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구속사

요한계시록 서론

찬미예수님 2025. 10. 29. 10:11

요한계시록 서론

 

계시록은 그리스도의 계시인데 그가 계시의 집행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셨다. 그리스도는 그의 교회의 사자들에게 이것을 보이시려고 천사를 그의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셨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나라요 마지막 때의 구원 역사를 봉사토록 구원되었기 때문이다. 내용은 반드시 속히 될 일인데, 이는 용과 짐승과 바벨론과의 싸움에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승리이다. 계시록은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은 요한 사도가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이다. 요한은 교회의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이며,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증거 때문에 밧모섬에 귀양가 있었다. 로마는 황제를 신의 아들과 제사장으로 섬기는 짐승의 나라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만 주라고 고백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환난에 참여한 교회를 격려하여 신앙을 지켜서 짐승과의 싸움에 이기게 하도록 요한을 통해 지시하셨다. 속히 될 일은 때가 가깝다는 말인데, 이는 종말의 하나님의 큰 날, 곧 심판과 구원의 날이 가깝다는 마지막 때의 촉박함을 말한다. 마지막 때는 지금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의 완성 시기이다. 계시록은 특정한 사건으로 마지막 시간을 측정케 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소아시아 교회가 바벨론 곧 로마 정권 아래서 당하는 그리스도의 환난, 곧 종말론적인 고난과 승리가 더욱 진행되며 완성될 종말의 때가 속히 임할 것을 가르쳐서 교회로 믿음을 지켜 승리하게 한다. 계시록은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와, 용과 그의 짐승과 그의 도성 바벨론과의 싸움이 주제이기 때문에 다니엘서와 출애굽기가 전형이다. 다른 박해의 시기인 엘리야와 스가랴서도 모델이다. 요한에게 보내신 것은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이다. 본 것은 금촛대 사이에 일곱 별을 붙들고 계신 인자의 환상이다. 이제 있는 일은 일곱 교회가 당하는 환난이며<2-3>, 장차 될 일은 이 후에 될 일인데 4장 이하이다. 계시록은 문학 형식상 성령 안에서라는 반복 어구에 의해서 4구분 된다<1:10, 4:2, 17:3, 21:10>. 상징적인 책일수록 문학 형식에 치중해서 전체 구조와 문맥에 일치하도록 부분을 해석해야 한다. 신학적인 전제에 의해서 구조를 파악하는 것은 전체된 신학의 독단에 의한 것이다. 내용은 7이라는 단위의 특징이 있다. 계시록은 마지막 때의 언약이기 때문에 언약 구조이다.

서언 1:1-8

1:1-3 언약의 서언

1:4-8 축복의 약속

A. 요한의 본 것과 이제 있는 일1:9-3:22

1. 인자에 대한 일곱 환상

1:9-20 일곱 촛대 사이에 일곱 별을 붙잡고 서신 인자

2.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

2:1-3: 이긴 자들에 대한 7

B.이후에 될 일 4:1-22:5

3.일곱 인

4:-5: 인을 집행하는 사령부 자

4: 하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 하나님의 사령부

5: 인을 떼는 어린 양- 집행자, 다윗 지파의 사자

6:1-6 번째 인을 뗌

네 말, 제단에서 부르짖는 순교자, 어린양의 진노의 큰 날<7: 인을 떼는 목표-천사로 바람을 불지 못하게 함. 이스라엘 144,000을 인침, 큰 환난에서 나온 무리>

4.일곱 나팔

8:일곱 번째 인을 뗌- 일곱 나팔

8:1-5 나팔을 부는 이유- 금향로에 담긴 성도의 기도, 금향로에 담겨 쏟아진 단 위의 불

8:6-9: 1-6번째 나팔을 붐

1/4을 멸함<: 바다: 강과 물샘: 천체의 광명>

<독수리가 남은 세 나팔의 화를 말함>

무저갱에서 나온 전갈 같은 황충이 5개월간 괴롭힘; 유브라데 강에 모인 이만만의 마 병대<1/3을 죽임>

<10:-11:14 나팔의 목표-천사의 손에 들린 작은 책, 하나님의 비밀이 복음과 같이 됨, 작은 책을 먹고 예언하라. 성전은 척량하고 마당은 척량하지 말라. 두 증인의 증거와 죽 음과 부활과 심판>

5.일곱 대접

11:15: 일곱번째 나팔을 붐- 일곱 대접

11:15-19 대접을 쏟은 이유-세상 나라가 주의 나라가 됨.

