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구속사

복음서란 무엇인가?

찬미예수님 2021. 5. 22. 05:22

1 복음서란 무엇인가?

 

1.1. 성경 분류

성경은 여러 장르의 글들이 있다. 구약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율법, 선지서, 성문서 분류할 수 있다. 구약 첫 부분의 5권의 책을 모세 오경 혹은 율법서이다.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서, 열왕기서는 역사서라고 하는데, 이 역사서와 구약 후반부에 있는 대, 소 예언서를 합쳐 선지서라고 한다. 또한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예레미야 애가, 룻기, 에스라, 느혜미야, 역대기는 성문서라고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약도 복음서, 역사서, 서신서, 묵시록으로 분류할 수 있다. 마태,마가, 누가, 요한 복음서와 역사서인 사도행전 그리고 바울과 다른 사람들이 교회에 쓴 서신서, 마지막으로 요한이 교회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지만, 그 내용이 묵시적이기 때문에 묵시문학으로 분류한 요한계시록으로 분류할 수 있다.

 

1.2. 복음서를 어떻게 볼 것인가? / 복음서 기록의 목적

우리가 공부하고자 하는 것은 복음서이다. 복음서란 무엇인가?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신약의 앞 네 권의 책을 복음서라고 한다는 것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복음서는 어떤 책인가? 복음서는 서신도, 역사서도, 묵시록도 아니다. 그것은 독특한 복음서라는 양식(樣式)이다. 이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라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증언을 담은 글로써 예수님에 대한 전기(傳記)나 단순한 역사 서술이 아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 그리고 그분의 말씀 등이 기록되어 있지만, 그것은 단순한 역사적 서술이 아니라 각 복음서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특별한 메시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복음(福音,Gospel)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우리는 성경을 생각할 때, 영감 교리로 배워왔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것이 맞느냐 하는 교리적 논쟁 혹은 진위(眞僞)를 분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여 왔다. 특히,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은 그 내용에 있어서 상당 부분 같기 때문에 학자들은 이 셋을 공관복음(共觀福音,synoptic)이라고 한다. 성경을 자세히 읽는 사람이라면 이 세 개의 복음서를 볼 때, 예수님의 행적을 순서적으로 나열해 보고픈 충동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예수님이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한 각 복음서의 기록이 순서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어떤 것이 먼저인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기도 한다.

이러한 예수님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연구하는 것이 유익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보면,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르신 기사가 누가복음에서는 5장에 나오고 요한복음에서는 1장 후반부에 나오는데 그 내용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요한복음에서는 베드로의 동생인 안드레가 예수님을 먼저 만나고 베드로를 전도하는 것으로 되어있고,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직접 그물을 씻는 베드로의 배에 올라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그물을 던진 베드로가 많은 고기를 잡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말한 후에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다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그렇다면 둘 중에 한 본문은 틀린 것이 아닌가? 베드로가 어떻게 두 번 회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조금만 유념해 본다면 요한복음의 기록이 누가복음의 그것보다 시간상으로 앞선다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발견했다고 해서 성경을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시간 순서를 잘 배열하고, 어떤 것이 올바른가를 - 성경이 둘 다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서 누가복음이나 요한복음에서 그 본문을 기록하면서 기자들이 의도했던 바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본문을 해석하는데는 누가복음이면 누가복음의 전후 문맥과 그 본문에서 중심되는 사상이 어떻게 누가복음 전체와 연관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생애를 시간 배열상으로 다시 구성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받아들이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각 복음서 기자들이 예수님을 증거한대로 받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다. 성경은 역사적 사실만 서술하는 연대기록이 아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해석해서 선포하고 증거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역사적 사실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해석한 해석이 들어있다. 우리는 이 해석은 제거해 버리고 역사적 사실만을 취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해석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역사적 사건만큼 객관적이지 않고 주관적이라는 현대정신에 의해 지배를 받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해석을 벗겨내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다시금 새로운 해석을 시도할 때, 우리는 성경의 규범성을 깨뜨리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에 의해 해석된 본문을 본문 그대로 받지, 우리가 다시 재해석해서 의미를 찾지 않는다. 도리어 그렇게 될 때, 모든 역사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시켜오신, 그리고 지금도 그 역사를 진행시키고 계신 하나님의 목적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네 개의 복음서는 각 복음서 기자가 의도했던 바, 주님에 대한 증언이 들어있는 것이다. 우리는 각 복음서의 본문을 해석하고 그 본문이 다른 복음서와 어떻게 달리 표현되어있으며, 다른 위치에 배열되었는가를 비교해 볼 때 각 복음서 기자가 의도했던 신학적인 의도를 분명하고도 확고히 알 수 있는 것이다.

 

2. 각 복음서의 주제

지금까지 우리는 복음서란 무엇이며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마태복음을 연구하기에 앞서 4복음서가 단순한 다른 복음서에 대한 보충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목적 즉, 신학적인 의도가 있다는 것을 살펴보기 위해 각 복음서의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보자.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앞에서 내려가면서 읽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각 책의 주제를 따라 읽는다면, 진정한 의미를 밝히는데 있어서 도움이 될 것이다. 아니, 우리가 우리의 사견 또는 우리의 경험이나 우리의 현대적 시각으로 성경을 봄으로 발생할 수 있는 성경의 본질적인 의미를 파괴하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성경도 각각의 책의 기록목적이 있다.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각 책의 서론과 결론 즉, 처음부분과 마지막 부분을 보면 대략적인 그 책의 특성 내지 주제를 파악할 수 있다. 물론 그 책의 주제는 복음서라는 전체양식의 주제와 일맥상통해야 하고, 복음서는 또 신약성서 전체의 주제와 연관관계를 맺어야 되며,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구원역사라는 성경의 전체적인 내용과 그 주제가 통해야 한다.

