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세계
마태복음 1장, 누가복음 3장23절-
* 마태복음 개요
1.구원역사의 마지막 후손
하나님의 아들
2.아브라함의 후손
천하만민에게 복을 주시는 분
멜기세덱의 나라의 상속자
3.다윗의 후손
언약 역사의 완성자
만민 중에 계시는 모든 권세의 왕
우리들은 보통 창세기나 출애굽기는 아주 초보적인 것이고 또 마태복음은 제일 쉬운 책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신약 성경 제일 처음에 있기 때문에 여러번 읽어서 아마 그런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섭섭하게도 우리들이 그동안 해왔던 성경 해석에 많은 문제가 있었고 특히 마태복음에서 그렇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특별히 마태복음을 강론함에 있어서 하나님이 더욱 복을 주시고 또 이 일로 인해서 교회가 하나님 앞에 충성스럽게 봉사하는 새 인류로 지어질 수 있도록 우리가 함께 기도하셔야 되겠습니다.
어느 책을 해석하든지 항상 성경을 해석할 때는 전제적인 구조를 보셔야 됩니다. 왜냐하면 4복음서 저가가 예수님의 행적을 또 행하심과 교훈을 그들의 정보망을 통해서 여기저기 수집해 가지고 그것을 모아 놓은 것이 이런 복음서가 아니고 이 복음서를 기록한 기자들이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일을 그들이 교회에 증거하고자 하는 목표를 따라서 조절해서 다른 말로하면은 해석해서 기록했기 때문에 이것이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 땅에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그 역사적인 사실과 같으면서도 그것은 해석된 사실로 보고해 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이 이 전제적인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성경 기자들은 예수님의 구체적인 역사적인 행적들을 기록했다는 의미로는 어떤 의미로 소위 역사가라고 할 수 있으면서도 그것을 교회 신앙을 위해서 해석해서 기록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런 의미로 신학자라고도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항상 주님께서 땅에서 행하신 일과 또 그의 가르치심이 어떻게 우리 구원인가? 하는 문제를 교회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의미로는 이 성경 기록자들이 최후의 저자와 같은 역할이어서 이 전체적인 책의 구조를 보고 그 전체적인 구조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를 파악하고 그 흐름을 따라서 부분부분을 해석해야 바른 해석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에 우리가 상당히 어두웠기 때문에 바른 해석을 하는데 있어서 많은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물론 마태복음이나 다른 복음서들이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마다 그런 구조들에 대해서 이런저런 의견들을 개진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것도 묘한 이야기입니다. 수가 많다고 꼭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어떻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마는 보편적으로 교회에서 받아 들여지고 있는 그런 구조들은 처음에 읽어보면은 다른 복음서 하고는 달리 많은 설교들이 따라 있어요. 또 대충 읽어보면은 마태복음은 많은 예수님의 교훈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런 것이 한꺼번에 모아져 있습니다. 그러니가 마태복음은 분명히 예수님이 땅에서 행하시고 또 가르치신 그런 일들을 분명히 토대로 하면서도 그가 무엇인가 목표를 위해서 그런 것을 편집하고 조절했다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지요. 그래서 마태복음 5, 6, 7장 거기에 보면은 산에서 한 긴 설교로 그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한꺼번에 이 설교를 다 하셨는가? 우리들은 그런 것은 잘 알 수가 없고 하옇튼 마태가 기록한대로는 산에서 이 모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서와 비교해 보면은 꼭 이것을 한거번에 산에서 말씀하셨는가? 그런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곳들이 많이 있지요. 또 예수님께서 이적을 행한 것도 한꺼번에 묶어져 있습니다. 또 비유에 대한 가르침도 한꺼번에 비유 본문들도 묶어져 있고 이렇게 많은 설교들이 한꺼번에 단락을 이루어서 묶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설교 앞 부분에는 예수께서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 또는 어떻게 이적을 행하셨는가? 하는 그런 문제들이 쭉 있지요? 그래서 그의 행하심과 교훈이 반복되는 그런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 때문에 마태복음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일에 있어서 이제까지 교회사에서 주로 받아들이고 있어떤 일들은 마태복을 모세 오경과 같은 구조로 다섯 가지 설교를 근본 틀로 갖추고 있고 그리고 그 앞과 뒤에 서론과 결론이 붙어 있다. 그렇게 보통 해석을 했습니다. 제일로 우리가 잘 아는 마태복음 5, 6, 7장에 산에서 실게 설교하신 소위 산상수훈이 있고, 그 다음에 제자들을 파송하는 교훈이 10장에 있고, 그리고 이제 나중에 특별히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교훈하는 비유에 대한 본문이 13장에 있고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리라 16장에 말씀하고 나서 교회에서 삶의 성격이 무엇인가? 하는 그런 문제들을 18장에서 말씀하고 있고 그리고 이제 종말에 대한 긴 교훈을 24, 25장에서 말씀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다섯 가지 큰 설교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모세 오경 구조와 일치하고 이제 보통 이렇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대한 비판들이 많이 있지마는 그것은 여기서 일일이 말할 수 없고 대개 어떤 구조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는 문제들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방금했던 해석은 그렇게 설교로 모아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설교가 끝나고 난 뒤로 예수께서 이 모든 말씀을 마치시매 또 마치시고 그렇게 해서 그런 똑같은 반복된 말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구조로 나누는 것이 옳다고 보통 해석을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제 다른 해석은, 특별히 예수님께서 ‘이때로부터’ 그가 이렇게 이렇게 했다. ‘이때로부터’ 그것이 예수께서 4장 17절에 보면 이때로부터 그가 하나님 나라를 이렇게 전파했다. 갈릴리에서 전파한 사실이지요. ‘이 때로부터’ 그리고 16장에 보면은 이제 베드로에게 예수께서 물으실 때가 있지요. 그리고 그 대답을 다 듣고 나서 ‘이 때로부터’ 그가 어떻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런저런 고난을 받으셔야 되는가? 그렇게 말씀하신 본문이 있어요. 그래서 4장과 16장에 있는 그런 특별한 구절 때문에 마태복음을 세부분으로 나누어서 4:17절입니까? 그 앞 부분까지는 예수님께서 구원을 이루시는데 어떤 분이신가? 그 분의 인격에 대해서 쭉 말씀하고 있고, 그리고 ‘이때로부터’ 그가 하나님 나라를 이렇게 이렇게 전파했다. 4:16절이하부터 교회를 세우리라 하는 거기까지에는 특별히 유대인들에게 전파한 그런 내용으로 되어 있고, 그리고 이제 ‘이때로부터’ 하는 것은 그의 고난과 부활에 대해서 마하면서 특별히 교회를 세우는 일에다 강조점을 두고 있다.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이런 해석들은 다 일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분명히 그런 선명한 선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마태복음이 그렇게 어떤 한 특정한 구조로 단순하게 선을 딱딱 그어 버릴 수가 있는 것인가 했을 때 그렇게 돼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중요한 선들을 긋고 있으면서도 꼭 그렇게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것인가 했을 때는 그 안에 많은 것들이 섞어져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은 처음 유대인 한테 복음을 전파한다. 