심판과 상급,

하나님의 성전이 열림

12: 용의 정체와 핍박의 원인- 용의 사령부

13: 용의 수종자-집행자, 바다에서 나온 두 짐승

14:1-5 시온산에 선 어린양과 승리자들

14:6-13 만국에 증거된 영원한 복음-심판에 대한 경고와 성도에 대한 위로

14:14-20 구원을 위한 추수, 심판을 위한 추수

15: 마지막 대접 재앙의 집행자

짐승을 이긴 자들이 어린양의 노래를 부름

집행자-증거막에서 나온 일곱 천사

16:1-7 대접을 쏟음

, 바다, 강물이 피가됨- 성도들의 피값을 마심: 해가 사람을 태움: 짐승의 보좌가 어두어짐: 유브라데 강이 마르고 귀신이 천하 임금을 아마겟돈으로 모음- 큰 날의 전 쟁: 다 되었다는 보좌의 음성, 큰 성 바벨론이 진노의 잔을 받음

C.바벨론과 거짓 짐승과 용에 대한 심판

6.바벨론과 거짓 짐승과 용에 대한 심판

17:1-21:8 음녀 바벨론에 대한 심판

17:바벨론의 정체

18: 바벨론의 멸망

19:1-10 세번의 할렐루야

19:11-백마 탄자의 승리, 짐승의 잡힘과 심판

20:1-10 용이 천년 동안 갇힘, 첫째 부활한 자들의 왕노릇, 용이 잠시 놓임과 큰 전쟁과 심판

20:11-15 백보좌 심판, 모든 자의 부활과 행위의 심판, 둘째 사망

21:1-8 새 하늘과 새 땅

D.어린양의 신부, 하늘에서 내려온 예루살렘

7.어린양의 신부, 하늘에서 내려온 예루살렘

21:9-27 하늘에서 내려온 예루살렘의 영광스러운 모습

22:1-4 새 땅, 생명이 완성된 하나님의 성소

결어<22:5-21 언약의 결어와 약속>

그 말은 소유권을 삼는다는 말이어요.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드디어 인곱 인을 떼면은 일곱 인 속에가 나팔이 끼어 있는데 이 나팔은 이제 여섯째 인에서 어린양의 진노에서 큰 날에 했던 것처럼 그것을 완성시키는 심판의 내용이 나팔의 내용이다. 일곱 나팔이 있습니다. 8장에는 일곱 번째 인을 떼면은 일곱째 인을 뗐을 때 소위 일곱째 인 자체에가 그 속에 일곱 나팔을 품고 있는 것이어요. 그런데 나팔을 불기 전에도 어떻게 할까요. 왜 나팔을 불어야 되겠는지 설명을 해야되겠지요? 그래서 8:1-5절까지는 나팔을 부는 이유가 있는데 금향로에 담긴 성도의 기도가 올라가고, 그리고 꺼꿀로 그 금향로에 불이 담겨져서 쏟아집니다. 아까 다섯째 인에서는 계단 아래서 부르짖는 성도의 기도가 있었지요. 그런데 여기서도 똑같은 이야기를 다른 말로 하는데 금향로에 성도들의 기도가 올라가면은 거기에 불이 가득 담겨서 쏟아져요. 이 기도는 아까 인대로 말하면은 그들의 복수를 호소하는 기도일 것이어요. 그러니까 교회를 핍박하는 세상에 쏟아 부겠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지금 나팔을 부는 이유입니다. 그것을 먼저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나서 드디어 나팔을 하나씩 하나씩 분다 그말입니다.

