이 사도행전에 나온 경우도 있습니다. 아마 구약때 탁월한 이름은 여호수아일 것인데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자기 백성에게 가나안 땅의 안식을 주었던 그런 구원자, 임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름은 아무리 그들이 구원자적인 이름이어도 그것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그렇게 여호와의 구원을 자기 이름에 새기고 또 그런식으로 하나님께서는 그 직무들을 통해서 자기 구원을 주셨지만은 그들 자신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그런 구원자는 아니었습니다. 여호수아서에도 보면은 여호수아가 전쟁했지만은 여호수아 앞서서 전쟁했던 분은 여호수아의 경배를 받았던 여호와의 사자였고 여호수아 자신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아이성에 실패했을 때 여호수아가 바로 이분에게 기도했고 그분의 인도를 받아서 자기 백성안의 죄를 정복하고 그리고 그분과 동행하는 백성으로 아이성을 정복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도 온전한 구원은 아니어서 가나안 땅 원수로부터 구원이어도 자기 백성을 죄로부터 구원하는 근본적인, 본질적인 구원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게서 이제 마리아의 태를 통해서 낳은 아들에게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지목해서 말씀하시기를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죄에서 구원할자이심이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단지 여호와께서 구원이시다 그런 말이 아니라 그 여호와의 자리에 바로 이분 예수를 그대로 도입해서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죄에서 구원한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에게서 그의 구원역사를 진행시키시고 특별히 모세의 후계자로 세운 여호수아를 통해서 가나안 땅의 안식을 주셨더도 그들은 이런 구원자는 아니었습니다. 바로 여호와께서 그들의 구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예수 그분이 곧 자기 백성을 저희죄에서 구원할 자임이라 그렇게 말씀하심으로 마리아의 태를 통해서 요셉의 후손으로 낳은 이분이 곧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하나님이라고 그처럼 지목하고 있습니다. 또 그럴 뿐만 아니라 구약때는 원수의 세력으로부터 구원하셨어도 자기 백성을 죄로부터 구원한 온전한 구원자는 없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집행함으로 백성이 하나님의 법을 따라 언약 백성으로 살 수 있도록 그렇게 그들을 통치했어도 그들을 죄로부터의 구원은 불가능했었고 또 그런 일 때문에 그들을 결국 죄의 권세아래 팔려서 이방인의 종으로 전락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께서 지목하신 그분, 이분은 자기 백성을 저희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름붙인 것은 단순한 예언이 아니라 그 이름 붙여진 사람에게 새로운 기름과 새로운 직무와 새로운 존재로 덧입힌 것이어서 이제 하나님께서 마리아의 태를 통해서 낳은 이 아들에게 이름 붙이심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구원자를 보내신 사실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약때는 하나님 여호와가 구원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임이라 이처럼 자기 백성을 이런식으로 말씀하고 있고 특별히 마태복음의 증거는 이 자기 백성이 단순히 혈통을 따라 난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믿음의 백성이라고 그렇게 마태복음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아브라함이 자기 조상이라고 자랑해서는 아니될 것이고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심판하시고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하시는 그런 분이라고 마태복음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예수의 구원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구원, 그런 구원이 아니라 이제는 예수를 믿는 믿음의 백성 천하만민 중에서 자기를 믿는 백성을 죄의 권세로부터 구원해서 음부의 권세가 무너뜨릴 수 없는 영원한 하늘에 속한 왕국을 세우신 분이라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구원은 구약때도 이방인이 다윗의 가계에 포함됨을 통해서 나타나 있었지만은 이제는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믿음의 백성들이 이제는 천국을 침노하는 백성처럼 쳐들어온 백성처럼 그처럼 하나님 나라에 대대적으로 들어오는 것은 바로 예수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라고 그렇게 마태복음에서는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이름을 주시고 또 자기 백성을 구원할 하나님으로 그분을 보내셨습니까? 여기서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된 이분은 곧 다윗의 후손입니다. 