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성경: 요한계시록 1:
1장을 읽고 그 다음에 제일 끝에 22:10-를 더 읽겠습니다. 구속사를 더 이해한 뒤로부터 마태복음부터 강론하기 시작했는데 이 앞에는 요한복음가 요한서신을 강론했었습니다. 왜냐하면 마태, 마가, 누가복음, 물론 복음서마다 차이는 있지마는 일반적으로 공관복음 그래서 비슷한 데가 있고 요한복음은 특별히 색체가 다르기 때문에 마태복음, 요한복음 그리고 요한서신들을 강론했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강론하기 전 빌립보서를 사이에 강론한 이유는 우리들은 장차될 일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런 일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우리 자신들을 어떻게 하나님 앞에 봉사할 것인가, 그것이 실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사는 핵심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증거함으로 다시 눈을 세상으로 돌려서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성찰하는 문제보다도 세상을 연구하고 세상이 악하기 때문에 우리는 거룩하고 이런 식으로 이분법적인 사고 때문에 우리 자신들이 누군지를 모르고 세상을 정죄하느라고 우리 자신들은 거룩한줄 알기 때문에 중요한 빌립보서를 강론했었습니다. 더구나 요한계시록을 강론하면서 제가 대단히 조심스러운 것은 실제로 요한계시록은 물론 장차 될 일을 펼쳐 보이고 있지마는 그것은 교회가 어떻게 거룩하게 하나님을 봉사할 것인가, 거기다 토대를 두고 쭉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먼저 일곱 교회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그런 것 때문에 우리들이 세상을 보는 것처럼 다른 교회도 그렇게 보아 가지고 참으로 쓸만한 교회가 없구나, 우리 교회만 괜찮구나, 그런 식으로 생각해서 교회에 소속됨이 우리 자신의 거룩인줄 속아버리고 그렇게 해서 다른 교회를 쉽게 정죄해버리고 그런 일이 있을까 대단히 두렵습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공산당과 싸워서 그런 영향이 있는지 모르지마는 어떠튼 우리들은 가령 국가가 힘을 얻을 때도 가령 여야가 싸우면 힘이 있고 이북을 공격하면 힘이 있고, 교회도 이단을 공격하면 힘이 있고 그리고 그런 일이 없이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세울 것인지, 그런 일에 있어서는 실은 대단히 잘못되어 있습니다. 마치 야당이 여당을 공격할 때는 대단했지마는 정권을 잡고 나니까 그보다 못한 경우가 많은 것처럼 우리들이 이단을 공격할 때는 열열하지마는 그 말씀이 나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런 것을 보는데는 대단히 둔감해서 위험하기는 합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 계시록의 특성이지 장차될 일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그런 것을 알아서 구주 공동시장이 어떻게 되고 중공이 어떻게 무장을 하고 컴퓨터가 어떻게 666의 권세를 드러내고, 그런 일에 성경은 관심을 갖고 있지를 않습니다. 그러니까 혹시 계시록을 강론하는 중에 여러분이 흥미를 잃을련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진정한 우리의 관심은 우리를 사랑하신 그리스도와 그 영광입니다. 그분 때문에 우리의 영광이 있는 것이지 그냥 세상을 연구해서 전쟁을 잘하니까 우리가 영광을 얻고 그쪽으로 되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을 조심하면 되겠습니다. 어떠튼 이번 계시록 강론도 22장이니까 아마 빠른 속도로 나가도 1년 쯤은 걸리겠지요. 그러니까 상당한 기간동안 강론을 해야되겠는데 이번에도 하나님이 이 계시록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더 많이 깨닫고 감사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1장1-3절까지를 강론하겠습니다마는 그래도 전체적인 그 개요를 말씀하는데 치중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성경은 전체적인 흐름, 전체적인 문맥, 그 문맥에서 부분 부분을 풀어야 되지, 전체적인 주제와 그 흐름을 모르고 그 부분들을 풀어버리기 때문에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기 1장1절에 보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웁이라.」 이 1장1-3절까지의 말씀이 다른 방식으로 22:10-에 반복된 것을 아까 본문을 읽을 때 여러분들이 이해를 했을 것입니다. 논문식으로 하면 앞에 서론이 있고, 제일 뒤레 결론이 있고 그 사이에 본론이 있는 구조로 되겠지요. 그래서 이 1:1-3에서 이 책의 성격이 무엇인지,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절에 보니까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그렇게 말씀하는데 무엇을 위한 계시입니까? 이 말씀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 때가 가깝기 때문이다. 이것이 1-3절까지에 있는 말씀의 주 사상이 되겠지요. 하나님의 계시인데 하나님이 예수에게, 예수께서 천사들에게 그리고 천사가 요한에게, 그리고 요한이 그의 교회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이것은 혹히 될 일을 기록한 것인데 이 말씀을 지키면은 복이 있다. 때가 가깝기 때문에 그렇다. 이런 말이 1-3절까지에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항상 여러번 말씀을 드렸지마는 신약 성경도 기본적인 틀은 구약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특별히 구약 중에서도 출애굽기와 신명기, 그것이 성경의 토대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하께 하시는 나라를 건설한 곳은 시내산이요 그리고 그 나라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신명기이기 때문에 시내산 언약과 모압언약 이것이 항상 성경의 토대가 되고, 이스라엘 백성이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그러므로 가나안 땅 언약인 모압 언약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약의 언어들도 항상 그 언약의 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계시록은 많이 읽어도 모른다고 하니까 하여튼 여러분이 많이 읽었겠지요. 모르면 모를수록 더 많이 읽으셔야 됩니다. 모르니까 신령하다고 덮어놓고 눈감고 하나님, 하나님 하면 더 모르고, 그리고 우리 목사님이나 아시겠지 그러면은 여러분은 목사의 종이 되는 것이니까 그렇게 하면 안되고, 목사의 여러분의 유익이 되도록 세운 것이지 목사님이 설명해야 알고 그렇지 않으면 나는 모르겠다 그런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에 여러번 읽으셔야 될 것입니다. 읽어 보니까 기분이 어떻습니까? 의시시하고 무시무시하고 대판 싸움 뿐이지요? 레위기는 읽어보면 있는 것이 제사고 있는 것이 전부 더럽고 부정하다. 전부 이런 것만 있어요. 그런데 열왕기를 보면 전부 왕들 이야기만 있지요. 백성 이야기는 한나도 안나오고, 전부 왕이 어떻고 그런 이야기만 나옵니다. 