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구속사

그리스도의 대적 I

찬미예수님 2026. 3. 10. 23:49

제목: 그리스도의 대적 I

성경: 계시록 12-13

 

은혜와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복주셔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하나님 품안에 살게 하시고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보좌 우편에 앉계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의 얼굴을 뵈면 그 영광의 권세의 나라를 봉사할 수 있도록 복을 주셨으니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이 생명의 복으로 주의 백성들을 더욱 새롭게 하시고 영광과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려고 이처럼 교회를 모이게 하시고 우리 중에 임하셔서 크신 복을 허락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우리의 많은 허물과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신 그리스도 얼굴에 비취는 생명과 영광의 빛으로 주의 백성들을 비추셔서 우리의 많은 허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일양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크신 사랑 안에서 우리로 하늘의 평강과 구룩함을 얻게 해 주시옵시고 주님의 상에서 먹고 마시는 생명의 교제로 말미암아 주님의 몸과 주님의 지체로서 주의 뜻을 봉사하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교회를 복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요한계시록 12장입니다. 오늘은 차례대로 읽어가면서 간략하게 강론하겠습니다.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이 여자는 구약 교회인 이스라엘을 표상하는 것을 알 수가 있겠습니다. 이것은 요셉이 꿈을 꾸었을 때도 해와 달과 별들이 자기에게 절했는데, 그런 상을 구약에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구약에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아내, 그 아내로묘사했는데, 여기 보니까 하늘의 영광을 입은 여인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더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버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여기 2절은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어 애써 부르짖는다. 그렇게 해산하는 장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 교회는 그리스도 오시면은 그 생명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여자가 아이를 배었고 또 해산할 때는 고통스러워도 아이를 낳으면은 하나님의 생명의 약속이 그에게 이어지기 때문에 그 모든 수고를 잊는 것인데 구약 교회는 그런 의미로 생육하고 번성해서 복을 더하더라. 해도 생육의 방식으로, 출생의 방식으로 혈통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생명의 약속이 진행되는데, 이제 하나님의 아들의 출생, 메시야의 출생을 통해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생명의 약속이 완성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은 바로 그런 아이를 낳기 위해서 애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것을 보였는데 한 큰 붉은 용이 있어성경에서 붉다 하는 것은 말하자면 피에 취한다. 하는 그런 뜻이어서 혈육과 관계가 있는 그런 색깔입니다.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용을 보면은 여기도 여인도 하늘의 권세와 영광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용도 큰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크고 빛깔이 붉습니다. 그리고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입니다.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여기서는 일곱 머리는 일곱 나라요 열 뿔은 열 왕이라.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런 큰 표적을 통해서 이상을 통해서 큰 권세를 그렇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니까 아마 이런 괴상하고 놀라운 짐승은 없겠는데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큰 권세를 가지고 있는 머리와 뿔, 거기에 면류과, 큰 권세를 가지고 있는 그런 붉은 용인데, 그 권세는 붉은 것을 보니까 살육하는 권세인 것을 알 수 있겠습니다.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여자가 아이를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그 용은 큰 권세가 있는데 어떤 권세냐 하면은, 여기 4절에서는 꼬리에도 힘이 있어가지고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는 그런 큰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늘의 천사들, 하늘의 권세들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는 그런 큰 권세를 가지고 있는데, 이 용이 해산하는 여자 앞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여자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 아이는 누구냐 하면은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 아이입니다. 