여기 족보에서도 그렇게 되어있지만은 누가 복음을 보면은 주로 예수의 출생에 대해서 마리아가 천사의 대화의 대상입니다. 주로 마리아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마리아가 아니라 요셉을 대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셉이 마리아를 자기의 아내로 불러들여서 마리아가 낳은 이 아들을 자기 아들로 입적시키심을 통해서 그는 합법하게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왕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성령으로 잉태된 분은 곧 다윗의 아들이며 또 아브라함의 씨라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난시간에 이 족보를 통해서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리라고 약속했을 때 아브라함의 정복을 통해서 가나안 땅이 멜기세덱의 나라가 되었지만은 그 나라를 상속할 씨가 아 브라함에게 없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다 죽은자여서 자녀를 낳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생명의 약속을 따라 아브라함의 태를 여시고 그에게 한 씨, 약속의 씨를 주셔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세웠던 멜기세덱의 나라를 상속할 수 있도록 그처럼 허락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혈통을 따라 난 씨와 다르다고 갈라디아서에서도 해석을 해주고 있고 이 씨는 생명의 약속을 따라 난 씨라고 그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럴뿐 아니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분이신데 다윗은 아브라함의 씨중에서는 유다 계통을 통해서 오신분이었습니다. 유다 계통에 하나님의 사망의 심판이 있어서 그 자녀들이 계속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만일에 어느 형제가 아들이 없이 죽으면은 다른 형제가 그 아내를 취해서 아들을 낳고 아들을 낳으면은 형제의 이름으로 칭해주도록 하는 그런 제도(수혼법)을 따라서 다말이 자기 시아버지를 유혹해서 아들을 낳았고 이 대리자를 통해서 생명이 이어지는 이 은혜의 제도를 따라서 유다가문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럴뿐 아니라 이 유다의 가문으로 다윗을 출생시켜서 왕으로 등극시켰지만은 이 왕은 모세의 제도를 따르면은 영원히 죽어야 될 그런 왕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는 우리아의 아내를 취해서 아내를 삼았기 때문에 다윗과 이 밧세바는 하나님앞에 죽어야 마땅할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다윗과 밧세바를 용서하셨고 용서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 용서의 영원한 확증으로 아라우나(Araunah) 타작마당에 단을 쌓게 하시고 그곳에 하나님의 전을 짓도록 성령이 친히 다윗에게 약속하심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원히 함께하시는 은혜를 거기 나타내셨습니다. 아라우나(Araunah)는 사람 이름으로서 주인, 귀족이라는 뜻입니다. 사무엘하 2415절에서 25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아라우나는 여부스 사람으로서 다윗 왕에게 자기의 소유였던 예루살렘의 모리아산을 팔았던 사람입니다. 다윗왕은 인구조사를 실시하여 생긴 역병을 몰아내기 위하여 제단 쌓을 장소로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을 사들였습니다. 이땅은 훗날에 성전을 건축하는 땅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다윗이 죽지 아니하고 무너지지 아니할 영원한 다윗의 왕국, 하나님의 전이 영원히 그들중에 서있는 영원한 왕조를 세우도록 허락하신 이 솔로몬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요 만일에 구약의 율법대로 할것 같으면은 그들은 죽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의 씨의 출생도 하나님의 생명의 약속때문에 그런 것이고 그리고 다윗가문을 일으켰던 유다도 그 생명이 이어지는 것은 대리자를 통한 출생, 대리자를 통해 생명을 이어주는 하나님의 은혜의 제도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었고 다윗이 무너지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무너지지 아니하는 영원한 왕조를 상속받은 것도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시는 은혜때문에 된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럴뿐만 아니라 다윗의 후손 마지막 마리아는 이전에는 남자들이 다 아들을 낳은 것처럼 되어 있는데 나중에 남자는 빠져있고 여자가 아들을 낳은 걸로 그처럼 기록되어 있어서 이제는 아브라함을 뛰어넘어서 처음 조상인 아담에게로 넘어가서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밟으리라는 그런 약속과 연결시킨 사실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거기서도 후손의 출생은 생명의 은혜의 출생이었습니다. 