거의 비슷비슷하게 나옵니다. 그리고 계시록을 보니까 순 싸움 판이어요. 그러니까 아, 이것은 주제가 싸움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겠지요. 내용은 하여튼 싸움인 것을 알 수 있겠어요. 그런데 이런 싸움이 주제이면은 싸움이 주제면은 제일 뒤에를 보니까 하늘에서 예루살렘이 내려오고 땅이 에덴처럼 회복되고 그런 낙원 이야기가 나와요. 그러면 여러분은 구약에서 항상 무엇을 연상해야 되겠습니까? 구약과 연관했을 때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며 탄식했을 때 하나님이 친히 모세를 보내시고 또 시내산에 강림하시고, 그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시고 시내산에서 언약을 세우시고 그때 하나님께서 애굽과 대판싸우셨지요. 그리고 그들을 인도해서 가나안 땅, 언약의 땅에 심으셔서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 백성을 삼으셨습니다. 여기 4장 뒤에도 보면은 그 하나님 아버지를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출애굽기 20장을 보면은 이스라엘 백성을 제사장 나라 백성으로 삼으셨지요. 그러니까 구약의 큰 싸움들은 무엇이냐 하면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낼 때 큰 싸움이 있었고, 그 다음에 무슨 싸움이 있었느냐 하면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바벨론에서 건져내서 가나안 땅으로 보낼 때 그렇게 되어 있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서 싸우신 이야기는 근본 출발은 출애굽기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하나님께서 새로운 종말론적인 구원은 어디냐? 바벨론 구원이어요. 그리고 그 안에도 하나님께서 싸우신 법은 없는가 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완전히 바알의 왕자로 전락했을 때 하나님께 엘리야나 엘리사를 통해서 적들과 싸우셨지요. 그러니까 특별히 그런 것들이 모델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은 구약에서 참고할 책들은 무엇이겠습니까? 애굽에서 나올 때는 출애굽기요 그리고 바벨론 포로잡혀있는 백성을 위해서 다니엘이 기도했을 때 어떻게 짐승의 권세를 파멸시키고 하나님께서 다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에 불러들이시는데 그때 그 땅이 낙원이 될 것인가, 그런 구원을 설명하고 있는 것은 다니엘서지요. 그러니까 구약에서 특별히 참고할 서적은 출애굽기와 다니엘서가 아마 중요한 모델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다 좀 덧봍이면은 짐승의 권세와 하나님의 아들이 싸우는 것이 다니엘서인데 그리고 돌아온 뒤로도 아직 성전이 완결되지 못하고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싸웠어요. 그때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완전한 승리를 주실 것인가, 하는 것을 펼쳐 보이는 것이 특별히 스가랴서지요. 그러니까 구약에는 다니엘서가 제일로 중요할 것이고 거기다 스가랴서 그리고 포로중에 있는 백성에게 어떻게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분배하고 새로운 성전이 거기 설립되고 성전으로부터 물이 흘러내려서 아라바 바다를 회복시키는가, 새로운 가나안 땅과 새로운 성전을 말하는 것이 포로 중에 에스겔서에요. 그러니까 에스겔서도 그렇게 중요한 본문이 될 것입니다. 이런 책들이 이 성경을 풀 때 참고할 책들입니다. 그런 것들이 출발점이 되고 모델이 되어야 될 것이어요. 그렇게 보았을 때 「예수 그리스도이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이 문장대로 할 것 같으면은 게시록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반드시 속히 될 일입니다. 여기서 반드시 속히 될 일을 알렸다. 반드시 속히 될 일은 무엇인가? 이제 내용에서 알겠지요. 어떻게 풀어지는지. 그런데 반드시 속히 될 일은 내용에서는 어디를 잡는 것이 제일 좋으냐 하면은 11장15절을 잡는 것이 제일 좋을 것입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하늘에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세세토록 왕노릇하시리로다.」 이것이 속히 될 일의 내용이 될 것이어요. 왜냐하면 일곱째 나팔을 불었을 때 그때 하나님의 심판이 한 단계로 마무리가 되어요. 그 마무리 시점에서 말하기를 세상이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한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승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 내용입니다. 반드시 속히 될 일인데 그리스도와 교회의 승리, 무엇으로부터 승리입니까? 용과 바벨론과 싸워서 그리스도와 교회가 영원히 승리한다. 그것이 속히 될 일의 내용이 될 것입니다.
속히 될 일을 구분하면은 어떻게 구분하느냐? 그것은 11장19절을 보면은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치 될 일을 기록하라. 네 본 것은 네 오른 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아마 이런 것이 구분법이 될 것입니다. 장차 될 일인데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 그런 식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도 내용 구분은 읽어가면서 하겠습니다마는 그것이 이 계시록의 내용이 될 것이어요. 그런데 설명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22:10-에서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들과, 계시나 예언이나 같은 말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계시 그러면은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드러내심,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정의해서는 안되고 여기 본문에서처럼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를 펼칠 것인지, 그런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여기서 계시입니다. 왜 반드시 속히 될 일, 여기서는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구약 같으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이런 말을 쓰지를 않지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런 말을 쓸 것인데,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그래서 예수를 하나님의 자리에, 구약의 여호와의 자리에 그대로 대치시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설명을 뒤에서 보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인데 어떤 계시입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그냥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에게 주셨다는 의미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하는 것은, 일곱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했을 때 이 계시록에서는 아마 교회의 사자들이 될 것이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고, 예수께서 천사를 통해서 그 종 요한에게, 요한이 그리고 그 종들에게 일곱 사자들에게 이런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한 가지 생각할 것은 신약 성경을 보면은 항상 예수님께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마태복음은 그렇게 말씀하고 요한복음은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을 내가 하느니라. 