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구속사

그리스도의 대적들 III

찬미예수님 2026. 3. 27. 19:43

제목: 그리스도의 대적들

성경: 요한계시록13:11-18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때가 되매 세상에 아들을 보내시고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 살리셔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시고 이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셔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하나님 품안에 살게 하시고 예수와 함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셔서 하나님의 영광과 그 권세를 봉사케 하심을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의 영광과 주님의 권세가 우리의 믿음에 있는데도 우리가 믿음으로 깨어 살지 못한 모든 어두움을 주께서 용서하시기 원합니다. 우리를 살리신 주님의 피가 우리를 말갛게 씻기시며 우리 양심을 정결케 하셔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실 줄을 믿습니다. 오늘도 주의 백성을 사랑하셔서 우리를 사랑해서 몸을 주신 주님의 상으로 불러 모으셨사오니 우리를 사랑해서 몸을 주신 주님의 사랑과 영광의 빛으로 주의 백성들을 비추셔서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대면하므로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케 해주시옵고,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해서 주의 몸을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주의 교회를 복주시고 교회 중에서 영광과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요한계시록 13장을 보십시다. 13장을 읽고 11-를 강론하겠습니다. 계시록은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그렇게 세 구분으로 되어 있는데, 말하자면 장차 될 일이 4장 이하에 해당이 되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장차 될 일은 마치 예수님 재림 직전에 사건을 묘사하는 것처럼 그렇게 쉽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런 것은 틀린 것은 아닙니다마는 이 신약 성경 계시록은 예수님 재림 직접의 일만 기록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당시 로마 정권 밑에서 핍박을 받고 있는 교회를 위해서 마지막 시대의 전쟁을 펼쳐 보이는데 이 전쟁이 더 극렬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마 예수님 재림 직전이 되겠지요. 그러니까 계시록으로 장차 일어날 사건을 분별하는 것이 전혀 틀리지는 않지마는 계시록은 그런 목표만을 위해서 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항상 생각하셔야 되겠습니다. 왜 그런 말씀을 하느냐 하면, 계시록이 주는 목표를 잘 모르고 예수님 재림 직전에 나타날 이런 저런 큰 격변으로 이것을 이해하면은 이런 사건을 가지고 봐라. 이런 사건이 일어나니까 예수님이 곧 오시지 않느냐? 그렇게 해가지고 사람들을 많이 많이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런 사건이 안일어났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은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해서 편안하니 대충대충 사는 경향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계시록은 특별히 살후 2장에서도 말하고 있습니다마는 악의 비밀이 지금 활동하고 있지마는 하나님이 막고 계시기 때문에 불법의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아직은 끝이 아니고 나중에는 한 법법의 사람이 나타나서 자기를 성전에 앉아있는 하나님으로 말하고 모든 종교를 통합하고 핍박할 것이라고 말하고 그때에 지상 끝이 오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악의 사람이 나타나겠지마는 악의 사람이 나타나기 전에도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고 있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이미 활동하고 있는 비밀이 악의 사람에게서 불법의 사람에게서 극대화되겠는가, 이런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지금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어떻게 불법의 비밀이 활동하는가, 그런 일들을 잘 분별해야되고, 불법의 비밀을 잘 분별해야만 불법의 사람이 나타나는 것도 이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치 지금 불법의 비밀이 활동하지 않는 것처럼 이해하고 나타날 장면만 자꾸 염두에 두면은 지금 살고 있는 신앙에서 승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계시록을 기록해 준 목표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은 왜 계시록에 이런 말들이 꼭 예수님 재림 직전에 상황을 묘사하는 것처럼 되어 있는가? 하는 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먼저 이것은 구약을 배경으로 해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세우신 것은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서였습니다. 불꽃 가운데 강림하셔서 그들이 지키면은 생명을 얻을 율법을 주시고 그들과 함께 교제할 장막을 짓게 하시고 그리고 그 장막에서 자기 제사장과 함께 먹고 마시고 이것이 시내산에 세우신 언약입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시내산 언어로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나라를 세우기 전에 애굽의 권세를 심판하고 자기 백성을 건져내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나님을 대항하는 세상과 싸우는 모델은 애굽을 심판했던 그 싸움이 모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번성하다가 나중에는 범죄해서 심지어는 받알의 나라, 우상의 나라가 될 정도로 그처럼 변했었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남과 북으로 나누어진 뒤로 북쪽에서 벌어졌던 일인데 그때 우리가 잘 아는 엘리야 선지자가 활동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활동할 때는 북이스라엘은 완전히 바알의 왕국이 되고 그리고 모든 선자들은 바알의 선지자가 되어서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남았나이다. 