구약 때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천하를 다스리도록 복을 주셔서 특별히 다윗 때 둘러 있는 이방들을 정복했었습니다. 그래도 그것은 시작이요 완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중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해서 이방에 사로잡힌 바 되어서 그 궁전에서 노예로 비참하게 살았지요. 그들에게 허락하신 약속은 장차 새로운 다윗의 후손을 주시겠는데, 그가 모든 열국을 통치하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라. 그것이 이방 땅에 멸망해버린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구원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구약에서 하나님의 신부로서 영광을 입은 것은 이스라엘인데 그들이 기대하는 것은 메시야의 출생이었고, 그가 오시면은 만국을 큰 권세로 다스리더라. 그것이 지금 이렇게 되었는데, 그 남자 애를 삼키고자 그렇게 기다렸다 그런 말입니다. 만일에 남자 애를 삼키버리면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구원 약속에 대한 소망은 끝나는 것이지요.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갔습니다. 그리고 나니까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남자 애는 하늘로 올라가고 그리고 남자 애를 낳은 여자는 광야로 도망가서 거기 하나님이 예비하신 처소에서 일천 이백 육십일 동안 양육을 받는다.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서론적인 총체적인 설명이고 이 사실을 이 남자 얘가 하늘로 올라간 의미가 무엇이고, 여자가 광야로 도망간 의미가 무엇인가? 그것을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7-12절까지는 남자 아이를 하늘로 올려간 의미를 다시 한번 확대해서 설명하고, 13-에서는 여인이 용의 낯을 피해서 광야로 피한 사실을 더 확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 일천 이백 육십일 동안 예비한 곳이 있더라. 그 말을 14절에서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받더라. 뱀의 낯을 피하여. 똑같은 말을 6절에는 일천 이백 육십일, 14절에서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또 다른 곳에서는 마흔 두 달, 이렇게 여러 표현법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의미들이 서로 문맥에서 의미를 갖도록 연결되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의미들은 아이를 올려간 의미와 여자가 광야로 피한 의미는 그 다음에 설명이 되어 있기 때문에 다음을 읽으면서 더 설명하겠습니다.

7절입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쌔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함께 내어 쫓기니라.이 남자 얘가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릴 왕이지요. 그런데 이 남자 얘를 하늘로 올리어 갔는데, 그 의미를 여기 7절에서 설명하는데 하늘에 전쟁이 있는 것으로 그렇게 설명합니다. 구약에서는 이방 철학이 말하는 의미로 이원론적인 우주관, 저 영원한 세계와 땅의 세계, 이렇게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의미로 소위 이원론을 말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은, 땅의 사람들은 하늘의 식양대로 살고 하늘에 하나님의 완전한 성소가 있고, 여전히 하늘과 땅으로 구분하고 있지마는 이방 철학적인 방식으로 보이는 현상 세계와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 변하는 현상 세계와 변하지 않는 영원한 세계,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하나님의 땅에 있는 성소에도 성소와 지성소가 있고 뜰이 있는 것처럼 우주도 하늘의 영광스러운 성소가 있고 그 성소의 모형이 땅에 있고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땅의 식양대로 만든 성소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그런 백성입니다. 그러니까 땅에서는 이스라엘 곧 하늘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런 영광스러운 백성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여기서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릴 남자이기 때문에 왕권이 그에게 있습니다. 그가 용에게 삼키우지 않고 하늘로 올려갔습니다. 그러니까 승리한 것이지요. 하늘에 전쟁이 있었는데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웠다.여기서 미가엘은 다니엘서 12장을 보면은 이스라엘을 호위하는 천사장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계시록은 구약에 싸움을 모델로 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에 구약 언어들을 사용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스라엘을 호위하는 천사가 미가엘이고, 페르샤를 호위하는 천사도 있고, 또 헬라 천사도 있고, 그렇게 해 가지고 대 전쟁이 있는 것으로 다니엘서는 설명합니다. 