그렇게 해서 아버지와 자기를 일치시킵니다. 그러니까 거기는 사이에 천사가 낀 적이 없어요. 예수께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그의 오심을 올리는데는 천사의 사역이 있지마는 그 뒤에는 천사가 이렇게 저렇게 계시를 전달하고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것이 실은 신약의 구조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구약 때는 하나님께서 휘장으로 가리우시고 모세를 만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보좌를 호위하고 수종드는 천사를 통해서 모세를 만나셨고 그리고 모세가 백성들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이 구약의 증거 방식이었습니다. 특별히 갈라디아서에서 천사들로 말미암아 율법을 받은 것이라고 그렇게 구약 증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휘장이 열렸고 하나님께서 친히 아들을 보내시기 때문에 이제는 천사들을 통해서 계시를 전달하고 그런 방식의 시대를 끝나야 실은 맞습니다. 만일 우리가 아들과 함께 하나님 품 안에 있고 아들과 함께 보좌 우편에 있는 데, 지금도 천사를 통해서 무엇을 보아야만 되고 천사만 만나도 달달 떨고 있으면 그런 것은 아직도 휘장 밖에 있는 질서와 같아서 옳은 방식이 아닙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에서 전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면은 그것이 아버지의 말씀이고 그것을 열두 제자들이 듣습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족장들, 야곱의 열두 아들에게서 하나님의 약속이 완성된 것처럼 열두 사도들이 다 함께 제자단이었지 특별히 베드로만 듣고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복음서들의 방식이어요. 그런데 계시록에서는 완전히 구약의 틀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과 계시라 하는 말까지라도 구약 언어 개념인데다가 틀까지 그렇게 돼 있어요.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예수님께서 천사들에게 그리고 천사가 요한에게, 요한이 교회에, 이런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여전히 천사들의 활동을 여기서 말하고 있지요. 왜 여기서는 그렇게 말하고 있느냐 하면 구약의 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특벽히 계시록은 소위 묵시록 이렇게 말하는데, 가령 예언 그러면은 역사를 펼쳐 보이는 미래상을 보이고 있지마는, 묵시 그러면은 어떻게 하늘의 일을 땅의 비유법으로 설명하는가? 그런 것이 묵시 해서 약간의 단어적인 차이는 있지마는 거의 같이 쓰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쓰고 있기 때문에 구약의 예언의 언어들을 사용하고 있어서 이런 구조들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셨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다. 하나님의 자리에 예수를 그대로 대입하는데 그는 아버지로부터 이것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은 그는 중보 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천사가 계시한 것이 아니라 아들이 계시한 것처럼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계시하는데 천사가 요한에게 해서 구약 틀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은 이것이 구약에 예언될 묵시적인 언어들 그런 구조들을 가지고 하늘의 질서들을 설명하기 때문에 이런 구조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여기서 강조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모든 일을 펼쳐 보이는 것은 곧 아들이십니다. 4장에서는 그가 하나님의 인봉한 책을 떼는 분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가 보자에 계신 영광스러운 분이기 때문에 그리고 일찍 죽임을 당한 분으로 부활하셔서 일어나신 분이기 때문에 모든 하나님의 섭리는 그가 집행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인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것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했습니다. 여기서는 주로 환상들을 펼쳐 보이기 때문에 본 것이라는 말로만 묻고 있습니다. 물론 말씀도 있지요. 그랠도 본 것 하는 것은 묵시적인 환상들을 주로 하기 때문에 본 것을 다 증거했다. 이 본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입니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는 예수를 그리스도를 증거하는가, 그런 것 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인데 이 말씀을 누가 맡았습니까? 예수께사 맡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가 펼쳐 보일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는 하나님의 말씀이신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증거하신 것, 이렇게 하는 것이 이 문맥에서 맞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는 것보다도 예수를 그리스도께서 증거하신 것. 어떻게 증거했습니까? 천사를 통해서 요한에게 보여주었고 요한에게 증거했지요. 그런 말이 되겠지요. 그런데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는 말과 똑같은 것은 결국 여기서 설명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왕이시다. 그가 모든 역사를 펼쳐 보이시고 세상은 로마의 황제를 왕이라고 하지마는 예수께서 진정한 왕이시고 진정한 하나님이시다. 그것을 증거하느라고 교회는 핍박을 받고 있어요. 이 9절에서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나 요한은 나의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란 섬에 있더니 했을 때 이것은 예수께서 보여주시고 증거한 것이면서도 그것은 동시에 하나님께서 예수를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오직 예수만 주님이시다. 