성경이 우리에게 의미를 가지는 것은 올바로 해석했을 때의 일이다. 성경은 만고불변한 기록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해석함으로 누리도록 우리의 기업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 해석이란 것은 실존론적 결단을 요구하는 해석이나 단순한 문자적인 해석이 아니라, 구원 역사적이고 기독론적인 해석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복음서의 주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마태복음: 약속의 성취자로서의 메시야

마가복음: 능력있는 왕

누가복음: 인자, 둘째 아담, 새 인류를 지으시는 분(제사장, 고난받는 자를 돌보시는 분)

요한복음: 창조자, 세상에 임하신 하나님의 아들

 

3. 마태복음의 주제(마태의 관점)

위에서 마태복음서의 주제를 파악했으나 여기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마태복음서의 주제에 대한 학자들의 많은 의견들이 있다. 여기서는 그러한 학자들의 의견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대표적인 견해를 살펴보고 우리가 파악한 주제와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가를 파악하고자 한다.

어떤 학자들은 마태가 그의 복음서를 기록할 때, 교회론적인 관심을 가지고 서술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독특한 표현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교회'라는 용어가 나온다는 것이다.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8: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또 하나의 견해는 앞의 견해와 일맥상통하는데, 그것은 마태가 이방인에게 복음전파할 목적으로 기록했다는 것이다. 이는 마태복음에서의 예수님의 사역의 중심지가 갈릴리라는 견해이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이나 다른 유대지방에 가신 적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역이 갈릴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견해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마태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대조해서 복음이 이방인에게 흘러감을 중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의 두 견해를 종합하면, 매우 그럴싸한 주장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 견해는 몇 가지 사실을 입증해 주지 못하고 있다. 마태복음은 누가복음이 그러한 것처럼 이방인을 대상으로 쓰고 있기보다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초대교회부터 내려온 전승이기도 하지만, 마태복음의 전체적인 흐름에서도 파악하루 수 있는 것이다. 마태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을 대부분 `하늘 나라'로 바꾸어 표현하고 있다. 또한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에 대해 `---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는 전형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01: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02:15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02:23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04: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0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12:21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13:35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21:04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26:56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사실 마태복음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지칭하는 용어들이다. 가장 강조된 예수님의 칭호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 외에 많은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심각한 질문을 해야 한다. `마태의 진정한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마태가 복음서를 기술함으로 증거하려고 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환난을 당한 교회를 위로하기 위한 것도,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 사이의 분장을 잠잠케 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러한 것이 부차적인 목적이 될지는 모르지만, 마태의 주된 관심사는 아니다. 도리어 마태는 예수님이 약속의 성취자로서의 메시야 즉, 그의 말씀과 행동을 통해 하나님 자신을 그의 백성에게 나타내시는 분으로 증거하고자 원했던 것이다.

 

3. 마태복음의 구조

마태복음의 구조를 분석하고자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의 다섯 강화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5-7장 언약백성의 삶(산상수훈)

10장 전도에 대한 강화

13장 천국 강화

18장 교회 강화

23-25 종말 강화

그리고 이 강화들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있다.

Και εγενετο οτε ετελεσεν ο Ιησου (예수께서 --을 마치시니 그때 --이 일어나니라7:28, 11:1, 13:53, 19:1, 26:1)

이 구절은 마태복음이 5구분된다거나, 구약의 모세오경처럼 5권으로 분류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 구절은 도리어 (1) 단순히 다섯 강화의 끝을 알리는 기능을 하는 것 (2) 예수님의 말씀이 신적 계시의 가치를 가진 것 즉, 그가 메시야임을 나타내는데 집중되었고 (3) 마태의 구속사 개념과 연관되어있는 구절이다.

마태복음의 주제와 관련하여 마태복음의 구조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1:1- 4:16 그리스도로서의 예수(예수의 인격<신적 기원>)

4:17-16:20 그리스도로서의 예수의 선포

16:21-28:20 그리스도로서의 예수의 고난, 죽음, 부활

이는 Απο τοτε ηρξατο ο Ιησου (그때로부터 예수께서... 하시더라. 4:17, 16:21)를 근거로 하여 분류한 것이다.

마태복음을 연구하면서 놓쳐서는 안될 점이 마태는 자신의 복음서의 내용을 "왕국의 복음"이라는 표현으로 요약시켰다.(26:13, 24:14; 참고. 4:23, 9:35)는 것이다.

 

마태복음 강해 (2)

1. 마태의 시간관 (시대 구분)

마태는 그의 복음서를 쓸 때, 특별한 시간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대해서도 학자들간의 여러 가지 견해가 논란이 되고 있으나, 대표적으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학설 중 하나가, 마태는 전체적인 구원의 시기를 3 가지로 구분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족장과 선지자의 때, 예수의 때, 교회의 때'라고 말한다. 이를 달리 나누면'메시야 역사, 이스라엘을 부른 시대, 이방인을 부른 시대'로 나누기도 한다. 이 구분은 앞 서 살핀, 마태의 기록 목적 혹은 관심이 교회론 또는 이방인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과 연결된다.

그러나 실제로 마태복음에서 그렇게 표현하고 있느냐에는 의문이 생긴다. 마태가 실재로 구원의 시대를 위와 같이 세 구분했을까? 마태는 실재로는 교회의 시대를 그리스도의 시대와 뚜렷이 구분하고 있지 않다. 도리어 마태는 교회의 시대를 그리스도의 시대에 포함하여 생각하고 있다.