그래서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웠는데 용이 이기지를 못하고 하늘에서 저희 있을 것을 얻지 못하니까 내어 쫓겼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승리한 것이지요. 어떻게 승리했습니까? 장차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릴 아이가 하늘로 올라가니까 그래서 승리한 것이고, 만일에 이 아이가 올라가지 못하면 그것은 하늘에 속한 승리를 이스라엘이 얻지 못할 것이라고 그렇게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큰 용이 내어 쫓겼는데, 이 용은 옛 뱀이기 때문에 아주 나이가 오래 되었는데 어느 정도 오래 되었느냐? 성경대로 하면 하나님의 천지 창조만큼이나 오래 된 뱀이지요. 창조의 처음부터 하나님을 대항하는 원수로 그렇게 설명되어 있으니까 그는 옛 뱀입니다.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여기 마귀」 「사단의 의미는 온 천하를 꾄다. 하나님을 대항해서 온 천하를 꾀는 자입니다.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함께 너희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그러니까 천사들도 큰 부대가 있고 사단들도 큰 부대가 있는 그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차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릴 아이가 하나님과 그 보좌 앞으로 올리어가니까 그 결과로 이제 미가엘과 그 사자들은 승리하고 용과 그의 사자들은 내어 쫓기었기 때문에 하늘에 거처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늘의 식양대로 살고 있기 때문에 하늘에 있는 것이 땅에 있는 것을 지배합니다. 만일에 용의 거처가 하늘에 있었으면은 그는 그런 큰 권세를 가진 것이지요. 그것을 에베소서 같으면 공중의 권세잡은자, 또 요한복음에서도 그런 말을 하고 있지요. 이 세상 권세잡은 자, 또 공중의 권세잡은 자, 그것이 이전에 사단의 역사였다. 그런 말입니다. 내가 또 들이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이처럼 하늘의 큰 전쟁을 이처럼 전쟁에 승리하고 부르는 노래의 방식으로 10-12절까지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제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했을 때 큰 음성은 하늘에 속한 음성이 되겠지요.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낯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이제 남자 얘가 올라가고 그 결과 하늘의 전쟁에서 미가엘이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옛 뱀 사단은 공중에서 그 거처가 없기 때문에 쫓겨났는데 그 전쟁의 의미가 무엇이냐 하면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다는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이것은 거의 같은 말이 될 것입니다. 이 구원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것은 자기 능력으로 구원하신 것이고 그 구원은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나라 삼으시는 그런 구원입니다. 그냥 개인들을 어느 좋은 자리에 올리어 가는가, 그런 의미의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류를 어떻게 자기와 함께하는 백성으로 완성하시는가, 하는 것인데, 이스라엘의 구원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애굽에서 건져내서 시내산에서 그 나라로 조직하는 데서 나타났기 때문에 여기서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가 이루어졌다. 그것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어졌으니.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건져내시고 시내산에 나라를 세우셨을 때 그것은 모세를 통한 승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어졌으니 곧 그리스도의 권세를 더한 것인데, 그 권세는 무엇입니까? 여인이 낳은 아들을 하늘로 올리어 가니까 그 일로 이처럼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졌다고 큰 소리로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나라의 의미는 어떤 의미냐 하면은, 우리 형제를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그 나라의 권세, 승리, 그것은 어떤 의미로 권세고 승리고 능력이냐? 하는 것을 그 구원의 의미를 10절 후반부에서 설명하는데, 우리의 형제를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여기서 참소하는 것을 굉장히 강조합니다. 참소하던 자,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다. 그전에 하늘에 사탄의 거처가 있었을 때는 이 본문에서는 그가 하늘에서 하고 있어던 일은 밤낮 하나님의 백성들을 참소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가 저서 하늘 참소하는 자리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참소하는 자리를 잃었습니다. 