이것을 증거하느라고 교회는 로마로부터 핍박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말은 거의 상관없이 맞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 문법적으로 더 강조점을 두자면은 하나님의 말씀이신데 이것을 맡아서 펼쳐 보이신 것은 그 아들 예수십니다. 요한은 이것을 들었고 보았습니다. 그는 본 것을 다 증거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증거하신 것,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이 문맥의 흐름에는 더 맞을 것입니다. 본 것을 다 증거한 것이 아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자들과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니라. 그러면서 이런 저런 복이 있다. 일곱 교회에 대해서 이런저런 복을 일곱 번 반복합니다. 여기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자와, 여기 1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3절에서는 예언의 말씀, 이 예언은 무엇입니까? 장차 속히 될 일. 이것이 전부 서로 설명하도록 되어 있지요. 이 말씀을 읽는자와 듣는자들과 그 가운데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여기서 읽는자는 단수로 되어 있고, 듣는자들과 그 가운데 지키는 자들은 복수로 되어 있는데 왜 이렇게 돼 있느냐 하면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언약의 말씀을 하시면은 모세가 그 언약의 말씀을 낭독합니다. 그러면 백성이 아멘으로 화답하고 언약을 확증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말씀을 지키면은 복을 받습니다. 이런 구조, 신약의 구조로하면 예배 구조가 되겠고, 구약식으로 하면은 언약체결은 언약의 중보자가 언약의 말씀을 읽으면은 백성들이 아멘으로 화답하고 확증함으로 언약이 확정되고 그들이 그 말씀을 지킴으로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 구조 때문에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 그 지키는 복음 무엇을 말하는가? 일곱 교회에서 복을 말하고 있지요. 그리고 아까 읽었던 것처럼 22장 제일 끝에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는 이유가 언약을 확증하는 의미로 처음에 있었던 언약의 서언들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잘 지켜라. 그런 말씀이지요.
그러면은 이들이 받는 복은 무엇인지, 이제 일곱 교회에서 설명하겠습니다마는 이제 이 말씀을 읽으면은 그도 언약의 중보자이기 때문에 그도 언약에 포함되어야 될 것입니다. 듣는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 듣고 지키는 자들은 같은 사람들이 되겠습니다. 듣기는 들어도 안지키고 그런 것이 아니라 듣는자들은 다 지키는 자들입니다. 바로 그런 구조로 말하고 있고, 그들이 그 언약의 말씀을 지키면은 이 세상 모든 이방 민족에 대해서 제사장 나라로 큰 복을 받을 것이고 그들은 만국 백성의 머리될 것이고 꼬리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구약에서 주었던 복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을 만민의 장자로 택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의 모든 복은 실은 그들이 모든 이방의 장자로서 받은 복이기 때문에 설명을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계시록에서는 그런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교회에 상황이 어디에 있느냐? 교회의 상황이 당시 로마 정권 밑에서 교회가 핍박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시 9절을 보십시다. 나 요한은 너희의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환난과 나라와 참음은 같은말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께서 주신 그 말씀을 증거할려고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는데 곧 그것이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가 복음을 증거하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밧모라 하는 섬에 귀향가 있었습니다. 그때 여기 10절에 보면은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같은 큰 소리를 들으니, 주의 날은 교회가 주기적으로 모여서 예배하는 날이지요. 그때 하나님께서 큰 음성으로 말씀하셨는데 이러저런 일을 그가 보고 증거한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요한은 로마 정권으로부터 핍박을 받아서 밧모라 하는 섬에 귀향가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 같으면 그런 섬이 멋있는 휴향지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그때는 아주 고약한 섬에다가 귀양을 보냈겠지요. 이때가 어느 때냐하면은 여러분이 아는대로 하면은 그 크리스마스될 때마다 쿼바디스 영화하지요.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거기 보면은 네로가 눈물 잔에 눈물을 받는 것이 있지요. 로마성을 불질러놓고, 그래놓고 자기가 당하게 생기니까 기독교인들이 불을 질렀다. 그래서 기독교도들이 살고 있는 곳이 지하 동굴이어요. 이북처럼 땅굴 판 것이 아니고 지형이 석회 동굴이어서 거기서 예배도 하고 거기서 죽으면 묘지도 쓰고, 지금도 많이 발굴되고 있지 안해요. 그렇게 숨어서 예배할 때도 대단히 핍박을 받을 때입니다. 그때 문제는 로마의 정치체제는 독특한 것이 로마의 황제는 징치적인 왕일 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왕이어요. 로마의 황제는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 그것이 로마가 가지고 있는 국교에요. 그래서 로마의 황제는 주시다. 그렇게 고백하고 경배해야 국가 신을 섬기는 것이고 오직 예수만 주시다. 그러면 다른 주가 있는 줄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반역죄가 되는 것이어요. 예수님을 고발할 때도 그렇게 했지요. 그렇게 해서 로마 군대가 쳐들어오면 우리 민족이 망할 것인데 한 사람을 죽이고 우리가 살아야 되겠다. 그렇게 해가지고 예수님을 넘겨준 것이어요. 우리에게는 가이사 외에는 왕이 없나이다. 그렇게 해가지고 넘겨준 것인데 예수께서 부활하신 뒤로 예수만 주시다. 너희들이 죽인 예수를 하나님은 주와 그리스도를 삼으셨으셨다. 사도행전의 고백이요 사도들의 복음 전파요 예수님는 주이사. 그런데 그때는 로마의 평화, 로마가 전 세계를 통치하고 로마의 황제가 신적인 권위를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어요. 그러니 그 당시 국가 종교라는 것은 황제 숭배입니다. 그런데 오직 기독교만 예수만 주시다고 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가로부터 큰 핍박을 받았고, 처음에는 유대교의 일부인줄로 알고 많이 옹림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달라요. 큰 핍박을 받았고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네로는 그 모든 것을 그들에게 뒤딥어 씌운 것처럼 그렇게 돼 있지요. 그렇게 핍박을 받아서 지금 요한 사도가 귀양가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지요.