그런데 나팔의 내용은 무엇이냐 하면은 심판이 주제인데 1/4들을 멸망시키는 것이어요. 그래서 1/4을 멸하는데 땅, 바다, 강과 물 그리고 천체의 광명들, 그러니까 네 나팔이지요. 그것은 전부 특징이 1/4을 멸해서 사람이 사는 토대들, 사람은 땅에서 살고 바다에서 살고 상과 물에서 살고 그리고 하늘의 천체들이 거기 빛과 생명을 공급하지요. 사람의 생활의 터전의 1/4이 멸망하고 사람도 죽도록 그렇게 돼 있다. 그리고 나서 인제 넷이 있고 나니까 한번 멈추고 독수리가 날아가면서 야, 너희들이 네 번 벌을 받았지마는 앞으로 세 번 남았으니까 조심해라 하는 경고의 독수리가 날아가는 것이 있다. 그리고 나서 남어지 세 나팔이 불어지겠지요. 이렇게 인과 나팔은 그 일곱도 넷과 셋으로 그렇게 구분돼 있습니다. 왜 구분했는가는 몰라요. 그렇게 돼 있어요. 그 다음 셋은 무엇이냐? 먼저 다섯째는 무저갱에서 나온 전갈 같은 황충이 5개월 동안 괴롭히기만 하고 죽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여섯째 나팔은 유브라데 강의 모인 이만만의 그 마병대가 있습니다. 그 자기 때가 되면은 1/3을 죽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일곱째 나팔을 불면 되겠지요. 처음 4번 나팔까지는 사람이 살고있는 구체적인 삶의 토대들을 멸하는 것인데 이제 그 다음 다섯째 나팔을 보십시오. 무저갱에서 나온 전갈 같은 황충의 군대가 있고 그리고 유브라데 강에 모인 이만만의 군대가 있어요. 실은 유브라데 강에 모인 이만만의 군대가 아마겟돈 전쟁으로 그 종말에 나타날 전쟁이어요. 그리고 그 군대는 어디서 나왔습니까? 다섯 번째 나팔, 무저갱에서 나온 전갈 같은 황충의 군대, 짐승의 군대들이어요. 그러니까 항상 다섯 번째는 왜 심판하는지, 다섯 번째 인을 뗐을 때 제단 밑에서 기도하는 것이 있었지요. 그것이 때문에 어린양의 진노의 큰 날이 있다고 그랬는데 이제 심판했을 때는 그 심판을 누가 집행하느냐? 무저갱에서 나온 군대가 있는데 어디서 집행하느냐? 유브라데 강이 마르고 이만만의 마병이 있는데 거기서 집행한다. 그런 구조로 되어 있어요. 보십시다. 아직 일곱 나팔을 안불었지요? 일곱 불기 전에 또 한번 해야 되겠지요. 인제 마지막 결론할려니까 한번 더, 어 자동차를 몰때도 그런가 몰라요. 요새 자동차는 좋으니까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언덕 올가가기 전에 한번 속도를 내야 되겠지요. 그리고 마바지 올라가다가 한번 더 기아 바꿉니까? 그래야 올라가겠지요. 그래서 마지막에 또 한번 설명이 있어요. 그러니까 이 일곱 나팔을 불기 전에 왜 이 일곱 나팔이 와야 되는지, 이 일곱 나팔이 목표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번더 설명해야 되겠지요. 그래서 일곱 나팔이 나오기 전에 10장부터 그런 것이 나온다 그말입니다. 10장-11장14절까지는 나팔의 목표가 나오는데 천사의 손에 들린 작은 책, 그리고 하나님의 비밀이 복음과 같이 됨, 작은 책을 먹고 예언하라. 성전은 측량하고 마당은 척량하지 말라. 두 증인의 증거와 죽음과 부활과 심판, 이런 문제들이 여기 나온다. 그러면 여기 내용을 보십시다. 힘센 천사의 손에 작은 책이 들렸는데, 그 작은 책을 갖고 먹고 증거하라고 했거든요. 이 작은 책은 하나님의 비밀이 복음과 같이 된다. 작은 책은 복음의 책일 것이어요. 그것을 갖다 먹어버리면은 그것으로 전도하면은 복음의 비밀이 드러나고 그런 것이어요. 그런데 그때까지 어떻게 하느냐? 이렇게 복음은 증거되는데 그때까지 성전은 척량하고 성전 마당은 척량하지 말아라. 성전이 측량되었느니까 그 안에서 경배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만지지 못하지요. 하나님이 이것은 내것이라고 줄로 제어 놓았어요. 아무도 못들어지요. 그런데 마당은 밟히도록 되어 있어요. 그리고 이어서 두 증인의 증거가 있는데, 거기 보면은 모세나 엘리야 모델이어요. 그 사람들이 증거하고 죽고 조롱을 당하는데 그리고 삼일 반 후에 부활하면은 세상들이 깜짝 놀랄 것이다. 그런 이야기에요. 그러니까 이것이 말하자면은 복음이 마지막 증거되고 그리고 증인들의 모든 수고가 마무리 되게 될 것이어요. 그동안 교회는 밟힌 것 같아도 중심은 밟히지 않을 것이어요. 