그전 참소했을 때는 이 문맥으로 하면 어전 회의에 참석하는 식이어요. 하늘은 하나님의 거처인데 거기 사단의 자리가 있어 가지고 밤낮 하나님의 백성을 참소했다. 그런데 인제 어린 아이가 올라가니까 그가 쫓겨났습니다. 이 어린 아이의 승리는 미가엘의 승리여서 곧 이스라엘의 승리입니다. 그래서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참소하지를 못합니다. 우리가 구약 욥기서를 보면 이런 장면을 알 수가 있고, 또 열왕기서에서도 이런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욥기서를 보면은 하늘에서 어전회의가 열렸는데 하나님이 사단에게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사단이 하나님의 일을 훼방해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욥이 별 볼일 없다. 그런 말이지요. 하나님의 백성이 무슨 말씀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처럼 신실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 그러니까 사단이 하는 말이 하나님이 욥을 복주고 울타리로 둘러 치니까 욥이 하나님을 찬양하지 그도 이방 백성처럼 하나님이 그런 복을 안주고 낮추면은 그도 하나님을 분명히 원망할 것이다. 하나님이 그러면 네 맘대로 해봐라. 그래서 사단이 즉시 활동을 개시해서 욥이 하루 아침에 집안이 거덜나버렸습니다. 그의 목장이 다 빼앗겨버리고 10남매가 한꺼번에 다 죽었습니다. 그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요. 구약대로 하자면 그는 하나님 앞에 의인이면은 그 말씀을 잘 지키면은 하나님이 항상 호위해서 평안을 주시고 장수하고 또 병도 안들고 번성하고, 이것이 그 약속인데 하루 아침에 망해버리니까 그가 섬기는 하나님의 의미가 없지요. 그런데 욥이 주신자도 하나님이 가져가신 자도 하나님이시니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안해요. 그래서 하나님이 사단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괜히 나를 격동해서 내 종을 고생시켰지 않냐? 봐라. 그처럼 신실한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그가 모든 사람 같으면 그 모든 것을 빼앗기면은 자기 신을 저주하겠는데, 그는 그렇게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신실하지 않느냐? 사단이 하는 말이 아직 본전은 남아있으니까 한번 더 해보시라고, 아마 제일로 고통스러운 것이 다 해도 자기 몸의 고통만큼 더한 것이 없습니다. 병들면 그런 것이어요. 그러니까 노인들도 이제까지 자식들을 위해서 산 것 같아도 늙어 힘이 없어지면은 자기 밖에 모를 만큼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이어요. 그러면 죽이지만 말고 네 맘대로 해보아라. 그래서 욥이 병이 들어서 얼만큼 괴로웠으면 자기 상처를 기와 조각으로 굵을 만큼, 그리고 자기 낳은 날을 저주했습니다. 무엇할려고 낳았던고, 무엇할려고 아들 낳았다고 미역국 먹었던고 하는 식이지요. 그래도 하나님을 행해서는 원망을 안했어요. 그래서 말하자면은 하나님이 그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만일에 우리 자녀들이, 그 자녀들을 보면 그 부모를 알지 안해요. 그래서 자녀들을 어른만큼 키웠다고 치십시다. 그래서 자녀에게 아버지의 모든 영광이 다 드러납니다. 이 아들을 통해서 아버지의 모든 일을 시킬 것이어요. 그래서 아들 자랑을 하겠는데, 만일에 이 아들이 조금 어려운 일을 당하니까 아버지의 일을 못해버리고 아버지께 영광을 안돌리면은 그것은 치명적인 상처가 되는 것이어요. 그런데 옛 말에도 자식 자랑을 하면 뭐 하는 말은 아이들은 다 허물이 많게 커가는 것이거든요. 부모 앞에서는 조시하지마는 나가면 똑같은 아이들이어요. 그러니까 아이 자랑하면 반팽인가 온팽인가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옇튼 그런 말 저런 말을 하는 것이어요. 그리고 아내 자랑하면 뭐하는데, 대개 아내 흉을 보거든요. 그런데 남편이 자기 아내가 최고다 그러면 무슨 말하고 그럴 것이어요. 그만큼 부자지간에는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이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욥 때문에 영광을 받으셨지요. 하나님은 욥을 통해서 자기를 경영하시는데 욥이 괴로우니까 하나님을 원망해 버리면은 하나님을 자기 부하를 잃어버린 식이라, 부하가 배반한 식이라, 부하가 사단의 편이 서는 식이라 아무 것도 없어요. 이처럼 사단은 하늘에서 하는 것이 무엇이냐? 끊임없이 하나님의 백성을 송사하고 또 내려와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하나님을 송사해서 네하나님이 참으로 그렇게 하더냐에덴에서도 송사했지요. 하나님이 너에게 동산의 모든 것을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 그러니까 아담이 참소를 들었지요. 손도 대지 말라고 하드라고, 그런 고약한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실은 한 가지만 먹지 말라고 했는데, 만져 보지도 말라고 하드라고. 그래 갖고 일이 벌어져 버렸지요. 그런 식으로 밤낮 참소합니다. 그런데 여인이 낳은 이 아이가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리는 권세가 하늘에 이룰 수 있도록 올라가기 전에는, 말하자면 만국을 철장으로 얻은 권세로 이스라엘을 승리를 못해요. 그런 가운데서 이스라엘은 여전히 죄의 권세 아래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끊임없이 사단이 이스라엘 백성을 송사하는 것이지요. 그전에 우리들이 보면은 그 발람이라는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을 송사할려고 했지요. 