그렇게 했을 때 이들이 받는 복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의 장자로 제사장 민족으로 부르심을 입었기 때문에 그들이 모세가 읽어준 말씀을 다 지키면은 그들은 제사장 민족으로 이 축복을 받을 것이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세우실 그 영광의 나라를 상속받을 것입니다. 대대로 그들은 존귀한 백성이 되고 지혜로운 백성이 되고,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에서 이 말씀을 잘 지켜라. 거듭거듭 명령하지요. 이 말씀을 잘 지키면은 가나안 땅의 복을 받고 안지키면은 언약의 땅에서 내처지리라. 잘 지켜라. 이 말씀을 했는데 이 언어 구조로 지금 요한계시록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증거한 말씀을 잘 들어라. 왜 잘 듣습니까? 지금 교회가 큰 핍박을 받고 있지 않냐? 예수의 주되심, 예수께서 생명의 주가 되심, 이것을 부인하고 로마의 황제를 섬기고 있는 큰 핍박을 받고 있는데도 너희들이 내가 준 말씀을 잘 지켜라. 그래서 주께서 속히 오시면은 세상 나라는 망하지고 주와 그리스도가 승리하면은 교회도 승리할 것이고 영원한 나라를 상속받을 것이다. 그런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로 속히 될 일이어요. 그래서 먼저는 그가 증거한 복음을 핵심으로 설명을 하고, 그리고 나서 당한 처지를 말하면서 그 다음 교회에 편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계시록에 있는 복음의 핵심은 실은 4절 이하가 될 것이어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 충성된 증인으로 먼저 나신 이,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시니 영광이 있을지러다. 그가 속히 오리라. 이것이 실은 계시록에 있는 전 복음의 핵심이어요. 4-8절까지가 계시록에 있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복음은 그의 나라와 제사장이 되었고 주님은 속히 오실 것입니다. 그분은 죽은자 가운데 살아나신 분이시오 우리를 제사장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는 창조의 처음이요 마지막입니다. 그가 오시면은 세상은 끝날 것이어요. 이것이 그들에게 전파된 복음이요 이 복음을 끝까지 붙드는 것이 지금 교회에 권고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먼저 요한 사도는 자기가 예수의 증거 때문에 밧모섬에 귀양가 있는 자기 형편을 알리면서 그는 이처럼 핍박을 받았지마는 하나님은 그를 세상의 선지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는 참으로 복받은 사람입니다. 아울러 그만 핍박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해 있는 교회까지라도 핍박을 받았지요. 그래서 일곱 교회의 상황을 말하는데, 일곱 교회의 상황을 말하기 전에 교회에 거니시는 주님을 먼저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곱 별의 붙들고 일곱 촛대 사이에 거니시는 분, 이것이 네가 본 비밀이다. 이렇게 핵심으로 말하고 있지요. 실은 앞의 문맥까지라도 그것으로 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시내산을 보면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셨을 때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먼저는 시내산에 오기 전에 큰 복을 주었지요. 홍해를 건너기 전에 복을 주고 시내산에 강림하셔서 나는 너를 애굽에서 건져낸 하나님이 아니냐? 자기를 설명하지요. 그리고 나서 너희들은 이렇게 이렇게 하면 좋을 것이다. 이제 설명을 하겠지요. 그러니까 여기서도 요한 사도가 자기가 당한 고난을 말하면서 너희들도 그런 고난 가운데 있지 않느냐. 그런데 너희를 붙드시고 너희와 함께 하시는 분은 누구시냐? 하나님을 먼저 설명합니다. 그분은 누구십니까? 마징가 같이 생겼지요. 다리가 번쩍번쩍하고 입에서 칼이 나오고, 오른 손에 일곱 별을 붙들고 일곱 촛대 사이에 다니셔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요 일곱 별은 일곱 사자니라. 이것이 요한이 본 모든 비밀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부활하신 주님께서 교회에 좌정하셔서 교회가 새로운 성소입니다. 새로운 촛대입니다. 거기 일곱 사자들을 붙들고 계시지 않느냐? 나다. 내가 원수와 싸울 것이다. 누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겠는가? 승리하신 주님께서 교회에 좌정하시고 그리고 그의 사자들을 붙들고 계시는데 누가 교회를 무너뜨리겠는가, 나다. 먼저 자기 자신을 설명합니다. 마치 애굽에서 건져내신 여호와를 말씀하고 나서 그들이 지킬 법을 설명하는 것처럼 자기 자신이 어떻게 교회를 권세있게 사랑하는 지를 어떻게 주의 교회를 붙들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나서 그 다음에 일곱 교회를 권면하고 그리고 나서 장차될 일을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너희들이 이런저런 고난을 당하고 있지마는 이겨내라. 이기면은 이러저런 상급이 있지 않느냐? 이기는 자는 상을 줄 것이다. 앞으로 역사는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지금만 너희들이 고난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런 고난이 이렇게 이렇게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이 이기면은 상을 받을 것이다. 핵심은 일곱 교회에 대한 권면입니다. 로마의 황제를 이겨내라. 그런 모든 배교의 정치를 이겨내라. 그리스도을 끝까지 고백해라. 그리하면 너희들이 영원한 상급을 받을 것이다. 앞으로 이보다 더 큰 핍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든든할 것이다. 이겨내라. 마지막에 어떻게 말합니까? 세상에 대대적인 배교가 있어도 주님은 승리하실 것이고 그리고 하늘에서 예루살렘이 내려올 것이고 그리고 땅은 낙원처럼 회복되어서 이제는 온 땅이 지성소로 구속이 되고 그리고 생명강이 길 가운데로 흐르고 생명이 온 땅에 충만해서 생명이 충만할 것이다.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겨내라. 주님은 속히 오신다. 너희 가운데 계신 그분이 그 영광의 나라의 왕이 아니냐? 그가 오시면은 어린양이 친히 등불이 되니까 다시는 등불이 필요 없을 것이다. 나다. 나를 붙들어라.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 계시록이어요. 그러니가 앞으로 미래에 펼쳐질 재미있는 일은 지금은 없는데 나중에 있는 일이 아니라 지금 로마 교회가 당하고 있는 일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고 이런 일을 앞으로 더 심하게 진행될지라도 염려하지 말아라.