또 예수님의 인격이 누구신가? 하는 그런 문제에 있어서도 항상 하나님께서 어떻게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자이신가? 교회를 세우리라는 말 이전에도 이방인이 항상 들어와 있고 유대인들은 쫓겨나리라. 이를 갈리라. 유대인들의 쫓겨남과 이방인이 믿음으로 들어온 문제가 항상 반복되는 구조로 나타나 있기 때문에 ‘이때로부터’ 예수께서 교회를 세우리라는 그런 이제는 유대인들은 버리고 교회를 세우리라는 그런 면으로 집중되게 말씀하고 있는가? 했을 때 그렇게만 선을 그을 수가 없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니까 어떤 한 틀에 갇혀서만 보기 시작하면 난처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았을 때는 물론 이분들 하고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분들 의견을 전부 완전하게 배격할 수 있는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이 두 가지를 합쳐서 생각합니다. 구원 역사적인 시기들로 구분했을 때는 ‘이때부터’ ‘이때로부터’ 하는 시간적인 구별이 있으면서도 그 내용을 따라서 구분하면은 다섯 가지 설교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냐. 그렇게 해서 그것을 붙여서 해석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것은 아주 좋은 분석이 되겠습니다마는 제가 보았을 때는 그렇게 보는 방법보다는 마태복음을 일단 구약과 연결시켜 보는 것이 가장 순리로운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여기 1:1절에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해서 우리가 구약 때 처음 창세기를 본 것 같지요. 창세기를 보면은 누구 누구의 세계라, 또 천지 만물의 대략은 이러하니라. 누구 누구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그런 족보가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새 언약의 책인 처음 책을 펴면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그렇게 기록되어 있지요. 또 이 내용들을 보았을 때도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의 믿는 신자들에게 비록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고 또 이 마태복음 구조로 보아서는 지금도 하나님의 성소 예배가 정당한 것처럼 기록되어 있어요. 아직도 하나님의 성소예배가 진행되고 있다고 그럴 것 같으면은, 그런다고 할지라도 이스라엘 백성이 버린 예수를 하나님은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구원자로 세우셨다. 그러니 그분을 믿고 너희들이 충실하게 신실하게 복종해라. 하는 것이 마태복음에서 강조하는 바에요. 그러니까 이방인 신자보다는 유대인들 신자들에게 유대인들의 배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예수를 구주로 세우셨고 이제는 예수를 거절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앞에 버림을 받았지만 예수를 믿는 너희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요 새 백성이다. 너희들을 꺾을 어두움의 권세가 없다. 그러니 너희들이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신실하게 봉사를 해라.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 이 마태복음이기 때문에 이 마태복음은 옛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과 분명한 관계를 가지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은 구약에서 보면은 하나님께서 이처럼 창세기에 있는 족보적인 방식으로 기록할 뿐만 아니라 만일에 이것을 모세 오경저인 구조로 다섯 가지 설교, 그렇게 생각을 물론 안해도 좋습니다. 보면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셔서 언약을 체결하시고 긜고 모세 오경을 보면은 거의 끝날 때마다 항상 언약 체결의 문구로 되어 있습니다. 그 언약 체결은 무엇이냐 하면은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었으니 너희들은 내 말을 지키라. 그래서 언약체결이 끝날 때마다 요새 우리가 베운대로 하면은 출애구기에보면은 언약 체결을 하고 나서 언약의 말씀을 책에 기록하고 또 하나님이 언약의 말씀을 친히 돌판에 기록해 주시고 그렇게 되어 있고 나중에 신명기나 여호수아서를 볼 것 같으면은 너희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은 하나님의 율법에 아멘으로 화답하고 그 말씀을 기록해서 돌에 기록해 세워라. 그리고 여호수아서 제일 끝에도 나와 내 아비집은 여호와만 섬기리라. 너희들도 선택하라. 그러면은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을 돌판에 기록하여 세우고 그렇게 해서 모세 오경 구조가 거의 끝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언약체결의 말씀이고 우리는 평생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리라. 하는 언약의 말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하나님과 함께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언약 백성으로 그들을 지으셨다 하는 것이 구약에서 말씀하고 있는 일관된 내용들입니다.
그리고 여기 마태복음 제일 끝에도 보면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이제 그 제자들을 모아놓고 말씀하신 것이지요. 그리고 천하만민을 제자로 삼아서 내가 가르친 교훈을 가르치고 지키게 해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그리고 마태복음 5장에서도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면서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말씀했던 언약의 법을 주고 있지요. 그러니까 여기 교회를 구체적으로 새 이스라엘이라는 그런 언어로는 부르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의 제자단으로 그렇게 부르고 있지마는 이스라엘로 명칭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전의 옛 언약 역사에서 이스라엘을 부르시고 그들 중에 강림하셔서 언약의 법을 주시고 그들 중에 친히 왕으로 군림하셔서 그들을 통치하신 그 하나님, 천하만민은 어두움의 권세 아래 있었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었지요. 그 하나님께서 비록 이스라엘은 이런저런 범죄를 통해서 멸망했지마는 그 하나님은 진실하셔서 다윗의 후손으로 그 아들을 보내셔서 그의 아들의 몸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이제는 어두움의 권세가 무너뜨릴 수 없는 영원한 권세의 왕국을 세우셨다. 이것이 곧 교회니 너희들은 그의 말씀을 들으라. 그것이 마태복음의 구조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보았을 때에는 이런 것은 구약적인 개념으로 보았을 때는 신명기적인 구조지요. 왜냐하면은 신명기에 보면 다시 십계명 언약의 말씀을 선포하고 그 다음 너희들이 이처럼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지키리라 맹세해라. 27장에 그렇게 말씀하고 나서 언약갱신에 대한 문제를 또 30장에서 말씀하고 있거든요. 그렇게 해서 하나님 앞에 언약의 백성을 짓고 있는 것이 모세 오경 신명기의 마지막 구조들입니다. 그런데 여기 보니가 마태복음도 그런 특을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또 마태복음을 보면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이 있고 그 다음에 그가 가르치는 교훈이 있고, 가르치심이 끝나면은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시니라. 