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구속사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찬미예수님 2025. 11. 9. 09:30

제목: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성경: 요한계시록1:4-8

 

요한계시록 1장을 보십시다. 1장8절까지 일고 4-8절까지의 말씀을 강론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강론했던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들, 또 빌립보서, 이런 서신들은 물론 우리가 해석을 잘못한 것은 많이 있습니다마는 그래도 요한계시록만큼 그렇게 많은 잘못 해석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이런 묵시적인 언어들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저런 많은 해석들이 있고 특별히 우리 나라에는 이런 계시록을 따라서 종말론 이단들이 많은데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항상 있었던 그런 일들입니다. 이 계시록은 그런 묵시적인 언어들로 되어 있지마는 그런 것은 우리에게 진리를 감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리를 가장 잘 드러내는 방법을 택한 것이기 때문에 바른 방법만 사용하면은 제일로 쉬워야 될 것인데 우리들이 그렇게 되지 못해서 그동안 어려웠던 것입니다. 제가 그전에 설교했던 것을 거의 참고해서 하고 그렇지는 않습니다마는 이번에 요한계시록을 강론하면서는 그전에는 어떻게 했든고 하고 앞 부분을 한번 보니까 특별히 앞 부분에 틀린 부분데가 많해요. 왜냐하면 그전에 하는 방식으로 하면 아주 내용이 충실하고 잘 된 것이겠지마는, 그전에는 예수님을 강조하는 데는 열심이었지마는 소위 구원 역사가 무엇인지 그쪽에 토대를 잘 두지 못했기 때문에 거의 사변적이고 신학적인 이론으로 되어 있습니다. 오늘 강론할 것을 아까 보니까 조직신학 전체가 다 들어있을만큼 가득 들어있으니까 아마 그런 계통에서 공부했던 분들은 아마 대단한 설교라고 보았겠지마는 지금 봐보니까 문맥에도 없는 이야기를 많이 했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해석은 물론 지금 이런 저런 헛점들은 주님 오시도록까지 교회 안에 있겠지마는 그래도 그전고 같은 실수들은 범하지 않을만큼 구원 역사 토대는 잡혀있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이 본문을 이해하는 데도 쉬울 것이고 저도 해석하는데 많은 오류는 범하지 않을줄로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위해서 많이 기도해 주시고 또 성경을 많이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을드렸습니다마는 지난 시간에 말씀을 듣고 보니까 여러분들이 공부하는 것 같다고 할만큼 그렇게 본문이 풀어졌을 것입니다. 그것은 계시록이 조금 진행되도록까지는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계시록의 많은 상징적인 언어들 때문에 이런저런 잘못들을 해석했기 때문에 그런 것을 교정한 뒤로야 우리가 바른 메시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우리가 그런 작업을 가져야 됩니다. 이 앞에 강론했던 본문들은 그냥 거기 직접 그리스도가 나타나고 특별히 빌립보서 같은 것은 교회봉사에 대한 문맥이어서 우리들이 몸으로 가까이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어려운 것이 없이도 선언할 수 있지마는 계시록은 많은 그런 차이들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작업을 조금은 할 수밖에 없으니까 여러분들이 그점을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 앞에 은혜를 입는 것은 공부식으로 하든 무엇으로 하든 거기 그리스도와 그가 하신 일이 잘 드러나면 우리가 아멘으로 영광을 돌리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렇게 하면은 공부한 것 같고 옛날에 정치가들 연설처럼 힘을 주고 말하면은 아, 멧세지가 오는구나. 이렇게 되어 있어서 우리는 좀 어려운 상황이지요. 그러나 실제로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그리스도와 그 은혜가 증거되어야 되는 것이지 그냥 언변을 가지고 사람을 설득해서 감동을 주어가지고는 그것이 성령의 감동이라고 합당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아시고 제가 조금 체제를 바꾸더라도 그렇게 적응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상징적인 책일수록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제일로 중요합니다. 어떤 책이든지 전체적인 틀이 없이 그냥 생각나는대로 쓴다. 그런 책이나 문건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전체적인 틀을 파악하면은 부분적인 문제들은 전체적인 틀에 맞추어 해석하기 때문에 크게 겹길로 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제일로 중요합니다. 