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구속사

바벨론의 정체와 심판 II

찬미예수님 2026. 4. 27. 04:50

제목: 발벨론의 정체와 심판

성경: 요한계시록17-18

 

은혜와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허물과 죄로 죽었고 공중의 권세잡은 자의 종으로 살았든 저희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원하신 사랑을 나타내셔서 우리로 죄에 대해서 죽고 하나님 대해서 살게 하셔서 이제는 하늘에 속한 그 권세와 영광을 봉사할 수 있도록 우리를 그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으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 생명과 권세의 빛 가운데서 날마다 세상을 이기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봉사해야 되는데도 우리들이 그렇게 살지 못하고 먹고 마심을 따라 우리의 삶을 영위했던 모든 어두움들을 주께서 용서하시기 원합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죄인들을 원수들을 먼저 사랑하셔서 아들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을 확증하셨사오매 이제도 우리의 많은 허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 나와사오니 주님의 크신 사랑으로 이제도 우리를 용납하시며 정결케 하심을 믿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게 하나님 품안에 두셨사오니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사랑과 생명의 교제 안에서 우리의 생명이 더욱 새로움을 얻을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옵시고 세상에는 가리워졌으나 우리에게는 비추신바 되신 예수의 부활의 영광의 빛 가운데서 그 권세있는 나라를 봉사하는 존귀한 백성들이 될 수 있도록 주의 교회에 믿음을 더욱 새롭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지난 시간에 17, 18장을 읽었기 때문에 오늘은 그냥 차례대로 강론할 생각입니다. 계시록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주로 두 계통이 있습니다. 하나는 무천년설 계통에서 하는 해석인데, 그 해석은 장차 나타날 그런 일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고 이것이 어떻게 사탄과 교회가 투쟁하는가? 소위 자기들 표현대로 영적인 생활, 어떻게 상징적으로 묘사하는가, 그런데다가 치중해서 풉니다. 그래서 20장에 있는 천년왕국도 역사에서 펼쳐질 구체적인 왕국이 아니라 교회를 그렇게 묘사한 것이고, 지금이 곧 공중의 권세잡은 자와 싸우는 투쟁의 시대가 아니냐? 그렇게 해석하는데서는 소위 종말론 이단이 거의 활동을 못합니다. 언제 주님이 오시느냐? 그런 일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공중에 권세잡은 사탄과의 투쟁에다가 초점을 맞추어서 해석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런 해석은 책방에 가면은 책이 별로 나와 있지를 안해요. 왜냐하면 계시록은 상징적인 그런 표현들이 많이 있어서 해석하기도 그런 면에서는 어려운 데다가 또 싸움에다 초점을 맞추니까 특별히 교회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나 가끔 쓸까 그렇게 많이 교회가 활용을 안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주석들도 보면 무천년설 계통의 주석은 몇 권 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내용이 거의 비슷비슷합니다. 그 다음에 많은 책들은 주로 세대론 계통의 책들이 책방에 많습니다. 우리는 세대론 그러면 묘한 사람인줄로 많이 생각하지만 미국에서는 자유주의와 싸울 때 주로 세대론들이 큰 힘을 발휘했고 우리 나라 초기 선교사들 중에 세대론 선교사들이 꽤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 종말론은 거의 세대론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철원 박사님이 오셔서 무천년을 말하니까, 본래 신앙고백서는 무천년설 토대에 서 있고, 또 이제까지 세대론 종말론을 택한 적이 없어요. 그런 데도 우리 나라에서는 무천년을 말하니까 이단처럼 공격을 받았습니다. 실재로 우리 나라 신학교도 신사참배 때문에 선교사들이 철수하기 전까지는 거의 무천년을 가르쳤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세대론적인 전천년설이 되어가지고 무천년을 말하니까 이단이라고 공격을 하고 또 제일로 그 말이 잘 통한 것이 왜 그러냐 하면은 계시록 20장을 보면은 천년왕국이란 말이 있는데 무천년 하니까 성경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인제 이런 식으로 해가지고 교인들을 많이 선동을 시켰어요. 그런데다가 우리 서철원 교수가 화란에서 자유대학교를 나오셨거든요. 그러니까 자유대학을 나왔으니까 자유주의가 아니냐? 그러니가 한 마디로 아주 무식한 말이거든요. 그런데 그런 말도 교인들에게는 통한단 말입니다. 그래 갖고는 한참 고전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새로 목사된 분들은 거의 무천년을 가르쳐요. 왜냐하면 서박사 이후에 외국에서 들어온 학자들도 대부분이 유럽에서 배워온 분들이 신학교에서 가르치니까 거의 말하자면 무천년을 가르칩니다. 미국이 세대론이 왕성한 것은 본래 미국 교회가 영국에서 피난간 교회들이거든요. 그렇게 해서 종교의 자유를 찾아갔는데 그 당시 성경 해석이 한참 유행했는데 성경을 신학 책으로 읽지 말고 기록된 대로 읽자. 그런 운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나서 영향을 많이 미쳤습니다. 그분들이 보았을 때도 신앙고백서는 철학이지 그것은 성경 해석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소수의 무리였어요. 그런 사람들이 쫓겨나서 미국으로 건너갔기 때문에 미국 교회는 유럽 쪽에서 보았을 때 신학적인 깊이는 얍습니다. 신학적인 깊이만 얇은 것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곳이 전반적으로 학문의 깊이가 얇습니다. 우리는 미국하면은 최고의 학문 기관으로 미국으로 유학가는 것으로 생각하지마는 미국 사람들은 전부 유럽으로 유학을 가요. 더구나 독일 계통으로. 유럽이 보았을 때는 신흥 졸부들이지요. 괜히 귀양갔다가 금강 발견해서 떼부자 되어 가지고 권총 차고 다니는 것이지 별로 뭐 실력을 안알아준다. 그런 말이어요. 그래서 미국 신학은 그런 의미로 정통 신학에 서 있는 것보다는 세대론 신학이 강해요.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전도를 받았기 때문에 그 영향이 대단히 많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전 재건교회에 있을 때 세대론 천년기로 교육을 받았지요. 그런데 들어보니까 그 말이 묘해서 다투다가 결국 쫓겨나서 개혁파로 왔었습니다. 개혁파로 와서 보니까 내가 열심히 싸웠던 세대론적이 종말론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해요. 그래서 제가 놀라버렸어요. 