그렇게 엘리야가 하나님 앞에 고발할 만큼 성도의 권세가 포악해졌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남은자 7천이 있다고 말씀하시고 이제 하나님은 배반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망하겠지마는 남은자 7천을 위해서 새로운 구원을 일으키시고 새로운 나라를 일으키겠다고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는데, 엘리야 후에 나타났던 모든 선지자들은 바로 엘리야에게 말씀했던 이것을 주제로 해서 이스라엘 백성의 멸망과 이스라엘 백성만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핍박했던 모든 이방들도 함께 멸망할 것이요 그리고 남은자를 하나님께서 건져내서 가나안 땅에 다시 심고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새롭게 지으시고 이제는 새로운 성소 가운데 영원히 함께 계시겠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선지자들의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들이 그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거듭거듭 듣고도 회개하지 아니해서 결국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고 하나님의 언약은 파괴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은 불타 없어졌고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의 땅 밖으로 쫓겨나서 바벨론 궁전에서 노예 생활하고 그리고 풀무불 가운데서 고난을 받고 그렇게 고생을 했습니다. 바로 이처럼 이스라엘이 이방인에게 밟혔을 때 하나님께서 남은자를 위해서 다시 그 언약을 기억하시고 가나안 땅을 새롭게 지으시고 자기 백성을 언약에 땅에 심으시고 영광스러운 성전에 함께 계시리라 약속하신 것을 보여 주었는데 그런 것이 말하자면 에스겔서와 다니엘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할 마지막 일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구약 백성들에게는 마지막에요. 그들이 범죄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무너지고 이방인들의 권세가 하나님 나라를 완전히 밟아버리고 하나님의 백성은 풀무불 가운데서 고생을 하고 있지마는 하나님이 이방들은 심판하시고 자기 나라를 새롭게 건설하시겠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했던 약속이고 그들이 기다렸던 소망이어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의 마지막 구원은 무엇이냐 하면은 이스라엘 백성은 마지막 무너졌지마는 하나님이 이방의 권세를 심판하시고 다시 그 나라를 가나안 땅에 세우신다. 이것이 구약에서 보는 세상 끝이어요. 그것이. 이 세상 끝에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보기를 구약에서 말했던 것처럼 로마 군대를 심판하고 그리고 자기 백성을 세상의 중앙부에 세우고 그렇게 당연히 기대했던 것이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그렇게 하지 않고 로마 권세에 잡히고, 또 십자가에 죽으니까 다 조롱해 버린 것이어요. 우리를 구원한다는 자가 너는 구원하지 못하느냐?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보아라. 그리고 저 사람이 우리를 구원한다고 그러는가? 하고 조롱해버렸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하면 하나님께서 나라를 세우시고 건설하실 때 꼭 옛날 방식으로만 하시는가? 옛날 방식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옛날 방식보다 더 영광스럽고 더 풍성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인데 이스라엘 백성이 알고 있는 것은 가나안 땅의 다윗 왕조이기 때문에 그 이상의 빛을 보지 못했던 것이어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시고 이 아들을 통한 구원은 이스라엘만 구원한 것이 아니라 만민을 구원하고, 구원하는데 그냥 이방의 정권으로부터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권세로부터 구원하는 완전한 구원을 베푸시는 왕으로 보내셨는데도 그들은 그 나라를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예수를 버렸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께서 왕으로 계시는 이 교회에는 들어오지 않고 지금도 예수를 이단의 괴수, 정죄받은 죄인으로 알고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무렵에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따라 그들도 믿음으로 들어오겠지마는 지금은 들어오지 않습니다. 만일에 그들이 우리처럼 믿었다고 할 것 같으면은 베드로나 바울, 그들이 다 유대인이 아닙니까? 그들이 교회를 세우고 크게 봉사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위해서 크게 봉사했던 것이 오히려 교회가 확대되는 것을 극렬히 반대했던 사람들이 유대인들이어요. 그러니까 그들은 하나님이 아들을 통해서 세운 나라의 초기에는 들어오지 못하고 말기에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계시록에서도 지금 교회가 핍박을 받고 있다. 이 핍박은 극대화 될 것인데 이 핍박이 극대화 되었을 때 하나님이 하나님을 대항하는 대적들을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겠다. 했을 때 어떤 모델을 사용해야 되겠습니까? 당연히 바벨론에서 핍박받는 이스라엘을 모델로 삼고 풀어야 되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계시록에서 마지막 멸망받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은 큰성 바벨론이여.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말하고 여기 13장에서도 그리스도를 대항하는 짐승, 짐승인데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땅에서 올라온 짐승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짐승은 다니엘서에서는 바다에서 올라온 네 짐승이 있는데, 이 짐승이 하나님 나라를 훼방하지마는 하나님께서 구름타고 나타나신 사람의 아들 같은 이, 그분에게 나라를 주셔서 그 나라를 영원히 세우겠다. 그렇게 설명했던 그런 모델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멸망받던 그 무렵 세상의 권세가 하나님 나라를 밟아버리고 이스라엘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러나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바벨론 풀무불 가운데 하나님이 지키셨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은 망했고 남은자들은 구원해서 가나안 땅에 심으셨어요. 그 모델들을 사용해서 장차 세상의 심판과 하나님의 구원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마치 세상 끝날 예수님 재림 직전의 상황을 묘사하는 것처럼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살후를 두고 말씀을 드렸지마는 지금도 그 악의 비밀이 활동하고 계시록을 받았던 로마 정권 당시에도 그 비밀이 활동했고, 그리고 이 비밀은 여러 모양으로 진행될 것이고 때가 되면은 한 불법의 사람에게서 하나님을 대항하는 세력이 극대화 될 것으로 그렇게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들에게 주요한 것은 장차 이런 일이 어떻게 벌어질 것인가? 사람을 알아맞추는 일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 불법의 비밀, 짐승의 비밀이 어떻게 활동하는가? 우리가 무엇을 대항해서 싸워 이겨야 될 것인가, 이것을 보아야만 우리의 신앙을 고백할 수가 있는 것이어요. 만일에 우리가 살아있을 때 예수님 재림않고 한참 뒤에 오시면은 아마 그들은 더 극렬한 싸움 가운데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극렬한 싸움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싸움에 본질은 같습니다. 그 눈을 떠야만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고 승리할 수 있다 그런 말씀입니다.