특별히 계시록 하면은 20장에서 천년왕국 문제가 대단한 위시로 되어 있지마는 그런 것도 전체적인 문맥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서 근본적으로 좌우되기 때문에 그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고대 문법이라는 것은 현대 문법처럼 세분화 되어 있는 것이 아니어서 해석의 폭이 넓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문맥이 제일로 중요하고, 또 완결된 문장까지라도 전체적인 구조 그 배경에서 핵석되어야 하기 때문에 전체 틀을 아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계시록을 여러번 읽는 것이 제일로 좋습니다. 그러면 계시록을 보았을 전체적인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느냐, 했을 때 성령 안에서 하는 반복된 어구들이 몇군데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내용을 말하기 전에 형식이 그렇다 그말입니다. 그리고 내용은 특별히 일곱 증거들로 되어 있는데 그것이 일곱 번 나와 있습니다. 그것이 서로만 잘 맞아들어가면은 이 구분은 맞는 것이 되겠지요. 형식상은 여기 1장10절에 보면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인제 원문에서는 성령 안에서 그러는데 그런 말이 있지요. 이것이 1장10절에도 있고, 4장2절에, 17장3절에 21장10절에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절 수들이 나오니까 복잡하게 느껴지겠습니다마는 그냥 장으로 나누십시오. 그래도 앞에 있는 것은 4장2절 그러면 1절은 4장2절을 시작하는 말이기 때문에 그냥 4장부터 이렇게 해도 되고, 17장3절에 성령 안에서 그런 말이 있지마는 17장1,2절은 3절을 시작하는 말이니까 그냥 17장부터 이런 식으로 나누어도 되니까 절 수는 잊어버려도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3장까지 한 단락, 4-16장까지 한 단락, 그리고 17-20장까지 한 단락, 21장이하가 한 단락 그렇게 되어 있지요. 그것이 성령 안에서 하는 말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상식적인 구분 안에 일곱이라는 증거가 있는가, 했을 때 실은 앞에 1-3장까지에 일곱이 두 번 나옵니다. 예수님의 형상을 말하는데 주로 일곱 형상으로 묘사를 해요. 그리고 일곱 교회가 나오지요. 그것이 10절부터 3장까지에 있는 내용이지요. 그리고 4-16장까지가 우리가 흥미진진하게 생각하는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인데 거기 세 일곱이 나오지요. 그리고 이제 17장에 바벨론 심판이 나오고 그리고 21장이하에 바벨론 심판과 천년왕국 문제가 나오고 21장에 새 하늘과 새 땅이 나오면은 그러면 일곱이 맞아들어갑니까? 그리고 제일 앞과 뒤는 서론과 결론인데 이 서론과 결론은 언약적인 언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도다. 때가 가까움이라. 그래서 앞과 뒤에 그런 말이 있습니다. 만일 이 언약 문서에 조금이라도 손질하면은 그는 이 언약의 복에 참여하지 못하리라. 그래서 마지막 도장을 찍어서 움직이지 못하도록 한 것이지요. 그래서 전체적인 내용은 언약의 책인데, 언약의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구분은 성령 안에서 하는 말로 해서 그런 말이 네 번 나오지요. 그렇게 나누어지고, 그 사이를 보면 일곱 증거로 되어 있어서 일곱으로 나눌 수 있도록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오늘 강론할 말씀은 4-8절까지의 말씀이 되겠습니다. 여기 보면은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실은 일곱 교회에 편지한다고 하는 것은 총괄적인 이야기이고 특별히 2장을 보면은 에베소 교회에 편지하노니, 어디에 편지하노니, 그래서 각 교회가 나와요. 그래서 2장에서 각 교회를 말하기 전에 실은 1장에서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했을 때 이 말이 결국 일곱 교회를 총괄해서 말하는 것이고 실은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하는 14절부터 8절까지의 말씀이 계시록의 전체적인 주제라 그런 말씀입니다. 실은 계시록 전체적인 내용은 4-8절까지에 있는 말씀을 이제 싸움이라는 배경 안에서 쭉 펼쳐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 보면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나.