그리고 다른 행함이 또 진행되고 그의 행하신 것과 교훈이 반복적인 구조로 되어 있는데 그것은 신명기 구조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행하신 일들을 쭈욱 회상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법을 다시 말씀하고 있고, 또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행하신 일들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고 또 그들이 지켜야 될 법들을 말씀하고, 이런 반복적인 구조가 신명기의 구조에도 맞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성취자로 오셨다는 이 마태복음의 구조를 보았을 때에는 이것은 특별히 구약 구조는 신명기적인 그런 구조를 갖는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신명기 구조는 하나님의 말씀이, 강론이 전면에 드러나 있지요. 그래서 제2의 율법서 그렇게 말할만큼 전면에 드러나 있는데 그가 자기 백성을 위해서 행하신 은혜의 일들을 말씀하고 그 은혜의 일을 따라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백성으로 살 것인가? 하는 문제들을 반복적인 구조로 말씀하기 때문에 이 마태복음은 특별히 신명기 구조와 잘 맞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았을 때 이것은 그냥 무슨 다섯 가지 모세 오경 구조, 그런 문제보다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그런 특들은 항상 그 수가 일곱, 또는 열, 그런 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수들입니다. 창세기를 보면은 특별한 족보들은 열 족보로 그처럼 되어 있지요. 또 일곱에 대한 숫자는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이야기고 그러니가 이스라엘 백성이 익숙한 그런 언약적인 그런 숫자적인 구조들, 그런 구조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무슨 다섯 가지 설교로 되어 있고 앞과 뒤는 서론과 결론이고 단순한 그런문제보다는 그가 행하신 은혜의 일이 무엇인가? 그러니 너희들은 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 것인가? 하나님의 은혜와 그의 은혜를 입은 백성들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 것인지, 그런 문제들을 반복하고,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셨으니 이분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분으로 세우셨으니 이제는 천하만민이 그 말씀을 지켜 복종하게 하라. 그렇게 해서 우주적인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그런 구조로 되어 있고, 그것이 전체적인 주제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이제 조금 더 설명하면서 반복하도록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틀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은 이 틀에 대해서는 더 자세히 말씀을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이렇게 말씀하니까 나이드신 분들은 아이고 이번에는 아주 마음잡고 마태복음을 몇 년 강론한다고 하니 굉장히 어렵겠구나, 그렇게 생각하시는데 이제 그런 생각은 그냥 지워버리세요. 어떠튼 성경을 해석할려니까 틀은 잡아야 되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나이가 드셔서 이것을 따라 오기가 어려우시면은 모르셔도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런 틀에 대한 이해를 잘 하라는 문제보다도 그 틀은 마태복음을 잘 풀기 위한 것이지 때문에 그 틀을 안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상관은 없습니다.
그러면은 오늘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아까 모세오경의 구조로 나누신 분들은 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이것을 4:17절 ‘이 때로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이 말씀 앞에 속하는 것이 서론인데 그 서론의 머리이다고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이 때로부터 예수께서 복음을전파했다 그런 시간적인 특은 분명히 가지고 있지마는 실은 내용상으로 봤을 때 예수께서 공적인 직무에 취임한 것은 ’이 때로부터‘ 하는 문제가 아니고 ’이 때로부터‘는 그의 복음 전파의 이 때로부터 이고그가 공적인 일로 취임한 것은 실은 예수의 세례 사건입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하고 있고 그는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으로서 4장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아 이기시고 바로 그가 이기셨기 때문에 ’이 때로부터‘ 복음을 전파하는 그의 선교 사역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문법적인 방식으로 보았을 때는 이 때로부터 하는 사건적인 틀이 있으니가 이 때로부터 하는 것이 공적인 사역의 시작처럼 해석되는 것이 일리가 있다고 해석할 수 있겠지만 내용상으로 보았을 때에는 그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하고 바로 그 때로부터 그는 공적인 사역에 취임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까 말했던 그런 틀에 꼭 매이지 말라는 말씀이 그런 것이지요. 어떠튼 모세 오경의 구조로 나누신 분들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하는 것은 앞에 있는 서론의 머리이고 그 다음 4:17절 이 때로부터 이것은 4:17-의 머리이고 그 다음 16장에 오면 ’이 때로부터‘ 그것은 그 이하의 머리이고 이렇게 해서 세 부분으로 나누어 가지고 1;1절은 서론의 머리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니 1:1절은 마태복음 전체를 지배하는 말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이지요. 왜 이렇게 그 앞에 말을 잘 해석을 해셔야 되느냐 하면은 성경은 이제까지 우리가 배운대로 보아서 그렇지요. 먼저 그 주제를 선언하면은 그 다음에 그것을 반복적인 구조로 풀고 강화시키고 그다음에 결론을 맺고 그렇게 하고 있지요. 이렇게 했을 때 이 앞에 역사적인 사실이 단순하게 있을 수 있지요.
그런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 성경의 구조였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앞에 있는 말이 전체를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앞에 있는 말의 의미가 어디까지를 지배하고 있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단락들을 나누고 어디까지 지배하는가 보는 것이지요. 그러나 제가 해석하는 바로는 항상 구약 성경의 틀은 특별히 마태복음은 유대인 신자들에게 쓰는 것이어요. 구약 성경의 틀은 심지어 모세 오경은 그 책에 있는 처음 나온 말이 아예 이름처럼 되어 있습니다. 가령 창세기 그러면은 창세기라는 말은다른 사람이 붙인 것이 아니라 창세기 제일 처음 1:1절의 말씀에 ‘말씀’ 그것이 히브리인들의 말로는 창세기라는 책의 이름이어요. 출애굽기 그러면 이것은 나중에 붙인 이름이고 출애굽기도 히브리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름은 출애굽기 제일 처음에 나오는 것이 출애굽기의 이름입니다. ‘이름들은 이러하니라’ 하는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출애굽기의 이름이어요. 그러기 때문에 그런 구조들로 보았을 때에도 더구나 마태복음은 유대인 믿는 신자들한테 기록했을 때 1:1절의 말씀은 단순히 아까 말했던 서론만 지배하는 머리가 아니라 이것은 마태복음 전체를 지배하는 머리가 되어야 하겠고 또 더욱 넓혀서는 신약 성경 전체를 지배하는 머리가 되어야 되겠다 그런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바로 여기에서 하나님은 창조의 처음과 연결시키고 있고 이것을 새로운 세계로 완결시키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해서 하나님께서 그 후손들을 통해서 생명의 역사, 구원의 역사를 진행시키셨습니다. 누구누구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그러면은 누구누구 그 아버지가 아니라 그 후예는 이러하니라. 