범죄한 사람은 반드시 죽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여인의 후손을 아담에게 낳게 하셔서 그 후손을 통해서 뱀의 머리를 밟으므로 영원한 승리를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죄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약속한 하나님의은혜의 일이어서 바로 그 은혜의 일이 여기서 완성되었던 방식으로 족보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성령으로 잉태된지라 하는 말씀이 그런 말씀입니다. 구약에도 하나님의 생명의 약속은 후손을 통한 출생의 약속에서 진행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혈통을 따라 난 이 후손들은 다 죽음의 종이 되었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씨를 주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제 이 씨를 마리아의 태를 통해서 성령의 잉태를 통해서 세상에 나오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혈육을 따른, 사람의 힘이 아니었습니다. 다 죽어갈 육체의 몸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셨어도 이것은 하늘의 생명의 주가 생명의 성령께서 친히 그 약속을 따라서 마리아의 태를 통해서 땅에 오신분이라고 그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령을 통해서 출생하셨기 때문에 이것은 새로운 생명의 출생입니다. 이와같은 인류가 이전 역사에서 나타난적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하늘에 속한 아담, 하늘에 속한분께서 친히 자기 백성과 한몸을 이루시고 이처럼 육체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나타나셔서 영으로 출생한 새 인류가 여기 출현하였고 하나님은 아들을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보좌 우편에 취임하게 하심으로 영으로 사는 새 인류를 예수의 부활에서 출생시켰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으로 잉태되셨으니 이제는 하나님의 영으로 자기 백성중에 함께 거하시러 오신 분이셔서 이것은 영원한 생명의 약속으로 오신 분이시며 곧 이분이 임마누엘이라고 이 성경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임마누엘을 번역해주고 있습니다. 이름을 번역한즉,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번역은 참으로 우리에게 은혜의 일이 될 것입니다. 분명히 이것은 히브리,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쓴 복음서인데도 임마누엘이라 하면서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이렇게 말씀하심으로 이 임마누엘이 곧 천하만민의 임마누엘이라는 사실을 여기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임마누엘은 이사야 7, 9장에 있는 것처럼 거기보다 더 넘어서 7장부터 12장까지 한꺼번에 읽는 것이 맞겠습니다. 물론 임마누엘은 다음시간에 더 정확하게 강론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이사야 7장을 보면은 이스라엘 백성이 멸망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임마누엘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당시 북 이스라엘이 시리아 군대와 함께 연합하여 남 유다 왕국을 침범해 왔고 남 유다왕국은 큰 위기를 당했습니다. 그때 남 유다왕국은 저 멀리 있는 앗수르 군대를 청해서 자기를 방어하도록 그런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당시 앗수르는 북 이스라엘을 침범해서 멸망시킬 그런 국가인데 남 유다는 두려워서 그처럼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했을 때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보내서 당시 유대임금 아하스에게 하나님이 그들의 구원이 될것을 증거할 증거를 구하라고 그처럼 요구했지만은 아하스 임금은 그런 증거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자기 마음속에 북쪽에 있는 더 강력한 군대 시리아 군대와 북이스라엘 군대를 멸망시킬 강력한 그 군대를 이미 동맹군으로 연합해서 의뢰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뢰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음으로는 그런 계획을 다 짜놓고서도 말로는 내가 어떻게 여호와를 시험하리요 성경구절을 인용해서 그러면서 하나님의 징조를 구하지를 아니했습니다. 분명히 구약때 하나님의 구원은 징조적인 구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구원하실때도 많은 징조와 표적과 기사를 통해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셨는데 그런 구원의 징조를 구하지를 아니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북쪽 이스라엘도 망하고 또 그 위에 있는 시리아 군대도 망하고 남쪽 유다도 망할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다 세상 군대를 의지하고 하나님의 힘을 의뢰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남 유다 백성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멸망시켜도 하나님은 새로운 구원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왜냐하면은 