이방인의 때니까 밟힙니다. 앞에도 마당은 척량하지 말라고 그랬지요. 그러면 밟히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여기서는 복음은 증거되는데 교회는 핍박을 받고, 극악한 핍1박은 두 증인이 죽고 그러면 핍박을 받을 것이어요. 그래도 교회는 복음의 말씀이 끝까지 증거되고 하나님의 비밀은 복음대로 밝혀질 것이어요. 바로 그 일을 위해서 이제 마지막 심판이 와야 되겠지요. 하나님의 심판은 복음의 증거를 마무리 하는 심판이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인제 일곱 번째 나팔을 불면은 그 나팔부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일곱 대접이라고 그랬지요. 그래서 그 대접이 나옵니다. 먼저 일곱 대접을 풀때도 먼저 대접의 이유들을 한번 설명해야 되겠지요. 그러니까 양파 껍질처럼 겹쳐져 있지요. 동심원적인 반복 구조로 되어 있어요. 그래서 먼저 대접이 나오기 전에도 대접을 쏟는 이유가 먼저 나오지요. 11장19절에 세상 나라가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원수에 대한 심판이 주의 종들에게는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면은 하나님이 함께 계신 것이지요. 이 일을 위해서 심판의 대접이 쏟아진다. 즉 세상 나라를 심판하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도록 그렇게 해서 원수는 멸하고 자기 백성들에게 상급줄려고 그 하나님의 성전이 열려서 영원히 함께 거하실려고 마지막 심판을 쏟아 붓는 것이다. 한번더 설명하고 나서 드디어 마지막 대접 심판이 나오겠지요. 대접 심판이 그러면 이 대접 심판은 무엇입니까? 용과 그리스도의 싸움이 마지막 접전이지요. 그때 용의 진영은 완전히 파멸될 것이어요. 그렇게 해서 처음에 역사를 경영하시는 보좌를 찬양했던 것처럼 이제 마지막 싸움에서는 그 세상을 악한 방식으로 핍박하는 짐승의 보좌가 먼저 나오겠지요. 그래서 무엇이 나옵니까? 용의 정체와 핍박과 그 원인이 나와 있습니다. 즉 용의 사령부가 12장에 나와 있습니다. 12장을 보면은 이 용은 누굽니까? 여인이 낳은 아들은 천사들의 손에 붙들려 올라갔는데 그리고 이 용은 하늘에서 쫓겨났지요. 그리고 자기 때가 얼만 남지 않은 것을 알고 바다 끝에 섰는 여인의 후손을 핍박하려고 물을 토해서 죽일려고 그러지요. 하늘에서 내어 쫓긴 용이지요. 용의 사령부가 나온다 그말입니다. 12장에 그렇게 나오고, 그리고 용을 수종드는 종이 나와요. 4장에서는 하나님의 보좌가 나오고 하나님을 수종드는 어린양이 나왔었지요. 집행자가. 그런데 여기서도 용의 집행자가 있어요. 그래서 집행자는 누구냐 하면은 바다에서 나온 짐승, 땅에서 나온 짐승, 이 두 짐승입니다. 그래서 용과 두 짐승, 이렇게 나와 있지요. 이처럼 적이 나오는가 하면 이 적이 대항해서 승리하는 군대가 나와야 되겠지요. 마지막 전쟁이니까. 이처럼 용은 극악하게 핍박하지마는 시온산에 선 어린양과 그리고 함께 새 노래를 부르는 승리자들의 노래가 있지요. 만국에 증거된 영원한 복음, 이것은 하늘에 독수리들이 날아 다니면서 그 복음을 전할 것이어요. 심판에 대한 경고와 성도에 대한 위로. 구원을 위한 추수, 심판을 위한 추수. 마지막 대접장의 집행자. 짐승을 이긴 자들이 어린양의 노래를 부름. 집행자는 증거막에서 나온 7천사. 무슨 말이냐 하면은 여기서는 마지막 심판이니까 폐배자와 승리자가 나오겠지요. 마지막 전쟁하는 사령부, , 용의 집행자들. 이것을 대항하는 승리자. 시온산에 선 어린양의 승리자들, 나오겠지요. 이것은 무엇 때문에 나오느냐 하면은 영원한 복을 밝혀짐으로 그렇게 증거되지요. 이 복음대로 될 것이어요. 그래서 양쪽에 진영들이 그렇게 나오고, 그리고 마지막 심판에 대한 경고와 성도에 대한 위로로 격려합니다. 짐승에 편에 속한 사람은 죽을 것이고 어린양에 속한 자는 이길 것이어요. 그렇게 지금 설명하고 나서, 그래서 이것은 어떻게 되느냐? 마지막 수확의 때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추수를 설명하고 나서 이 대접 재앙을 집행하는 집행자들이 나오는데, 어떻게 나옵니까? 증거막에서 나온 천사가 이 일곱 대접을 쏟아붓는 자들입니다. 