산 꼭데기에 올라가서 쭉 둘러 봅니다. 어디 오합지졸들이 안보이는가? 하나님의 진이 가운데 있어요. 그리고 사방으로 진을 멋있게 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 조금만 틈이 보여도 저주할 판입니다. 죄가 있으니까. 그러면 발람은 많은 수도비도 받고 발락은 자기 욕구가 이루어지는 것이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가 저주하지 못하도록 입을 다물게 하고 또 하나님이 보시는 방법대로 하니까 저주를 못하고 간데마다 축복을 해버렸어요. 그렇지 않고 자기 식으로 해버렸으면 축복을 했을 것이어요. 구약 같으면 밤낮 참소가 있는 그런 시대이기 때문에 실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갈 때도 반복되는 피흘림이 아니고는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그들은 어린 아이 식이어서 온전하지를 못해요. 그런데 하늘 어전회의에 있을 자리가 없습니다. 쫓겨났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자가 낳은 아이가 올라갔기 때문에, 이제 사단은 하늘의 처소가 없기 때문에 어전회의에 참석해서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가 없습니다. 발언권이 없어요. 그러니까 완전히 이긴 것이지요. 그전에 이스라엘이 애굽에 있었을 때는 애굽이 얼만큼 이스라엘 백성을 갖고 조롱했겠어요. 자기 맘대로지요. 그리고 어떻게 만일에 하나님을 섬긴다고 그러면은 여호와가 누구길래 너희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그러냐? 할 일이 없으니까 괜히 가서 예배드린다고 그런 것이 아니냐? 그러면서 하나님을 조롱하고, 이스라엘 백성도 조롱하고, 그렇게 했던 것이어요. 그러나 모세가 승리해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홍해를 건너게 하고 시내산에 모이게 했으면은 이제 애굽의 권세를 홍해에다 장사지낸 바 되겠지요. 그러면 애굽은 입을 다물어야 되어요. 왜냐하면 모세가 승리했기 때문에. 그들은 다 모세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될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만 하나님의 백성이어서 모든 나라가 이스라엘만 주목해 보아야될 것입니다. 그들은 소수의 민족으로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천박한 민족이 아니어요. 하나님의 장자들이어요. 그래 세상이 입을 다물어 되겠지요. 그런 것과 이것이 비슷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참소하지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늘에 영광스러운 처소에는 누가 들어갔습니까? 여자가 낳은 아들, 여자의 모든 상속권, 여자의 모든 축복은 여자가 낳은 아들에게서 이루지는데 이 아들이 하늘 보좌에 올라갔고, 그가 보좌로 올라가는 것은 만국을 철장의 권세로 다스리러 올라가는 것이어요. 이제 하늘 처소는 누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까? 보좌에. 여자가 낳은 아이가 올라가서 하나님 앞과 그 보좌에 앉아있어요. 그러니까 이제 그런 의미로 미가엘이 승리했어요. 이런 완전한 승리가 있기 때문에 참소했던 사단은 쫓겨나고 다시는 하늘에 그 거처가 없습니다.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이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새롭게 건설되었습니다. 왕이 취임했어요. 새롭게 건설되었기 때문에 왕이 이기면은 백성도 이깁니다. 만일에 구약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어버리면은 또 이방에 포로가 되고 잡히면은 그들은 하나님 앞에 승리를 돌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어떠튼 전쟁에 이겨야 승리가 되고 영광이 되지 저서는 영광이 안됩니다. 왜냐하면 구약 때는 하나님이 나라를 경영하는 질서가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자가 낳은 아이가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죽은 사람이 이겼다고 그래요.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여기서 여러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같은 위치에 두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여기서는 구원론을 말하지 않고 전부 전쟁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여인이 낳은 아들이 왕자로 취임했는가? 그런 말만 여기서는 하고 있고, 이 앞에 5장에서는 어린 양이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렇게 했고, 계시록 서론에서은 죽은자 가운데 먼저 나셔서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시고, 그렇게 설명했는데, 여기서도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 이들의 증거는 어린 양의 피, 그는 죽으셨지마는 죽은자 가운데 살아나셨고 그는 죽기까지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증거해서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하늘 보좌의 왕으로 취임시키셨습니다. 그는 일찍 죽임을 당했지마는 죽은자 가운데서 먼저 나신 분이셔서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분이고 그만 주되신 분이십니다. 하늘에 통치는 곧 그분에게 있습니다. 이것이 계시록에서 신자들이 고백했던 신앙고백이지요. 