누구 누구로부터 난 아들, 그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게서 구원역사를 새로운 단계로 진행시키는 것을 구약 족보에서는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령 ‘천지 창조의 대략은 이러하니라’. 하는 2:4절의 말씀도 1장의 천지장조에 대한 문제를 말씀하고 나서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의 세계, 그가 창조를 통해서 이루신 만물의 역사는 이러하니라 하는 것이 2:4절부터 시작되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그 족보 말씀, 세계는 이러하니라 하는 말씀 앞에 역사적인 사실이 그렇게 따라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기 때문에 여기 창세기는 열 개의 족보로 되어 있는데 그 족보는 거의 다 누구누구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그런 족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께서 후손들을 통해서 이루시는 구원역사,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하나님게서 인류에게 복을 주셨고 특별히 죄에도 불구하고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복을 주셨을 때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생명의 역사는 자손들을 출생시키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생명을 보는 것이고 그 역사의 진행을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특정한 후손들을 지목하시고 후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새로운 단계로 집행시키시기를 원하셨을 때 그런 단락에 도달하면은 반드시 족보로 이전 역사를 전부 총괄해서 기록하고 ‘누구누구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총괄해서 기록하고 그리고 그 후손으로부터 새로운 역사를 집행하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창세기의 구조였습니다. 이 사실은 창세기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을 때 역대기를 보면 이제 아예 누가복음에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해서 그 족보들을 쭈욱 반복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을 바벨론 포로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이 천지창조주 하나님이요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이요 이제 그들을 바벨론 포로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그렇게 족보를 쭉 나열함으로 다시 기록하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구원한 백성들에게 처음 창조의 세계에 족보를 기록해서 준 것처럼 바벨론에서 구원하신 백성들에게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이전 역사에서 구원하셨는가 하는 역사를 다시 요약하고 반복해서 기록해 주심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새로운 인류로 지으셨고 구원하셨다는 사실들을 거기서 약속하고 있고 그 약속이 영원하리라고 확증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족보 이야기는 그냥 창세기나 역대기에만 단순히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여기 신약, 새 언약의 책, 처음 책을 열었을 때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은 이것은 새 언약의 역사, 새 시대의 전체를 열고 있는 서론이요 그러기 때문에 마태복음 서론 뿐만 아니라 신약 성경의 전체를 열고 있는 새 시대를 열고 있는 그런 말씀이라고 이해하시는 것이 바를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생육하도록 복을 주셨고 마태복음에서 그 족보를 마무리짓고 그 다음에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그의 부활이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종점에서 완결시키는 것이며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것이 어떻게 처음 창조의 구원 역사를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마루리 짓는 것인가? 하는 것을 완결시키는 말씀으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마태복음 전체와 그리고 새 언약의 책인 신약성경 전체를 해석하는 열쇠의 말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성경해석가들은 마태복음 보다는 마가복음이 먼저 기록되었다고 그렇게 소위 본문을 분석해보고 그렇게 말들을 합니다. 그것도 일리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확실한 보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신학적인 문제로 접근하면은 마귀가 베드로의 조수로 일했기 때문에 베드로가 하나님의 신약 교회에서 교회를 놓는 토대로서 항상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마가가 먼저 기록했다는 말을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역사적인 증거들은 주로 마태복음을 먼저 기록된 것으로 이야기 하고 있고 또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서는 이스라엘을 빼놓고 건너 뛰어서 이방인들에게 언약의 말씀을 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니가 어떠튼 마태복음이 먼저 기록되었든 마가복음이 먼저든 물론 여러 이유들을 말하고 있지마는 그러나 마태복음이 새 언약의 책인 제일 처음에 배열되어 있는 것은 참으로 타당한 이야기이고 또 그런 의미로 마태복음이 먼저 기록되었다는 해석도 상당한 신빙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지 해석에 대한 문제 때문에 제가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 뿐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신약 언약의 책의 처음 이처럼 족보 문제가 나온다고 이렇게 하니까 만일 어던 사람이 듣기는 그것이 나중에 기록되었고 편집할 때 앞에다 놓은 것인데 그것을 갖고 뭐 영감된 것이나 되는 것처럼 그러냐? 그렇게 말씀하면 난처하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어떠튼 1:1절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이것은 새 언약의 시대를 펼쳐 보이고 있는 구원의 시대를 펴쳐 보이고 있는 새로운 족보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에게서 그의 역사를 종점에서 완성시키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은 구원 역사의 마지막 후손이십니다. 이전 역사들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복을 주셨지만은 그것은 혈육을 따른 출생이었고 그들의 출생에서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마무리 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예수께서 오신 이 구원의 세계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서 마지막 후손을 보낸 것이고 이는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심으로 하나님게서 생육하고 번성해서 세상을 구원했던 그 구원 역사를 마무리지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우리들이 생육하고 번성하지마는 그러나 지금 구원의 역사는 생육하고 번성하는 그런 출생을 통한, 혈통을 따른 출생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을 따른 출생이 아니라 이제는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늘에 속한 새로운 아들로 출생되는 것이어서 그런 의미로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출생으로서는 마지막 출생이요 더 이상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대신하는 새로운 대리자가 출생되지를 않습니다.