이 일곱 천사들은 마치 계시록 1장의 예수님 처럼 금띠를 띤 사람들이어요. 왕적인 권세를 가진 그런 권세로 나와요. 그러니까 15장서도 마지막 집행하기 전에도 그 집행의 목표는 결국 짐승을 이긴자들이 어린양과 주의 노래를 부름. 14장 시온산에서도 어린양들이 나와 있는데 여기서도 한번 승리의 배경을 말해요. 복음이 증거되는데 원수들은 망하고 그의 믿음을 지킨 사람들은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은 언제 그렇게 됩니까? 마지막 추수 때에 그렇게 됩니다. 악한 자도 추수해서 포도주 틀에 밟아버리고 선한자도 추수해서 곡간에 모아들일 것이어요. 그런데 그 일을 누가합니까? 증가의 장막에 있는 일곱 천사가 그 일을 집행합니다. 집행하는 목표는 무엇입니까? 승리를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돼 있다. 그리고 나서 인제 대접이 나오겠지요. 첫째부터 일곱째 대접을 드디어 쏟아 붓습니다. , 바다, 강물이 피가됨. 그리고 그것이 한 대접이어요. 쎄미콜론으로 되어 있지요. 그것들이 하나씩입니다. 그래서 땅, 바다, 강물이 피가됩니다. 왜 피가 되느냐? 성도들의 픽값을 지불해야 되기 때문에 그렇게 돼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내가 잘못 적은 것 같습니다. 땅도 하나, 바다도 하나, 한번 보십시다. 그 다음에 해가 사람을 태움니다. 그리고 짐승의 보좌가 어두워집니다. 그리고 유브라데 강이 마르고 귀신이 천하 임금들을 그 쪽으로 모읍니다. 이것이 큰 날의 전쟁을 위해서 군대를 모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 되었다는 보좌의 음성이 나오고 그리고 항상 바벨론이 진노의 잔을 받았다는 말은 꺼꿀로 보면 이것이 일곱 번째요. 이것이 여섯 번째, 다섯 번째 네 번째 예, 그러니까 앞에 잘못 적었구먼요. , , 강 이것도 한 나팔 씩이어요. 그러니까 앞에 있는 쎄미콜론에가 세 번의 나팔이 들어있지요. 이것이 다 피가 되는데, 왜 피가 되는가? 성도들의 피를 흘렸기 때문에. 피값을 받아야 되기 때문에. , 바다, 강은 다 사람의 거처지요.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 다음에 해가 사람을 태우고 짐승의 보좌가 어두워지고, 그리고 유브라데 강이 마르고, 귀신이 천하 임금들을 아마겟돈으로 모읍니다. 일곱째 날을 빼고 이것을 해보십시오. 그러면은 짐승의 보좌가 어두워지고, 그리고 유브라데 강이 마르고 귀신이 천하 임금들을 아마겟돈으로 모읍니다. 이것이 실은 마지막 전쟁의 모습이지요. 그래서 아마겟돈 전쟁은 하나님의 큰 날의 전쟁을 위해서 군대들이 모은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의 전쟁이어요. 그리고 일곱 번째는 그것을 마무리짓는 음성인데, 다 되었다. 보좌에서 그렇게 큰 음성이 들립니다. 그분이 모든 것을 마무리짓는 분이셔요. 그리고 큰 성 바벨론이 진노의 잔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실은 여섯 번째 대접이 마지막 전쟁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일곱 번에서는 그것을 무엇으로 이어가느냐 하면은 짐승의 도성인 바벨론의 멸망 쪽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되었으면 끝났지 무슨 바벨론 이야기를 해. 짐승의 보좌가 어두워져버렸는데. 그런데 지금은 싸우고 있는 구체적인 실체가 무엇이냐 하면은 로마 정권이거든요. 바벨론 정권이어요. 그쪽에다 초점을 맞추니까 다되었다고 하면서 바벨론의 멸망을 다시 설명하고 있는 것이어요. 마지막은 실은 여섯 번째에 들어있지요.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성령 안에서 하는 말이 C번이 거기 나오겠지요. 바벨론과 거짓 짐승과 용에 대한 심판, 그것이 여섯 번째 구분하고 쪽같기 때문에 쪽같은 말을 써놓았지요. 성령 안에서라는 말로 나누면은 A, B, C, D이고, 일곱이라는 단위로 나누면은 1,2,3,4,5,6,7이거든요. 여기서 한 단위가 나오기 때문에 두 번 반복해서 적어논 것 뿐이어요. 