여기서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하고 보통 바울 사도가 쓴 은혜와 평강이 축복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은혜와 평강그 본문을 강론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은혜와 평강이 아니라 여기 누구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그리고 그 은혜와 평강을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뒤에서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는 지금 싸움 중에 있는데 주님께서 재림하시면은 이 모든 것은 완결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주님의 재림까지 해서 마무리 될 수 있도록 은혜와 평강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은혜와 축복을 주신 분이 누구신가? 우리들이 좋아하는대로 여기 보면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또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서 직접 하나님, 그런 말은 안나와 있지마는, 또 성령 그런 단어는 안나와있지마는 우리가 좋아하는대로 소위 삼위 하나님의 이름이 여기 호칭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런 본문들을 풀때는 어떻게 해야되느냐 하면은 항상 제일 쉬운 방법은 다른 본문과 비교해 보면은 왜 여기서는 은혜와 평강을 이렇게 설명했는고, 왜 다른데서는 저렇게 설명했는고, 하는 것을 서로 비교해 보면은 여기 강조점이 무엇인가를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아마 이런 비슷한 형식으로 되어 있는 책은 신약 서신에서는 로마서가 그렇게 되어있을 것이어요. 로마서에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했을 때 앞에 긴 설명이 되어 있어요.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시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편지하노니 하면서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시고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사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었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 그로부터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맡았는데 만민을 믿어 순종케 한다. 그런 긴 설명이 붙어 있지요. 아마 로마서 틀이 계시록하고 비슷하니까 비교해 보면은 알기가 쉬울 것이어요. 로마서에서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했을 때 그 은혜와 평강은 보좌에 취임하신 아들로 말미암은 은혜와 평강이었습니다. 그 평강은 만민이 믿어 순종하는 은혜와 평강이었어요. 그러기 때문에 다윗의 혈통에서 나시고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신 분, 이분을 증거하면은 만민이 믿어 순종한다. 이제는 죄가 지배하지 못한다. 이제는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그렇게 설명이 되어 있고, 로마서는 전체적으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왕이다. 그런 것이 주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 계시록도 그런 비슷한 구조로되어 있지요. 하나님에 대해서 한참 쭉 설명하고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그러니까 하나님의 칭호가 은혜와 평강을 주신 이분이 곧 뒤에 있는 은혜와 평강을 보증하는 그분이시고 모든 온천은 그분으로부터 나오게 되어 있는 것이니까 여기서 하나님의 이름을 해석하는 것만으로도 계시록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계시록은 어느 배경에서 1장9절에 있는 것처럼 요한 사도께서 밧보라는 섬에 귀양가 있었는데, 왜 귀양갔느냐 하면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즉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것, 그 증거를 증거하다가 핍박을 받아서 귀양가 있었습니다. 그때 주일날 하나님의 크신 음성을 듣고 이런저런 것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교회가 핍박을 받고 있는 환경에서 그리스도와 교회가 영원히 승리한다. 그러니 너희들은 결단코 물러서지 말고 이미 받은 축복을 끝까지 지켜라. 이기는 자는 이런저런 상을 받을 것이다. 이겨라. 이겨라 하면서 그리스도와 그 교회의 승리를 쭉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쟁이 한마디로 그 핵심적인 것입니다. 전부 전쟁 뿐이어요.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가 승리한다는 것이 실은 주제인데 고난받는 교회를 위로하고 격려해서 당시 로마 정권 밑에서 결단코 복음의 복을 잃어버리지 말고 그것을 이루어내도록 하기 위해서 이 편지를 쓴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배경이 세상 정권으로부터 고난받는 그런 배경이어요. 