어째서 신학을 한다는 사람들이 세대론을 가르치는가? 분명히 신학 체게는 세대론 신학이 아닌데 종말론은 그렇게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인제 서박사를 만나서 배우고 많은 도움을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다시 또 천년기로 돌아서니까 세대론 천년기가 아니냐, 그래 갖고 의심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돌이키는 것은 성경 해석이 그러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지금 무천년을 말하든지 세대론을 말하든지 종말론을 갖고 그렇게 크게 싸울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 해석이 그러기 때문에 바꾼 것입니다. 그런데 책방에 가면 세대론 책이 많해요. 아마 역사적으로 제일 많이 모인 교회가 오순절 교회이겠는데, 그 조용기 목사는 완전한 세대론입니다. 그 책도 많이 써놓았어요. 다니엘서 계시록 책을 많이 썼습니다. 그리고 부흥사들은 전부 세대론을 가르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책을 읽어보아도 세대론으로 가르친다니까 아주 이상한 사람인갑다 생각하지마는 여러분도 읽어 보면은 그 말이 그럴 듯 하게 들리게 되어 있어요. 그 말이 문자적으로 읽어 나가거든요. 거의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저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또 예수님 몇월 몇일 날 오느냐? 우리는 그런 것이 없으니까 우리는 보수파고 진짜베기다 하고 그렇게 편안하게 계시면 안됩니다. 어디에 속하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자기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이 성경을 분별할 수 있어야 되는 것이지 일 생기면 우리 목사님에게 물어보자. 물론 좋습니다. 그럴려고 목사를 두었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신앙 자립이 안되고 미혹을 벗어날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금은 저를 신임하니까 내 말을 아주 믿어주지마는 학적으로 저보다 유명한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또 경건하고 얌전한 사람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조그만 무리끼리 모아서 우리 해석만 진짜인갑다 하고 있었더니 어디 가서 들어보니까 아이구 유명한 목사님들도 아멘, 할렐루야 했사는데 다른 것을 가르치거든요. 그리고 읽어 보니까 딱 맞거든요. 그러면 속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그런 일들을 잘 깊이 생각하셔야 됩니다. 그런데다가 계시록이 상징적인 표현이 많으니까 그런 의미로는 어렵지마는 실은 그것이 성경을 쉽게 가르치기 위해서 그렇게 써진 것이기 때문에 어렵다고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제가 여러번 말씀을 드렸지마는 시를 누가 썼으면은 뜬 구름 잡는 것 같은 이야기가 많해요. 옛날 시는 우리가 이해하기가 좋습니다마는 요새 시는 문장도 그렇고 묘한 이야기가 많해요. 하도 이 사람이 유명한 시인이라고 하니까 고개를 끄덕끄덕하지 나보고 읽어보라고 하면 옛날 김소월 시가 좋지 오새 시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러면 그 아까운 종이만 벼래놓고 글자 몇 자 써놓고 그러면은 그것이 사람을 해갈리게 하는 것이냐? 그런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자기 사상을 제일로 잘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쓴 것이어요. 그것을 시로 쓰지 않고 산문으로 풀어 써버리면은 그 사람의 감정을 전달할 수가 없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요새 말하는 어려운 시까지라도 실은 여럽게 할려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자기 심사를 가장 효과있게 표현할려는 것이 요새 시에요. 시가 그러면 우리가 그림을 볼까요? 우리 나라 그림은 그래도 길이 있고 수양버들이 있는 그런 그림이 훨씬 좋아요. 그런데 여러분이 비엔나레 가보면 사람 얼굴이 삼각형도 되었다가 원도 되었다가 보고 있으면 굉장히 혼란스러워요. 이것이 그림이냐? 예날 우리 영어 책에 보니까 어떤 사람이 미술학교 회장인데 상받았어요. 나중에 벌받았는데. 이 사람이 팔레스 기림칠하다가 그것을 내놓았더니 심사위원들이 그것을 보고 상을 주어버렸어요. 팔레스트라는 것이 사방데 색깔 칠하는 것이 아니어요.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벌을 받았는데 그만큼 현대 미술이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만큼 현대인들의 복잡한 감정을 여러 사람들의 모습에다 담아내기 때문에 그런 것을 옛날 사람들은 모릅니다. 요새 젊은 사람들 노래 들어보면 정신나가버리겠지요. 그런데 옛날 우리가 부른 노래를 부르면 요새 젊은 사람들은 잠자버려요. 요새 사람들은 그래야 감정 표현이 된다 그런 말입니다. 그러니까 상징적인 표현이라는 것은 우리를 헷깔리게 하고 어렵게 해서 수수께끼처럼 해갖고 누가 실력있는가 보자, 그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장차 나타날 일을 가르치기 위해서 그렇게 써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다가 이 상징 표현법이 그냥 문학적인 기교를 따라서 동원했다면은 그 해석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계시록의 상징법은 문학적인 기교를 동원해서 할려는 것이 아니라 구약의 상징법을 동원해서 장차 나타날 일을 쓰고 있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이것은 어떻게 보면 대단히 쉽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어렵다는 생각을 아에 덥어두시고 그 대신에 여러분이 읽으셔야 되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아까 계시록 해석에 두 부류들을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실은 두 부류들은 자기들 신학 때문에 그렅 것이고 우리가 보았을 때는 그 양자가 섞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중간치기 할려고해서 점수 딸려는 것이 아니라 양쪽이 섞어져 있습니다. 왜그러냐 하면은 항상 성경이 장차 하나님이 어떤 구원을 베푸시겠다. 그러면은 그 구원은 항상 그 시대와 맞는 구원을 설명하는 것이어요. 그런데 계시록을 보면은 반드시 속히 될 일, 후에 될 일이 계시록의 실은 주제에요. 그것이 총 중심인데 보니까 굉장히 의시의시하고 묘한 말들이 많이 써져 있거든요. 그러니까 세대론자들이 장차 나타날 일에다가 초점을 맞추고 나중에 사탄이 어떤 정부를 구성해 갖고 사람을 망하게 할 것인가? 중동 전쟁을 어떻게 될 것인가? 그렇게 연구하는데 그런 것이 먼저는 대단히 권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차 될 일이어요. 