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경 강론은 일정한 틀이 있는데 그 원리를 말씀해 주십시오.
개혁교회 성경해석 원리는 세 가지입니다. 문법적 역사적 해석, 신학적 해석, 믿음의 유추입니다. 문법적 역사적 해석은 본문의 본래 의미입니다. 신학적 해석은 교회를 위한 의미입니다. 믿음의 유추는 해석을 판단하고 조절하는 원리입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구원론에 비추어(유추하여) 해석의 옳고 그름을 판단합니다. 믿음의 유추에 일치하게 하려고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한다(불명료한 구절은 명료한 구절에 의해서 해석한다.)는 원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문법적 역사적 해석, 종말론적 기독론적 해석, 그리고 교회론적 해석을 합니다. 해석 방법이 개혁교회 성경해석 원리와 차이가 있는 것은 성경에 대한 접근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2. 성경해석 원리에 대하여 좀 더 설명해 주십시오.
마태복음의 문법적 해석을 위해서 먼저 본문이 속해 있는 단위와 구조를 분석합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서의 병행 구절과 대조함으로써 본문의 문맥과 주제와 강조점을 파악합니다. 왜냐하면, 구조가 문맥이며, 문맥이 문법적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제는 문맥에 한정하여 설명합니다.
단어의 의미는 문장에서 단어가 차지한 위치에 의해서 한정되고 확정됩니다. 생각을 전하는 문장의 구조는 사회적 합의입니다. 어떤 책도 또 그 책을 구성하고 있는 문단들도 구조가 있습니다. 구조분석이 어려운 과정이어서 통일된 견해가 부족합니다. 그러나 구조분석은 맨 먼저 수행해야 할 절차입니다.
구조분석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은 비유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많은 옷은 계절별로 구분한 상자에 정리하고 꺼내 입습니다. 각각 다른 계절 상자에 있는 같은 종류의 옷은 상자의 구분법에 맞추어 조절하여 입습니다. 또한, 많은 정보를 몇 개 폴더에 구분해서 보관해두고 이용하는 것은 정보를 전달하고 사용하는 효과 있는 방법입니다. 많은 정보를 담은 긴 글은 구조분석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병행 구절을 비교 대조하는 것은 필수적이지 않습니다. 각 책이 완전한 의미를 명료하게 전달하는 단위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책의 병행 구절은 참조사항입니다. 같은 책의 병행 구절도 참조사항입니다. 왜냐하면, 근접문맥이 의미를 더 크게 한정하기 때문입니다.
편집비평의 전제는 배격합니다. 그러나 편집비평가들이 지적한 본문의 차이점은 문맥 차이로 이해하고 활용합니다. 마태복음 강론에서 다른 공관복음서를 대조하는 것은 구조분석의 어려움을 보완하고 문맥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각 복음서의 서로 다름은 각 복음서의 주제의 다름과 상응합니다.
3. 본문에 구약성경 인용이 없을 때에도 구약을 배경으로 하여 해석하시는데 그렇게 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그것은 구원역사적 해석을 하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해석은 문맥적 해석의 확장입니다. 역사적 배경이 문법적 의미를 한정합니다. 역사가 문법적 문맥보다 더 큰 문맥입니다.
신약성경을 해석할 때에는 반드시 구약성경을 전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이 증거하는 옛 언약과 나라를 종말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성하셨음을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을 해석할 때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신약성경의 종말 성취를 말씀을 듣는 그리스도의 교회에 반드시 선포해야 합니다. 종말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하나님 나라와 언약이 신구약 성경을 관통하는 문맥입니다. 종말에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신 그리스도가 전 성경을 해석하는 문맥입니다. 성경은 부분이나 전체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그리스도의 책입니다.
4. 신약성경을 해석할 때에 전제해야 할 구약성경에 대해서 설명해 주십시오.