로마 황제가 주가 아니고 세상에서는 버림을 받았으나 십자가에 죽으신 분이 주 그리스도이시다. 그것이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이어요. 그들은 이것을 어떻게 해서 증거했느냐 하면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자기 생명을 걸고 증거했습니다. 그것이 승리에요. 그들은 죽으면은 왜 하나님이 나를 죽이는고, 구약 시편을 보아도 하나님, 누가 하나님을 찬양하겠습니까? 내가 죽으면은 누가 나를 기억하겠습니까? 내가 죽기 전에 살려주십시오. 그렇게 주로 다윗의 입을 통해서 그렇게 기도를 해요. 구약 때는 하나님 나라가 이방 나라에 대한 승리로 나타나기 때문에 만일에 의인이 악인에게 지면은 그것은 온전한 승리가 안되는 것이어요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 죽음에 이르러서도 하나님을 저주하지 안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안했습니다. 그는 신실한 증인으로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자기를 세상에 보내신 분이 아버지라고 증거했고 그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 사실을 확증했습니다. 이렇게 신실하게 증거한 증인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통해서 이제 마지막 승리를 베풀도록 죽음을 이기는 완전한 승리의 왕으로 아들을 보내셨을 때 아들은 자기 몸의 죽으심을 통해서 아버지을 시인했고,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그리고 그 미쁘신 하나님께 그 영혼을 부탁하고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순종하는 자기 아들과 함께 역사를 경영하셨는데 죽음에 이르도록 순종하신 이 아들을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심을 통해서 다시는 죽음이 미혹할 수 없는, 죽음이 이기지 못하는 하늘에 속한 권세의 왕국을 건설하셨습니다. 그러니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께서 내 하나님이라고, 내 아버지라고 증거하신 그분이 곧 진정한 하나님이시오, 죽은자 가운데 부활하신 그분만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신 세상의 구주요 왕이십니다. 이것을 그 형제들은 어떻게 증거했습니까? 자기 생명을 돌보지 않고 증거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예수와 함께 죽으면은 예수와 함께 삽니다. 그러니가 그들은 죽음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부끄러워하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주님의 고난에 기쁨으로 참여했고, 그렇게 해서 자기 생명으로 예수의 주되심을 인친 사람들이 그런 순교자들입니다. 그렇게 이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러라.이제 하늘에는 여자가 낳은 아이,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아이가 올라갔습니다. 그는 보좌에 앉아있습니다. 그리고 사단은 하늘에서 자기 발언권을 잃고 쫓겨났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이제는 완전한 승리의 왕국을 세웠기 때문에 죽은자가 죽지 않고 그와 함께 승리합니다. 이제 다시는 사단은 참소할 수가 없습니다. 이전에는 죽음을 통해서 사단이 참소하고 죽음을 통해서 승리했습니다. 사람은 죽을까 두려워서 일생에 매여 종노릇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제 하늘에서는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 하라. 이제 하늘에는 완전한 승리가 있습니다. 여자가 낳은 아이가 보좌에 앉으심이 완전한 승리인데, 이제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땅과 바다는 하늘과 대비된 땅과 바다지요. 왜 화가 있느냐 하면, 마귀가 자기 때가 얼마 못되어 크게 분내어 내려갔기 때문이라. 그러면 어느 때까지 때입니까? 장차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릴 때, 그때 보면 내어 쫓긴 사단도 멸망을 당하겠지요. 그러니까 자기 때가 얼마 안남았습니다. 그러니까 마지막 발작을 하는 것이지요. 그전에 우리들이 닭을 잡을 때도 그렇지요. 마지막 죽기 전에 발악을 할 때는 굉장히 힘이 쎕니다. 그러니까 사단이 마지막 그런 발작으로 내려갔으니까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 그것이 말하자면 땅에 나타나는 전쟁들이어요. 땅에 나타나는 교회 핍박들입니다. 여기서는 구원론을 직접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구약 묵시적인 환상에다 전쟁에 틀을 가지고 설명하기 때문에 이렇게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계시록을 가지고 그 문맥을 떠나서 그냥 상징들을 세밀히 해석해 자기고 구원론에 맞추면은 계시록은 해석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많은 반대 해석이 있기 때문에 설명할 때 여러분이 어떤 설명들을 이미 듣고 있는가, 그런 것을 생각하다보면 설명들이 길어지고 어려워집니다마는 여러분들이 질문하시면 언제든지 하시면 되겠습니다. 이것이 지금 여자가 낳은 아이가 올라간 승리입니다. 뱀이 내어 쫓겼습니다. 용이.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줄 알고 마지막 발악을 합니다. 이 뱀은 옛 뱀이기 때문에, 옛날부터 이런 싸움이 있었는데, 지금 이 싸움은 마지막 싸움입니다. 자기 때가 얼마 못된줄 알고 내려갔으니까. 가령 동네 사람들이 우리 얘기들하고 싸운 것과 저와 싸운 것은 다르겠지요. 