그러면은 이제 계시록 13장을 읽으면서 보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13장1-10절까지 말씀을 강론했습니다. 바다에서 짐승이 나오는데 이 짐승은 누가 불러냈느냐 하면은, 하늘에서 내어 쫓긴 용이 자기 때가 얼만 남지 않은 줄을 알고 마지막 때인줄 알고 성도들을 크게 핍박할려고 바다에서 불러냈습니다. 이 바다는 다니엘서 7장에 있는 것처럼 세상 제국들을 말하고 바다에서 땅 사방에 바람이 불면은 하늘의 천사들을 통해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처럼 그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온 이 짐승을 보니까 모습이 다니엘서 7장에 있는 짐승을 혼합한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짐승은 사자, , 표범, 그렇게 되어 있는데 여기서도 그것이 혼합된 모습으로 되어 있고, 또 이 짐승은 묘하게 되어 있어 가지고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입니다. 그리고 열 면류관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생겼는데 상상을 잘 못하겠어요. 머리가 일곱이고 뿔도 일곱이면 한 머리에 하나씩 달렸겠는데, 머리는 일곱이고 뿔은 열이라고 하니까 어느 머리에다가 뿔 세 개를 붙여 놓을까요. 잘 모르겠지요. 그리고 열 면류관이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말하기를 구체적으로 어떤 왕이냐, 이런데 초점을 둔 것이 아니라 문제는 큰 권세를 받았는데, 용이 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었다. 그런데 여기 보면은 일곱 머리가 있는데, 그 일곱 머리 중 하나가 마치 죽었다가 한 것처럼 되어 있어요. 그리고 이 짐승의 권세는 어디서 나타나느냐 하면은 죽었다가 산 것처럼 한 이 머리에서 나타납니다. 누가 죽었다가 살겠느냐? 그러니까 죽었다가 살아난 이 짐승에게 경배하라고 해서 이 짐승의 그 하나님의 대항하는 포악한 말과 그 권세는 어디서 극대화되느냐 하면은, 죽었다가 산 머리, 거기서 극대화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항상 사단은 하나님을 대항하고 하나님을 모방하고 그런 방식으로 자기 권세를 드러냅니다. 사단도 광명한 천사로 드러낸다고 그랬는데 항상 그렇게 하는 것이어요. 가령 예수님이 시험을 받을 때도 나에게 경배해라. 이 모든 나라를 너에게 주마.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권세를 사단이 자기 것으로 모방해서 그렇게 말한 것을 알 수가 있고, 에덴에서도 하나님께서 생명나무를 주었을 때도 나타나서 이 모든 과실을 먹지 말라고 그러드냐? 마치 자기 말을 잘 들으면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 지혜롭게 되리라. 무엇할려고 하나님의 말을 듣는가? 그렇게 해서 미혹한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세상의 정권과 싸우는 방식으로 나라를 세웠기 때문에 그 권세는 뿔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대항하는 뿔은 작은 뿔인데 크게 되고 남어지 뿔들을 뽑아버립니다. 강한 자가 크게 된 것이 구약에는 권세의 신비에요. 지극히 천한 자가 높은 자리에 앉은 것이 권세의 신비가 되겠지요. 그런데 여기 에수님께 나타난 이 하나님을 대항하는 짐승은 한 머리가 죽었다가 산 것처럼 되었어요. 우리가 전하는 예수님은 누굽니까? 죽은자 가운데 살아나신 분,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렇게 증거하지 안해요. 그러니까 짐승도 그 모습으로 나타나서 하나님을 대항하는데 어린 양의 책에 즉 어린 양의 소유가 되지 아니한 모든 사람들은 거기 경배하리라고 그렇게 앞에서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잘 귀담아 들어라. 아무리 이 권세가 극대화 된다고 할지라도 성도들의 인내가 어디 있는 것인가? 13장10절에 그렇게 되어 있지요.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로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아무리 그 권세가 극대화 된 것 같아도 그 권세는 그 권세로 망할 것이어요. 그러니까 너희들이 참으로 믿음이 있는가? 믿음을 지켜라. 그런 권세에 복종하지를 말아라. 그것이 지난 시간에 말씀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용의 권세는 이 세상 나라에서 나타난 큰 제국만 있는 것이 아니라 11절을 보면은 이 짐승을 위해서 봉사하는 또 다른 짐승이 있습니다. 내가 보니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이것도 말하자면 하나님을 모방하고 있는 것이지요. 새끼 양처럼 생겼습니다. 그리고 용처럼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신 분은 땅에서 올라온 분이 아니라 그는 위에서 오신 분이요 그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십니다. 그는 참으로 하나님처럼 말했던 분이 용처럼 말한 분이 아닌데 여기서는 위에서 오신 분은 아니고 땅에서 올라온 양이 있는데 그것은 두 뿔이 있으니까 어린 양처럼 생겼지마는 용처럼 말한다고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 거짓선자지요. 거짓 종교지요.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이것이 두 번째 나타난 짐승의 역할입니다. 용은 그 권세를 짐승에게 주었고 짐승은 이 권세를 두 번째 나온 땅에서 올라온 새끼 양같은 짐승에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거젓된 종교 거짓된 선지자가 모든 이적을 행하면서 하는 말이 목표가 무엇이냐 하면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경배하도록 했던 것처럼 이 새끼 양처럼 생기고 용처럼 말하는 말하는 짐승이 하는 것은 죽었다가 산자, 머리 하나가 죽었다가 산 짐승, 그에게 경배해라. 모든 영광을 그에게 돌려라. 그렇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참으로 권세가 있는 말하자면 하나님이 보내신 그런 선지자다. 하는 그런 표를 보이기 위해서 무엇을 하느냐 하면은 이적을 행하되 하늘에서부터 불이 땅에 내려오게 하고, 13절이지요. 짐승 앞에서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여,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적이 무엇이냐 하면은 하늘에서 땅에 불이 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실제로 하늘에서 땅으로 불이 떨어지겠는가? 