그들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기 때문에 상수리 나무를 베어도 그 그루터기는 남겨두는 것처럼 하나님은 남은자를 통해서 영원한 구원을 완결시키고 남 유다만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천하만민을 구원하는 우주적인 구원을 통해서 세상권세를 의뢰하지 아니하고 하나님만 의뢰할 수 있도록 그런 평화의 왕국을 건설하실 것이라고 그렇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때 약속하신 분이 임마누엘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풍전등화처럼 멸망받게 되었을 때 남 유다뿐 아니라 천하만민이 앗수르 군대, 바벨론 군대에게 멸망을 받도록 그처럼 예언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임마누엘은 이새의 씨, 이새의 줄기 곧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분이시며 이분의 기원은 영원 영역이기 때문에 그의 기원은 상고요 태초니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고 이분때문에 이제는 원수의 권세들은 다 불살라 없어질 것이고 하나님께서 우주적인 평화를 도입해서 천하만민이 그에게 경배하는 나라를 이루시리라고 그처럼 약속하셨는데 이제 하나님이 성령으로 마리아의 태를 통해서 잉태토록하신 하나님의 아들, 자기 백성을 저희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하나님곧 이분이 임마누엘, 자기 백성과 함께계시는 하나님이라고 그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이 하나님의, 천사의 증거를 듣고 그 아내 마리아를 데려왔고 그리고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고 아들을 낳으니까 이름을 예수라 불러서 자기 호적에 입적시켰습니다. 이것은 당시 유대인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은 자기가 정식 혼인하여 아내를 데려오기전에 물론 그당시의 약혼은 정식 혼인과 방불하지만은 아직 동거하기전에 아내가 잉태했으니 그것은 경건한 자로서 도저히 견딜수 없는 일이고 그것은 공개적으로 하면은 사형에 처해서 죽어야되고 아주 중요한 건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로 고민하고 있었을 때에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서 구원약속을 계시했을 때 요셉은 이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아내를 데려와서 함께 살았을뿐 아니라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고 그리고 아들을 낳으니까 이름을 예수라 불러서 자기 가문에 정식입적해서 그로 합법적으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하나님의 구원자로 부를수 있도록 그렇게 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요셉에게는 견딜수 없는 일이고 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참으로 경건한 자여서 옛 언약질서로 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은 하나님의 천사의 증거를 듣고 그는 하나님의 구원약속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옛 경륜에 매이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친히 권능르로 자기 아내의 태를 통해서 이루시는 구원역사를 그는 믿고, 성령으로 잉태하신 하나님의 아들,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 자기 백성과 영원히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하나님, 이분의 법적인 아버지로 그런 존귀한 직무에로 자기를 그렇게 헌신했습니다. 이제까지 물론 남녀의 성적인 문제는 많은 스캔들을 일으키지만은 아마 이 집안처럼 대대로 문제되는 집이 세상에 어디있겠습니까? 처녀가 아들을 낳는 이야기, 얼마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일을 지금도 조롱하고 공격하고 있습니까? 아무리 세상이 추악한 범죄에도 알마지나면은 그런 사람들의 일들은 오히려 잊혀져가고 있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만민이 추앙하는 이름도 이 일뿐만 아니라 만민의 비방과 조롱거리가 이 일이어서 처녀가 아들을 낳는 일에 대해서 세상이 이 일로 공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천사의 증거를 듣고 아내를 데려와서 그리고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해서 이 아들이 성령으로 잉태케 된 하나님의 아들인 사실을 그는 확실히 믿었을 분만 아니라 자기 호적에 입적시킴을 통해서 그는 영원히 하나님의 구원의 길에 있어서 예수의 법적인 아버지로, 그렇게 해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언약의 성취자로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길을 믿음으로 봉사한 사람이 곧 요셉이라고 그렇게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예수를 이름지어 자기 구원자로 보냈을 뿐만 아니라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출생, 하나님의 생명의 성령이 친히 마리아의 태를 통해서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심을 