그렇게 해서 먼저 바벨론에 대한 심판이 나오는데, 17장을 보시면은 음녀 바벨론에 대한 심판이 거기 나옵니다. 그런데 먼저는 바벨론의 정체가 나오겠고 그리고 바벨론의 멸망하면은 그것에 대한 승리의 찬양이 활렐루야 세 번의 찬양이 나와요. 그래서 바벨론은 어떤 도성인가? 그 많은 부를 가지고 세상을 취하게 하는 그런 정권이지요. 그 멸망 때문에 온 세상이 울 것으로 18장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멸망 때문에 승리의 찬양이 세 번 나와요. 뭐 짐승이 할렐루야, 장로들이 할렐루야, 천사들이 할렐루야 해서 세 번의 할렐루야가 나옵니다. 그리고 19장에 백마 탄 자의 승리와 짐승이 잡힌 이것이 실은 바벨론 멸망의 핵심이지요. 멸망시킨 구체적인 방식이지요. 그리고 나서 20장에 보면은 용이 천년 동안 갇히고, 첫째 부활한 자들은 왕노릇하고, 용이 잠시 놓이면은 큰 전쟁이 일어납니다. 곡과 마곡의 큰 전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실은 아마겟돈 전쟁하고는 다르지요. 아마겟돈 전쟁은 천년 왕국 이전 문제지요.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계시록 해석에서 아주 논난이 심한 것이어요. 19장을 보니까 백마 탄자와 승리. 짐승이 사로잡히고 심판을 받습니다. 짐승은 누굽니까? 용의 집행자이지요. 그러니까 용의 집행자들이 죽었다는 말은 우리 식으로 하면 그리스도께서 폐한 식이어요. 하나님이 집행이 그러니까. 용의 집행자가 두 짐승이어요. 누가 이겼습니까? 백마 탄자가. 그분의 이름은 진실이라. 충신이라. 하나님의 말씀이라. 그리스도의 재림에다 표상을 맞추고 있지요. 이 세상 나라는 바벨론 멸망에서 망하고, 그리고 그가 오시면 두 짐승은 사로잡히고, 그러니까 용의 부하들이 전부 잡히는 것이어요. 그리고 나면 누가 잡힙니까? 20장에 보니까 용도 잡히지요. 그러니까 순서가 꺼굴로 되어 있지요. 바벨론은 멸망, 두 짐승의 멸망, 용의 잡힘. , 짐승, 바벨론이 아니라. 그것은 처음의 설명이었어요. 12장부터는 용부터 나왔지요. 용이 나오고 두 짐승이 바다와 땅으로부터 나오고, 그리고 그 도성이 바벨론이고, 이런 순서로 12장부터 되어 있었지요. 그런데 이제 바벨론 멸망부터 말했을 때는 마지막 멸망인데 바벨론이 망하고 두 짐승이 잡히고 용이 잡히면은 꺼꿀로지마는 완전히 짐승의 왕국이 무너진 것이지요. 그렇게 하고나면 천년 동안 왕노릇한다. 누가?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이. 그들은 순교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배반한 자들이 아니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천년 동안 왕노릇하고 나서 보니까 용을 잠시 노아 주면은 대대적인 반란이 일어나서 곡과 마곡의 군대를 끌어들이고 대대적인 전쟁이 있고, 그때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서 전부 망하겠지요. 그리고 하늘에서 흰 보좌가 나타나서 이제는 모든 죽은자들이 살고 그리고 책에 기록된대로 행위대로 심판을 받으리라. 그때가 둘째 사망이 그때는 불에 영원히 들어간다.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계시록 순서를 보면 그렇게 돼 있어요. 그런데 아까 처음에 설명했던 것처럼 19장에 분명히 백마를 탄 사람은 예수님의 재림이고 두 짐승이 잡힌다고 했는데, 그리고 나서 용이 잡히고 또 천년 동안 왕노릇하고 또 배반하고, 그러면 그것이 말이나 되는 이야기냐? 예수님은 승리하셨으니 재림하면 그 원수들은 완전히 초토화되고 다시는 반격을 못해야 되지,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하면 부활이 일어나서 모든 신자들은 가짜들도 부활해서 여기서는 벌받는다는 말이 없지요. 천년왕국은. 의인들의 부활에다 초점을 맞추고 있지요. 모든 죽은자들의 부활은 백보좌 뒤에다 맞추고 있지요. 그런데 인제 그전의 해석을 그렇지안해요. 예수님 재림하면은 끝이고 다 부활해서 함께 심판받는다. 그때는 원수는 영원히 멸망받아야 된다. 