이런 배경에서 편지를 쓰고 있기 때문에 이 편지의 배경을 구약에서는 어느 배경이냐 하면은 항상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그리고 바벨론에서 나올 때, 그것이 세상 권세로부터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 배경이요 하나님은 그때 대적과 크게 싸우셨습니다. 그런 것들이 배경이 되어 있습니다. 직접적인 배경으로 하자면은 아마 다니엘서 같은 것이 제일로 근본적인 배경이 되겠지요. 왜냐하면 다니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으로 포로잡혀갔을 때 바벨론은 세상 제국의 머리였습니다. 다니엘이 하나님 앞에서 환상을 보았는데 금신상을 보았지 안해요. , , , 동 나중에 또 보니까 다시 한번 보았는데 그것은 짐승들로 되어 있지요. 그것은 짐승의 권세에요. 그리고 거기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나타나서 그 나라를 받는 그런 내용들인데 다니엘은 바벨론 궁중에 살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 나라에 승리할 것인가,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이 계시록의 가장 큰 색채에요. 그런데도 아무리 바벨론 군이 크다고 할지라도 항상 하나님의 나라는 시내산에서 출발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서 나라를 조직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때도 애굽의 큰 권세와 싸우시고 나오셨습니다. 그래서 출애굽 언어와 다니엘서 언어들, 그런 것이 주 색채를 이루고 있고, 물론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하나님 나라로 있었을 때도 많은 핍박이 있었는데 제일로 큰 때가 엘리야 당시지요. 아합 때, 그때 땅에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아니하고 그리고 엘리야를 잡으러 온 사람들은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죽었습니다. 그 신실하게 증거했지요. 그런 내용들, 그리고 조금 더 하면은 귀환해서 이방에게 공격을 받았던 스가랴서들, 그런 것들이 주 배경을 이루도록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 하나님의 이름도 은혜와 평강도 누구시냐 하면은 싸우시는 분, 그분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을 것이다 하는 것이 핵심이 될 것이어요. 그런데도 교회는 역사의 마지막을 봉사하고 있거든요. 주님 오시면은 만사가 끝장이 나요. 그런데 이 하나님은 역사의 처음부터 역사를 경영하시고 이제 교회를 붙드신 분이세요. 이제 속히 주님이 오시면은 그 나라가 완성될 것이어요. 이 시대를 봉사하니까 역사를 완성한 분으로부터 참으로 세상에 모든 임금이 되신 권세있는 분으로부터 너희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그렇게 말하면은 맞아들어가는 것이지요. 대체적인 내용은 그런 내용입니다. 우리 보수파는 그 문자에 관심이 많이 있어서 자세히 읽고 자세히 해석해야 해석하는 줄 알고 한참 들여다 보고 있으니까 무엇이 잘 안보여요. 그러나 대충대충 말하면 그런 이야기에요. 그리고 남어지는 그 대강에 포함된 것이니까 처음부터 자세히 알려고 그러면 안보이고, 전체적인 흐름은 그런다 그말입니다. 가령 아이들이 다른 얘기들은 다 학원에 가는데 우리 얘기는 못가서 낙심해 갖고 공부를 못하면은 아버지가 무엇이라고 하겠어요. , 내가 돈이 없다고 너에게 할 일을 못할줄 아냐? 내가 학원에 못보내도 대학 등록금은 준비해 놓았다. 내가 지금까지 너를 위해서 뼈빠지게 일을 해왔고 앞으로도 보장해 주마. 실은 아버지가 돈이 없어도 그래야 아들에게 위로가 되지 아들한테 네 아버지는 어려서 공부 잘했다. 너는 어째서 못하냐? 그러고 물어보면 그것이 무슨 위로가 되겠어요. 그러니까 부모가 자식에게 권고할 때도 그 목표에 맞도록 자기를 소개하면서 안되, 내가 너에게 그렇게 안해주겠는가? 그렇게 했을 때 자식이 위로를 받고 힘을 얻겠지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로하실 또 그냥 신학적인 위로를 한 것이 아니라 그 교회에 필요한 상황을 따라서 하나님을 소개하고 그 하나님을 누릴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상식적인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기 계시록도 그렇게 돼 있습니다. 특별히 처음 말씀드렸을 때 언약 문서라 했을 때 하나님이 나는 너를 애굽에서 건저낸 여호와 하나님이다. 내가 너희를 얼만큼 은혜를 많이 주었냐? 시내산에 오도록까지. 나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내 말을 잘 들으면은 너희들이 세상에서 장자 백성,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것이고 특별히 나를 봉사하는 제사장 백성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하고 너희들이 이것이것을 잘 지켜라. 