그것은 예화가 조금 안맞구나. 요즈음 선거판을 보면 알겠구나. 처음에는 국회위원들 끼리 싸우다가 나중에는 김대중하고 막 싸우지요. 그쪽을 막 공격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상황이 달라지는 것이어요. 그런데 그 전에는 사단이 싸웠다 할지라도 이방의 권세와 싸우는 방식으로 모세와 싸우고 다윗과 싸우고 그런 방식으로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시대의 싸움은 하나님의 아들, 장차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릴 그 아들을 삼키려고 싸울려고 그랬고, 이 아들이 승리했기 때문에 하늘에 완전한 승리가 왔습니다. 그러니까 이 마지막 발작은 종류가 다릅니다. 그런 의미로 마지막 때, 말하자면 이스라엘 환난의 때, 이렇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어요.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이것이 인제 용이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줄 알고 핍박하는 것입니다. 그 여자가 큰 독수리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서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야육받으매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땅이 입을 벌려 용이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 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레 위에 섰더라.인제 문제는 이런 것이 복잡합니다. 남자를 낳은 여자는 분명히 구약 이스라엘, 곧 구약 교회에요. 그들은 생육하고 번성해서 하나님의 교회가 출생하고 때가 되어 장차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릴 자가 나오면은 그 나라는 하늘에 속한 권세의 나라로 완성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드디어 여자가 아이를 낳아서 그 아이는 올라갔습니다. 그러니까 용이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줄을 알고 내어 쫓긴 용이 땅에 내려와서 여자를 핍박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이 핍박을 받고 고난을 받는 것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거역한 죄 때문에 하나님이 로마 군대를 보내서 예루살렘 성을 불사르고 그들은 땅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들의 죄 때문에 그런 것이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설명이 아니라 뱀이 분노해서 여자를 핍박했다. 싸움으로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문맥을 보아야 되지, 이것을 역사적인 사건과 그대로 맞출려고 그러면 안맞지요. 그러니까 여기서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을 보아야 되겠지요. 그러면 여자가 독수리의 큰 날개를 받았으니까 아마 독수리 큰 날개면은, 비둘기 날개 같으면 얼마 못날른지 모르겠어요. 응 제비가 더 오래 날란가? 우리 상식으로는 독수리가 굉장히 힘이 있고 잘 날지마는, 조류 학자들이 보면은 제비가 저 남쪽에서 날아오니까 훨씬 더 멀리 날겠지요. 그러니까 이런 것은 조류학자 이야기를 하면 안되고 구약의 표상이나 일반 상식적인 이해를 해야됩니다. 독수리 두 날개를 받았으니까 이 여자가 널리까지 힘차게 날 것입니다. 그래서 인제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가는 것 같으리라. 믿음의 승리를 그런 표현법을 쓰는 것이어요. 그래 독수리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서, 이것을 이 여자가 믿음의 두 날개로 날아갔니 마니 그렇게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큰 힘을 가지고 날아간 것입니다. 날아가서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받으매그러면 여자는 무엇이고, 여자가 낳은 남은 자녀들은 누군가? 그러면 여자는 보호를 받고 남은 자녀들이 핍박을 받으면은 구약 교회는 복을 받고 신약 교회가 핍박을 받는 것인가, 그러면 나중에 보호받는 이 여자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나면은, 그러면은 보호가 끝났으니까 나오면은 그때는 이스라엘의 구원인가? 이렇게 설명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왜그러느냐 하면은 특별히 계시록이나 다니엘서를 가지고 이스라엘의 구원을 따로 집중적으로 설명하는 사람들이 세대론이어요. 우리는 세대론 하면 묘한 것으로 이해를 하고 있지마는 거의 모든 보수파들이 종말론에서는 세대론의 영향을 깊이 받아 있어요. 물론 그전의 구원론으로 따지면은 세대론이 이상하지마는 역사적으로 따지면은 세대론의 해석이 훨씬 더 났습니다. 그러나 어떠튼 그 세대론의 이론이 많이 들어와 있는데 세대론의 이론은 종말론을 바르게 해석하는 것은 아니지어요. 이런 구절들 때문에 세대론은 보아라. 분명히 남자 아이를 낳은 여자는 구약 교회인데,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오셨지 안해요. 이스라엘의 일원으로 오셨어요. 그러니까 여자의 남은 후손들은 핍박을 받지 마는 이 여자는 광야로 가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일천 이백 육십일을 양육받는다 했으니까 이 때가 지나면은 예수님 재림할 천년왕국 시대인데 이 삼년 반 동안 고생을 하고 나면은 그때 광야에 숨어있던 여자가 나타날 것이고, 이런 식으로 설명하게 되면은 속기 쉽다 그런 말입니다.