모세의 율법이 하나님 나라의 출발이며 토대입니다. 시내산 언약은 나라 설립 언약이며, 신명기 언약은 가나안 땅 하나님 나라를 경영하는 언약입니다. 이스라엘 전체 역사는 신명기가 해석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역사를 새로운 단계로 진행하실 때에 모세의 언어와 제도로 말씀하시기 때문에 시내산 언약과 신명기 언약이 중요한 전제입니다.
성경의 언어와 세계관은 하나님 나라를 처음 시작한 모세 율법의 언어와 세계관입니다. 모세 율법 언어는 나라 언약 언어이며 관계적 언어입니다. 모세의 세계관은 종교적이며 성소적입니다. 하늘에서 강림하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나라 언약 율법을 주시고 하늘의 양식대로 지은 성소에 임재하셨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 언어인 헬라어는 언약 밖에 있는 존재론 언어입니다. 이방의 언어로 기록된 신약성경 단어의 이방 기원을 추적할 것이 아니라 모세 언어로 해석되어 선포되어야 합니다. 신약성경은 옛 나라와 언약을 하나님께서 종말에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성하셨다고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을 전제하지 않은 해석은 이방의 종교철학이며 성도의 삶은 이원화됩니다.
5. 역사적 해석에서는 본문을 주신 구체적인 상황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역사실증주의자들의 역사적 해석은 성경 기록 당시의 상황이 해석 배경입니다. 모세에게 속한 구약성경 해석에서는 이점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시 말씀을 듣는 사람에게 신명기적인 회개를 외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서를 해석할 때에는 역사실증주의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복음서 배경의 역사 실증은 신빙성이 떨어지며 견해 통일이 어렵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의 다양한 분파 이해는 필요하지만, 모세 율법이 이스라엘 삶을 설명하는 표준이며 지표입니다. 더욱이 예수께서는 당시 다양한 분파의 잘못된 율법 해석을 교정하려고 오신 모세 해설자가 아니라, 모세의 율법의 나라를 끝내시고 완성하시는 종말 천국을 가져오신 모세의 하나님이십니다. 복음서 해석의 배경은 모세 율법이 설명해야 합니다.
6. 성경해석에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은 항상 서로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에만 그리스도의 교회가 신구약 전 성경을 소유합니다. 신구약 성경을 이렇게 읽을 때에만 우리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다윗을 열국의 왕으로 세우셔서 모든 민족을 복 주신 창조주 하나님을 종말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구속 주 그리스도의 상에서 대면하며 먹고 마시는 종말론적 삶을 살게 됩니다.
7. "메시아 성취 인용"이라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마태복음은 ‘이루려 하심이라’는 정형 어구와 함께 구약 인용이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사도들의 구약인용은 변형이 특징입니다. 이것을 메시아 성취 인용이라고 합니다. 구약 성경 그대로 인용할 때에는 구약 문맥을 변형시켜 증거 합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이전 것을 끝내고 뛰어넘는 성취를 종말에 이루셨다고 증거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사도인 자신들의 언행도 구약성경의 종말론적 성취로 인용하여 증거 합니다. 메시야 성취 인용은 사도들의 종말론적 기독론적 증거의 구약성경 사용 방식입니다.
8. 성경영감과 메시아 성취인용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완전축자영감은 개혁교회의 자산입니다. 완전축자영감은 구약성경의 퍼 나르기가 아닙니다. 구약성경 구절을 퍼 나르기 하면서 ‘말씀하신 그대로’ 신약성경에 이루어졌으니 성경은 완전축자영감이다 말하면 이는 사도들의 종말론적 기독론적 구약성경 사용 방식과 다릅니다. 신구약성경이 완전축자영감인 것은 그리스도께서 옛 언약과 나라를 하늘의 질서인 종말론적 질서로 완성하심으로 확증하셨기 때문입니다. 신구약의 실체의 같음이 영감이 아니라, 종말론적 다름이 완성이며 영감의 보증입니다. 메시아 성취 인용은 사도들의 종말론적 기독론적 증거이며, 말씀을 듣는 교회로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하늘에 속한 종말론적인 성령의 삶을 살게 합니다.