지금 될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장차 될 일이라는 것이 앞으로 나타날 미래만 연구하라고 되어 있으면 그것은 우리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 로마 정권 밑에서 핍박을 받고 있는 교회에다가 저 뒤에 나타날 일에 초점을 맞추어서 기록해주고 있는가? 우리가 지금 당장 목말라 죽겠는데 천년 뒤에 아이스크림 주마 그러면 그건 안되지요. 당장 물 한 방울이라고 먹여 주어야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장치 일어날 저 뒤에 일을 기록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로마 교인들에게 아무 효과가 없는 것처럼 들리기가 쉬워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항상 우리 정통파 해석은 장차 나타날 일에 강조를 안두고 그 당시 로마 교회가 당하고 있는 시대적인 배경을 많이 연구해서 이런 배경을 이런 상징적인 언어로 묘사한 것이 아니냐? 이렇게 접근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항상 투쟁 중에 있는 것이 사실인 데다가 당장 그들에게 효과가 있어야 되거든요. 그러니까 그 시대 상황을 연구해서 666은 네로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맞추어 가지고 많이 연구를 한다 그런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런 식으로 그 시대 사람을 위로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면은 뜬 구름을 잡는 이야기냐? 그런 말은 아니라 성경은 항상 시간적으로 그 시대냐가 아니라 구원 역사적으로 그 시댜냐, 구원 역사적으로 같은 시대의 복으로 위로하는 것이어요. 이전의 비유를 들었다시피 가령 결혼을 약속했으면은 그 다음에 결혼식을 향해서 모든 것이 약속되고 조절될 것이어요. 지금은 우리들이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런 구분이 행정적인 조직으로는 구분이 되어 있으면서도 그렇게 학생들에게 실감나게 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평준화 작업 때문에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간다고 해서 머리 싸매고 공부하지 안해요. 그러니까 고등학교라는 것이 그냥 실업계나 조금 어디 가고 어디 가는갚다 하지 별로 생각을 않습니다. 그리고 말하자면 이과하고 문과 가는 갚다 그러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가는데 그것을 큰 일한 것처럼 생각하지 안해요. 그러니까 제가 하는 비유가 아직 어린 사람들에게는 잘 안맞을련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조금만 나이든 사람은 그런 비유가 맞지요. 왜냐하면 중학교 1학년에 들어갔으면은 그에게 약속된 모든 것은 가끔 대학생 이야기를 하지마는 모든 것은 중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교 갈 것인데 거기다 초점을 맞추어서 약속되고 조절되는 것이어요. 그대신 고등학교에 들어갔으면은 어떤 대학교에 들어갈 것인지, 거기다 초점을 맞추고 모든 것이 설명되고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어요. 왜냐하면 그가 학생의 신분이라는 의미는 중학교 1학년이나 3학년은 중학생이라는 의미는 같고, 고등학교 1학년과 3학년은 고등학생이라는 점에서 같아요. 같은 때에 속한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말하는 구원 약속도 단지 그 시대의 그 상황, 그 시간에 로마 황제에게 핍박을 받으니까 너희가 산다. 이런 것만 위로한 것이 아니라 지금 신약 교회가 싸우고 있는 구원 역사적인 상황이 예수께서 여자가 아들을 났지 안해요. 이 아이가 장차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릴 것입니다. 이제 이 어린 양이 보좌로 올라갔어요. 그때부터 어린 양이 오도록까지는 구원 역사적으로는 소위 종말론적인 마지막 시대, 그런 의미로 우리 때나 예수님 재림의 때나 같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로마 정권 밑에서 핍박을 받고 있는 교인들에게 너희들 염려하지 말아라. 그리스도께서 이겼으니 교회도 승리할 것이다. 그러면서 약속하기를 내일 당장 네로 황제가 죽을 것이고 너희들은 살아날 것이다. 쿼어바디스 영화본 것처럼 그러면 좋을 것인데, 그런 이야기를 않고 저 뒷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러면 로마 교인들은 아무 상관이 없느냐? 우리 식으로 하면 아무 상관이 없어요. 우리는 발등에 떨어진 것만 내 구원이거든요. 그러나 구약 신자나 신약의 신자나 당장 발등에 떨어진 구원, 그런 식으로 해석한 사람은 구약 때도 아니어요. 아브라함도 죽어가면서도 하나님께서 약속에 신실함을 따라 후손들에게 땅을 줄 것을 보았지, 내가 내 눈으로 내 땅을 못보는 데 무엇할려고 돈주고 땅 사야. 그런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우리 시대 사람들만 묘하게 아무리 진리여도 나한테 손해나면 상관이 없어요. 만일 우리가 정부에게 손해났으면 학생이 데모하면 박수처도 그 다음 내가 장사하다가 체류탄이 내 가게로 들어오면 욕해버려요. 우리 나라 사람들은 딱 자기 앞에 떨어진 것이 아니면 아무 상관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성경을 보았을 때도 그렇게 어려운 것이어요. 그런데 바울이 자기 시대를 살면서도 예수님 재림을 눈 앞에 두고 산 것은 시간을 혼동해서 그렇게 산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과 함께 살고 있는 세대가 부활의 세대이기 때문에 지금 부활의 능력으로 산 것처럼 부활의 나타남을 기대하고 살기 때문에 바울이 그렇게 교회를 권면하는 것이어요. 말하자면 구원 역사적으로 같은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 말입니다. 구약 같으면 예수님 오시기 전까지는 구원 역사적으로 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어요. 아브라함 때부터 장구한 세월이 지나가지마는 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고 우리는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라 예수의 부활로 말미암아 새로운 통치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 예수님 초림 때부터 재림 때까지는 그런 의미로 같은 상황인 것이어요. 그러니까 로마 황제 밑에서 황제 숭배를 거절한 것 때문에 팹박을 받고 있는 로마 교회에 염려하지 말아라. 장차 될 일을 가르치면서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셨으니 교회도 승리하리라. 하고 저 시간 뒤의 일을 집중적으로 말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들에게 위로가 안되는 뜬구름 잡기가 아니란 말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그러면은 왜 지금 우리에게 관계가 있는가? 구원 역사적으로 같다 그말입니다. 