그러면 될 것이다. 항상 자기를 소개하고, 그 다음 그들이 지킬 것을 말하고, 그 다음 뒤에는 약속과 경고를 말하고, 이런 방식이 언약 문서가 기록된 방식이어요. 그런 구조로 대부분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먼저 하나님에 대한 축복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은혜와 평강을 주신 분은 누구냐? 여기 보면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보좌 앞에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는 예수를 하늘 보좌에 취임시킨 하나님, 그분으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그랬는데 여기는 소위 삼위 하나님의 이름이 언급된 것처럼 그렇게 돼 있어요. 그래도 우리가 좋아하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그런 이름으로는 되어 있지를 않지요. 이런 언어들을 그전에 설교한 것을 보니까 완전히 본체론적인 설명을 해놓았어요. 왜냐하면 제가 배운 신학이 그런 것이니까 아마 그 이상을 설명할 수 없겠지요.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 본체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은 껍데기고 그 안에는 진짜가 있고 그런 이중 구조를 가지고 있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은 나타나신 대로 하나님 자신이세요. 그리고 우리 하나님되신 것만큼만 우리의 하나님이지 그 이상은 우리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본체가 어쩌니 본질이 어쩌니 하는 문제는 우리는 잊어버려야 되고 나타난 대로 말하면 우리 하나님이고 역사적인 하나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보통 신약 서신을 보면은 앞에 이런 축복을 했을 때는 하나님과 주되신 그리스도가나와요. 뒤에 축도을 보았을 때는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삼위 하나님의 축복의 축도는 고린도후서에 나와 있고 다른 서신들에는 그렇게 나와 있지를 않습니다. 그냥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이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이런 간단한 축복문으로 되어 있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이 말은 고린도후서에만 그렇게 쭉 나와 있어요. 그래도 우리는 삼위 하나님의 이름이 거의 나오니까 그것을 예배문에 쓰고 있지마는 다른 많은 축복문도 있습니다. 구약에 축복문은 민수기 6장에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너희를 향하여 드사 평강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기를 원하노라. 얼굴을 비추사구약에는 하나님의 얼굴 빛을 대면하는 것이 복이고 휘장으로 가리우면 캄캄함이어요. 그래서 그런 방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삼위 하나님의 이름이 처음 인사말에서 언급되고 있는 것은 이 요한계시록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데는 그렇게 돼 있지를 안해요. 그러면 왜 요한계시록은 이렇게 돼 있는가? 그랬을 때 4장이하의 구절들을 보면은 하나님께서 항상 전쟁했을 때 사령부를 펼치는 것처럼 항상 그 본질을 펼쳐 보이고 있어요. 여기로부터 모든 전투가 나가고 모든 계획이 진행될 것이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그 번질 성소를 열어 보이는 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아마 이런 구조로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너 구조까지라도 본체론적으로 하나님을 탐구하는 그런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고 항상 구약을 모델로 삼는다고 여러번 말씀을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으로 일하시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셔서 가나안 땅에 평안을 주시고 자기 백성에서 건져내서 가나안 땅의 안식을 주신 그 하나님이 일하신 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어떻게 완성되었는가, 이것을 선언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는 문제들도 구약을 모델로 하고 풀어야 되지 그냥 철학적으로 삼위 하나님의 본체가 무엇인가, 그렇게 접근해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구약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시는가? 하나님은 항상 대리자를 통해서 일하시는데, 대리자가 누굽니까? 