9. 메시아 성취 인용은 종말론적 기독론적 해석과 같은 의미이며 구원역사적 해석의 핵심으로 들립니다.
메시아 성취 인용은 신약성경이 구약성경을 인용하고 해석하는 사도적 방식입니다. 신약성경 기록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종말론적 새로움이 증거되도록 구약의 사건과 예언을 변형시켜 인용합니다. 신약성경의 메시아 성취 인용은 그리스도께서 옛 언약과 나라를 종말론적으로 새롭게 성취하셨다는 사도의 증거방식입니다.
‘종말론적 기독론적 해석’은 개혁신학의 ‘신학적 해석’에 대조됩니다. 개혁신학은 본문의 본래 의미인 역사적 문법적 의미는 교회에 ‘신학적 의미’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학은 보편이며, 보편은 존재의 본질과 실체입니다. 개혁교회는 “구약교회는 그림자인 모세의 율법에서 오실 메시야를 믿어 구원을 받고, 신약교회는 동일한 구원을 오신 메시아를 믿어 실체로 얻는다. 구약은 그림자이며 신약은 실체이다. 구약과 신약은 나타난 양상은 다르나 구원의 본질은 같다. 하나님은 불변하신다. 모든 시대 모든 사람은 동일한 방법 곧 예수의 속죄 공로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개혁교회의 가르침은 이방의 존재론 세계관의 앙양신학이며, 사도들의 종말론적 증거방식이 아닙니다. 신약성경은 종말 성취의 다름을 증거 합니다. 종말론적 해석과 선포는 구약과는 다른 불연속적 성취를 강조합니다. 성경의 구원은 역사적인 하나님 나라 구원이며 역사는 다름과 발전이 특징입니다. 종말론적 구원은 이전 율법에 속한 땅의 나라를 단번에 끝낸 하늘 보좌에 속한 나라 구원입니다.
성경의 하나님 신성은 존재론 보편 신성이 아니라, 이스라엘 하나님 신성이며 옛 나라와 언약을 종말론적으로 완성한 신실하신 하나님 신성입니다. 교회가 누린 구원은 영원한 실체의 구원이 아니라, 여러 부분과 모양으로 진행한 나라를 하늘의 질서로 완성한 종말론적 영원 구원입니다.
성경이 증거한 하나님의 불변하심은 하나님 존재의 불변에 대한 당연한 기술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구원과 종말론적 완성에서 증거된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언약에 신실하심은 언약 본질의 동일함이 아니라, 언약을 목표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언약경륜의 신실하심입니다. 교회는 신구약을 관통하는 보편을 실체로 누리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세우신 나라 언약을 하늘의 질서로 완성하신 신실하신 하나님을 대면합니다. 이전에 여러 부분과 모양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나라는 진동하는 나라이지만, 끝 날에 아들을 통해서 교회에 말씀하신 나라는 변하지 않고 진동하지 않는 하늘나라입니다.
종말론적 기독론적 해석이 구약을 해석하는 신약의 방법입니다. 구약을 상속한 교회는 구원역사 완성의 시점에서 이전 구원역사를 완성의 빛으로 새롭게 온전히 해석하고 누립니다. 하나님 나라 발전은 사선적이 아니고 계단적입니다. 하나님 나라 발전과 완성은 옛 나라와 언약을 개선하고 인양하는 사선이 아니라, 옛것을 끝내고 다시는 옛것으로 돌아가지 않는 계단적 완성입니다.
구약 구절을 변형 인용한 메시아 성취 인용은 종말에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불연속이 특징입니다. 불연속은 종인 모세와 주인인 아들의 대조이며,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대조이며, 육과 영의 대조이며, 땅의 성소와 하늘 성소의 대조이며, 진동하는 땅과 진동치 않는 하늘의 대조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하늘에 속한 종말의 불연속을 강조하지 않으면 복음의 새것은 옛 율법의 개선밖에 되지 못합니다. 교회는 하늘 보좌의 아들에게 복종함으로 다시는 땅에 속한 종으로 살지 않음으로 율법을 완성합니다.