장차 나타날 승리는 역사의 끝에 있지마는 그런 싸움은 계속 진행되는 것이고 그 하나님이 교회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결단코 교회는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신실하게 믿음을 지켜야 되어요. 그런 의미로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될 수 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보수파가 이것을 장차 나타날 상관없이 무슨 천년왕국이 있고 말고, 지금이 마지막 시대인데, 그러니까 이것은 우리의 투쟁을 상징적인 표현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적용하는데 일리가 있지마는 본문 자체는 그것을 직접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장차 나타날 일, 후에 될 일, 거기다 총 묘사하는 것이 강조점이다. 그말입니다. 그런데 인제 세대론자들은 지금 있는 싸움은 상관이 없어요. 장차 나타날 여기다만 초점을 맞추고 야 찬스 봐라. 구름이 떴냐? 구름만 떠도 예수님 오시거든요. 그렇게 보고있으니까 그것을 갖고 많은 사람을 미혹을 하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구원역사적인 해석은 양쪽을 조화시켜서 벗어날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구원 역사적인 마지막 시대, 어린 양과 용과의 투쟁, 다윗과 이방 세계의 투쟁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용과의 투쟁입니다.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고, 이제 그 생명이 역사의 끝에 찬란히 드러나겠지마는 그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는 것이어요. 그런 의미로 계시록이 우리에게 의미를 주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역사의 막에다가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지금 왜 제가 이론을 자꾸 반복하느냐 하면은, 여러분이 이론에 근본 토대를 잘 이해하고 있으면 언제 읽어도 계시록에서 곁길로 안가요. 누구하고 토론을 해도 곁길로 안갑니다. 큰 틀을 먼저 잡고 하니까. 그러나 큰 틀을 모르고 지엽적인 문제를 따라가면 수수께끼 푼 것처럼 그냥 넘어가요. 그건 여러분만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저도 여러번의 시행착오를 하면서 하기 때문에 어떻게 넘어가는지를 제가 알아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 점을 잘 생각하고 귀받아 들으시라.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냥 여러분은 몰라도 예수님께서 승리하셨다고 하면 감동은 될 것이어요. 그렇게 하고 아멘하고 경배해도 여러분이 예배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어요.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을 기뻐할 뿐만 아니라 세상 풍조에 밀려 용동하지 않도록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성장해 나가야 되고 이 세상 어두움에 대항해서 싸워 나가야 돼요. 믿음은 그냥 믿사오니 자기 확신이 아니라 성경을 근거로한 확실한 계시에 근거한 확실한 사고에 토대를 둔 것이지,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은 안믿는데 나는 믿사오니, 그런 자기 설득이 아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렇게 참고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계시록이 어떻게 기록되어 있지는 아셨지요. 그러니까 마지막 때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 그런데 이것이 어떤 방식으로 기록되었느냐 하면은, 특별히 몇 구분이 되어 있다고 했지요. 성령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하는 특별한 선지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그런 변환점들이 있어요. 제일 앞에 한 부분이 있겠지요. 예수님 인자의 환상이 나타났을 때, 그런 부분을 설명했을 때 한 부분이 있고, 그 다음에 또 어디에 있느냐 하면은, 이제 어린 양이 하늘 보좌에서 인을 떼고 통치하신다. 그런 말씀을 시작할 때 한 부분이 있었고, 그 다음 제일 끝에는 하늘에서 예루살렘이 내려오면은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설명할 때 한 부분이 있고, 그리고 우리들이 그 사이에 있는 것이 지금 우리들이 강론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아닙니다. 미안합니다. 지금 어디 부분에 있느냐 하면 17장에서부터 한 부분이 있었지요. 소위 16장까지 해서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그런 것이 있었어요. 그리고 17장에 이제 바벨론의 심판의 비밀을 밝히면서 성령으로 나를 이끌어 광야로 데리고 가매, 하면서 17장3절에 나타나 있지요. 거기서부터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나기까지 한 부분이 있어요. 그러니까 그런 부분들이 묶어져 있다 그말입니다. 지금 강론하고 있는 17,18,19,20장은 말하자면은 한 단위로 묶어져 있는 부분이어요. 그러니까 이 묶어져 있는 부분에는 무엇인가 한 메시지가 있겠지요. 그 앞에 부분은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그렇게 해서 마지막 여섯과 일곱 번째 에다가 최종 심판의 모습들을 담았고 그 앞에다가는 왜 이런 심판들이 와야 하는지 그런 특성들을 설명하는 것이 따라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 드디어 일곱 대접 심판까지 마무리하면서 일곱 대접 심판은 마지막 바벨론 심판이었지요. 그리고 여섯 대접 때는 아마겟돈의 큰 군대들이 모아졌지요. 마지막 전쟁의 모습니다. 그런 것은 이스라엘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구원을 담고 있는 그런 모습입니다. 아마겟돈의 큰 동방의 군대들이 모아들면은 그건 이스라엘의 멸망이고 그리고 바벨론이 멸망하면은 이스라엘이 해방해서 나오는 것이어요. 그런 모습들은 마지막에 담았는데, 17장에서는 내가 큰 음녀 바벨론에 당한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하면서 성령으로 광야로 데리고 갔습니다. 21장10절을 보면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아마 이 크고 높은 산은 시온산으로 묘사될 수 있겠지요. 거기 보니까 하늘에서 예루살렘이 내려오는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이 보이고 있지요. 거기까지가 그러니까 한 단위를 이루고 있다 그런 말입니다. 그러면 거기 있는 내용들이 무슨 내용인가 대충 짚어가야 되겠지요. 17장에는 바벨론, 큰 짐승을 타고 있는 음녀의 모습이 있고, 그 다음 18장에는 바벨론이 아주 굉장히 부요한 성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그 성에 멸망과 만국인의 애통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지요.