물론 이런 것을 누가복음에서는 이제그 족보를 하나님까지 거술러 올라가서 예수님을 이제 새 인류의 조상으로 족보적인 방식으로 기록하고 있고 또 특별히 바울 사도께서는 이 말씀을 첫 아담과 둘째 아담으로 예수를 대비시켜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직접적으로 그렇게는 하지 않고 하나님게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의 출생을 통해서 그 역사를 진행하셨고 아브라함의 하나님되신 하나님은 어떻게 아담 때부터 그 역사를 출생시켜 왔는가, 하는 문제들을 창세기 앞에 있는 족보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혈육을 따른 출생의 역사를 따라서 그런 구원 역사를 진행시키셨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이 분은 마지막 후손이요 더 이상 혈통을 따른 출생, 혈통을 따른 출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대신하는 또 하나님께서 구원 역사를 획기적인 방식으로 이루시는 그런 대리자들 동행자들이 나타나지를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구약 때는 혈통을 따른 출생이었고 이스라엘 때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곧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집행시키는 것입니다. 만일에 아브라함의 후손이 끊어지거나 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 다윗을 왕으로 세웠기 때문에 다윗의 왕통이 끊어질 것 같으면은 그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가 단절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게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의 씨를 주셨고 다윗의 왕위가 끊어지지 아니하도록 그 왕조를 영원하게 하셨습니다. 북이스라엘 왕국은 군사혁명이 많이 일어났지만은 남쪽 유다 왕국은 그런 일들이 없었습니다. 왕들은 종신직이었고 하나님의 왕권이 다윗 지파로부터 건너 뛰어서 다른 지파에게 옮겨간 적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구약 역사에서 출생을 통해서 그의 구원 역사를 마지막에 완성시키셨을 때에는 이제는 단순한 혈통을 따른 출생이 아니라 그 아들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보내셨다 하는 것이 마태복음에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분, 이분 안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마지막에 완성시키고 다른 동행자가 없습니다. 이제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께서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마지막 후손이요 이분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 아들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혈통으로 낳게 하셨고 하나님은 아들 안에서 영원히 임마누엘로 이스라엘로 함께 거하시러 오신 분이시라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출생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는 그 백성과 함께 하셨습니다. 족장들은 자기 아들들의 출생에서 생명의 주님을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명이 후손에게서 그처럼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이제 그 아들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출생시키도록 하셨고 이제는 영원히 자기 백성과 함께 하는 사람으로 출생시키도록 하셨고 이제는 단순히 혈통을 따른 출생이 아니라 위에 계신 하나님이 친히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시는 영광스런 임재로 이처럼 오셨기 때문에 이제는 이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종점에 도달했다고 그렇게 마태복음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대신할 사람이 출생하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을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희랍 성격에서는 다윗이 앞에 나와서 다윗이 강조되어 있고 이것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이것은 역사적인 순서를 따라서 번역하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윗이 강조된 것은 열네 대, 열네 대, 그리고 보면 다윗이 전부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 열 네 대라는 말은 다윗이라는 말을 숫자로 붙이면은 그렇게 열넷으로 합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수를 통해서도 다윗에 대해서 거듭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이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되었어도 구약 역사에서 완성은 다윗에게 있었고 이제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셔서 무너진 다윗의 왕국을 건축하고 이제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영원한 왕국을 건축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다윗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기록된 순서를 따라서 아브라함의 후손 다윗의 후손으로 이제 마지막 후손으로 오신 이분이 어떻게 우리의 구원이 되는가? 하는 문제를 증거하겠습니다. 여기 족보를 보면은 그 이방인 여자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방인 여자들에 대한 기록은 유다와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을 때 다말, 이것은 아마 가나안 여인일 것입니다. 그리고 5절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이 라합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성을 정복했을 때 기생 라합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가나안 백성인줄을 우리가 잘 알고 있지요. 그리고 여기 보면은 다윗 임금 이전에 보면은 두 이방 여자가 들어와 있는데 하나는 유다가 그 자녀들을 낳았을 때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했을 때 거기 보니까 이방인 여자들이 족보에 특별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 왕 다윗에게서 왕국이 이루어졌습니다. 아예 여기서 말할 때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막 왕으로 직접 이야기 하고 있지요. 이 왕을 낳게한 역사가 실은 조상들의 역사였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솔로몬을 낳았을 때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하니까 이것은 이건 뭐 두고두고 수치스러운 이야기가 되겠지요. 왜냐하면 다윗이 행위가 딱 기록되어 있잖아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왕국의 머리가 그 아들을 출생시키는데 그 하나님의 나라를 출생시키는 일에 있어서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낳으시는 16절에 보면은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야곱은 요셉을 낳고 요셉은 마리아에게 장가들었느니라. 그러면은 훨씬 순서에도 맞겠는데 아예 않기를 누구를 낳느냐 하면은 마리아의 남편을 낳았다고 말하고 있어요. 마리아가 중심이고 아예 남편을 낳았다 그말이지요. 요셉을 말하기를 마리아를 중심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고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다른 데서는 누구는 누구를 낳고 남자가 남자를 낳은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보면은 마리아가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를 나시니라. 여기서 출생의 주체를 이제는 남자에게서 여자에게로 옮겨노았습니다.
이런 기록 방식을 우리가 조심해서 보아야 되겠지요. 왜냐하면은 여자들 이름을 기록할려면은 우리가 유명한 믿음의 어머니 사라를 기록하면 좋고 리브가를 기록하면 좋겠지요. 왜냐하면 사라는 믿음의 어머니이고 리브가는 열두 족장의 어머니로 추앙받을 수 있으니가 얼만큼 좋습니까? 그런데도 그렇게 되어 있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이방인 여자들이 기록되어 있고 특별히 마리아가 강조되어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여자들은 그럼 다른 사람들은 이방인과 결혼한 적이 없는가? 있겠지요. 왜냐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대로 하면은 모세 같은 사람도 그렇지요. 요셉도 그렇지요. 보니까 유대인 아닌 사람들과 결혼을 했었지요. 그러니까 아마 이 족보에도 그런 임금들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족보는 다른 사람을 말하지 않고 여기 보니까 이방인 여쟈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유다가 형제들을 낳았을 때 그리고 그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했을 때 만일에 여기서 유다가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지 못했으면은 구약 족보를 보면은 유다의 계통은 끊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다가 아들이 몇 명 있었는데 큰 아들이 다말에게 장가가서 죽었습니다. 그 다음 동생을 형수에게 장가보냈는데 또 죽었습니다. 소위 우리나라 말로 재수 없는 며느리가 들어온 것이지요. 이제 막네 아들 한명 남았는데 이 아들을 주었다가 죽어버리면은 대가 끊어질 판이어요. 그래서 아들을 안주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이 다말이 변장하고 자기 시아버지를 유혹해서 그 씨를 얻었습니다. 그렇게해서 낳은 것이 유다의 계통입니다. 그러니까 유다의 본 아들들은 빠져버리고 있고 그 며느리가 시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낳은 아들들이 유다의 가계를 이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요. 