하나님 아들을 대면하며 그 음성을 듣는 것이 교회의 생명이요 영광이며 능력입니다. 성령이 새 사람인 그리스도인의 능력인 것은 인간의 무능을 대신하는 신적 능력이기 때문이 아니라, 아들을 증거하여 대면케 하며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하는 언약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종말론적 기독론적 해석과 선포에서 종말을 사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구약의 하늘 상속자입니다.
10. 종말론적 해석과 기독론적 해석을 항상 같이 사용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구약성경이 말하는 끝날(후일, 종말)의 구원은 범죄 하여 이방에게 포로가 된 이스라엘의 포로를 끝내시고 언약에 신실한 남은 자를 구원하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통치하시는 다윗 왕조를 복원하시는 것입니다. 종말 구원은 1차적으로는 고레스 왕을 통한 구원이며, 후일에 때가 차면 여호와의 기뻐하시는 종의 고난과 순종을 통해 이루실 구원입니다. 이사야서의 고난 받으나 순종하여 영광을 얻은 여호와의 기뻐하시는 종은 다니엘서의 이스라엘 남은 자의 왕이십니다.
그리스도 곧 오실 메시야는 종말에 이스라엘 남은 자를 방문하시는 하나님 이름을 가지신 아들이시며 짐승의 나라가 복종하는 하늘 보좌의 인자이십니다. 때가 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천국을 설립하시어 이방에 포로가 된 나라 백성을 그의 천국으로 부르시고 사탄의 권세로부터 구원하시고 모든 민족을 자신의 나라로 부르시어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하신 모든 의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구약에서는 가나안 땅 다윗 왕조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빼앗기지 않을 왕권을 주시고 다윗의 아들을 하나님 아들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종말의 구원은 다윗 왕조를 회복하는 이며, 이 나라를 예수께서 천국(하나님 나라)이라고 부르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전권을 가지신 아들을 통해 친히 통치하시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의 천국은 모든 시대 모든 의인의 온전케 된 영혼이 모이는 초월세계가 아니라, 아버지의 이름과 권세를 가지신 다윗의 후손이신 왕이 통치하는 역사적 종말의 나라입니다. 그리스도께 주어진 칭호 ‘주’는 그의 신성을 지칭하기보다는 종말 왕이신 그리스도께 주어진 영광의 칭호입니다. 다윗에게 나라를 위탁하신 하늘 보좌의 왕께서 종말에 다윗의 후손이신 그의 아들에게 하늘 왕좌를 상속시키심으로 옛 언약과 나라를 천국으로 완성하셨습니다.
종말과 그리스도는 함께 사용함이 바릅니다. 그리스도는 종말에 오시어 옛 나라와 언약을 종말론적으로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부분이나 전체가 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그리스도의 책입니다. 신약성경이 종말의 그리스도이신 하나님 아들에게 창조주와 보존 주와 구속 주의 영광을 돌리는 것은 그의 존재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말씀을 듣는 교회에 교회의 머리로서 영광을 얻으신 그리스도에 대한 종말론적 증거입니다. 머리의 영광이 그의 몸인 교회의 영광입니다.
11. 기독론적 해석을 좀 더 설명해 주십시오.
기독론은 개혁신학의 속죄 피 기독론과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각자 자기 죄로 죽을 것이라 율법에 명시하셨습니다(신24:16). 속죄의 피 신학처럼 죄인이 의인의 공로를 전가 받아서 죽지 않고 살게 되며 하나님께 무죄자로 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결단코 부인하십니다(겔14:). 톰 라이트의 지적처럼 재판장이 피고에게 자기 의를 전가하여 무죄판결을 하는 법정은 하늘에도 땅에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범죄자의 벌을 상쇄하기 위한 죽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영광은 도덕법을 온전히 지키신 신인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상급이 아닙니다. 모세의 도덕법을 온전히 지킨 의는 휘장 밖의 의입니다.