그리고나서 이제 19장에 보면은 할렐루야하나님의 큰 통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면서 바벨론의 심판을 말하면서 자기 백성의 구원하는데 누가 구원하느냐 하면 백말을 타신 분이 짐승과 싸워서 그들을 물리치고 큰 구원을 이룹니다. 그리고 나중에 20장에 보면은 마지막 최종 원수인 용도 무저갱에 갇히게 되고 이제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리는 그분의 나라가 천년 동안 계속됩니다. 그리고 그 일이 끝나서 사탄을 잠간 동안 놓아주면은 큰 배교가 있고, 그리고 하늘에 크고 흰 보좌가 내려와서 모든 죽은자를 살려 놓고 심판하는 백보좌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17-20장까지는 말하자면 바벨론의 정체로부터 설명해서 바벨론 멸망으로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최후심판까지의 모습을 한번에 담고 있지요. 그러니까 여기 17-20장까지가 최후심판들에 대한 모습, 최후 때의 일들이 집중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런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17장은 18, 19, 20장을 여는 머리말이어요. 왜 이런 멸망들이 있어야 되는지, 일곱 대접에서 16장 끝에서 바벨론 심판을 말해 놓고, 다시 바벨론의 명망을 말함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정체들을 그리고 그 마지막 심판의 모습들을 집중적으로 담고 있는 것이 17장부터이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17장은 멸망할 세상을 설명하는 머리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17장입니다. 이제 읽으면서 설명하겠습니다.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당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도다 하고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여기서 주제는 큰 음녀의 받을 심판입니다. 그래서 큰 음녀를 설명하는데, 왜 큰 음녀냐 하면은 모든 왕들을 그가 미혹했기 때문에 그랬다. 그런 의미로 큰 음녀고, 이것을 설명하는 구절은 끝에 있겠지요. 앞과 뒤가 거의 일치하니까. 15절에 설명하기를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그렇게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왜 이것이 큰 음녀냐? 천하만국을 미혹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큰 음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천하만국을 미혹할 수 있었느냐 그말이겠지요. 3절에 설명하기를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 빛가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하였더라.여기까지가 지금 음녀를 직접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광야로 데리고 가서 이 여자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광야에 있는 여자의 모습은 12장에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릴 남자 아이를 낳은 여자도 여인이었지요. 그러니까 그렇게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와 대비되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항상 있는 것이어요. 그러면은 하나님의 도성은 예루살렘이고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신부, 하나님의 아내 그렇게 설명하고 있지요. 나중에도 하늘에서 예루살렘이 내려오면 어린양의 신부가 내려온다고 설명하지 안해요. 그런 것처럼 말하자면 짐승도 용도 자기를 구현하는 세상 정부가 있는데 바벨론이어요. 하나님의 도성으로 예루살렘이 있으면은 짐승의 도성으로 바벨이 있는 것인데 그것도 여기서 여린의 모습으로 그렇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대단히 권세가 있고 아름다우니까 미혹하는데 어떤 권세냐 하면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실은 이 여자의 모든 그 아름다움과 그 기원은 붉은 빛 짐승에게 있습니다. 이 짐승은 뒤에서 설명을 합니다. 먼저는 그 여자에게만 초점을 맞추면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스의 몸에 참람된 이름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여자의 모습을 설명하기 전에 짐승부터 먼저 언급하고 있지요. 왜 여자의 모든 아름다움은 짐승으롭터 기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짐승을 먼저 언급하고 있습니다. 설명은 뒤에 더 자세하겠지마는 먼저 언급하고 있고 그 다음에 그 짐승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큰 음녀로서 천하만국을 미혹했는데, 이 여자의 아름다움과 권위는 어디로부터 있는가? 붉은 빛 짐승을 탔다는데 있습니다. 이 붉은 색깔은 무엇과 관계가 있어요.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그렇게 되어 있지요. 그러니까 이 붉은 빛은 왕적인 권위보다는 참람된 이름들,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런 의미로 아마 붉은 빛일 것이어요.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완전히 황후의 모습이지요. 그런데 그 금잔 속에 가증한 물건들과 그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그 잔에는 말하자면은 더루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것으로 만국을 취하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의 머리에 이름이 있는데 비밀입니다. 그 비밀을 설명하기를 큰 바벨론이라. 어떤 의미로 큰 바벨론입니까?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그런 의미로 말하자면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말하자면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해하고 세상은 다 취해버리기 때문에 알 수가 없는 것이어요. 그러기 때문에 교회를 대표하는 사도 요한에게 그것을 펼쳐 보이고 설명해 보이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 여자를 보십시다.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 천사가 가로되 왜 기이히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의 탄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네가 본 짐승은그런데 이 여자의 금잔에는 무엇이 들어있느냐 하면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 성도들은 세상에 속하지 안했다는 의미로 구별된 의미로 성도고, 곧 그들은 예수의 증인들이겠지요. 그 피에 취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붉은 빛 짐승을 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여자를 보고 대단히 놀랐습니다. 이것은 사도가 보고 놀랐기 때문에 경외하는 의미로 놀랐기 때문에 진정으로 놀란 의미는 아니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갖고 또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신부인 것처럼 이 바벨론도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습닉다. 그런데 그 잔은 예수의 증인들의 피가 취했기 때문에 사도로서 대단히 놀랐겠지요. 그래서 그 일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기이히 여기지 말아라.」 「내가 여자와 그 탄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그러면은 우리들은 생각할 때 이 여자를 쭉 설명해야 되겠는데 여기서는 그 여자와 그 탄자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보이리라. 