그런 것은 상관이 없고, 항상 구약을 표상으로 해야된다고 말씀을드렸습니다. 가령 신약 성경을 보면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치 않으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서 사마리아 성을 불살라버리라고 그럴까요. 그렇게 말한 적이 있지 안해요? 그전에 엘리야가 산에 있을 때 엘리야를 잡으러 갔던 사람들에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그들을 살랐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들은 구약에서 신적인 권세를 나타내는 방식들이어요. 그러니까 새끼 양처럼 생기고 또 용처럼 말하며, 또 짐승으로부터 권세를 받고 짐승의 앞잡이가 되어서 머리 하나가 죽었다가 산 짐승에게 경배하도록 요구하는 이 거짓된 종교는 큰 권을 가지고 사람들을 미혹하는데 마치 신적인 권능을 나타낼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스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이 거짓된 종교가 하는 일은 머리가 하나가 죽었다가 살아난 짐승에게 경배하도록 할 뿐 아니라 그 짐승을 위해서 우상을 만들고 그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서 그 우상으로 입을 벌려 말하게 하고 모든 사람들로 그 우상 앞에 경배하도록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요새는 사이버 시대라 나중에 그런 일이 벌어질련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여기서는 어디에 모델을 두고 하느냐 하면, 항상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국가의 흔적이 끊어지고 이방의 세력이 밟아버린 것은 바벨론 때에요. 그런데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임금이 큰 제국을 세우고 이 큰 제국은 내가 세웠다. 어느 나라 신이 내 손에서 자기 나라 백성을 지킨 신이 있느냐? 그러고는 큰 금신상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금 신상에 절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거기에 절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풀무불에 던졌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살리니까 다니엘의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다 하고 무릎을 꿇었지마는, 말하자면 그때 나타난 것을 여기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어요. 어느 나라 신이 내 손에서 자기 백성을 건지겠는가? 여호와를 섬기라고 그러는가? 웃기는 소리 말아라. 히스기야가 그런 말을 하고 있는가? 웃기를 말아라. 모든 신들은 다 가짜 신이니까 헐어버리고 오직 여호와만 섬기라고 그러는가? 그런 것은 거짓된 소리다. 그리고 앗수르의 산헤렙이 조롱했지 않습니까? 바벨론도 똑같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망해버린 이스라엘 신을 섬기고 느브갓네살을 신으로 섬기지 안해요. 그래서 죽을 뻔 했던 것이어요. 그런데 느브갓네살이 자기를 위해서 큰 금신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다 거기다 절하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그 바벨론 국가를 위한 국가 신을 만든 것이고 이 계시록 당시는 로마를 위한 로마 신을 만든 것이어요. 그렇게 해서 모든 사람들은 로마 정권 밑에서 밥먹어야 됩니다. 그리고 이 국가를 세운 로마 황제는 신의 아들이요 신의 제사장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나라에 종교적인 자유를 주겠지마는 로마 황제는 의무적으로 섬겨야 됩니다. 그만 주요 왕이니까. 그런데 기독교인들만 그것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거짓된 종교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말이지요. 말하자면 죽었다가 산 짐승을 인격화시키고 신화시켜서 전부 경배하도록 하겠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으로 거기다 절하게 하고 그 절한다는 의미로 오른 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받은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앞에서 여호와께 절하면은 여호와께 속한 백서이요, 여호와께 속한 백성은 여호와께서 인친 백성이었지요. 하나님께 인친 백성은 심판하지 말라고 그랬습니다.인친 백성입니다. 그런데 왜 오른손이나 이마에 인을 치는가? 이것도 구약 때문에 그렇습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하나님 앞에 봉사하고 하나님 앞에 경배하는 자로 삼았을 때는 오른 쪽 귀부리, 오른쪽 엄지손가락, 오른쪽 엄지발가락 거기다 피를 바르면은 온 몸이 거룩하게 되어서 하나님을 섬기는 몸으로 성별되었습니다. 그런 의미로 오른 손이 되겠지요. 그러면 또 이마는 무엇인가? 물론 구약에 보면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대표적으로 대제사장이어요. 그의 이마에는 여호와께 성결, 여호와께 속한 거룩한 표가 그 머리에 있습니다. 아마 그런 표를 쓰고 있을 것입니다. 만일에 다른 데서 인용을 해오자면 신명기 6장에 그런 것이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오직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들은 여호와께 속했고 여호와를 위해서 살아야 됩니다. 어떻게 할려고. 그들의 손목에다가 이마에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적어서 달고 그렇게 하고 다니면 그것이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그런 좋은 길잡이가 되는 것이어요. 그렇게 했을 때 손목에 매고 이마에 붙여라. 그렇게 되어 있어요. 나중에는 요새 어지간한 마트에는 바코드가 있지요. 짝대가로 짝짝 그어져 가지고 지나가면은 들어오는 것, 그래서 전부 손에다가 표를 받고 이마에다가 찍고 있어서 요새는 컴퓨터도 눈동자를 보고 주인을 알아보고 반응하고 비밀문도 음성이나 눈동자로 반응하고 이런 식으로 말하자면 여기다가 바코드를 샛길 것이다. 