그런데 계시록이 기록된 순서로 보면은 분명히 백마 탄자는 재림하시는 예수님인데 그러고 용은 사로잡혔다고 했는데 또 천년동안 왕노릇하고 또 용을 놓아주니까 배반하고, 이것이 무슨 말이냐? 이말이어요. 그러니까 이것은 문자 그대로 읽으면은 안되겠다. 재림하면 끝장이 나야되지 또 무슨 짐승이 꼴망꼴망 일어나야. 그러니까 이것은 안된다. 그런 것이 아니고 19장까지 한 단락이다. 백마타고 오시면 승리, 재림 끝. 20장은 역사의 초기로 다시 돌아가야 된다. ? 용이 잡힌 것이 우리 구원이니까. 천년동안은 교회시대다. 천년이 끝나면 교회 시대가 끝나면 잠깐 마귀를 풀어준면은 그때 대대적인 배교고 예수님 재림해서 심판한다. 이렇게 맞추는 것이어요. 이제까지 무천년은 그렇게 배웠지요. 재림후에도 또 반란이 있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복음전파할 때 사탄을 사로잡지 않고야 어떻게 사탄의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면 하나님 나라가 여기 임한 것이다. 강한 자는 결박되었다. 그렇게 했지 않냐? 여기도 용이 결박되었다고 했지 않냐? 이것은 역사의 초기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어요. 그러면은 그것은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그들의 신학적인 체계로는 맞아요. 똑같이 구원받고 예수님 재림하면 끝. 이론은 다시는 무슨 시대가 없다. 그때는 반란군도 없고 아무 것도 없다. . 이렇게 하면 19장과 20장을 나누어야 되겠지요. 단락을 나우어야 되어요. 19장까지는 재림으로 끝이고 20장부터 새로운 출발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나누어 주어야 돼요. 무엇 때문에. 방금 말한 구원론 때문에. 그러니까 기존의 해석은 이 구원론을 먼저 토대로 해놓고 19, 20장을 나누는 것이어요. 우리처럼 연속해서 읽으니까 자기들의 체계에 안맞아버려요. 그래서 나누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누는 것이 권위가 있냐? 기록된 형식으로 봐서도 나눌 의미가 없고, 성령 안에서 그렇게 보면 나눌 의미가 없고, 내용으로 봐서도 일곱으로 보았을 때, 앞에 처음에는 용, 그 부하들이 바다의 짐승, 바벨론 도성이 있지요. 그리고 심판은 마지막 바벨론, 짐승 했으니까 용이 나와야 되겠지요. 이것은 단락으로 묶어져야 되지 용, 짐승, 바벨론, 꺼꾸로 바벨론 짐승했다가 용은 딱 떼어갖고는 초기로 돌려버리면 안맞지요. 그러니까 이것은 기록 형식에도 구분에도 안맞고 내용상으로 구분해도 안맞고 단지 무엇 때문에 구분하느냐? 구원론 체계를 갖고 나누어 버린 것이어요. 재림하면 끝이지 무슨 재림 후에 천년왕국이 있냐? 천년왕국은 용이 잡힌 역사의 초기, 복음 시대를 다시 설명하고 있는 것이지 역사의 끝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나누어버리고 있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그전 해석법은 기록 형식에도 나눌 권위가 없고 내용상으로도 악의 삼두 세력이 용, 짐승, 바벨론 한번 나누고, 꺼꾸로 인제 바벨론, 짐승, 용이 한꺼번에 묶어져야 되지 용만 따로 떼어 가지고 역사의 초기로 돌려버리면 안맞다 이건. 이래도 안맞고 저래도 안맞아요. 그러니까 우리 식으로 구분하는 것이 맞아요. 단지 문제는 왜 이런 구분을 해놓고도 힘을 못썼느냐? 성경을 읽어 보니까 그대로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구원론 체계로 신학을 전부 통일할려고 하니까 그렇게 읽으면 문자주의다. 이렇게 한 것입니다. 성경은 해석해야 되지, 어떻게 그렇게 읽어버리냐? 그러면 예수님 재림한 뒤로도 천년 동안 통치한 뒤로도 힘어 없어가지고 반란군이 일어나면은 그때서야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고 그러면은 그것이 무슨 완전한 왕국이냐? 예수님은 영원히 승리하셨는데. 그러고 지금 잘 믿을 필요가 뭐가 있냐? 7년 환난 있을 때 조금 조심하다가 그 다음 전쟁이 있을 때 좀만 참고 천년 왕국 들어가면 좋을 것인데 그리고 구약 신자도 우리 같이 똑같이 구원받고 이 생각을 해요. 