내가 본 짐승은, 하고 짐승을 쭉 설명하고 있어요. 그는 짐승을 탔기 때문에 짐승의 붉은 빛이어요. 그러니까 그 여자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치장하고 있어도 그 잔에는 예수의 증인들의 피가 가득차 있는 것이어요. 그 아름다움 때문에 열국을 미혹해서 열국도 그들처럼 그렇게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을 핍박하고 취하도록 했다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자를 설명한다고 해놓고는 그 짐승을 설명해요. 이 앞에도 그 여자를 보이리라 하면서 그 여자가 찬바 짐승부터 설명을 했는데 여기서 다시 그 짐승을 설명하는 이유가 그런 것입니다. 8절이지요. 내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이 짐승의 특징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여기서는 뿔이 많냐 어쩌냐 그런 문제를 말하지 않고 그가 존재하는 방식을 말하고 있지요. 8절에서는 전에는 있으나 시방은 없다.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올 것이다. 또 뒤에 설명하기를 전에 있었다가 시방은 없으나 장차 나타날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그렇게 되어 있지요. 여기서 기이히 여기는 것은 경배하는 의미로 기히 여기겠지요. 그러니까 여기서는 경배를 받을만큼 놀랍고 기이해요. 예루살렘이 성도들의 찬탄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이 바벨론도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 정체를 설명하고 있는 것인데 이 비밀을 모르는 사람들은 다 그 잔을 마시고 취하게 될 것이어요. 그런데 이것은 무엇 때문에 그런 권위가 있는가? 왜 참람된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이름들이 가득한가? 전에는 있었으나 시방은 없으나 장차 나올자라. 어디로부터 나옵니까? 무저갱으로부터. 그것이 말하자면 이 짐승이 가지고 있는 권위에요. 이런 표현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묘사와 같지요. 그리스도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이, 항상 계시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 짐승은 시방은 없다고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나 장차 나올 자에요. 그러면 시방은 전혀 없느냐?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더 설명이 되겠지요. 어떠튼 여기서 짐승을 설명할 때는 말하자면 짐승의 나타남, 그가 이전에는 있었다. 지금은 없다. 장차 나타날 것이다. 그의 나타날 시간에다가 강조를 두고 있는 것이 이 짐승을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그것 때문에 기이히 여기고 기이히 여깁니다. 지혜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간 동안 계속하리라.그런데 이 짐승은 지금은 없습니다. 전에는 있었습니다.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올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없으면 무슨 필요가 있겠어요. 그런데 이것은 그리스도를 모방해서 그렇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고 지금은 없지마는 그의 대리자들이 있는 것이지요. 그는 장차 무저갱에서 올라올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대리자들을 통해서 하는데 그것이 곧 지혜다. 지혜있는 뜻이 여기 있는데, 그 짐승은 지금은 없지마는 여러분들이 지혜로워야 되겠다. 그 짐승으로부터 권위를 받고 있는 왕들이 있어요. 그걸 설명합니다. 어떻게 있느냐 하면은,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 인제 일곱 산이라는 말을 세대론자들은 로마의 지형으로 설명합니다. 거기 일곱 구릉이 있지 않냐? 로마를 안가보아서 모르겠어요. 그런데 구릉도 세기 나름이겠지요. 무등산도 봉우리가 하나 뿐인 것 같악도 세면 무지하게 많해요. 그러니까 그건 알 수가 없어요. 그런데 뒤에 설명하기를 산이라고 해 놓고 일곱 왕이라고 했기 때문에 이것은 지형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지요. 뒤에서 산과 왕을 같이 설명했지 안해요. 구약에서 항상 요동치 않은 국가의 권세를 산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방의 권세는 큰 산이고, 종말이 되면은 그 큰 산들이 낮아지고 시온산이 높아질 것이어요. 그렇게 산들로 묘사하는 것은 왕들의 권세를 묫하는 방식이 되겠습니다. 여기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니 이르면 반드시 잠간 동안 계속하리라.그러니까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잠깐 동안 계속하리라 하니까, 아직 이르지 아니한 것이 무저갱으로부터 나온 짐승 같지요. 그런데 문제는 짐승을 장차 나타날 자로 말하면서 이 여자는 항상 짐승을 타고 있어요. 이 짐승은 머리가 있는 것이어요. 그러나 짐승은 그리스도의 항상 계심과 재림과 맞붙여 설명하고 있지마는 이 말하자면은 이 어린 양의 신부인 교회가 땅에 있는 것처럼 짐승의 도성인 바벨론도 세상에 있는 것이어요. 그런데 일곱 머리가 있는데 일곱 산 곧 왕인데, 다섯은 망했다. 지나갔다 그말입니다. 하나는 있고 아직 하나는 있지 아니하였다. 그러니까 여기서 일곱 머리를 설명할 때 나타난 순서에다 강조하고 있지요. 다섯은 있었습니다. 망했습니다. 지금 하나는 있습니다. 앞으로 하나가 올 것입니다. 짐승으로부터 권세를 받아 잠깐 동안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타난 순서에다가 강조를 두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시간에다 초점을 맞추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런 동일한 기원을 여러분이 계시록 13장에서 보면은 우리가 잘 아는 666 나온 장이 있지요. 그 말은 다 알겠지요. 그건 누구든지 666은 계시록 13장에 있어요. 거기 보면은 바다에서 나온 짐승, 땅에서 나온 짐승이 있는데 땅에서 나온 짐승이 이와 비슷하게 생겼어요. 물론 표범, 사자, 곰 하는 것은 여기는 없지마는 거기서는 13장에서는 짐승의 권세를 강조합니다. 용이 보좌를 그 짐승에게 주었다. 짐승의 머리 하나가 죽게 된 것 같다가 살아났다. 이런 짐승 같은 권세가 누구에게 있느냐? 모든 사람은 그에게 경배해라. 그 권세에다가 강조를 두고 있어서 머리 입고, 열 뿔, 면류관이 있고, 그 권세를 강조해요. 특별히 그 권세도 머리 하나가 죽었다가 살아난 것 때문에 권세가 있어요. 예수의 죽음과 부활과 비슷하지요.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권세에다가 강조를 둔 것이 아니라 머리들의 나타난 순서에다가 강조를 두고 있지요. 이 짐승도 설명하기를 전에는 있었습니다. 지금은 없습니다. 장차 나올 것입니다. 이 말을 두 번 반복했고 머리를 설명하기를 다섯 머리는 있었고 이제 망했고, 한 머리는 있고, 또 한 머리는 장차 올 것입니다. 아직은 안왔지마는. 그러니까 머리 일곱을 한꺼번에 있는 권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들의 나타남에다가 설명하고 있지요.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간 동안 계속하리라.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저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여기 묘한 말이 있습니다. 머리가 일곱이면 일곱만 있으면 되는데 다섯은 망했고 하나는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앞으로 올 것인데 오면은 반드시 나라를 얻을 것이고 반디시 잠깐 동안 그렇게 계속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일곱 말했으면 되어요. 그런데 설명하기를 전에 있었다가 시방은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지요. 그런데 일곱 중에 속한 자다. 그러면 이런 계산법이 어디 있어요. 일곱 중에 속하면 일곱이지 일곱 중에 속한다고 해놓고 여덟이니 하면은 말이 안맞지 안해요. 