마태복음의 특징 중 하나는 [예언과 성취]라는 도식이다. 마태는 구속사를 두 시대, "이스라엘의 때(구약)""예수의 때"로 구분되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스라엘의 때는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되었고 예수의 때는 에수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의 때를 예수의 지상의 시기와 부활로 높아지신 시기로 나누고 싶어한다. 그러나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는 그의 복음서 시작(1:23)과 끝(28:19-20)애서 예수가 지상에 있을 때, 그리고 높아지신 후에도 그들과 함께 하시는 분으로 인식했다. '예수의 때'는 그의 나심으로부터 그의 다시 오심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예수의 때는 그의 출생부터 그의 재림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마태에 의하면, 교회의 시대는 예수의 때 밑에 놓인다. 그 증거로서 마태는 누가와는 달리 예수의 승천기사를 다루지 않는다는 것과 그리고 누가와 같이 성령에 관한 폭넓은 신학을 발전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제자들과 함께 이 땅에 사셨던 지상의 예수님은 높아지신 분으로서 여전히 교회와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다(13:37-38; 18:20; 28:18-20). 마태는 교회시대가 예수의 시대와 분리되어 있음을 즉, 교회시대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명확히 표현하고 있지않다.

이러한 모든 증거로 보건데, 마태는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세 기간으로 나누지 않고 두 기간 즉, 구약 이스라엘의 때와 예수의 때로 구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마태의 족보 기록

1) 족보 연구를 위한 개관

마태가 기록한 족보의 특성을 알기 위해 마태와 누가복음의 족보를 비교해 보자.

01:0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01:0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01:0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01:0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01:0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01:06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01:07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01:08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01:09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01:10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01:11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를 낳으니라

01:12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01:13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01:14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를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01:15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01: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01:17 그런즉 모든 대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 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 네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 네 대러라

 

03:23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심 세 쯤 되시니라 사람들의 아는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

03:24 그 이상은 맛닷이요 그 이상은 레위요 그 이상은 멜기요 그 이상은 얀나요 그 이상은 요셉이요

03:25 그 이상은 맛다디아요 그 이상은 아모스요 그 이상은 나훔이요 그 이상은 에슬리요 그 이상은 낙개요

03:26 그 이상은 마앗이요 그 이상은 맛다디아요 그 이상은 서머인이요 그 이상은 요섹이요 그 이상은 요다요

03:27 그 이상은 요아난이요 그 이상은 레사요 그 이상은 스룹바벨이요 그 이상은 스알디엘이요 그 이상은 네리요

03:28 그 이상은 멜기요 그 이상은 앗디요 그 이상은 고삼이요 그 이상은 엘마담이요 그 이상은 에르요

03:29 그 이상은 예수요 그 이상은 엘리에서요 그 이상은 요림이요 그 이상은 맛닷이요 그 이상은 레위요

03:30 그 이상은 시므온이요 그 이상은 유다요 그 이상은 요셉이요 그 이상은 요남이요 그 이상은 엘리아김이요

03:31 그 이상은 멜레아요 그 이상은 멘나요 그 이상은 맛다다요 그 이상은 나단이요 그 이상은 다윗이요

03:32 그 이상은 이새요 그 이상은 오벳이요 그 이상은 보아스요 그 이상은 살몬이요 그 이상은 나손이요

03:33 그 이상은 아미나답이요 그 이상은 아니요 그 이상은 헤스론이요 그 이상은 베레스요 그 이상은 유다요

03:34 그 이상은 야곱이요 그 이상은 이삭이요 그 이상은 아브라함이요 그 이상은 데라요 그 이상은 나홀이요

03:35 그 이상은 스룩이요 그 이상은 르우요 그 이상은 벨렉이요 그 이상은 헤버요 그 이상은 살라요

03:36 그 이상은 가이난이요 그 이상은 아박삿이요 그 이상은 셈이요 그 이상은 노아요 그 이상은 레멕이요

03:37 그 이상은 므두셀라요 그 이상은 에녹이요 그 이상은 야렛이요 그 이상은 마할랄렐이요 그 이상은 가이난이요

03:38 그 이상은 에노스요 그 이상은 셋이요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

위의 두 족보를 비교해 보면, 각 족보의 몇몇 특징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의 족보는 '누가 누구를 낳고...'라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반면, 누가복음의 족보는 '그 이상은 .. 이요'라는 형식으로 기록되어있다. 그리고 그 순서에 있어서도 마태복음은 아브라함과 다윗에서 시작하여 예수님께 와서 종결되는 반면, 누가복음은 예수님께로부터 시작하여 아담과 하나님께까지 올라간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마태복음의 족보를 하향식 족보라하고, 누가복음의 그것을 상향식 족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또 다른 특징으로서는 누가복음에서는 족보의 인물들이 모두 남자인데 반해, 마태복음에서는 5명의 여인이 거론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러한 점들에 깊은 감동을 받아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누구를 낳고'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영적인 자녀를 낳아야 한다는 교훈을 또는 적용거리를 찾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마태복음의 4 명의 여인이 모두 이방인이거나 도덕적으로 불순한 여인임을 발견하고 깊은 감동내지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한 번 심각한 질문을 해 보아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마태가 그의 복음서 처음에 족보를 기록한 본래의 의도였을까? 이러한 것들이 족보의 중심 내용이었을까?

우리가 여기까지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매우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누가복음의 족보와 비교해 볼 때, 마태복음의 가장 큰 차이점은 족보를 시대 구분하고 있다는 것이다. 족보를 기술하는 방식 뿐 아니라, 17절에서 명확히 이를 다시 요약, 설명하고 있다. 14라는 숫자에 대해 많은 분분한 의견이 있고, 그 각각의 학설이 여러가지 의미를 부여하지만, 14라는 숫자도 마태복음의 다른 부분에서는 그리 강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14라는 숫자를 의미깊은 말장난으로 풀이하면 큰 감동을 받을 수도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마태가 이 족보를 세 세대로 나누었다는 것이다. 마태복음서의 족보는 '아브라함과 다윗'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로 끝나고 있다. 그리고 족보의 세대를 세개로 구분하고 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다윗부터 바벨론 이거까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벨론 이거부터 에수님까지의 세대 구분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마태의 시간관을 '구약 이스라엘의 때''예수의 때'로 나눌 수 있음을 생각해 보았다. 또한 마태가 복음서를 기록한 이유가 이방인이 교회에 들어온 경로를 설명하여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의 분쟁을 막기 위한 것도, 핍박받는 2세대 기독교인들에게 핍박을 잘 견디라는 권고를 위해서 기록된 것도 아니라는 것 또한 살펴 보았다. 오히려 마태의 관심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약속들을 성취하신 분임을 증거하는 것이 마태의 주된 관심인 것이다.