그리스도 죽으심의 구약배경은 하나님께 범죄 하여 이방의 포로가 된 남은 자의 고난과 영광입니다. 이스라엘 남은 자는 죽기까지 충성하며, 다니엘서가 짐승과 대적하는 남은 자의 고난과 충성과 구원과 영광을 증거 합니다. 남은 자의 선지자인 엘리야와 에스겔과 예례미야도 고난과 충성과 영광을 받습니다. 이사야 후반부의 고난 받고 영광을 얻은 여호와의 기뻐하시는 종은 종말에 이스라엘의 사명을 완수하는 남은 자의 대표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과 영광은 이스라엘을 남은 자의 왕으로서 이스라엘 사명을 완수한 종말 의 고난과 영광입니다. 남은 자인 교회의 머리로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새로운 피조물의 머리이시며 만주의 주님으로 하늘 보좌를 상속하여 만물을 복종시키십니다.
성경의 칭의는 무죄 판결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됨의 칭의입니다. 이스라엘은 의롭고 깨끗하며 이방은 불의하고 더럽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백성이 될 때에 시내산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칭의는 주가 되신 그리스도의 천국 백성이며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는 하나님 아들이 된 의인입니다. 사도들의 증거는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완성이며 칭의입니다.
기독론적 해석은 신론적 해석이며 삼위일체론적 해석입니다. 삼위일체는 정통교회의 존재론적 삼위일체가 아니라 종말론적이고 언약적인 삼위일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종말에 아들에게 성령을 한량없이 주시어 전권으로 아버지를 증거 하게 하셨으며, 아버지께서는 영광을 주신 아들의 이름으로 성령을 보내시어 우리 안에 함께 거하시며 아들을 증거 하게 하십니다. 아들이 없이 증거된 유일신은 아들을 대적하는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신입니다. 아들을 증거 하지 않는 성령은 성령을 모방한 악령입니다. 교회에 부어주신 성령은 인간 기능을 대체하는 신적 능력이 아니라 증거의 영이며 언약의 영이며 신령한 아들로 살게 하는 종말의영입니다. 종말론적 기독론적 해석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세례 된 교회를 창조하며, 영광의 주님 얼굴에서 하나님을 대면하며 권세 있는 신령한 봉사를 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종말에 약속하신 영을 부음 받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새 사람이며 하나님 영광인 새 이스라엘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힌 바 된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개혁신학의 속죄구원은 존재론의 앙양신학입니다. 신인이신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이 완전하시다는 칼케돈 신조는 바른 고백이며 교회를 이단으로부터 지킨 보루이지만, 존재론적 언급입니다. 개혁신학의 칭의론은 칼케돈 신조의 구원론적 해명입니다.
존재론으로 하나님과 사람을 기술하고 계시론을 개진하면 유한한 인간의 신 인식 기능의 한계 때문에 종교다원주의와 W.C.C.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사도들의 증거대로 구약의 이스라엘 하나님 증거를 계승하여 종말론적 기독론적으로 하나님을 증거 하면 종말에 하나님께서 하늘 보좌의 영광을 주시어 만민을 복종하도록 증거 하신 그리스도께 복종하지 않는 모든 종교는 정죄 되며 그리스도께 돌이켜 회개해야 합니다.
12. 강론 말미에 항상 성찬과 연결시키십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성찬에 참여한 교회에 말씀을 적용하는 것이 교회론적 해석입니다. 이것은 개혁신학의 구원서정과 성경의 용도와 대조됩니다. 개혁신학의 철학은 “유한은 무한을 포함할 수 없다.”입니다. 개혁신학은 신성과 인성의 존재 간격에서 출발합니다. 개혁신학은 존재의 보편 본성을 다룹니다. 그러나 성경의 신성과 인성은 초월 신성과 죄 본성인 사람이 아니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언약 신성이며 모세 율법 아래서 불순종한 이스라엘 인성입니다. 언약 밖에 있는 이방의 존재론은 신을 알 수 없는 인간 인식력의 무능과 신의 도덕적 의지를 수행할 수 없는 인간의 무능력을 다룹니다. 그러나 성경의 이스라엘은 강림하신 언약의 하나님을 보았으며 그의 음성을 들었으며 그들 진 중에 거하신 하나님과 함께 삽니다.