그렇게 해서 모든 사람을 전자 번호를 주어서 아주 군인처럼 한 줄로 세울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렇게 전부 말하고 있는 것은 물론 가능할 수는 있게지마는 성경은 직접 그런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구약을 모델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지 구체적으로 이렇게 일어날 사건을 이렇게 상징적으로 직접 묘사하고 그것은 성경 해석 방법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오른 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는 것은 곧 짐승에게 속한 것이지요. 신명기 6장대로 하면 그의 모든 언행을 짐승을 위해서 해야될 것이어요. 그리고 레위기대로 하자면 그 모든 것을 짐승에게 헌신하는 방식으로 성별해 들어가야 될 것이어요. 그런 방식으로 머리에나 오른손에 표를 받게 하고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표를 받는 자들이 곧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이지요. 그런데 마지막 말하기를 17절에 지혜가 여기 있으니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그 표에가 짐승의 이름이나 또는 짐승의 이름을 수로 표시한 수가 있다는 말이지요. 표를 안받으면 매매를 못하게 한다. 매매를 못하게 한다는 말은 이 계시록 13장에서는 경배하지 않으면 다 죽지요. 생존권이 박탈되는 것이 되겠지요. 마지막 18절을 보십시다.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이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육이니라.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런 문제입니다. 우리가 다시 9절을 보십시다.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아무리 칼로 너희들을 죽일인다 할지라도 그도 칼로 망할 것이니까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그러니 아무리 머리 하나가 죽었다가 산 것 같습니다. 칼에 상하여 죽은 것 같았다가 살았어요. 그가 권세를 가지고 모든 사람을 칼의 권세로 무릎을 꿇게 할 것이어요. 그러더라도 그도 칼로 망할 것이니까 성도들의 믿음과 인내가 거기 있지 않느냐? 칼을 두려워 하지 말아라. 그렇게 했던 것처럼 여기 18절에서도 그런 것이어요. 귀가 있는 자는 들어라. 귀 있는 자는 잘 살펴 보아라. 짐승의 이름이나 수를 이마에나 손에 받습니다. 그러니 그것은 짐승의 수일 뿐이고 다시 --는 사람의 수인데 666이다. 아까 말할 때는 칼로 사람을 잡는 자는 칼로 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칼에 죽임을 당할 것이어요. 그러니까 아무리 칼의 권세가 쌔도 너희들이 믿음을 지켜라. 그렇게 한 것처럼 표를 받지 않은 자는 매매를 못하고 생존권이 박탈됩니다. 그러면 그 표는 무엇이냐? 짐승의 이름이나 수에요. 그러면 그 짐승의 이름이나 수는 무엇이냐? 칼로 죽이는 자는 칼로 망하는 것처럼 짐승의 이름이나 수는 무엇이냐? 한번 귀있는 자는 잘 살펴 보아라. 그것은 사람의 수인데 666이라. 그러니까 별 볼일 없지 않느냐? 무릎꿇지 말아라. 지금 여기서는 그런 이야기지요. 왜냐하면은 10절과 11절이하가 서로 대칭되어서 반복되도록 되어 있어요. 칼에 머리 하나가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이 있습니다. 그런 짐승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칼에서 죽었다가 살아난 이 짐승에게 경배하라. 대단한 권세로 모든 사람으로 그에게 무릎꿇도록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칼로 세운 것이어서 칼로 망할 것입니다. 성도들은 귀담아 들어라. 잘 보아라. 그것은 칼의 권세가 아니냐? 칼은 망할 것이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그 칼을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을 지켜라. 그렇게 했던 것처럼 이 짐승을 위해서 거짓된 종교가 활동하는데 모든 사람으로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도록 해요. 짐승을 인격화시키고 우상을 인격화시켜서 생기를 주어서 거기다 경배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다 이마에나 오른손에 표를 받도록 했는데 이 표는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을 수로 표시한 것이어요. 구약에는 여호와의 인이 이스라엘에게 있었던 것처럼 여호와께 속했으면 어느 누구도 빼앗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표는 짐승의 표에요. 그러면 짐승의 표는 무엇이냐? 지혜있는 자는 잘 보아라. 이 말이지요. 짐승의 표가 무엇인가? 그 정체를 드러낸 것이지요. 사람의 순데 666이 아니냐? 그러니가 너희들이 놀라지 말고 거기 경배하지 말아라. 지금 그말이지요. 그런데 물론 이것이 그 당시에는 모르겠습니다마는 네로 황제 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어요. 그러나 이 계시록은 그 당시 누구누구인가를 알아 맞추는 데 핵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벨론에 망했던 이스라엘을 모델로 해서 어떻게 이방의 권세가 하나님의 교회를 파괴하며,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건지셔서 마지막 구원을 베푸시는가? 그런 것을 펼쳐 보이고 있기 때문에 직접 666이 네로인지 아닌지 그런 것은 알 수가 없어요. 여기서는 그런 것을 알아 맞추는 것에 핵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별 볼일 없다는 데 핵심이 있지요. 누가 칼로 죽였는가? 사로잡은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칼로 죽을 것이어요. 그러니까 성도들의 믿음과 인내가 여기 있느니라. 귀있는 자는 귀담아 들어라. 그 칼 별볼일 없다. 그것이 10절에 있는 말씀이었지요. 동일한 말로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은 아무도 매매를 못해요. 전부 짐승에게 경배를 해야 되어요. 그러니까 두렵냐? 지혜있는 자는 잘 살펴 보아라. 그 수를 잘 보아라. 사람의 수인데 666이 아니냐? 그런 이야기지요. 그러니가 별 볼일 없다는 말이지요. 그러니가 이것은 누구인가를 알아맞추는 데 핵심이 아니라 별 볼일 없다는 것이 핵심이지요.