우리가 마태복음의 족보를 해석함에 있어서 족보 자체만 따로 떼어서 해석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1:11:1-17까지의 족보의 표제이면서, 마태복음 전체의 표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1:1을 통해서 마태복음 전체의 주제를 조명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족보는 다음에 계속이어지는 내용과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이해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긴밀히 연관지어서 생각해야 한다. 마태의 주된 관심이 언약의 성취자로서의 메시야를 증거하는데 있고, 1;1-4:16은 예수님의 인격 즉, 신적 기원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 이는 더욱 명백해 진다.

이러한 주제에 따라, 마태복음 1장에서의 예수님의 신적 기원을 증거하는 구절들을 생각해 보자. 11절에서 17절까지 족보가 기록되고 18절에서 25절까지는 예수님의 탄생기사가 나온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단순히 이어놓은 것이 아니고 마태가 선별하여 배열한 신학적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1절의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世系)'라는 표현은 매우 독특한 표현이다. 세계란 족보를 말하는 것이므로, 이 표현은 창세기가 10개의 족보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람이라면 더욱 의미 심장하게 다가올 것이다.

족보라는 말은 본래 히브리어의 "톨레도트"라는 말을 번역한 것인데, 한글 개역성경에서는 '대략, 계보, 후손 '등으로 번역되어 있다.

 

2) 톨레도트의 의미

창세기의 톨레도트의 의미를 생각해 봅시다. 이 글은 [여수룬]이란 잡지에 실린 글 중에서 톨레도트에 관한 부분만을 발췌한 것이니다.

창세기의 주제는 이스라엘의 구속자가 창조주이시며, 그분의 목표는 천하만민과 만물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안식 곧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는 것입니다.

창세기는 이 주제를 이스라엘에게 알리어 그들로 하여금 창조주의 구원역사를 봉사하게 하실 목적으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목적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창세기는 인류의 고대사와 족장들의 역사를 시간적인 순서를 따라서 역사적인 목적으로 기록한 단순한 역사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대로 이스라엘 중에 강림하사 거하신 그 시점에서 이전의 역사를 회고하고 해석하며 그 역사의 완성이신 가나안의 실로의 왕국을 선취적으로 예언하는 신학적 기록입니다.

역사적인 시간순서로 기록되지 않은 예를 들면, 아브라함은 이삭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15세 되도록 살았으며, 이삭은 요셉이 팔린 뒤로도 살았으나, 창세기의 기록은 족장들의 죽음을 먼저 기록하여 그들의 시대를 마감하고, 이어서 그 후손에게서 계속되는 하나님의 언약역사를 기록합니다. 다른 예는 이스라엘에게 조상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구원역사적 의미를 가진 벧엘과 같은 지명을 이스라엘이 그 땅을 소유하여 그러한 이름으로 부르기 전에 선취적으로 먼저 이름을 붙여 기록한 것입니다. 창세기 2장에서부터 나타나는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칭호도 출애굽의 사건에서 계시하신 이름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속자 여호와는 스스로 존재하시는 창조주이시라는 신학적으로 해석된 기록입니다.

성경이 시간의 역사에서 이루어 나가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일과 말씀을 기록하였어도, 신학적 목적으로 회상하고 예언하여 해석한 편집물이기 때문에, 구원역사인 성경을 해석하는 일은 성경의 사건들을 역사적 시간 순서로 배열하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해석되고 편집된 본문을 기록된 문장대로 해석하므로서 역사를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압니다.

하나님의 해석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실재의 의미이며,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생명입니다. 창조주의 말씀이 그가 지으신 창조세계를 하나님과의 관계로 해석하시며, 그 말씀이 창조세계의 생명입니다. 이 말씀에 대항해서 선악과를 해석한 것이 사망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속자께서 이스라엘과 그 역사를 해석하시는 것이 이스라엘의 구원생명이며, 이 말씀을 대항한 것이 이스라엘의 사망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통해서 이루신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도들을 통해서 해석하신 말씀이 보좌에 계신 그리스도의 생명을 교회가 기업으로 누리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기록된 문장의 구조와 표현양식에 주의하여 본문의 의미를 해석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창세기는 10개의 족보구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창세기는 10개의 족보 (톨레도트 대략, 후예, 약전, 세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0개의 족보는 창조의 대략(2:4), 아담 자손의 계보(5:1), 노아의 사적(6:9),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예(10:1), 셈의 후예(11:10), 데라의 후예(11:27), 이스마엘의 후예(25:12), 이삭의 후예(25:19), 에돔의 대략(36:2), 야곱의 약전(37:2)입니다. 아담 자손의 족보와, 셈의 후예도 10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0은 완성수입니다.

이러한 족보적 기록은 역대기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역대기는 바벨론으로 포로된 후에 언약의 땅으로 돌아온 남은 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기록하였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유다 지파를 선두로하여 가나안에서 기업을 차지하고 번성한 이스라엘의 아들 12족장들의 족보를 기록하여,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신 가나안의 다윗 왕국은 창조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임을 그들에게 확신시키십니다.

가나안 땅의 다윗의 왕조는 창조 때부터 진행되어온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언약하신대로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과 영원히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이스라엘의 죄와 이방의 권세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 거하시며, 하나님의 대리 왕을 다윗의 보좌에 앉히시고 열국으로 복종케 하시는 나라입니다. 세상 만국의 왕으로 고레스를 세우신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고레스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바벨론을 멸하게 하시고,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예루살렘에 보내사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짖도록 명령하심으로 이 사실을 확신시킵니다(대하36:23).