이처럼 창세기를 보면은 요셉 보다는 유다가 중심되는 인물인데 만일 유다 계통에서 이 아들들이 없으면은 이스라엘 백성은 왕이 오지 못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왕국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유다를 통해서 아들을 주셨는데 다말을 통해서 낳았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는 다말은 뭐 이방 여자인가 아닌가는 정확히 알 수 없겠습니다만은 문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낳은 왕국이지요. 구약에서 보면은 만일에 형님이 아들이 없이 죽으면 동생이 아들을 낳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형님의 이름이 이스라엘에서 끊어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바로 그렇게 해서 이어진 것이 유다의 가문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생명이 끊어진 집, 유다의 집안이 얼만큼 심판이 많았습니까? 큰아들이 죽고 둘째 아들도 죽고 또 셋째 아들이 죽으면 이렇게 다 죽으면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제도, 바로 대리자를 통해서 후손을 이어주는 이런 은혜를 통해서 유다의 왕국이 유다의 지파가 이제 그 토대를 갖추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의 왕국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신 왕국인데 여기 보니까 유다에게서 나타난 일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죽음을 이긴 대리적인 방식으로 탁월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가서 여리고 성을 정복했을 때 이방 여인이 거기에 연합했습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한 것은 단순히 가나안 족속을 멸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항하는 원수들을 멸절시키는 것이어서 거기 연합해서 온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에 연합해서 그 생명이 끊어지지 않고 함께 기업을 얻었습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이스라엘 가문의 출생에서부터 그들이 기업을 얻을 때까지 항상 여인들이 연합되어 있는데 제가 보았을 때는 이방여인들이 연합되어 있어서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연합되는 것이어서 처음부터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그런 공동체를 이루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보면은 마리아에게서 여자가 낳았다고 그렇게 되어 있지요. 이 문제는 우리들은 창세기 제일 앞으로 돌아갈 수가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밟을 약속에서도 분명히 보니까 남자들이 주였는데 여기 보니까 여자로 돌아서서 마지막 결론을 맺고 있지요. 이것은 여인의 출생을 다른 방법으로 족보적인 방식으로 묘사한 것이 되겠지요. 이처럼 이 족보에서 창세기 처음부터 출발하는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어떻게 아브라함을 통해서 천하만민이 복받는 역사로 진행시켰는가? 하는 문제들을 이 족보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으로 부르셨을 때 그는 그냥 개인적으로 가장 경건하기 때문에 부른 것이 아니라 천하만민의 복의 근원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통해서 천하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그처럼 약속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가나안 땅에 멕기세덱의 왕국을 세우시고 그리고 그 후손으로 그 나라를 상속케 해서 천하만민이 그 복을 받으리라고 그렇게 약속했던 것이지요. 이제 이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여기서 이루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복은 아브라함 개인의 복이 아니라 천하만민의 제사장으로의 복이고 누구든지 아브라함을 축복하면 축복을 받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면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선지자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기도하지 않으면은 아비멜렉의 집의 태는 영원히 닫히게 될 것이고 그 불레셋 나라는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모든 민족의 대표자로 하나님이 부른 것이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그의 구원 역사를 진행시키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의 부르심은 천하만민의 부르심의 대표로서 부른 것이고 아브라함의 복이 천하만민에게 미치게 하여서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세우셨던 것입니다. 여기 이 복이 여기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그러면서 처음부터 이방인들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고 그리고 특별히 마태복음에서는 이 문제를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은 믿지 않고 버림을 당했지만 믿음의 백성들은 이방인들은 이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와서 믿음의 조상들과 함께 그 나라에서 영원히 기뻐하리라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 마태복음입니다. 바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임금에게 이방인이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계시느뇨? 우리가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마태복음 처음부터 그를 경배하는 자는 이방인들이 었고 유대인들은 헤롯 임금을 위시해서 그를 경배하지 안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의 구주로 오신 예수, 비록 이스라엘 백성이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지만 바로 그들이 예수의 죽으심 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그의 죽으심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 약속은 성취되었습니다. 그의 죽으심 안에서 구약의 저주는 끝났고 그의 죽으심 안에서 원수의 권세는 끝났고 하나님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예수로 그의 아들을 높이셔서 천하 모든 만민이 그에게 복종하는 우주적인 나라를 세우셨고 이 나라는 무너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고 있고 만민에게 이 복음을 전파하라고 이제는 유대인을 뛰어 넘어서 천하만민을 아들 삼으시는 이런 구원의 역사를 마태복음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런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셔서 천하만민에게 복을 주시려고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세우셨던 이 일을 마무리 지으셨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 후손을 주셨고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했는데 그 씨들은 구약에서 이삭이요 그리고 이삭의 후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제사장 민족으로 삼으셨기 때문에 그들 중에 계신 하나님을 이방인들도 알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오시기전에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원수삼은 것은 그냥 멸망시키려는 원수가 아니라 죄 때문에 간격을 나누는 직무적인 원수였습니다. 그 원수 관계는 이스라엘 백성 안에도 있었습니다. 제사장과 일반 백성은 원수적인 관계에서 하나님의 성소에 일반 백성들은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장자는 들어갈 구가 있었지요. 그러나 일반 백성은 그렇게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되었습니다. 심지어 제사장과 대제사장 사이에도 구별이 있어서 대제사장 외에는 하나님의 지성소에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도 원수와 같은 관계에 있어서 대제사장도 대 속죄일이 아니고는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구약 때 휘장으로 가리우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밖에 두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소제도를 보면은 여인들의 뜰이 있고 거기 또 이방인들의 뜰이 있어서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성소에 관계되도록 있는 것이 구약 역사에서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의 관계였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주신 것이 구약 때 이삭과 그로 말미암아 출생된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들이 세상의 복의 근원이어서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천하만민이 섬길 수 있도록 그들을 제사장 민족으로 세우셨던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세우신 하나님의 나라, 아브라함을 통해서 세우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한 사람들은 이스라엘이었고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하시는 멜기세덱의 나라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함께한 것이 멜기세덱의 나라인 것처럼 하나님은 친히 모세의 제도 안에서 그들 중에 함께 하셨고 마치 아브라함을 머리로한 이스라엘 백성이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바친 것처럼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성전에 계시는 하나님 앞에 십분의 일을 바쳤고 그러니 모세 제도의 나라는 곧 그런 의미로 구약 때 멜기세덱의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는 온전한 나라는 아니어서 바벨론에 포로잡겨가서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히 진실하신 분이십니다. 아브라함의 다 죽은 몸을 통해서 친히 생명의 씨, 약속의 씨를 주셨던 하나님, 이스라엘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하고 어떤 죽음의 세력에도 이스라엘을 끊지 못하도록 그들을 붙들었던 그 하나님께서 이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단순한 혈통을 따라 난 씨가 아니라 약속의 씨를 보내셨습니다. 