하나님의 영이 임해서 대리자가 일합니다. 하나님이 그의 영을 대리자에게 보내시면은 그 대리자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구약에서 일하는 방식이어요. 특별히 구약에서는 여호와의 영이 모세에게 임했고, 모세는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어서 바로의 군대와 싸웠고 그렇게 해서 자기 백성들을 건져내서 가나안 땅에 안식을 주었지요.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서 나는 여호와다. 네 조상들의 하나님이 아니냐? 그렇게 설명하면서 진행되었지 안해요. 그런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먼저 하나님에 대한 소개가 나오고, 그 다음 영에 대한 이야기가 그 다음 그리스도, 중보자, 싸우시는 분, 그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이런 순서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성부, 성자, 성령 하면 좋겠지마는 구약의 틀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영을 그의 사자에게 보내서 일하시면은 사자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어요. 그런 구조 때문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강조점은 부활하신 아들의 승리가 강조점이니까 제일 뒤에 두었겠지요. 그런데 하나님을 소개하기를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마는 하나님을 소개했을 때 이 말이 곧 요한계시록을 받고 있는 로마에 있는 교회, 그 교회에 위로가 되어야 될 것이어요. 그런데 하나님을 소개할 때 이제도 계신 하나님이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이다. 그리고 제일 뒤에 보니까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제일 뒤에 장차 오실이, 그쪽에다 강조를 두고 있지요. 그가 속히 오실 것이다. 그리고 알파와 오메가라 역사를 끝내시는 분이시다. 그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강조점은 이제도 계신 분, 그분은 전에도 계셨고, 또 장차 오실분입니다. 이제 계신 분이 누굽십니까? 전에도 계셨던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항상 역사 중에 계셔서 역사를 완성하신 분, 그는 알파요 오매가 시작과 끝입니다. 그런 이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자로 모세를 세우시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소개할까요. 즉 애굽의 권세에서 고생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을 어떻게 소개할까요. 어떻게 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소대해야 그들이 위로를 받고 내 말을 들을까 했을 때 나는 여호와로라, 그리고 조상들의 하나님이다. 그렇게 설명했습니다. 특별히 여호와로 설명했습니다. 왜냐하면은 모세를 통한 구원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에덴을 거룩한 성소로 구별하시고 그중에 거하셨습니다.

이제 그 하나님이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강림하시고 가나안 땅을 성소로 삼으시고 자기 백성을 거기 심으실 것입니다. 이처럼 천지 창조는 가나안 땅의 성소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고, 이스라엘의 창조를 설명하기 위해서 처음 에덴을 열어 보이기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애굽의 바로의 권세에서 고난을 받고 있는 자기 백성을 구원해서 가나안 땅에 안식을 주도록 모세를 소개했을 때, 그의 이름을 소개했을 때 나는 여호와라. 그렇게 소개했던 것입니다. 그는 천지 창조주시오 만물을 그가 지으신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백성으로 지으시고 가나안 땅을 새로운 성소로 세우실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이 처음 소개되었던 장면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지으시고 가나안 땅을 새로운 성소로 지으시고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경배를 받으실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는 창조에 있어서 여호와로 만물을 창조하시고 에덴에 계셨던 여호와의 이름으로 자기 이름을 소개해서 자기 백성의 창조자요 전능자로 그런 분으로 그렇게 소개를 했던 것입니다. 세상의 자랑이며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그렇게 거듭거듭 말했던 것처럼 이 세상의 정체가 무엇인줄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들이 세상에 살면서 그리고 세상을 떠나지를 못합니다. 