통해서 임마누엘, 영원히 자기 백성과 함께하는 구원의 하나님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 구약때는 가리우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죄로부터 완전한 구원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가리움이 없이 우리와 같은 형제로 우리와 같은 죄있는 육신의 몸으로 임하셔서 죄인된 자기 형제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그리고 고난을 받으셔서 죽음의 권세를 맛보시고 그리고 영원히 죽음의 권세를 파멸시키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하나님의 아들로 믿음의 백성, 자기 백성과 함께께신 임마누엘 하나님, 곧 이분이 우리의 구원이라고 마태복음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이일에 믿음으로 동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신실한 자기 백성들을 통해서 구원역사를 진행시켰습니다. 우리는 요셉과 같은 그런 고난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들도 요셉처럼 이름을 예수라 하라 하나님께서 칭하신 이름을 우리들도 그만 우리의 영원한 구원자라고 그처럼 불러야 될것입니다. 요셉을 그들이 비방하는 것처럼 지금도 예수를 비방합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죄인이 어떻게 구원자인가? 하는 것이 마태복음의 조롱이었습니다. 어떻게 자기도 구원하지 못하고 무덤에 갇힌 사람이 세상의 구원자인가? 하는 것이 세상의 조롱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그냥 휘장으로 가리우고 계신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과 한 형제로 거하시려고 우리를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고 함께 거하시려고 친히 성령의 권능으로 사람의 몸을 취하셔서 이처럼 세상에 오신분이 임마누엘 하나님, 곧 우리중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세상은 그를 거절했어도 하나님은 이일로 그를 출생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로 자기 백성의 모든 고난을 대신 받게 하셨고 고난중에 하나님께 순종함을 통해서 영원한 구원의 주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냥 그는 임마누엘으로서 단순한 주가 아니라 영원한 고난의 주로서 자기 백성을 위해서 고난을 받으심을 통해서 구원자로 온전케 되셨고 하나님은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모든 이름위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아들, 아버지와 아들과 영으로 계시는 존귀한 이름을 그에게 주셔서 이제는 그가 영원히 임마누엘로 교회와 함께 계심으로 우리의 구원자가 되셨으니 우리들도 이분만 우리의 구원자라고 그처럼 부르셔야 될것입니다.

만일에 우리가 이 이름을 부그럽게 생각하고 세상의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이처럼 자기 생명의 유지를 위해서 만일 우리들이 세상의 종이 될것 같으면은 그렇게 해서 사람앞에서 존귀한 이름 하나님이 칭하신 이름 하나님이 칭하셔서 세상에 보낸 하나님의 아들 이 구원을 우리가 멸시하고 사람앞에서 이 이름을 고백하기를 부끄러워 할것 같으면은 나도 하나님앞에와 천사들앞에서 너희 이름을 부끄럽게 하리라고 그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분밖에 우리의 구원의 이름이 없습니다. 이분 밖에 우리의 구원자가 없다고 사도들도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의 주로 세우신 분은 사람의 몸을 취하시고 나셨지만은 성령으로 잉태하셨고 친히 자기 백성을 대신해서 고난을 받으시고 그리고 죽음의 권세를 영원히 이기시고 영광의 보좌에로 취임하신 예수, 그리고 부활의 영으로 지금도 교회안에 계셔서 우리를 그의 상으로 부르시고 함께 먹고 마시기를 즐거워하신 이 하나님, 우리 죄인들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신 예수, 이분 밖에 우리의 구원이 없다고 우리들도 고백을 해야 될것입니다. 만일에 우리들이 이 이름을 부끄럽게 생각할 것 같으면은 사람앞에 시인하지 아니할 것 같으면은 사람앞에 칭찬을 받으려고 이 이름을 부끄럽게 생각할 것 같으면은 우리들은 주님의 영광의 재림의 나라에서 영원히 끊어질 것이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형제가 우리를 찾아올 것 같으면은 그 형제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칭함을 받는데도 만일에 그 형제들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헐벗고 병들어서 세상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다해서 만일에 우리가 그 형제들을 부끄럽게 생각할것 같으면은 이것은 주님의 이름을 멸시하고 주님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어서 주님의 심판날에 나는 너를 모른다고 하리라고 그처럼 마태복음 25장에서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우리 죄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들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아니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은 