구약적인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이 약속의 성취자로서 하나님이 친히 아브라함의 태로 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여인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브라함에게 씨를 주시리라 했던 약속,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을 약속을 아브라함의 씨로 그 아들을 보내심으로 완성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여인에게 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아들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구약의 백성들은 온전히 순종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끝까지 순종하셨고 죽음에 이르도록 순종하셨고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셔서 하늘 보좌에 올리셔서 무너지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의 왕국을 세우셨습니다. 구약의 다윗 왕국과 같은 왕국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의 왕국을 세우셨습니다. 구약처럼 이삭을 통해서 태어난 출생의 길이 아닙니다. 이제는 하늘 보좌에 오르셔서 그의 영으로 새 백성을 지으시는 신령한 이스라엘로 신령한 교회의 머리로 그의 영으로 우리를 살리시는 분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보좌 우편에 취임시키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이처럼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셔서 신령한 그의 교회를 지으시는 분이십니다. 바로 예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출생을 따라 오셨고 특별히 여인의 후손으로 오셔서 이제는 죽음의 권세를 영 단번에 이기시고 권세의 보좌 우편에 오르심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원히 함께 하는 멜기세덱의 나라, 영원한 생명의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이분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분은 영원히 교회에 임하시는 임마누엘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이분 안에서 하나님의 교회는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후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왕국은 다윗에게서 완성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그 왕좌에 세우시고 그를 통해서 이방의 모든 세력들을 정복하시고 가나안 땅을 하나님의 안식의 나라 평화의 나라로 완성하셨습니다. 적군이 정복된 안식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한 아들을 주셔서 하나님이 요동치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거처를 짓게 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로 다윗의 왕국을 복주셨습니다. 구약의 천막처럼 이동하는, 아직도 안식을 얻지 못하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 요동치 않는 그런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는 원수만 정복한 나라가 아니라 자기 백성의 죄를 용서하는 나라여서 하나님은 다윗에게 후손을 주셨는데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통해서 낳은 솔로몬을 통해서 그 왕국을 짓도록 했습니다. 이는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은 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게서 다윗에게 약속하시기를 네 후손에게 왕위를 주겠고 그 왕위는 무너지지 않으리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은 내 아들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하 7장에 있는 나단의 신탁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다윗에게 왕위를 약속하셨고 그 왕국은 은혜의 나라였습니다. 그들의 이런저런 실수에도 불구하고 사울에게서 거두운 것처럼 그 나라는 거두어지지 않을 rjtdlqselk. 다윗 임금은 구약 당시로 하면은 그의 범죄 때문에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를 용서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아내로부터 새로운 씨를 낳게 하셔서 그 아들로 하나님이 요동치 않는 영원한 안식의 거처를 짓게 하시고 그 나라를 통치하도록 평화의 왕국을 세우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게서 그 아들로 이 예수를 보내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솔로몬은 하나님의 평화의 아들이어서 하나님의 집을 짓고 하나님의 지혜의 아들이서 하나님의 통치를 다윗 왕국에 가져왔습니다. 당시에 이방인들이 천하만민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왔고 그의 지혜에 복종했습니다. 그러나 그 왕도 온전한 왕은 아니었습니다. 그 출생을 통해서 태어난 모든 왕들은 온전한 왕은 아니어서 결국 이방의 권세에 멸망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실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으로 옮기셨습니다. 그들이 멸망해서 쫓겨났다고 말하지 않고 바벨론으로 이사시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는 우리들이 구약 백성들의 이전 백성들의 이사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 하나님은 족장들을 애굽으로 이사시키셔서 거기서 번성하고 번성하도록 했고 이스라엘 족장들이 애굽으로 이사하는 것이 애굽의 구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바벨론으로 옮겼습니다. 구약의 애굽과 바벨론은 에덴의 강물이 흘러 들어갔던 그런 영역들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바벨론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옮기셨는데 이스라엘 백성을 옮기는 것이 바벨론의 구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서 세상의 권세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문제들을 이방의 임금에게 펼쳐 보이셨습니다. 왜냐하면은 거기에 하나님의 백성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세상 구원을 위해서 바벨론으로 옮기셨습니다. 그들의 범죄가 세상 구원이 되도록 했습니다. 그들의 범죄가, 이스라엘의 무너짐이 오히려 남은 자들과 이방의 구원이 되도록 하나님은 그들을 이방 땅으로 옮기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열왕기하를 끝맺는 말씀은 그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포로로 잡혀간 두 번째 왕이 여호야긴 왕이었습니다. 그가 바벨론 임금의 옥중에 갇혔는데 바벨론 임금이 그를 옥중에서 해방시켜서 그를 자유하게 했고 자기 상에서 먹도록 했는데 세상의 모든 임금보다 더 높은 지위를 주어서 왕의 앞에서 항상 먹도록 했다. 종신토록 먹게 했다. 그렇게 열왕기하를 끝맺고 있습니다<왕하25:27-30> 비록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지만은 하나님은 그 임금을 옥에서 해방시켰고 바벨론 임금의 상에 앉게 했고 모든 임금보다 높은 자리에 앉게 해서 평생토록 먹도록 했다. 그렇게 해서 그가 열국의 왕들과 함께 그보다 더 존귀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복을 받는 사실을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보면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포로로 잡혀갔던 그들은 왕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 백성들을 계수하셨고 때가 되매 그 아들을 왕으로 보내셨다고 그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왕위에 취임하지 안했지만 그들도 다윗의 이름으로 칭호되도록 열네대로 맞추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다윗왕을 주셨고 그 나라가 무너지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윗 자신이 용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다윗의 후손에게 영원한 왕위를 약속하셨는데 그 왕국은 천하만민이 함께하는 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을 통치했을 때 모든 이방의 권세가 다윗에게 복종함으로 그들도 하나님께 복종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비록 그들이 멸망했지만은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이방 땅에서 자기 자신을 증거토록 했고 바벨론 임금도 이스라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신 것을 고백할 수 있도록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멸망을 당했지만은 하나님은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이 아들, 다윗의 후손 왕은 다윗의 혈통을 따른 왕은 아닙니다. 분명히 다윗의 혈통으로 오시기 때문에 왕족보를 말씀하고 있어도 이 족보 자체가 다윗의 혈통 자체를 말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왕적인 족보를 말하고 있지 혈통 자체를 말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요셉을 통해서 아들을 낳지 아니한 데에서도 분명히 증거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의 족보는 혈통적인 족보이지만 마태복음의 족보는 왕의 족보입니다. 이제 하나님게서 그 아들을 다윗의 후손으로 보내셨습니다. 모너진 다윗의 왕국을 건설할려고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왕국을 건설할겨고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백성의 왕으로 오셨고 자기 백성 중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왕을 거절했습니다. 구약 때 모든 왕들은 하나님 앞에 신실하지를 못했지마는 이 왕은 다윗의 왕국을 건설하는 왕이어서 하나님께서 그 왕들을 통해서 왕국을 건설하고자 했던 그 일을 이 왕은 완성시키셨습니다. 