그런데 거듭 말씀드리지마는 성경은 개인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안해요.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운명이라는 것은 계시록대로 하면 백보좌 심판에 드러나요. 모든 죽은자들이 일어나서 운명이 나타나지 만은 그 역사는 그런 것이 아니어요. 세종대왕이 우리보다 왕이어도 아이스크림을 먹은 적이 없지요. 석빙고 있었구나. 브라보콘을 먹었겠어요. 한강에 어름이나 잘라다가 두었다가 냉수나 마셨을까. 그 역사 때문에 그런 것이어요. 역사만 삶의 현장이고 실체고 생명이어요. 다른 비유를 들자면 우리는 철학이라 이런 생각을 해요. 철학은 변하는 않는 보편을 말해요. 요새 여러분 김용욱씨인가 하는 사람이 노자 강의를 하지요. 그것이 말하자면 존재론 철학입니다. 그런 것인데 동양이나 서양이나 똑같아요. 무슨 말이냐 하면은 우리 사랑의 비유로 하자면 그래요. 약혼한 사람이나 결혼한 사람이나 여러분은 사랑은 같다고 생각하지요. 내 마음이 사랑이니까. 우리는 거기다 초점을 맞추어요. 그래서 약혼 때는 그렇게 가슴이 뛰었는데 결혼하고 나니까 손을 만져도 내 손같고 감각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결혼을 무엇할려고 했는고, 이 생각이 든다 그말이어요. , 사랑이란 마음을 주관적인 마음만 갖고 따져요. 이 사랑은 별변하다. 이렇게 따지는 것이어요. 그런 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철학이어요. 그렇게 따지니까 구원도 전부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그건 개인적인 이야기이고 마음에 사랑은 우리는 약혼이냐 결혼이냐 삶의 질을 설명한다. 약혼한 사람은 약혼한 사람이상의 사랑을 못해요. 제 아무리 사랑해도 10시 되면 자기 집에 가야된다고 했지요. 각자 집으로 가야돼. 사랑한다고 손잡고 전붓대 밑에 서 있으면 안되요. 일찍 들어가야 돼. 그런데 결혼하면은 대판 싸우고도 한 집에 있어야 되요. 그것이 정상이어요. 거기다가 주관적인 문제는 약혼은 약혼대로 사랑을 채우고 결혼은 결혼대로 사랑을 채우는 것이 자기 일이지 자기의 주관적인 마음을 가지고 사랑을 평가해 가지고 아이고 결혼은 사랑의 무덤이다. 약혼 때가 좋았다. 그러고 있으면 이것은 해석된 것이 아니어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그러니까 결혼했을 때 결혼의 의미를 못들어내면 그 사람의 부족이지 결혼이 약혼보다 질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말이어요. 그런데 우리는 개인의 주관을 갖고 따지니까 그때가 좋았노라. 그러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러니까 결혼의 의미를 몰라버려요. 그래도 왜 부부싸움을 하고도 사는가? 결혼이라는 힘 때문에 살아요. 자기 마음은 이미 한라산 백두산 멀어졌어도 결혼이라는 관계가 붙들고 있으니까 안깨어져요. 약혼은 아무리 사랑해도 약혼의 조직이 약한 조직이거든요. 그것은 쉽게 깨질 수가 있어요. 지금 무슨 말인가 아시겠지요. 성경은 그 역사를 강조하고 있는 데 우리는 개인의 종교심리에다 호소를 해버려요. 그런데 우리는 개인의 종교 심리가 사실인 것 같거든요. 그래서 속아버리고 있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결혼은 결혼대로 그 사실을 누려야 되는 것이고 약혼은 약혼대로 누려야 되는 것이지 그 질서를 모르고 주관적으로 객관적인 질서를 해석하면 안맞아요. 지금 설명하는 의미를 잘 알겠지요. 그러니까 이조때 사람은 제 아무리 영웅이어도 오새 공기총 가진 사람보다 힘이 없어요. 한방 맞으면 가는 것이어요. 그리고 김덕룡 장군이 무등산에서 말타고 태봉산까지 뛰었다고 그러는데 어떻게 뛰었는지 몰라도 요새 티고 탄 사람보다 느려요. 요새는 열 일곱 살 짜리도 티코 타면 번쩍 가버리지 안해요. 그때는 몰라. 김덕룡이 혼자나 했는가. 요새는 다 해버려. 왜 그러냐 하면 역사 때문에 그런 것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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