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지 지금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나중에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날 것이니까 잘 연구하고 있어라. 그런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핵심은 일곱 촛대 사이에 일곱 별을 붙들고 계신 분, 그것이 요한 사도가 본 비밀이라고 그렇게 1장 끝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알아라. 그런 말이지요. 그런데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전체적인 내용을 반드시 속히 될 일, 이런 한 마디로 묶고 있는데 계시록은 일곱이라는 숫자들이 많이 나옵니다. 일곱 교회에 편지한 것처럼 일곱이라는 숫자가 많이 나와요.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 일곱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어요. 그래도 제일로 중요한 것은 이런 상징적인 구분으로 내용을 먼저 해석하고 구분하지 말고 기록한 상식을 따라서 구분하는 것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전부가 상징적인 책이기 때문에 어느 내용을 한가지 해석을 해놓고 구분해버리면은 그것은 자의적이 되기 쉽기 때문에 항상 기록된 형식을 보고 할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기록된 형식을 보면은 반복된 구절들이 있습니다. 1장10절에 보면은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이것이 원문에서는 성령 안에서 그런 말인데 네 번 반복됩니다. 여기 1장10절에 있고 그리고 4장2절에도 있습니다.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그런 말이 있고, 그 다음에 17장3절에도 그런 말이 있습니다.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여기서는 감동하였더니 그런 말은 없지마는 성령 안에서 하는 말은 같은 말입니다. 그 다음 21장10절을 읽습니다.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하는 말이 있어요. 이런 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일단은 이렇게 기록된 형식을 따라서 내용을 구분해 보아야 되어요. 그러니가 이런 것이 큰 구분점이 될 것입니다. 이것으로만 구분하면 일곱 구분은 안되겠지요. 그런데 이것은 큰 구분이고 그 안에 구분하면은 아마 일곱으로 맞출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1:10-3장까지는 무엇이냐? 4장2절이 되어도 4장1절은 4장2절을 시작하는 말이 될 것이어요. 그러니까 구분은 4장부터 되겠지요. 상식상은 4장2절이 성령으로 하는 말이 있지마는 4장1절은 2절을 시작하는 말이 되니까 4장1절부터 될 것이고, 17장3절은 형식상으로는 성령 안에서 하지마는 17장1절이 시작하는 말이 될 것이니까 1절부터 시작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3장까지 그리고 4-16장까지 그리고 17-20까지 21장부터 끝까지 이런 구분이 형식상 나누면 큰 구분점이라 그런 말입니다. 그러면 이런 구분을 다시 내용을 보아야지. 이런 구분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면은 우리가 알기 좋겠지요. 알다시피 3장까지는 일곱 교회가 있지요. 지금 요한 사도가 중요한 것은 일곱 촛대 사이에 거니시는 인자 같은 이, 그것이 비밀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리하신 주님께서 영원히 교회에 좌정해 계십니다. 그가 교회의 사자를 붙들면은 교회를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결단코 놓지 놓는다. 그러니 염려하지 말아라. 그가 영원히 승리하신다. 이걸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일곱 교회가 3장까지 있을 것이어요. 그렇게 되어 있지요. 그 다음에 4-16장까지를 보면은 여러분들이 흥미진진하는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요새 무슨 영화들 한 곳에 무엇을 누르면은 짠하고 나타나는 그런 것이 있지 않아요. 그런 것처럼 흥미진진해요. 하나 짝 떼면 무엇이 나타나고 하니까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하는 이야기가 여기 4-16장까지에 다 들어있어요. 그리고 나서 17-20장까지는 바벨론에 대한 심판 이야기가 있어요. 그리고 21장 이하에는 영광의 세계, 하늘의 예루살렘이 내려오고 영원한 아버지의 나라가 펼쳐 보이고 있어요. 그러니까 보십시다. 일곱이 되는가. 3장까지 하나있지요. 4장에 셋이 들어 있지요.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그 다음 17-20장에 바벨론 심판이 있지요. 그다음 21장 영원한 세계가 있지요. 그러면 몇입니까? 여섯밖에 안되지요. 그러면 앞에다가 하나를 붙여야 될란가? 하여튼 일곱이 될 것이어요. 그러니까 형식상 구분이 의미 없는 것이 아닌줄 알지 않겠어요. 일곱으로 구분한 것과 맞습니다. 그러니까 제일로 흥미진진한 내용은 어디가 들어있느냐 하면은 제일 가운데가 들어있지요. 4-16장에 들어있습니다. 인제 이런 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것이 실은 중요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일곱 교회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와 용, 그리고 그리스도와 세상의 싸움, 그런 싸움들이 4-16장까지에 있습니다. 그리고 17장에는 그 싸움의 승리, 바벨론에 대한 승리, 용에 대한 승리, 그런 이야기가 17-20장까지에 있습니다. 21장은 아버지의 나라입니다. 그러면 제일로 해석하는 관점은 어디냐 하면은 4-16장 그런 문제들이 제일로 어렵지요. 그런데 그런 구조들도 반복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항상 먼저 이 1장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언약을 채결하실 때도 나는 누구다. 자기 자신을 먼저 말하지 않습니까? 내가 이러이런 일을 하노라. 그렇게 되어 있어요. 하는 일은 마지막 결론에 들어나게 될 것이어요. 그런데 이 4-16장까지라도 그렇게 돼 있습니다. 이제 역사를 경영하신 분은 누굽니까? 보좌에 앉으신 어린양이다. 다윗 지파의 사자, 이 사람이 인을 뗀다. 일찍 죽임을 당하셨는데 그는 살아나신 분이시지요. 그가 인을 뗀다. 그래서 역사를 펼쳐 보이신 분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고 앞에 하고, 역사는 어떻게 펼칩니까? 인을 하나씩 떼는 것이 역사를 펼친 것입니다. 구약 성경을 펴면은, 역사를 펼치지 않으면은 인봉하고 기록하지를 말아라. 봉해버리고 기록안하면은 그것은 역사가 안펼쳐지는 것이고 인을 떼면은 때가 가깝다. 펼쳐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을 떼는 기사가 앞에 나오는데 인을 떼는 분은 누굽니까? 보좌에 앉으신 어린 양이다. 그가 그의 교회를 위해서 인을 뗄 것이어요. 그 어린양과 그를 경배하는 하늘의 예배 장면이 나옵니다.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일곱이 되면은 마무리가 되는데 이 성경 구절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은 꼭 양파 까는 것처럼 되어 있어요. 