우리들이 모든 사랑과 인내로 양보하고 모든 사람이 종이 되어서 그들을 구원하는 것도 한 일이지만은 결단코 세상과 함께 멍에를 매서는 안되는 것이고 그런 것을 분별해야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인들이 그전처럼 경건주의에 빠져서 세상을 악하다. 교회에 가서 기도하는 것만 제일로 거룩하다. 성경 읽는 것만 제일로 거룩하다. 헌금은 제일로 거룩하고 남어지 쓰는 것은 별로 거룩하지 않다. 그런 의식을 벗어난데 대해서는 대단히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가 참으로 하나님을 위한 자유요 세상과 싸우는 자유가 되어야 할 것인데 가만히 보면은 대충대충 살고 있습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기존의 교회와 별다른 것이 없어요. 기존 교회가 복음이라고 좋아하고 있어요. 무엇이 복음입니까?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렇다. 더구나 구약까지 인용하면은 저건 율법을 설교하구나. 이렇게. 신약으로 설명하면 저것은 신율법주의구나, 얼거맨다 그말이지요. 안얼거매면 자유인 것처럼 살고 있어요. 우리 교인들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대단히 염려스럽습니다. 처음 계시록을 설교하기 전에 말씀을 드렸지마는 여러분들이 이원론에 빠져있는 것을 저는 원치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분명히 하늘에속한 새 백성이요 세상은 주님을 알지 못합니다. 아무리 여러분을 칭찬할려지 몰라도 그들이 예수 앞에 복종하기 전에는 그들은 결단코 우리의 친구가 아닙니다. 그런 것을 분별해야 되겠는데 여러분의 정상적인 삶들, 직장도 있고 이것 저것 다 있지요. 형편들이 다 있지요. 물론 여러분이 의무들이 다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어떻게 하나님과 그 영광을 위해서 봉사되고 조절되어야 하겠는데 그런 일에 한참 떨어진 것 같습니다. 아마 계시록을 통해서는 그쪽이 더 강조가 될 것입니다. 지금도 세상은 예수를 믿지 않습니다. 지금도 민주화가 되어서 예수 믿는 자유가 있고 그리고 우리나라는 선거하면은 다 예수믿는 장로가 되과, 후보자들이 그렇게 돼있지마는 그들이 참으로 예수님께 복종하지를 않습니다. 심지어 교회까지라도 바벨론 교회가 되어서 주님을 복종하지 않습니다. 붉은 짐승을 타고 화려한 금잔을 든 여인처럼 그렇게 취해 있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증거하노니, 참으로 그리스도 때문에 자기 생명을 포기하는 그런 교회는 아직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아름다운 모습들로 치장되었지마는 주님의 정결한 신부로 깨끗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인가, 그런 것을 보았을 때는 심히 안타카운 현실입니다. 단지 우리들이 계시록 강론을 통해서 다른 교회를 볼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을 바라보고 우리에게 있는 상급을 빼앗기지 않도록 믿음을 지켜내셔야 될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들이 다른 사람들도 분별하고 그들을 봉사할 수 있어야 될 것입니다. 지금도 세상은 주님을 알지를 못합니다. 세상은 애굽이요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우리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그런 곳입니다. 주님 오시면 그들이 애곡할 것입니다. 그를 찌른 자들이 애곡할 것입니다. 모든 족속이 애곡할 것입니다. 찌른자들이나 모든 족속은 다 같습니다. 세상을 심판하시고 주님께서 그의 교회를 완성하실 것입니다. 주님 오시도록까지 우리들이 이 역사적인 전망을 하고 있으면은 우리는 결단코 낙심하지 말고 마지막 시대를 신실한 믿음으로 봉사하십시다. 우리의 그리스도 예수께서 충성된 증인으로 아버지를 증거하시고 그리고 죽은자 가운데 살아나셔서 으뜸이 되셨습니다. 땅에 임금들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그가 걸어가신 것은 그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의 권능을 위해서입니다. 우리도 그 길을 걸어가고 그 영광의 나라를 봉사할 수 있도록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주님께서 걸어갔으니 베드로도 걸어간 것이요 주님께서 걸으셨으니 그의 교회도 걷고 승리할 것입니다. 주님 오시도록까지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항상 믿음으로 승리하셔서 주님 오시도록까지 세상 나라가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도록까지 우리의 믿음을 굳게 지켜서 예수의 왕권을 증거하고 주님만을 순종하는 신실한 믿음으로 주님께 봉사하는 그런 봉사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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