구약에 누가 하나님 앞에 온전히 순종한 왕이 있었습니까? 다윗은 순종했어도 그의 순종도 온전한 순종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 마지막에 아들을 보내셨고 아들의 몸의 죽으심의 순종을 통해서 그 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 구약 백성은 광야를 걸을 때 처음부터 하나님 앞에 온전히 순종치를 못했습니다. 그들을 부르신 부름에 그들은 온전히 응답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게서 그 아들을 보내셨고 이 아들의 순종의 역사에서 하나님은 구원 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를 완성시키셨습니다. 죽음이 지배할 수 없는, 원수가 지배할 수 없는 영원한 왕국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대신해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고 그리고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자기에게 맡겨진 직무를 따라서 십자가에 죽도록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아버지 앞에 버림을 받도록까지 그는 낮아지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의 죽으심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셔서 이제는 예수를 무덤의 문을 열고 모든 이름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이제는 원수의 권세가 무너뜨릴 수 없는 영원한 다윗의 왕국, 하늘에 속한 영원한 왕국을 완성하셨습니다. 이분은 다윗의 후손입니다. 동시에 다윗의 주 하나님이십니다. 이분은 분명히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브라함이 섬겼던 멜기세덱이십니다. 참으로 이분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하나님이신데 친히 사람으로 오셨고 자기 백성과 함께 하셨고 자기 백성이 받아야할 고난을 친히 대신 받으셔서 자기의 순종에서 죽음이 지배할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의 왕조를 하나님은 이 아들을 통해서 완성하셨습니다. 이분이 곧 예수님이시라고 마태는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이스라엘은 그를 버렸지만은 비록 이스라엘은 예수를 저주받은 자로 나무에 달려 죽은 자는 저주받은 것이라. 저주를 받은 자로 그를 버렸지만은 하나님도 그를 버렸지만은 예수의 죽으심은 구약의 완성이어서 구약의 저주의 완성이어서 구약의 모든 시대를 끝내버리셨고 휘장을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버리셔서 하나님과 막혔던 죄의 장벽을 다 찢어버리셨고 영원히 새롭게 산 구원의 길을 열으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 아들을 죽음으로부터 존귀하게 하셔서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권세의 자리에 취임케 하셔서 이제는 천하만민이 복종하는 다윗의 왕조, 우주적인 왕조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니 비록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을 받았어도 이분 안에서만 어두움이 무너뜨릴 수 없는 영원한, 신령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신약의 교회는 이제는 무엇도 두려워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안에서 하나님은 영원히 구원 역사를 완성하셨으니 이분을 복종하는 것이 신약교회의 생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신약 교회가 세워진 당시에도 핍박은 여전합니다. 그것은 로마의 핍박도 핍박이지마는 가장 큰 핍박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믿는 유대인 신자들이 이 일로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실은 예수를 핍박하는 교회는, 예수를 핍박하는 이스라엘은 버리받은 백성이요 예수의 이름으로 핍박을 받은 백성은 그들이 곧 하나니의 백성이요 영원한 생명의 백성이요 죽음을 이긴 신령한 백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를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어두움으로 쫓겨났고 영원히 이를 갈게 될 것이고 예수의 이름 때문에 핍박을 받고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은 결단코 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실 것입니다. 만일에 그들이 이런 고난 중에도 이스라엘이 거절한 예수를 다윗의 후손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우리의 생명의 주님으로 영원한 왕으로 우리가 고백하고 그를 경배하고 무릎을 꿇고 그를 순종하고 이 주님을 주님 오시도록까지 증거할 것 같으면은 교회는 주님 앞에 영원한 생명을 받게 될 것입니다. 구약 때 영광의 빛 가운데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 아브라함의 백성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그리고 다윗의 하나님으로 영광의 성전 중에 함게 하셨던 하나님, 이 하나님이 영원히 부활하신 주님으로 교회에 함께 거하십니다. 구약 때는 가리우고 계신 하나님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구약 때는 죽을 왕을 세우신 하나님께서 죽음을 이기신 영원한 왕을 우리 중에 세우셔서 교회를 통치하십니다. 교회는 주님과 함께하는 신령한 이스라엘이요 영원한 생명의 나라입니다. 교회를 꺾을 세력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이 이 믿음으로 어떤 핍박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이 믿음을 따라서 예수를 증거하고 진실한 주의 백성으로 살고 이 주님을 증거할 것 같으면은 천하만민이 예수께 복종하는 우주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주님의 영광이 가리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만물을 심판하시는 권세로 올 것 같으면은 우리가 그 영광을 보게 될 것이고 우리들도 주님과 함께 그 영광의 보좌에 앉아서 만물을 통치하시는 영광을 누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신실한 믿음을 따라서 비록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거절당하셨고 저주받은 자로 십자가에 죽으셨지만은 이 분이 구약의 모든 저주를 다 감당하시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루셨던 구원역사를 완성하신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의 후손임을 믿고 여러분이 이 분을 순종하는 백성으로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믿음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사람이 생명되신 하나님앞에 범죄해도 하나님은 영원히 신실하신 우리의 생명이 되셔서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복을 주셨고 이제 때가되매 하나님의 아들로 친히 참 사람이 되게하시고 구약 조상들에게 약속했던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출생케하셔서 이제는 무너지지 아니하는 영원한 왕국을 세우시고 구약때는 휘장으로 가리우고 계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영광의 주님으로 우리중에 함께계셔서 주의 상에서 먹고 마시는 새 백성으로 교회를 지으셨음을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언약백성인 이스라엘은 에수를 거절했고 지금도 세상은 예수를 알지를 못합니다. 참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를 귀신의 대장으로 저주했던 것처럼 지금도 세상은 예수를 믿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제 믿음을 허락하셔서 세상에서는 멸시를 받았지만은 하나님앞에서는 영광과 존귀를 받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게하시고 이제는 주 예수를 믿음으로 하늘에 속한 새 백성으로 우리를 지으셔서 주 예수와 함께 영광의 보좌 우편에 앉아있는 권세있는 백성으로 우리를 지으셨음을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도 세상이 주를 거절하고 참으로 교회가 핍박을 받고 있지만은 거룩하신 아버지여!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그렇게 살지말게 해주옵시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하는 생명의 교제가운데서 날마다 주님의 생명의 피와 주님의 생명의 몸으로 사는 신령한 백성으로 살 수 있도록 우리의 믿음을 더욱 온전케 해주옵소서. 세상에는 가리워졌으나 주님은 영광중에 교회에 임하셔서 지금도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의 백성과 함께 먹고 마시는 생명의 주가 되셨사오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이제는 주님과 함께하는 생명의 백성으로서 천하만민을 주 예수께 복종시키는 구원의 증인으로 주님앞에 믿음으로 설 수 있는 저희들이 될수 있도록 더욱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참으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세상에 매여 종이되지 말게해 주시옵고 세상에서 멸시와 천시를 받을지라도 사람앞에서 주 예수를 부인하지 아니하고 주님과 함께하는 믿음의 백성으로 주를 영광스럽게 할 수 있도록 교회를 더욱 온전케 해주옵소서. 주를 믿는 백성들이 이처럼 함께 나아왔사옵고 우리 어린 자녀들이 함께 아버지앞에 섰습니다. 긍휼하심을 베푸셔서 우리로 주 예수앞에 먹고 마시는 생명의 백성으로 세우셨사오니 우리의 믿음을 더욱 밝게하셔서 부활하신 주님의 얼굴에 비취는 하나님의 영광을 뵙게 하시고 주님과 함께하는 생명의 교제가운데서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세상의 권세를 이기는 죄의 권세를 이기는 믿음의 백성으로 주를 따르는 거룩한 백성으로 살게 해주옵소서. 주를 믿는 백성들이 주앞에 감사하고 주앞에 드리는 감사가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일에 쓰인바 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복을 주셨으니 감사를 드립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긴 주님께서 주의 백성들을 풍성히 복주셔서 주님의 부요하심으로 세상을 봉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 나갈수 있도록 더욱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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