일곱을 까면은 새로운 일곱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일곱에가 다음 일곱이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마지막 일곱에가 다음 일곱이 들어있어요. 제가 설명하는 것은 동심원적인 구조에요. 그런 점층법으로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역사가 어떻게 진행되는가 하는 순서를 말하면은 일곱 인인데, 그럼 마지막에 어떻게 펼칩니까? 어린양이 승리했고 교회도 승리합니다. 원수는 망할 것입니다. 역사를 어떻게 펼칩니까? 원수에 대한 심판을 통해서 펼쳐나갈 것이어요. 그래서 일곱 개 인의 내용은 일곱 개 나팔인데 그때부터 심판이 됩니다. 그런데 마지막 견해는 무엇이냐 하면은 왜 하나님이 이런 일을 하는가? 역사의 목표를 펼쳐 보이는 것이 마지막 안에 끼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섯 인이 있고, 마지막 일곱 인이 있기 전에 가운데 무슨 설명이 있어요. 이 설명은 계시록에서 보면은 인치는 자지요. 택한자들에게 인을 치도록까지 바람은 불지 말아라. 왜 하나님이 지금까지 역사를 펼쳐 보이면서도 심판을 보류하는가? 하나님의 백성을 인치기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치는 것이 역사를 경영하는 목표에요. 택한 백성이 다 구원을 받으면은 심판이 끝이 오겠지요. 그렇게 설명해서 마지막 나팔 전에다가 하나님이 역사를 경영하는 의미를 여섯째 나팔 다음 일곱째 그 사이에다가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는 설명이 끼어 있는 것은 항상 그 나팔이면 나팔의 목표, 인이면 인의 목표, 대접이면 대접의 목표, 목표가 거기다 들어있어요. 그래서 일곱 나팔이 되면은 일곱 나팔의 내용은 일곱 대접입니다. 일곱 대접도 마지막 일곱 대접이 있기 전에 여섯째 대접을 쏟고 나서 그 다음에 이 가운데서는 대접하는 대접을 쏟는 목표가 있지요. 심판의 목표가 있어요. 그 다음에 남어지 문제도 똑같은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은 그런 목표에요. 계시록을 보았을 때는 여러분이 보면은 아까 6장12절을 보면 여섯째 인을 떼는 것이 있지요. 그 다음 이 일 후에 보니 그런 말이 있고, 8장에 일곱째 인을 뗐을 이때 그러니까 7장에 소위 사이 계시인데 거기 보면은 144,000을 인치는 내용이 있지요. 그것 때문에 바람이 아직 불지 않는 것이어요. 그리고 쭉 넘어가면은 9:13절에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붑니다. 그리고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면은 11장15절에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붑니다. 그러면 그 사이는 나팔을 부는 목표가 되겠지요. 그런데 거기 보니까 유브라데 강 가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주는데 그것이 아마겟돈 전쟁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이어요. 아, 여기서는 아마겟돈 전쟁이 아니고 유브라데 강가에 네 심판의 천사를 풀어주어라. 바벨론 군대에 일어날 일을 말하고 있지요. 10장4절을 보면은 일곱 우레가 발하는 그것은 인봉해라. 그리고 여기 보면은 교회가 큰 핍박을 받아서 베옷을 입고 증거하는 두 증인의 죽음과 그들의 부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심판을 베푸시는데 어떻게 심판을 베푸시는가, 유브라데 강가에 천사를 풀어주고 그리고 교회는 큰 핍박을 받지마는 교회는 죽은 두 증인이 살아나고 그리고 두 증인을 축하했던 자들은 큰 심판을 받을 것이어요. 그래서 심판의 목표가 바베론의 부흥을 통해서 나오겠지마는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는 고난을 받겠지마는 고난으로부터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승리를 베풀 것이라. 그런 방식으로 설명하고 나서 11장15절에 일곱째 나팔을 말하고 있습니다. 거기서도 승리를 쭉 말하고 있지요.
그리고 나서 12장에 보면은 하늘에서 용이 떨어지지요. 남자 아이는 위로 올라가고, 용은 내어 쫓기고, 그리고 13장에 보면은 우리가 흥미진진한 바다에서 뿔달린 짐승이 올라오고 땅에서 뿔달린 짐승이 올라오고 그런 이야기지요. 바로 이것이 장차 나타날 큰 심판을 설명하는 앞의 내용입니다. 하나님게서 나는 누구다 하면서 자기 할 일을 설명하는 것처럼 장차 나타날 큰 핍박은 누군가? 이 두 짐승에게서 핍박이 일어날 것이어요. 그런 설명을 말하면서 마지막에 바벨론을 심판으로 넘어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 구조로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소위 점칭적인 반복 구조에요. 그렇게 읽으시면 됩니다. 핵심은 무엇이냐 하면은 교회가 핍박을 받고 있지마는 그러나 주님께서 승리하셨으니, 그는 처음과 나중입니다. 그는 창조자요 그리고 역사의 목표점이 그분이십니다. 그는 만물을 완성하신 분이셔요. 그는 그 일을 위해서 속히 오실 것이어요. 그분이 지금 교회를 거닐으시고 일곱 별들 사이에 일곱 사자들을 붙들고 계십니다. 교회는 결단코 멸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큰 핍박 가운데서도 이것을 이겨 내야됩니다. 이기는 자들에게 상급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피로 값주고 제사장 나라를 삼으셨고, 그는 참으로 생명의 주가 되시기 때문에 그의 손에서 교회를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그러니 핍박을 이겨내라 그런 말이지요. 그것이 이 계시록에서 설명하는 방식이어요. 물론 여러 서신에 종말에 대한 교훈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있는 종말론은 이런 종말론이 아니지요. 죽은자를 두고 슬피 우니까 야, 죽은자가 앞장 섰다. 그것을 말하면 데살로니가 종말론이어요. 죽은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구름 속으로 끌어 올 때문에 슬퍼하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한 종말론이어요. 그런데 로마서는 그런 것이 아니라 로마서는 만국에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는 종말론이기 때문에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고 유대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면은 그때는 죽은자가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주님께서 천하만민을 복음으로 정복한다. 그러면 로마서의 종말론이어요. 그런데 계시록의 종말론은 그런 것이 아니라 싸우는 일, 로마 정부와 싸움이어요. 세상이 주와의 싸움이어요. 그런 싸움 가운데서 주님의 권세를 붙들어야 되기 때문에 싸움이 주가 되는 것이어요. 그리고 어린 양이 승리하니 교회는 이겨내라. 낙심하지 말아라. 주님을 고백하는 것이 승리다. 너희들이 기꺼히 순교해라. 그러면 그와 함게 생명의 면류관을 받으리라.이겨내라. 그런 것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 이 계시록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게시록만 종말론인가, 그렇게 보아서는 안되고 싸움이 주제에요.