또한 족보는 새 언약의 처음 책인 마태복음의 첫 장을 엽니다.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이십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영원한 상속자이시며, 다윗에게 언약하신 바대로 그 왕좌를 영원케하시는 다윗의 후손 왕이십니다. 아브라함에게서 시작한 역사는 다윗 왕조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이 역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임마누엘로 성취된 것입니다.

족보의 이름은 그 이름에서 시작한 일이 그 후손에게서 어떻게 성취되는 가를 말합니다. 창조의 대략은 창조로 말미암아 사작한 창조물의 역사이며, 아담 자손의 게보는 아담의 자손인 셋에게서 시작한 은혜의 출생을 아담으로 거스러 올라가 기술하며, 데라의 사적은 데라에게서 시작하여 데라의 후손 특히 아브라함에게서 이루신 일을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족보를 명칭하는 인물에게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시고 그 일을 그 후손에게서 완성하십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의 후손인 예수에게서 임마누엘의 역사를 이루시고, 그의 부활에서 죽음을 정복하시고 하나님께서 영원히 함께하시는 영광과 안식으로 역사를 그 목표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중심에서 발산되어 퍼지는 사선의 구조이기 보다는 동심원의 물결구조로 확산하여 우주를 포괄합니다. 중요한 족보들은 이러한 동심 물결의 마루터기에 해당되며, 족보의 시작에서 하나님은 창조적으로 일하시어 다음의 마루터기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에덴에서 시작하신 역사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르러서 하늘의 질서로 완성하십니다.

족보의 내용을 간략히 일별하므로, 창조주께서 그가 창조하신 세계를 죄와 사망의 침입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주로 역사하사 완성에 이르게 하시는 경륜을 배우고 그 경륜에 동행하여 봉사하십시다.

먼저 족보의 전체적인 배열과 특성을 알아 봅시다. 창세기는 인류 고대역사를 기록한 11장까지와, 족장들의 역사를 기록한 12장이하로 크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다섯 씩의 족보가 각각에 위치하여 있습니다. 각 구분의 마지막의 족보인 셈과 야곱의 족보는 택한 백성이 온 땅에 가득하여 번성한 사실을 기록하므로 각 구분들을 완성합니다. 노아의 아들들이 온 땅에 퍼져 방언과 종족과 나라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셈의 족보는 죽었다는 말이 없이 번성이 특징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하나도 잃어버린 바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장자는 바로의 아비가 되고 세상의 구원자가 되었으며,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기업을 얻고 번성하였습니다. 이처럼 각 구분의 끝의 족보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말합니다.

족보의 배열은 역사적 사건을 말하는 족보와, 사람의 출생을 기록한 족보가 교대해서 있습니다. 먼저 있는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족보의 의미를 뒤따르는 출생의 족보에서 성취하는 순서로 구원의 역사를 기술합니다. 예를 들면, 창조의 대략 다음에는 아담 자손의 계보가 있습니다. 창조의 역사가 아담의 후손 노아에게서 완성됩니다 노아의 사적 다음에는 노아의 아들들의 계보가 있습니다. 노아에게서 시작하신 일을 노아의 후손의 번성과 온 땅에 퍼짐에서 완성하십니다.

위의 특징에 포함되어 있으나 유의하여야할 중요한 특징은 각 족보 앞, 곧 앞 족보의 마지막 기록된 역사는 뒤따르는 족보의 역사적 배경이며 뒤에 오는 족보에서 그것이 성취됩니다. 예를 들면, 2:4의 창조의 대략의 앞에 있는 제 7일의 하나님의 안식은 창조의 대략인 2:-4:의 토대이며 거기에서 진행되며 죽은 아벨 대신 주신 셋의 아들 에노스에게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인류를 번성시키시므로 완성됩니다 5장의 아담 자손의 계보 앞에는 죽은 아벨 대신에 여호와께서 셋을 주시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 번성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러한 출생과 승리의 역사가 5장의 아담 자손의 계보에서 진행되며 아담의 10대손 노아에게 완성됩니다 6:1-8의 노아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이 6:9의 노아의 사적에서 성취됩니다. 이 구조는 족보의 뜻 곧 창세기의 본문의 뜻을 이해하는데 중요합니다.

먼저 이러한 큰 윤곽을 잡았으면, 이제 그러한 흐름에서 각각의 족보의 의미를 간략히 살펴봅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성경의 처음 책 창세기 1:1의 말씀은 성경 전체의 서언으로서 역사를 여는 문이며, 창세기 1:-2:36일 동안의 시간질서를 따른 하나님의 창조와 그러한 세계를 기뻐하시는 제 7일의 하나님의 안식은 역사의 모체요 본이며, 이 역사는 성경의 마지막 책인 계시록의 끝에 있는(21:-22:)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계시고 만물을 새롭게하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됩니다.

또한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서언이며 하나님의 6일 동안의 창조사역은 2: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는 말에서 끝납니다. 창조된 세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안식의 세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는 창세기 2:4의 말씀은 1장의 6일 창조를 다른 면에서 다시 개관한 것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창조물의 역사는 이러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6일의 시간 질서를 따라서 만물에 질서와 주권을 주시고 사람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지으시고 제 7일에 안식하셨습니다. 이 창조물의 역사 곧 창조로 시작된 세계의 역사를 2:4이하에서 계시하신 것입니다.

창조의 대략은 하나님의 대리자인 사람을 여호와께서 그의 생기를 호흡하여 산 생명으로 창조하신 것과, 그에게 에덴에 두신 생명의 풍성함으로 공급해 주시고 에덴을 지키며 다스리게 하신 것과, 그일을 함께하는 돕는 베필로 한 몸의 부부제도를 주시고 그와 같은 인류를 번성케 하신 것과, 뱀의 유혹으로 말미암은 하와과 아담의 범죄와, 죄에 대한 심판과 그리고 죄에도 불구하고 아담과 하와와 함께 하시며 죄와 싸우시며 죄의 권세를 파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언약과, 하나님의 은혜의 길을 대항하는 죄의 종이된 인류의 역사와, 그러한 대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시는 승리의 역사를 진행시키사 하나님을 경배하는 인류를 지으시어 창조된 세계의 역사를 그 목표에 이르게 하시는 내용입니다.