개혁신학은 존재론 신학입니다. 개혁신학의 언약과 구원은 보편 개인 구원언약입니다. 개혁신학의 구원론은 구원서정입니다. 구원서정은 개인이 중생하고 믿어 칭의되고 양자되고 성령으로 점진적으로 성화되며 죽으면 영혼이 영화되는 단계적 발전 과정입니다. 말씀의 용도는 각 개인의 구원서정을 촉진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존재의 앙양신학입니다. 개인의 도덕성 함양을 위해서 성경을 매일 묵상하는 것은 바른 방식이 아닙니다.
성경은 성육신 강림 구원을 말합니다. 개혁신학의 구원서정은 성경에서는 종말의 구원을 받은 교회의 다양한 영광의 모습을 풍성히 설명합니다. 성경의 언약은 하나님 나라 언약이며 구원입니다. 예수님을 따른 수많은 무리는 종말에 오신 구원하는 왕을 열광하는 무리이며, 도덕적 자책감으로 눈물과 감사로 따르는 무리가 아닙니다. 성경은 보편 신성에 대한 계시와 개인의 도덕성 함양을 위한 신적 절대 지침이 아니라, 언약의 하나님을 알고 언약백성의 일원으로 서로를 섬며 하나님 영광이 되라는 목회지침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며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도는 그 지체입니다. 하늘 보좌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속한 은사를 각 사람에게 주시고 사도적 은사를 주신 목사를 세워 가르치게 하신 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성도를 하나 되게 하고 온전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하데 이르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지체는 사랑으로 참된 봉사를 하여 몸을 자라게 함으로 스스로를 세웁니다.
성경은 예배공동체에 주신 나라 언약입니다. 이스라엘은 유월절 양과 무교병을 먹는 예배공동체로 구원되었으며 제물을 먹는 자가 제단에 참여한 자입니다. 이스라엘은 유월절 자리에서 자녀들에게 하나님 구원을 설명하고 그들 삶의 지침이 되게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7년마다 연말 초막절에 성전에 모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풍성한 것을 먹으며, 부채를 탕감하고, 모세의 율법을 온 이스라엘에게 읽어서 듣게 하였습니다(신31:9-11).
구약성경에서 약속한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가 구약성경의 소유자요 하늘의 상속자입니다. 신구약 성경은 교회의 책입니다. 신구약 성경은 교회 예배에서 읽어 듣게 하고 강론하고 지키게 해야 합니다.
예배는 언약식사가 중심입니다. 언약식사가 없으면 언약 모임이 아닙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상에서 그의 피와 살을 먹으며 주님 앞에 모여 함께 먹을 날을 소망 가운데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말씀을 듣고 그 이름을 증거 하는 종말론적 예배공동체입니다.
예배복음인 요한복음서에서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안식 후 첫날 연속 두 번 제자들을 방문하시어 예배일을 확정하셨습니다. 성경에서의 두 번은 강조이며 확증입니다. 사도교회는 안식 후 첫날 떡을 떼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성찬이 교회가 주님의 몸이며 모든 성도가 그 지체이며 영광중에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린다는 복음을 확증합니다. 주님께서 그의 몸을 주신 성찬이 교회와 그 지체인 성도의 주님과 한 영 한 몸으로 사는 생명과 하나 됨과 능력과 영광을 증거 합니다. 성찬 상에서도 개인의 도덕성 함양만 깨달은다면 지체의 들음이 아닙니다. 주 안에서 하나가 된 교회가 만유를 복종시키는 주님 경륜의 영광입니다. 성경의 용도는 하나님 나라와 영광을 배우며 경배하며 감사하며 깨어 그리스도를 경외하며 서로 복종하는 삶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은 전투병으로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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