이제 우리들은 이 사실을 분명히 잘 기억해야 됩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승리하셨기 때문에 교회도 승리합니다. 이제 주님은 역사를 펼쳐 보이시고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는 처음부터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 오실 분이십니다. 요한복음 같으면은 이런 방식으로 표현을 안했지요. 그는 창세 전에 아버지 품에 계셨고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다. 교제가 강조점이니까.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장차 역사를 완결하실 분이세요. 그는 역사의 시작자입니다. 지금도 계신 그분이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자입니다. 역사의 모든 펼침은 그분의 손에 있습니다. 이제 신약 교회는 그의 역사를 봉사하도록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봉사하도록 부르심을 입은 것처럼 우리들은 부활하신 주님의 권세있는 나라를 봉사하록 권세있는 그런 백성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승리하셨고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하늘의 속한 제사장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교회는 주님 안에서 하나님을 찬양 하늘에 성소는 교회를 위해서 열렸습니다. 땅에서 이런저런 많은 주가 있고 주님 오시도록까지 세상의 권세가 주님께 복종하지 않겠지마는 부활하신 주님은 영원한 생명의 주님이시며 그는 교회를 하늘의 성소로 삼아서 일곱 별들 사이에 일곱 촛대 사이에 일곱 별을 붙들고 그는 계신 분이십니다. 부활하신 부활하신 주님이 교회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교회를 해할 어두움의 권세가 없습니다. 신약 교회부터 주님 오시도록까지 교회의 기업은 그런 의미로 고난입니다. 주님 오셔서 만국을 철장의 권세로 다스리도록까지 세상은 그에게 복종하지를 않습니다. 주님 오시면은 그가 만국을 철장의 권세로 다스릴 것이고 그리고 교회도 영광 중에 부활해서 주님의 영광의 나라를 상속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 오시도록까지 우리 안에 계신분, 우리 중에 계신분, 주님의 권세가 무엇인가를 알고 세상을 주님을 알지 못하고 지금도 여러 임금들을 구합니다. 세상이 지구촌으로 연합될수록 세상의 독재자를 구하는 방식으로 절대자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생명의 주님을 부활하신 주님 뿐이십니다. 항상 주 예수를 의지하고 그만 우리의 생명의 주님이라고 주님을 순종하고 주님 앞에 복종하는 것만 우리의 영원한 상급이요 우리의 승리입니다. 주님 오시도록까지 어떤 권세에도 미혹을 받지 말고 우리와 함께하신 주님만을 의지하고 우리의 처음 믿음을 따라서 항상 믿음을 지켜서 세상에 순교적인 정신으로 주님의 길을 걸어야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시면은 그가 만국을 철장의 권세로 다스리고 그리고 모든 것을 그의 권세 밑에 복게종시킬 때 우리들도 그와 함게 영광 중에 나타나게 될 것이며 그와 함께 영원히 왕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오시도록까지 우리의 왕을 의지하고 우리의 믿음을 끝까지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죄의 권세 아래 있어서 참으로 만물보다 귀하게 지음받은 사람인데도 심지어는 생명없는 우상의 종이 되는 방식으로까지 주의 종으로 살았던 백성입니다. 우리는 어두움의 권세 아래 있어서 세상이 뛰는 대로 갔고 우리 마음의 욕심대로 살았던 자들입니다. 지금도 세상은 하나님을 알지를 못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이런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고 가치가 되어서 이것이 온 세계가 추구하는 가치가 되어서 세상은 아우성치고 우리들의 옷입니다. 전쟁의 전쟁의 소문이 그치지 않고 난리에 난리의 소문이 그치지 않는 것도 전부 먹고 마심을 위한 그런 것이었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그러나 우리에게는 부활하신 주님을 나타내셔서 우리로 세상의 권세를 의지하지 않게 하시고 먹고 마심을 의지하지 않게 하시고 죽을까 두려워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지 않게 하시고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 주님의 길을 따르는 백성이 되게 하셔서 이제는 하늘의 영광을 누리게 하시며 하늘의 권세를 봉사할 수 있도록 복을 주셨으니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도 세상은 부활하신 주님을 왕으로 시인하지 않고 이런 저런 권세자를 추구하고 있지마는 주님 오시면 철장의 권세로 만민을 다스리시며 그의 백성에게 그의 나라를 선물할 줄로 믿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지금도 세상 사람들이 주님을 복종하지 않고 조롱하고 그리고 교회도 이런 조롱을 함께 받고 있지마는 우리들이 결단코 낙심하지 아니하고 주님 오시도록까지 예수의 주되심을 증거하고 천하 만민이 죽었다가 다시 사신 주님 앞으로 돌아와서 역사를 완성하신 그리스도께로 돌아와서 그의 백성이 되는 증언하는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항상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지금도 말로는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어려운 일을 당하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선택의 가치 기준이 되고 말았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우리에게 자유를 주었을지라도 이 자유로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게 하여주시옵고, 살든지 죽든지 주님만을 영광스럽게 하며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우리 자신을 헌신하는 순종하는 백성으로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교회를 온전케 해 주시옵소서. 오늘도 이 복으로 교회를 복주실려고 부활하신 주님의 상으로 교회를 불러 모으셔서 이제는 아들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처럼 나를 먹는 자는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약속하신 대로 주님의 피와 주님의 살의 교제에 참여해서 한 몸 한 영을 이룰 수 있도록 복을 주셨으니 감사를 드립니다. 먹고 마시는 모든 삶에서 우리의 생명의 주님을 기억하고 항상 주님의 입으로 말씀하는 것처럼 증거하고 주님의 손으로 봉사하는 것처럼 정성과 사랑으로 봉사하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주의 백성들을 복주시옵소서. 주의 백성들의 삶의 수고가 세상 권세자들의 복주심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해서 몸을 주신 주님의 복주심을 따라서 저들이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권세로 주의 나라를 봉사할 수 있도록 주의 백성의 삶을 더욱 풍성케 해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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