여호와께서 안식의 처소로 동방에 에덴을 창설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지으신 사람과 함께하사 온 땅을 에덴화 하는 것이 창조의 목표입니다. 흙으로 지은 생명을 호흡하신 영의 생명으로 온전케하시며, 온 땅을 에덴 중앙의 생명의 나무로 가득하게 하시며 에덴 중앙에서 흐르는 생명수로 가득하게 하시는 것이 역사의 목표입니다. 그때는 생명의 역사가 완성되어 먹으면 죽으리라는 제한이 없을 것입니다.

창조의 중보자이신 하나님의 아들, 곧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요 본체의 형상이신 그리스도께서, 죄와 그 권세인 사망을 멸하시고 보좌에 앉으사 그의 영을 교회에 호흡하사 교회를 새로운 피조물로 지으셨습니다. 교회는 하늘에 속한 생명으로 사는 새 인류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서 사는 교회에서 처음의 창조가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생명의 나라는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어 사랑의 공동체로 완성될 때에 우주적인 영원한 하나님의 안식과 생명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아담 자손의 계보는 바로 그 앞에 있는 내용, 즉 여호와께서 죽은 아벨 대신에 셋을 주시고 그가 에노스를 낳고 에노스 때에 비로서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는 앞 족보의 결미를, 출생의 방식으로 진행시키시며 완성시키는 내용입니다.

아담 자손의 계보는 하나님께서 첫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시고 그를 통해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인류를 출생시키신 생명의 역사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출생의 역사는 범죄한 아담의 기력의 시작인 가인과 그의 후손이 하나님을 대항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창조적 권능과 신실하심을 따라서 그 목표에 이릅니다. 하나님께서 증거하신 제물로 인하여 가인에게 죽임을 당한 아벨 대신에 여호와께서 아담에게 셋을 주시고 셋이 에노스를 낳고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것은 죽음의 권세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인류를 죽음으로부터 지으시는 새 창조의 일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부활의 권능입니다. 인류는 죽은 아벨 대신 주신 셋으로부터 번성하였기 때문에 아담 자손의 계보는 이러하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대항하는 세력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류의 생명을 끊을 수 없습니다. 이 구속의 역사를 여호와께서 어떻게 진행시키시며 그 목표에 이르게 하시는 가를 말하는 것이 아담 자손의 계보입니다.

이 생명의 역사는 모든 사람 위에 군림하는 죄와 사망의 권세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1,000년에 가까운 장수와, 하나님과 동행하는 아담의 7대손 에녹을 죽음을 보지않고 옮기신 것과, 아담의 10대손 노아에게서 죄가 관영한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시고 의가 거하는 새로운 세계를 상속시키므로 하나님의 안식의 세계로 완성됩니다. 물의 심판을 통해서 죄를 제거한 새로운 세계를 지으심으로 죄를 이기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완성하십니다.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요 본체의 형상이신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저주에 이르도록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신 에수의 부활과 승천에서 생명은 영원히 승리하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을 입었습니다.

노아는 아담에게서 시작한 은혜역사의 목표요 역사물결의 마루터기이며, 노아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서 진행시키시는 새로운 시작이며 이 역사는 다음의 족보인 노아의 아들들의 후예에서 그 목표에 도달합니다.

노아의 사적을 시작하기 전에, 이전의 인류의 역사 특히 노아 당시 사람의 죄된 본성과 죄가 하나님의 백성을 함께 육으로 타락시킨 성격과 하나님의 심판 계획을 말씀하신 것이, 노아의 사적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입니다. 노아의 사적은 이러한 세계에서 노아를 통해서 이루신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계시합니다.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은혜를 입히사 그와 동행하셨습니다. 육이 된 세상을 심판하시고 의가 거하는 새로운 세계를 지으시는 일에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노아는 보지 못한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방주를 지음으로 죄로부터 세상을 구원 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여 홍수로 말미암아 죄가 제거된 세상을 상속하는 만물의 머리가 된 것입니다.

물의 깊음으로부터 질서의 세계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40일 동안의 태초의 혼돈과 같은 홍수로 말미암아 옛 세계를 심판하시고, 의가 거하는 새로운 세계를 지으시고, 노아와 함께 한 만물에게 다시는 홍수와 같은 심판이 없는 영원한 언약을 세우시고 하늘의 무지개로 그 증표를 삼으셨습니다. 새로운 창조를 통해서 옛 세계에 하나님의 안식이 우주적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아담에게서 시작한 하나님의 안식의 일이 노아에게서 새로운 창조를 통해서 우주적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이 역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구원위 역사에 동행하사 죽음의 권세에서 일으키신 부활과 승천에서 죄에 대해서 죽고 하나님을 순종하는 하늘에 속한 새 인류로 교회를 지으시므로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옛 세계를 불로 심판하사 의가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지으시고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상속케 하실 때에 궁국적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노아의 아들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예를 기록하기 전에, 홍수 후에 있었던 노아의 아들들의 행적을 기록합니다. 이것이 노아의 아들들의 역사를 특징짓는 기사입니다. 홍수로 새롭게 된 세상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의의 길을 비웃는 함이 있습니다. 함은 의의 조상 노아를 그의 술 취함과 벌거벗음을 인하여 조롱하였습니다. 노아에게서 안식이 성취되었기 때문에 노아의 세 아들들은 하나도 아버지의 기업으로부터 제외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함의 아들 가나안에게서 하나님의 저주가 실행될 것이며,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셈에게서 진행되고, 야벳은 그 장막에서 창대할 것입니다.