그러니까 여기서는 나타난 일곱에다 강조를 두면서도 여덟째는 전에는 있었지만 시방은 없어진 짐승, 그 짐승이 나타날 것인데, 그 짐승이 여덟째 왕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런 이야기지요. 그런데 성격은 무엇과 같습니까? 지금 일곱 머리가 있지 안해요. 그 일곱 머리와 같은 성격인데 누구로 표현합니까? 머리로 표현하지 않고 짐승 자체로 표현하고 있지요. 그렇게 나타날 것이다. 여기서는 전부 나타날 순서에다 강조를 두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싸움이 종말의 싸움에 극대화 될 것이거든요. 그런데 다섯은 망했으면은 어떤 왕이 망했는지, 아마 세대론자들에게 연구하라면 네로 당시에 몇 왕이 기독교를 핍박했는데 그중에 몇 명이 객사를 했는지 아마 이런 것을 연구하고 지금은 네로가 있지마는 곧 없어질 것이고 그 다음 네로 다음에 더 고약한 왕이 와서 더 큰 핍박을 했다. 우리는 네로 이름 밖에 모르니까 네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거기다 이름을 복잡하게 하면 더 복잡해지지요. 우리는 영화를 보아서 네로 이름은 아니까. 그런데 네로의 핍박이 제일 극심한 핍박은 아니라고 역사가들은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는 하옇튼 영화를 보아서 네로를 아니까 그쯤 생각하면 되어요. 요새 나이든 분들은 왕건을 보아도 양질이 어떻고 기원이 어떻고 복잡하지요. 그냥 적군 우군 둘이만 싸우면 좋은데 거기 보면 복잡하지요. 복잡하면 안되니까 그쯤 생각하자 그말입니다. 그렇게 세대론자들은 연구를 할 것이어요. 그런데 성경은 그걸 직접 지시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로마 교회가 핍박을 받고 있는 그 당시를 상징화시켜서, ? 직접 대놓고 네로 왕은 마귀다. 그러면 죽으니까. 그것을 상징화시켜서 썼다고 해석할 이유가 없다 그말입니다. 성경은 그 시대 사람들을 그 시대만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싸운 싸움이 그들만 싸운 것이 아니라 교회는 마지막 시대에 그 싸움을 싸워서 승리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시대 상황을 상징적으로 묘사해서 자기들 끼리 비밀문서로 돌려보게 할려고 그렇게 기록한 필요가 없다 그런 말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기록하지도 안해요. 그러니까 그 해석은 안맞을 것이어요. 그러면 어떤 의미로 다섯은 망했고, 하나는 있고 장차 올 것인가? 지금 하나 있는 것은 분명히 로마 정권일 것입니다. 교회가 시방 핍박을 받고 있으니까. 그러면 다섯은 망했다. 로마 정권 이전의 다섯, 이방의 권세들을 총괄적으로 이야기하지 로마의 몇 왕들만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어요. 그러면 이 다섯 왕이 누군지, 역사가들에게 해석하라고 하면 이런 저런 해석을 하겠지요. 아마 가장 보편적인 해석은 앗수르 때부터 이스라엘이 망했어요. 물론 남유다가 망한 것은 바벨론이지마는 그러나 앗수르 때부터 멸망의 시작이어요. 열 지파가 망했으니까. 그러니까 앗수르부터 세면은 앗수르, 바벨론, 메데 파사는 한 나라로 세거든요. 그 다음에 헬라. 로마 그러면 다섯인가? 그러면 안맞아버리지요. 다섯은 망했고. 안맞는다. 그러면 인제 어떻게 셀까요? 애굽부터 셀까요? 그런데 애굽은 이방의 권세로 막 계산하지 않거든요. 그러니 알 수가 없지요. 그런데 무엇은 알 수 있습니까? 지금 하나는 있다. 하나가 올 것이다. 그 다음 또 여덟째가 올 것인데 일곱의 성격이 거기서 극대화 된다. 짐승이 나타나니까. 이렇게 설명되어 있지 안해요. 그러니가 앞에 다섯은 망한 것은 무엇인가 몰라도 지금 있고 장차 올 것, 다음에 큰 짐승의 권세가 여덟째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것만큼은 분명히 알 수가 있지 안해요. 왜냐하면 지금 이 교회에 주는 것은 그들이 지금 이렇게 싸우고 있는 싸움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거기다 강조를 둘 것인지, 그전에 몇 나라가 망했는지, 그런 것을 지금 설명하려고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뒤에 나타날 것들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가장 자세히 설명한 것은 마지막 여덟 번째 나타날 왕이어요. 전에 있다가 시방은 없어진 짐승, 이 짐승은 장차 여덟째 왕으로 나타날 것이어요. 그런데 여덟째 왕 이 사람은 일곱에서 그 정체를 드러냈던 것이어요. 그런데 드디어 여덟째로 나타날 것이어요. 그러니까 여덟째가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 나라를 건설한 것처럼 짐승의 나라가 건설될 것처럼 그렇게 묘사하고 있지 안해요. 아직 짐승의 나라가 오지는 안했어도 비밀이 무엇입니까? 이런 머리들은 전부 이 짐승에서 나온 머리들이어요. 성격이 같다 그말이어요. 네가 보던 열 뿔은 영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그런데 이 앞 13장에서는 열 뿔과 일곱 머리를 한꺼번에 면류관 쓴 권세로 이야기했는데 여기서는 열 뿔의 권세는 어디서 드러납니까? 마지막 여덟 번째 짐승에서 드러날 것으로 설명하고 있지요. 지금은 아니고. 그러니까 여덟 번째에서 그 권세가 극대화된다는 말이지요. 내가 보든 열 뿔은 열 왕인데 아직 나라를 얻지 못했다. 그런데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오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를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여기서 어린 양과 투쟁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지요. 마지막 투쟁이지요. 그러니까 이 어린 양의 투쟁은 어린 양이 재림하시면 그가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리거든요. 그때 이런 큰 짐승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이 말하자면 지금 교회가 지혜로운 것입니다. 아무리 로마 정권이 로마의 평화, 로마 밑에 모든 인류의 생존이 걸려있습니다. 로마가 구원입니다. 그런다 할지라도 그것은 성도의 피에 취한 미친 정권이어요. 그러니 잘 보아라. 아무리 그들이 그런 모습을 가진다 할지라도 그것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것이고 장차 일곱 번깨까지 그런 나라가 계속되고 마지막 여덟 번째는 일곱의 모든 권세를 극대화시키는 열 왕이 그 모든 권세를 그에게 주는 그런 나라를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 이야기지요. 그때 어린 양과 싸우겠지마는 어린 양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십니다. 그는 죽은자 가운데서 일어나셔서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시기 때문에 그의 권세를 당할 아무런 세력이 없습니다. 그분이 이긴데 그분만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군대가 이깁니다. 그분의 군대는 누굽니까? 빼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택하심을 입고,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이런 것도 항상 성도란 개념이지요. 자기 백성으로 부르셨다. 빼내셨다 그런 말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어떻게 이깁니까? 진실한 자들은 곧 이기리로다. 그들의 믿음이 이기는 것이어요. 예수님께서 신실한 증인으로 하나님을 시인함으로 죽음의 권세를 이겼던 것처럼 참으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 죽은자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를 믿는 자들, 빼내심을 입고 부르심을 입어서 그를 믿는 자들, 그리고 신실히 그를 믿는 자들, 그들의 믿음의 고백을 통해서 이 마지막 권세를 이길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바벨론은 15절에 설명이 되었지요. 내가 본바 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것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저희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저희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니라. 