그러면 여기서는 왜 별 볼일이 없습니까? 이 두 짐승은 진짜로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 살리신 하나님, 그리고 참으로 능력과 표적으로 하나님을 능거했던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을 모방하는 자들이어요. 그들은 칼의 권세로 일을 하지 하나님의 권세로 하는 것이 아니어요. 그들은 사람이 하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이 하고 있는 것이 아니어요. 그러니까 사람의 수는 666이다. 666이라는 말은 곧 사람의 수니 같은 말입니다. 이럴 때는 같은 말이지요. 그는 신이 아니어요. 아무리 하늘에서 불이 뚝 떨어지게 해도 그는 신이 아닙니다. 아무리 짐승이 만든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서 말하게 해도 그는 신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에게 경배하지 않으면은 매매하지 못하도록 생존권을 쥐고 있는 것 같아도 그는 신이 아닙니다. 그건 별 볼일 없다. 잘 보아라. 지혜가 어디 있는가? 666인데 무엇입니까? 사람이 아니냐? 그 말이겠지요. 그런 말이어요. 그러면 왜 이것이 666으로 하필이면 묘사되었는지, 그런 것은 우리들이 확실히 알 수가 없습니다. 단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것이 여섯째 날이어요. 그리고 세상은 사람이 하나님의 대리자로 하나님을 순종해야 되는 데도 마치 하나님의 자리에 오른 것처럼 되어서 세상은 이처럼 사단의 왕국으로 변질된 것이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대항하는 모든 사람의 목표들은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이 역사의 목표가 되사시피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666은 아무리 힘이 극대화되어 있어도 그런 사람의 수니까 지혜자들아 잘 보아라. 그건 신이 아니다. 놀라지 말아라. 그리고 믿음을 지켜라.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666에 대한 해석들이 아주 다양해 가지고 이것을 나중에 컴퓨터로, 뭐 시내버스도 666이면 안타는 신자들이 많해요. 그러고는 영어도 알파벹에 수가 붙어 있어요. 히브리어도 수가 붙어 있고, 또 헬라어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나라 언어에는 그것이 없지요. 그러니까 사람들을 수로 묘사한 것이 있거든요. 그래 갖고 이 수가 누군가를 알아맞출려고 많이 하고 있는데, 제가 방금 푼 것처럼 문맥을 보아야 겠지요. 여기서는 저 사람 네로니까 조심해라. 이 말을 할려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는 별 볼일 없다는 것이 흐름이지요. 아무리 칼이 강한가, 칼로 죽을 것이니가 눌라지 말고 신앙을 지켜라. 아무리 신적인 권세로 자랑하는가, 그건 사람이니까 놀라지 말고 그것은 신이 아니다. 그러니 믿음을 지켜라.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 여기 흐름이지요. 이처럼 문맥을 보는 것이 성경을 해석하는 일에 제일 중요하고, 문맥을 알면은 지엽적인 문제를 몰라도 크게 다른 곳으로 빴지 않습니다. 가령 우리들이 시내물을 건널 때 그 딩검다리 방향만 알아도 대충 짚어도 되고 가령 우리들이 층계를 오르내릴 때도 한 두 번 걸어보아서 아, 이정도구나 하면 눈감고 걸어도 안넘어져요. 그것을 일일이 들어다 보고 걸을 때가 더 어지려워요. 왜냐하면 틀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어요. 그러니까 매사에 큰것부터 보고 큰 흐름을 알아야 되지 작은 일을 보고 666이 무엇인가 하고 여기 저기 찾아보았자 알 수가 없는 것이어요. 여기서는 이것이 누구다 하는 비밀을 가르쳐 줄려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신적인 권세로 모든 사람을 무릎 꿇게 하는가? 신적인 표적을 행하는가? 그것은 여전히 사람이요, 칼에 죽을 사람이니 놀라지 말아라. 너희들이 믿음을 지켜라. 진정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분은 하나님이시오 그리고 땅에 나타나셔서 모든 선한 표적 가운데 하나님을 나타내시고 죽은자 가운데 부활하셔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도록 한 분은 그리스도 뿐이시고 그는 위에서 오신 분이시오 그는 일찍 죽임을 당했으나 살아나신 분이시고 그가 역사를 경영하신다. 여러분은 어린 양에게 속해서 그의 나라와 백성이 되었지 않는가? 그 나라는 칼의 권세로 쓰러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세상이 칼의 권세가 강해도 놀라지를 말아라. 예수께서 부활하셨고 그분이 생명의 주가 되셨으니 너희들도 함께 살 것이다. 너희들이 믿음을 지켜라. 지금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아까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말씀을 드렸든 것처럼 이 이야기는 우리 신앙의 본질이기 때문에 방금 제가 한 말씀은 여러분이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그러면은 지금은 짐승은 무엇이고, 또 거짓된 종교는 무엇인가? 우리들이 믿음을 지킨다는 원칙은 좋지마는 그런 것들을 분별할 수 있으면은 더욱 좋겠지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 일 때문에 용은 내어 쫓겼고 이제는 용은 마지막 발악하는 시대에요. 그리고 이 발악은 예수님 재림하심으로 끝나게 될 것이어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성도의 권세가 파괴된 것은 구약 때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망했을 때고 신약 교회에서는 우리의 대표자인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에 갇히셨어요. 예수님을 무덤에 가두어 놓고 로마인들과 유대인들이 평안했지요. 이제 우리를 괴롭힌 자가 죽었으니 하고 평안했지 안해요. 그런 것처럼 십자가에 죽으신 부활하신 예수께서 세상에 재림하지 안했어요.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은 무슨 죽었다가 부활하신 분은 쓸대없는 이야기지요. 이제까지 죽었다가 산 사람을 본 일이 있느냐고요? 그것은 옛날에 우리의 소망을 종교적인 표상으로 담어낸 이야기지 죽었다가 산 사람은 없다. 처녀가 얘기 낳았다고, 그것은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에요. 