노아의 아들들에게서 하나님의 언약이 온세계에 충만히 나타나서, 그들 중 하나도 빠지지 아니하고 그들의 후손이 70명이 되어 온 땅에 퍼졌고, 그들이 여러 나라와 방언과 종족의 머리가 되었습니다. 70인 완전수입니다. 노아에게 속한 자들이 다시는 물의 심판이 없는 세계에 가득하여 열국의 조상이 되므로, 노아에게서 시작한 새 세계의 역사가 완성된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 아들들의 번성과 확장은 온전한 의미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노아를 비웃은 함의 정신이 그들의 시대를 지배하여 그들을 단합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 강림하사 하나님을 대항하는 하나된 힘을 심판하심으로 온 땅에 나라와 종족과 방언으로 가득하게 하였으나, 그들은 언어를 서로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의지에 반하여 하나님께서 그들로 온 땅에 가득하게 하사 온 땅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을 더듬어 찾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상을 섬김에로 전락하였고, 여전히 함의 정신으로 방언과 종족과 나라를 따라서 힘의 원리로 경쟁하고 전쟁합니다.

인류는 아담 안에서 한 혈통이며 또한 한 사람 노아에게 속해 있습니다. 이들 모두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대상이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에 인종을 분정하실 때에 이스라엘의 자손의 수효대로 민족의 경계를 정하셨습니다(32:8, 46:27).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임하시고 그의 성령을 교회에 부으셨을 때에, 열국에서 온 백성이 각기 자기 나라 말로 하나님의 구원의 큰 일을 들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거처가 되고 한 몸이 됨으로 이 역사가 목표에 도달하였습니다.

노아의 아들들의 이름과 그들의 기업을 다 기록한 후에 다시 셈의 족보를 기록한 것은 이제 셈에게서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아들 셈은 마치 아담과 같은 위치에 있습니다. 똑같이 각각 10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셈에게서 시작하신 하나님의 출생의 역사는 죽었다는 말이 없으며, 어린 나이에서 부터 출산하기 시작하여 그 일생을 출산하였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 셈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셈의 계통에서 생명이 번성하고 번성하여 하나님의 생명의 부요함이 나타났습니다. 셈의 계통으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교회는 영원한 생명의 나라를 완성하도록까지 번성할 것입니다.

셈의 족보는 데라에게서 마칩니다.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해서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에서 죽은 데라에게서 여호와께서 구원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으셨습니다. 데라의 가족사항을 자세히 기록한 것은 그의 모든 후손이 가나안으로 이주하기 위해서 갈대아 우르를 떠난 데라의 역사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데라의 가족사항을 기록한 후에 바로 이어서 아브라함의 역사를 기록합니다. 데라의 역사는 특별히 데라의 후손 아브라함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롯과 하란에 머물러 사는 데라의 모든 후손의 역사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설립된 하나님의 나라의 모태는 야곱에게 밧단아람에 사는 데라의 후손입니다. 야곱이 거기서 12아들을 낳음으로 이스라엘의 족장들을 완성하였습니다.

데라의 역사는 그 후손 아브라함의 역사입니다. 이것은 비록 데라가 하란에서 죽었지만, 가나안으로 이주하도록 갈대아 우르에서 데라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그 후손 아브라함에게서 그 일을 어떻게 성취하시는가를 말합니다. 아브라함에게서 가나안 땅을 하나님의 성소로 구별하시고, 그 땅을 아브라함에게 기업으로 주시고, 그를 복의 근원으로 세우사 만민을 복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제사장이요 선지자요 왕이요, 이러한 나라를 상속할 새 인류를 출생시키는 아버지 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본래부터 아이를 낳지 못한 여자입니다. 사라의 몸에서 죽은 자와 방불한 아브라함에게 상속할 씨를 주사 아브라함에게서 시작한 멜기세덱의 나라를 상속케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죽음을 영원히 정복하시며 영원히 자기 백성과 함께하시는 구원역사의 시작입니다.

아브라함의 상속자인 이삭의 모리아 산의 제사와 부활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새 인류의 온전한 헌신이 이루어졌고, 이삭 대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제물의 제사가 약속의 씨인 이삭의 후손 이스라엘의 삶에서 드려지며 그 완전한 헌신을 소망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두라에게서 난 아들들도 아브라함의 것을 가지고 동방으로 갔습니다. 이삭과 이스마엘이 아버지 아브라함을 함께 장사하였습니다.

육체를 따라서 애굽사람 여종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난 이스마엘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씨로 기억하시고 기업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복이 생명의 어머니 사라와 그로부터 약속을 따라서 출생한 상속자 이삭을 조롱하여 아브라함의 장막에서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에게까지 미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할 약속의 씨를 조롱한 육을 따라서 낳은 자에게까지 아브라함의 복이 미쳤습니다.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목표에 이른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마엘의 후예는 이러하니라는 족보의 의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이삭에게서 더욱 진행됩니다. 여기서부터 이삭의 후예는 이러하니라는 족보의 시작입니다. 이삭의 후예는 이삭의 아들들의 역사입니다. 아브라함은 시작하신 아버지요 이삭은 그의 상속자입니다. 이삭의 출생에서 이루신 죽음을 이긴 하나님의 나라가 이삭의 아들들에게서 상속되는 문제입니다. 아브라함의 역사에서는 누가 상속할 아들인가의 문제이며, 이삭에게서는 누가 상속할 장자인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자가 유업을 상속할 장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죽음을 이긴 출생을 통해서 영원히 상속되며, 그 유업을 누릴 자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입니다. 그 나라는 하나님께서 사람과 교제하시는 나라요 사람이 하나님께 헌신하는 나라입니다. 택하신 야곱이 혈육의 힘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의뢰하는 믿음으로 그나라를 상속받음을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심으로 확정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영광을 친족에게 증거하여 그것을 상속할 이삭의 아내로 본토를 떠나 이삭에게 오게하였습니다. 이삭은 야곱을 친족에게로 보냈고 야곱은 종살이 하여 두 아내와 두 여종을 얻었습니다. 이삭의 장자 에서는 가나안의 아버지의 유업으로부터 떠났지만, 야곱의 12아들은 하나도 잃어버린바 되지 아니하고 다 가나안의 아버지의 유업에 참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 하시는 약속이 야곱에게서 육신과 함께하신 것입니다. 야곱의 12 아들이 한 아버지께 속한 자로 생명을 함께 하는 자로 하나가 되고 70명으로 번성하여 애굽에 이르렀습니다. 이스라엘의 장자 요셉은 세상의 구원자였습니다. 야곱은 바로를 축복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죽음에 애굽이 애통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세우시고 세상을 복주시는 하나님의 일이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에게서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완성하실 하나님의 나라는 유다로 말미암아 오시는 평화의 왕 실로에게 만국이 복종하므로 완성될 것입니다. 그 나라가 이르기까지 유다 지파를 왕으로 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12아들이 번성할 것입니다.