범죄했지만은 하나님은 그 죄에도 불구하고 친히 이스라엘 백성의 일원으로 출생하셨고 자기 백성은 범죄했지만은 자기 백성에게 부과된 하나님앞의 순종의 의무를 친히 아들이 마지막 역사에서 완결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이 저주 가운데 있었던 율법의 저주를 자기 저주에서 끝내시고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선물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멸시와 천시를 받으시고 이스라엘 백성에게서는 저주 받은 죽음을 당했지만은 천하만민이 그를 조롱했지만은 하나님은 그를 존귀한 자리의 이름으로 높이 올리셔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그처럼 하나님의 아들로 그를 존귀케하셔서 그를 믿는 모든 백성들을 구원하시며 그를 믿는 모든 백성들을 하늘의 영광의 교제로 구원하시며 그를 믿는 모든 백성과 함께 영원히 함께 계셔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영원한 나라를 우리에게 선물하셨으니 우리 모두 다 이분만 예수라고 칭하십시다. 이분만 우리의 구원자라고 칭하십시다. 죽음을 맛보았지만 부활하신 이분, 우리중에 함께 하신 구원자며 이 외에는 구원의 주가 없다고 우리들은 세상에 대해서 분명히 증거해야 될것입니다. 우리가 무릎꿇은 이 경배를 통해서 무릎꿇는 이 고백을 통해서 천하만민이 예수의 이름으로 함께 세례를 받고 천하만민이 예수께 복종해서 그의 말씀을 순종하는 나라를 건설할 수 있도록 우리가 이름을 높이 부르고 이 이름에 경배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생명의 주가 되셔서 만물을 지으셨을 뿐 아니라 우리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안에서 생명의 역사를 진행시키신 하나님 옛 언약역사에서 친히 그들중에 함께하시고 영광을 받으셨지만은 그들은 온전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영원히 진실하셔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친히 자기 아들을 보내시고 여인의 후손으로 보내셔서 이제는 천하만민을 구원하신 임마누엘이 되셨음을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는 주님께서 우리와 같은 혈육이 되셨고 같은 형제가 되셨고 부활하셔서도 우리와 같은 형제로 영광의 보좌 우편에 계셔서 영원히 함께하시는 우리의 임마누엘이 되셨사오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주님만 참으로 우리의 구원자요 하나님이 세우신 구원자여서 다른 구원받을 이름이 우리에게 없는 줄로 믿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세상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창고를 크게 짓고 내 영혼아 평안해라 그것이 그들의 구원이요 세상의 권세를 의뢰해도 우리는 세상에서는 버림을 당했으나 하나님께는 존귀함을 받은 예수를 우리의 구원자로 받았으니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지금도 교회안에 함께 계시는 생명의 주님, 능력의 주님, 모든 만물의 권세를 가진 주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고백하고 시인하고 높이 이름불러 찬양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될 수 있도록 우리의 믿음을 더욱 온전케 해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아버지여 세상이 이 일을 다 멸시할지라도 참으로 경건한 구약의 증인들이 이 이름을 불렀던 것처럼 우리들도 이 이름만 부르고 이 이름외에 다른 구원의 이름이 없는 줄 알고 천하만민이 이 존귀하신 예수이름앞으로 돌아와서 무릎을 꿇고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주님의 신실한 증인으로 주를 따르는 백성으로 살 수 있도록 우리의 믿음을 더욱 온전케 해 주시옵소서. 임마누엘이신 하나님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영원히 우리와 같은 형제로 함께 계신 하나님 지금도 부활의 영으로 우리안에 임하셔서 우리중에 생명의 떡을 주시며 생명의 음료를 주시며 영원한 생명의 교제로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우리를 부활하신 주님의 몸의 지체로 지으셔서 영원히 함께 계셔서 서로 가난한 자를 돌아봄으로 주님의 이름이 우리중에 영광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를 사랑의 종으로 세우셨으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 교제의 식탁안에서 우리중에 함께 하신 임마누엘, 우리의 구원의 주 예수를 날마다 찬양하고 주님의 지체로서 주님의 몸의 거처로서 주님과 함께하며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말씀하며 주님의 손이 공급하는 힘으로 공급하는 것처럼 서로 공급하는 사랑의 종들이 다 될수 있도록 우리를 주의 백성으로 온전케해 주옵소서. 주님오셔서 만물을 새롭게 하도록까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께서 주의 백성들의 손의 수고를 풍성히 채우셔서 만민을 구원하시는 임마누엘이신 하나님, 우리의 생명되신 하나님의 은혜가 만민에게 확장될 수 있도록 주의 백성의 손의 수고를 더욱 넘치게 복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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