그러니가 그것은 말하자면 종교적인 의미를 담을려고 그런 것이지 아무런 의미가 없다. 3.1절만되면은 민족의 가슴에 유관순 누나가 부활한 것처럼 사람들은 서로 미워하고 경쟁해서 사람을 죽이는데 예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활해서 우리들도 인류를 사랑토록 해서 인류를 하나되게 한다. 이런 인류의 이념을 표현한 것이지 진짜로 죽었다가 산 것이 아니다. 이것이 지금 세상이 노래하고 있는 것이어요. 무슨 부활이 있다고. 진화론을 보아라. 지층을 보면은 몇 억년이 지났는가? 그런데 무슨 엿새만에 짓고 그 웃기는 소리 그만 하고, 세상은 이렇게 점점 과학의 문명이 발전되면은 환경 재앙으로 죽으리라. 지금은 죽을 것 같지마는 달나라를 개방하면은 옮겨가면 되고, 안죽을 것이고, 이제는 유전자 조작까지 하니까 사람을 새롭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고, 냉동했다가 나중에 재생도 시킬 것이어요. 그러니까 인류는 만망한다. 지금은 농촌에서 생산해서 먹지마는 나중에는 공장에서 우주인 양식처럼 당위정으로 조금맣게 하면은 모르겠어요. 한 달에 한 알씩 먹으면 될련지. 지금은 가난하니까 전쟁이 있고 하지마는, 이번에 I, M, F 터지니까 사랑하는 부부끼리도 일 벌어지지 안해요. 그러나 먹을 것이 다 해결되면은 인간은 낙원이 온다. 이것이 지금 인류가 추구하는 바에요. 그러니까 예수님 재림하셔서 그분에게 복종하기까지는 그리스도의 교회는 먹고 마심으로 사람을 부리지 않습니다. 예수 믿으면 부자됩니다. 예수 믿으면 복을 많이 받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그분에게 생명이 있고 우리가 부자가 될지 가난하게 될지 그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지마는 그분은 우리의 생명이시니까 그분을 섬기시라고 여러분은 죽어도 살 것이라고 그러지, 여러분이 죽으면 하나님이 살려줄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지를 안해요. 그러나 국가적인 권세라는 것은 가난한 사람에게 지금 당장 밥먹여 주어야 되지, 네가 애국하면은 네 후손이 잘 살것이라고 해보았자 아무도 믿지 안해요. 지금 방당 먹어 살려주어야 되요. 아무리 우리 김대중 대통령이 정치를 잘해도 통일을 할려면 여러분이 세금을 많이 내야 됩니다. 하면은 싫어할 국민이 많해요. 통일이 되면 부자가 된다고 하면 희망이 있으니까 이마 이번에도 선가만 끝나면은 중동 특수가 아닌 전무후무한 복이 올 것이다. 이러면 표가 좀 모아질련지 몰라도, 통일이 되어도 우리가 세금을 많이 내야 된다고 하면 통일이 안되어도 좋다고 그래요. 그것이 국가 기관이 하고 있는 일이어요.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그런 것을 약속하고 있지 안해요. 그러니가 예수님 오시도록까지 세상에 정권들은 모든 나라가 주님의 왕권에 복종하기 전까지는 항상 먹고 마심을 노래하고, 먹고 마심으로 사람의 수를 모으고 힘을 모으고 힘을 극대화시키고 그런 것이어요. 그러니까 국가가 항상 어려울 때는 독재정권이 출현하는 것이어요. 나 한 사람의 말을 들어서 배불리 먹자. 살려니까 모든 전권을 한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어요. 그전에 우리 박정희 대통령이 그랬지요. 혼란이냐 안정이냐? 그래갖고 그때 쯤 되면은 북풍이 불지 안해요. 이북한테 망하느니 이 사람에게 당하자. 그러고는 전부 표를 모아 주는 것이어요. 지금 지역 감정이 어떠고 해도 경상도 사람들 우리가 김대중 씨에게 속았다. 이번에는 표를 주었지마는 다음에도 줄줄 아느냐? 긴장하고 있지안해요. 민주화 하면 당연히 화합해야 되어요. 그래도 자기들 기득권이 없어질 생각을 하니까 정치를 잘하고 말고는 상관이 없어요. 부산 공장이 잘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지. 그런데 왜 거기 공장이 망하는가? 그동안 거기다만 공장을 지었거든요. 여기는 망할 공장이 없어요. 그러니까 그런 것이어요. 그리고 본래 도시도 옛날 먼저 있었던 도시는 나중에 빈민가가 되고 변두리가 빌딩이 다 들어 차지 안해요. 광주도 보면은. 그런 것처럼 옛날 공장이 있는 데는 새로운 공장을 못짓고 인제는 새로운 데가 현대식 공장이 들어서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그렇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그것을 갖고는 야단이지요. 보십시오. 자기들 손해나면은 안되어요. 그러니까 이 국가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나라의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세상 국가가 추구하는 것은 사람의 생존권 보장이어요. 사람의 생존권이 보장이 안되면 그건 국가 기능이 없는 것이어요. 자기 백성을 평안하게 먹여 살리지 못하면은 그건 국가 기능이 없는 것이어요. 이북 사람도 목표가 무엇입니까? 쌀밥에 고기, 이것이 그들의 슬로건이지요. 그것 밖에 없는 것이어요. 저 동구쪽이 민주화된다고 야단했지만은 경제가 일어나지 않으니까 다시 공산정권이 들어서니 안해요. 어떠튼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것이 세상이 추구하는 것이어요. 단지 우리가 죽을지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능력은 부활하신 예수가 주는 것이지 세상 정부가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인제 세상 정부가 추구하는 것은 전부 먹고 마심이요 그것을 위해서 노래하는 것이어요. 항상 국가가 어려우면은 그것을 해결하는 독재자가 오는 것이고 세계적인 문제가 생기면은 그것을 해결할 정부 기관이나 또 독재자가 오는 것입니다. 지금은 평안하니까 그런 것이 없는 것 같아도 지금처럼 세게화가 추진되는 때가 없지요. 그러면 이 세계화는 대단히 지구 가족이 되고 좋은 것 같지마는 세상의 정부는 많은 많은 사람의 유익을 위한 그런 힘의 원리지 개개인의 인격을 보살피는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나라 국민생산을 많게 할려고 미국하고 거래하면은 총 액수를 많은 것으로 거래해버리지 그것을 거래했을 때 축산농가가 망하는지, 딸기 농사가 망하는지 그것은 그 다음 일이어요. 그리고 보상해주면 될 것이어요. 하옇튼 큰 건을 갖고 거래를 해야될 것이어요. 그때 작은 개인들의 인격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만일에 국가간에 문제가 있어도 작은 사람 하나를 갖고 손해가 난 것은 덮어두고 큰 것을 갖고 거래할 것이어요. 만일에 교회가 그렇게 하면 안되겠지요. 가족들만 해도 그래요. 동생이 어디가서 맞고 왔는데 아이코 네가 좀 참아라. 그래야 저 집에서 얻어먹을 것이 있다. 그런 가족은 없어요. 죽자 살자 싸우지. 왜냐하면 가족은 그렇게 연결되어 있거든요. 그러나 국가는 당신이 참으면은 큰 건이 생기면은 나중에 하자. 대표적인 우리 나라 예가 한일회담 때 정신대 문제를 덮어놓고 해버렸지 안해요. 그것이 세계정부들이 하는 일이어요. 