이러한 약속을 소망하고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번성하였으며, 장자로 지목된 요셉의 아들들이 그 아버지 슬하에서 번성한 사실을 기록하므로 창세기의 기록이 마무리 됩니다.

이처럼 창세기는 애굽에서 구원하신 자기 백성에게 창조의 주께서 그들의 조상들과 그들의 하나님이 되셔서 이제 이루고자 하시는 일을 알리시어 그들로 하여금 세상을 구속하시는 창조주의 일에 믿음으로 동참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러한 족보 기록의 특징을 토대로 마태복음의 족보를 생각해 보면 이 족보 기록의 목적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성경의 기록목적은 우리에게 모범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큰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놓치면 성경의 권위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족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1절의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입니다. 이에 따라서 족보를 세대구분을 하며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있어서 아브라함과 다윗 그리고 바벨론 시대의 특징을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시작된 시대의 특성을 깨달을 때만 우리의 구원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시대는 하나님 나라의 초석이 놓인 시대입니다. 아브라함시대는 문명적으로 매우 발달한 시대입니다. 노아 홍수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의 후예들이 모두 모여 하나님의 대적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아니라, 니므롯왕국이라 부를 수 있는 인간 정부를 만들어 모두 한 음성으로 하나님을 대적한 시기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악을 제어하기 위해(악이 극악한 상태로 표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언어를 흩으시고 만방에 흩으셨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각기 언어가 통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그들나름대로의 국가를 형성하고 살게 되었습니다. 실제로는 한 혈통으로 지어진 사람들이 이제 각기 다른 민족처럼 살게되었습니다. 이는 영원히 지속되어질 경륜이 아닙니다. 모든 만물의 왕이시며 영원한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실 때까지 그들은 각기 제 길로 가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손에 대한 약속과 땅에 대한 약속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나라는 멜기세댁의 왕국 즉, 의와 평강의 왕국인 것입니다.

아브라함 때 초석이 놓인 하나님의 왕국의 백성들이 가장 번성기에 접어든 것이 다윗 때입니다. 다윗 때는 12지파가 모두 연합하고 거의 모든 가나안 땅을 정복한 시기입니다. 역사에서의 하나님이 함께하신 백성인 이스라엘의 왕국은 단순한 열방의 나라들과는 다른 나라입니다. 약육강식의 지배원리가 적용되는 열방과는 달리 하나님의 자비가 넘치는 나라입니다. 열방의 왕들은 자신들의 왕권신수설을 주장하기 위해 여러가지 신화들도 만들어 내지만, 이스라엘의 왕은 위임된 왕입니다. 그 왕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없이는 왕권을 지속할 수 없는 왕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강해 (3)

우리는 이제까지 마태복음 1장은 크게 두부분 즉, 족보(1-17)와 예수님의 탄생기사(18-25)로 되어 있고 그것이 연관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서의 예수님의 인격 즉,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묘사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봅시다. 예수님이 분명히 메시야임을 계보를 통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으로 비롯된 이스라엘의 전역사와 그로 말미암아 약속되었던 이방인에 대한 약속이 결국 예수 안에서 성취되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다윗의 집에 대한 언약(7:13-14)이 성취이며 다윗의 자손인 그의 아비 요셉(1:20)은 하나님의 명을 받아(1:21) 그의 이름을 정해주고 자신의 자식으로 삼습니다(1:25).

여기서 마태는 이사야서 7:14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7:14의 말씀은 이스라엘 왕과 수리아의 왕이 예루살렘을 침공하였을 때 유다왕 아하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사야는 아하스에게 믿음에 굳게 설 것을 부탁했고, 왕이 이렇게 하려 하지 않자 선지자 이사야는 그에게 여호와께서 표적 하나를 구할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거절하였고 여호와께 도움을 바라는 대신 앗수르의 왕에게 도움을 강구하였습니다. 그때에 이사야는 친히 표적을 주었습니다. 즉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를 가진 미혼모가 바로 비난을 받기 쉽다는 것을 상징하는 그 환난의 때에 이 아들이야 말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뢰하는 자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증거가 되었을 것입니다.

또 하나의 예수님에 대한 묘사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마태복음 강해(4)

마태복음 2장을 생각해보기로 합시다.

2장의 내용은, 1-12절은 동방박사의 방문과 헤롯의 음모, 13-18절은 헤롯의 핍박과 아기 예수의 애굽으로의 도피, 19-23절은 나사렛에 와서 사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마태복음 2장은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있느냐고 묻는 기사로 부터 시작됩니다(2:2). 헤롯은 그 왕을 '그리스도(메시야)'로 칭하고 자기의 왕위를 빼앗을 자로 알아 그를 죽일 음모를 꾸밉니다(2:13). 마태는 다윗 왕에 대한 하난님의 말씀을 인용함으로 왕적 메시야에 대한 이해를 더해줍니다. 그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종말론적 목자인 것입니다(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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