또 네가 본바 여자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다시 바벨론 성을 설명합니다. 그런데 여기 보면 묘한 말이 이 여자가 짐승으로부터 영광과 권세를 받았어요. 그런데 여기 보니까 이 짐승이 어린 양과 싸웁니다. 어린 양이 이깁니다. 그 다음 뒤에다가 다시 바벨론을 설명하고 있지 안해요. 마지막 어린 양과의 싸움을 앞에 말해 놓고 다시 돌아와서 바벨론을 설명하는데, 15절 바벨론은 땅의 열국들 방언들을 다스립니다. 제일 끝에 18절에 설명하기를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설명했지요? 그런데 이 바벨론은 어떻게 망하느냐? 결국 짐승과 그 뿔에 의해서 망할 것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 열 뿔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는데 모든 권세를 짐승에게 돌려요. 그런데 이 열 뿔과 짐승이 이 여자를 아름다운 옷을 벌거벗기고 살을 먹고 찢을 것이다. 마치 이스라엘의 멸망 배경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음녀처럼 치장했어도. 그리고 모든 열국을 사모했어요. 열국이 달려들어 이스라엘의 아름다움을 벌거벗겨버렸어요. 그런 이야기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은, 세상의 모든 정부들은 아무리 찬란한 문화를 일으켜도 그 다음 강력한 정부가 오면은 엎고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지 안해요. 그러니까 세상이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데는 한 마음이어도 그들 끼리끼리 싸우고 있는 데는, 말하자면 그 세력을 극대화시키는 데는 그 투쟁이 멈추는 법이 없는 법이어요. 그러니까 지금은 짐승이 바벨론을 통해서 그 아름다움으로 사람을 미혹하지마는 나중에 짐승이 자기 나라를 드러냈을 때는 이제는 그런 방식이 필요 없이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친히 통치했던 것처럼 짐승이 친히 통치하는 그런 권세있는 나라가 나타나면은 그를 의지해서 사는 세상 모든 영광들은 밟힐 것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항상 세상의 권세는 그들이 의뢰하는 것에 망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방식이어요. 그렇게 해서 짐승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바벨론도 그 모든 영광을 빼앗길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여기서 그 멸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느 때는 하나님이 직접 심판하시고, 어느 때는 악은 악에게 망하게 해라. 그런 방법이 서로 상충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이스라엘을 바벨론에 버리셨지마는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사모했던 이방 권세의 종이 되어서 그 모든 영광을 빼앗겼던 것이어요.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의지하는 모든 것은 그들의 심판이 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방식이어요. 여기서는 그런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머리 말 17장에 설명한 말들이 최후심판까지 더 펼쳐 보이겠지요? 그래서 18장에 바벨론의 멸망을 말하고 있고, 그리고 인제 짐승과 그 거짓 선지자의 멸망을 말하고 있고 마지막 용의 멸망을 말하고 마지막 최후심판을 말하면서 이 세상의 멸망과 하나님의 승리를 완벽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한 단위를 이루고 있어요. 이 부분이 어렵습니다. 그 다음으로 넘어가면은 천년왕국은 굉장한 논쟁거리로 어려웠지마는 우리에게는 그렇게 어려운 논쟁은 아니었기 때문에 쉽게 넘어갈 수 있고 여기까지가 마지막 그 멸망을 한거번에 묶어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대단히 어려운 장면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내를 가지고 겸손하게 멋있는 아이디어를 개발할 것이 아니라 구약을 토대로 하고 읽으면은 읽을 수 있는 것이고 그리고 확실하게 우리가 답을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부활하신 주님의 백성으로 빼내심을 입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백성으로 배내심을 입고 열국에 대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봉사했던 것처럼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빼내심을 입고 나라와 제사장이 되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친히 눈으로 뵙고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역사를 경영하도록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싸우고 있는 대상들은 물론 계시록은 로마 국가였지마는 지금도 세상의 왕들은 부활하신 예수께 무릎을 꿇지를 않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안의 평화, 하나님의 평화, 하나님을 믿는 것만 생명이요 평강이라고 그렇게 말한 정권은 없습니다. 그런 정권이 들어서면 그냥 떨어져요. 그래서 카터가 제일로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재선하지 못한 것이어요. 그가 인권 운동가로는 다시 명성을 날리고 있지마는 그가 미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되어 갖고는 미국에 많은 손해를 주었어요. 그전에는 힘을 가지고 아시아를 지배했거든요. 독재정권이어도 자기들에게 유익하면은 전부 지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반미 운동이 계속 일어나지 안해요. 카터 대통령 때는 인권 정치를 했어요. 아무리 그 나라를 장악하고 있어도 인권이 없으면 그 나라 왕이나 대통령을 만나지 안했어요. 그러니까 우리 나라도 반발 못하겠어요? 소련하고 친해버린다. 중공하고 친해버린다고 하면 안되지요. 이런식 저런 식으로 해갖고 미국이 자꾸 손해를 보니까 미국 국민들은 말로는 자기들이 세계 경찰국가여도 미국이 손해나는 것은 그것은 절대로 평화도 아니어요. 그러니까 카텨 대통령이 재선하지 못하고 떨어진 것이지요. 그런데 자기 정치 철학을 이제 야인으로 봉사하니까 그는 세계 운제 해결사로 아주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어요. 어떠튼 세계 정권은 그리스도 안의 평화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죽은자 가운데 부활도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원수를 사랑해서 몸을 주는 사랑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세상 힘의 원리에 비추어서 어리석은 이야기에요. 그러니까 우리 여자 성도님들도 그렇지 안해요. 남편에게 잘 참다가 에라, 내가 믿으니까 참지 나라고 성질 없는지 아냐? 그러고 한번 소리 지르면 남편이 수그러들지요. , 효과가 있구나. 부부끼리도 그런 판인데 세상이 그런 일이 없어요. 지금 경상도를 보십시오. 지역 편중을 강력히 부르짖는 사람들이 경상도 사람들이어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그럼 그런 지역 편중이 없는 것은 영원한 국가의 질서인데도 지금은 갑자기 애국투사들이 되어 가지고 야단들이어요. 그런데 만일에 지금 우리 호남 사람들이 역편중이다 해갖고 야단들이지 안해요. 우리가 권리도 못찾아 먹는다. 만일에 경상도 사람들이 권력을 잡아가지고 민족을 하나되게 할려고 경상도 사람 안쓰면은 우리와 똑같은 말이 나오겠지요. 그러니까 세상에는 아담 때부터 하나님이라도 자기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하면은 성질나버려요.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어야 하는 것이 세상의 정신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빼놓고는 세상에 참된 평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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