그러니가 지금도 기독교인들 중에 깨어 있는 사람들은 정부 간의 거래, 정부 간의 연합, 이것을 감시할려는 비정부기간들의 활동, 이런 것을 대단히 강화시키지 안해요. , 비정부기관들은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권에 토대를 두는 것이니까 그렇게 하면 인간의 존엄성이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기 때문에 소수의 인권이 보장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세계적인 정부가 하는 것은 힘의 원리로 다수의 힘을 모으고 다수의 지지를 받고 그렇게 할려는 것이지 개개인의 인격을 존중하는 원리는 국가 정부가 하는 일이 아니어요. 그러니가 아무리 세계가 민주화된 것 같아도 거기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정치 체제는 세상에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사랑해서 몸을 주신 주님의 사랑에서만 교회는 모든 지체가 주님의 몸과 지체요 주의 백성이 천하만민보다 귀하고 그렇게 인정이되는 것이지 세상에서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공산정부가 망하고 민주정부가 승리하니까 이상이 온 것처럼 그렇게 하고 있지마는 그것이 말하자면 적그리스도적인 방식이어요. 인류의 보편에, 인류의 사랑, 기독교가 말하는 것이나 이 민주주가 말하는 것이 비슷하지마는 그것은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데는 그렇지마는 우리를 사랑해서 몸을 주신 사랑이 아니고는 사람을 품을 수가 없는 것이어요. 너와 나의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데서 서로 경제 논리지 형제를 사랑해서 몸을 주신 사랑이 아니고는 한 몸을 세울 수가 없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부자지간에는 자식이 아무리 잘못해도 자식을 버린 부모가 없어요. 자식을 사랑해서 부모가 헌신하니까. 그런데 형제지간에는 아무리 친해도 나중에 등급 차이가 나면은 그 부인들 끼리 다투더라도 간격이 멀어지지 하나되지 안해요. 부자지간은 그렇지 안해요. 그러니가 세상 정부가 민주화되고 서로 공평하게 나눈어 먹자. 복지국가가 어떻고 하니까 대단히 민주화된 것 같고, 이제는 복음 전파가 필요 없을 만큼 인간성이 회복된 것 같지마는 그것은 서로 서로 힘의 원리로 균등하게 나누어 먹자는 것이지 우리를 사랑해서 몸을 주신 그렇게 해서 국가를 세운 것은 아닙니다. 교회만 우리를 사랑해서 몸을 주신 주님의 교회입니다. 그것만 하나님께서 하늘의 질서로 세우신 새로운 영광스러운 나라입니다. 우리를 그의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가 이 믿음을 고백하면은 세상은 우리를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세상의 정한 이치입니다. 우리가 핍박을 받을지라도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 살리신 그분만 진정으로 하나님이시며 그리고 죽은자 가운데 부활하셔서 참으로 모든 표적과 이적으로 증거하신 그분만 살아계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해서 몸을 주신 그분 안에서만 인류는 하나가 되고 참으로 하나님 앞에 몸을 헌신하는 거룩한 나라와 제사장이되는 것이지 소위 민주화된 정권이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이 주님 오시기까지 교회 외에는 구원이 없고 죽은자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를 믿기 전에는 인류는 하나될 수 없는 것을 분명히 알고 주님 오시도록까지 세상의 권세를 두려워하지 말고 비록 우리에게 은과 금이 없고 우리에게 비록 인물이 없을 지라도 부활하신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을 증거해서 만민이 그분 앞에 복종하는 영광스러운 나라를 세울 수 있도록 그렇게 믿음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영광과 권세를 받으시고 우리를 피로 값주고 사셔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셔서 이제는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하나님 품에 살게하시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권세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셔서 하나님의 생명과 그 영광을 누리며 그 영광의 나라를 봉사케 하심을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분만 우리의 생명의 주님이시오 모든 권세는 그분에게 있는데도 세상의 군왕들은 주님 앞에 복종하지 않고 또 이 나라 백성으로 살고 있는 모든 시민들도 살아계신 주님이 생명의 주님이신 사실을 말로는 시인해도 행위로는 부인하는 것처럼 그렇게 어지러운 시대를 당했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주님 재림하셔서 만국을 통일하도록까지 이 영광의 복음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토록 허락하셨사오니 세상은 주님을 거역하고 지금도 세상은 주님을 부인하지마는 주님 오시도록까지 우리 믿음을 따라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해서 참으로 만민을 주님의 나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있는 봉사자들이 될 수 있도록 항상 우리를 인도해 주옵소서. 오늘도 우리로 이 생명으로 더욱 새롭게 하실려고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의 날에 우리를 부활하신 주님의 상으로 불러 모으셔서 주님의 살과 주님의 피를 우리의 양식으로 허락하셔서 이제는 주님과 한 몸 한 영으로 살 수있도록 우리를 복주셨으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먹고 마시는 모든 삶에서 항상 주님의 몸과 지체됨을 기억하고 날마다 우리는 약함 중에서도 우리는 주님의 부활의 강함과 능력으로 살 수 있는 힘있는 백성들이 될 수 있도록 우리의 모든 삶들을 주님께서 주관해 주시옵소서.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고 거역할지라도 우리를 사랑해서 몸을 주신 주님의 사랑으로 만민을 봉사할 수 있도록 생명의 주님께서 주의 백성의 삶의 수고를 기억하시고 그들의 삶에 수고를 복주셔서 주님의 넘치는 사랑으로 교회와 세상을 주님 오시도록까지 봉사할 수 있도록 주의 백성들을 돌보아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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