그런데 보십시다. 세대론은 삼년 반을 어디에다 적용을 하느냐 하면은, 지금은 아니고 예수님 오시기 직전에 7년 환난 기간이 있습니다. 그 전 3년 반은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의 편이 되다가 후 3년 반에 자기의 정체를 드러내갖고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그래요.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핍박합니다. 그러니까 대대적인 핍박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 설명입니다. 이 후 삼년 반의 고생이 지나면은 이제 예수님께서 지상에 재림하셔서 이스라엘을 핍박하는 무리들을 치고 이스라엘을 불러들여서 가나안 땅에 천년왕국을 세운다는 것이 그들의 이론입니다. 그러면 여기 있는 본문을 보면은 여자가 낳은 아이가 올라가고, 그때부터 여자가 양육을 받았지요. 용이 내어 쫓긴 뒤로 여자가 양육을 받은 것입니다. 그때를 일천 이백 육십일, 그때를 한 때와 반 때와 반 때라고 하지요. 그런데 세대론은 그런 설명이 아니고 예수 재림 직전에 7년 기간이 있다고 설명을 하는 것이어요. 나중에 시간이 나면 다니엘서를 해석해야 되겠습니다마는, 그런 식으로 설명을 하는 것이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것이 아니고 여자가 낳은 아이가 올라가고 용이 내어 쫓겼습니다. 그때로부터 일천 이백 육십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그러지요. 그러니까 이 문맥대로 하자면은 이제 예수님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올라가신 뒤로 그때부터 마지막 때를 전부 일천 이백 육십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전부 상징적인 언어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지 실재적인 연도를 말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어요. 무슨 말인가 아시겠지요? 그러니까 구약 교회 여자가 보호를 받어라. 나중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이것을 싸움을 모델로 설명을 하니까 여자는 여자고 자손은 자손이고 그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지 여자 따로 있고 자손 따로 있어서 여자의 운명이 따로 있고 여자의 자손들의 운명이 따로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말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교회는 어떤 의미로 보호를 받습니다. 여자는 그런 의미로 교회가 될 것이어요. 예수님 오신 뒤로는 실은 이스라엘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핍박을 받을 필요가 없어요. 그리스도를 대하는 핍박은 교회가 받지 유대인이 받지를 않습니다. 오직 유대인까지라도 교회는 핍박하는 원흉이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그것은 그런 교회 역사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싸움을 모델로 해서 지금 교회가 당하는 핍박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어요. 왜냐하면은 옛 뱀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대적자요 참소자였습니다. 교회가 큰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줄 알고 마지막 핍박을 합니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여자를 보호하십니다. 이 광야 보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40년간 보호하는 그런 모델들이어요. 애굽에서 건져내서 광야 40년을 배회한 것은 성경에서는 그들의 죄 때문입니다. 만일에 그들이 믿음으로 순종했으면은 한 열흘이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죄 때문에 그런 것이어요. 그러나 싸움에 모델로 보았을 때는 애굽에서 하나님이 그들을 건져내시고 그리고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지키셨습니다. 다시는 애굽에 권세나 어떤 하늘의 권세도 교회를 해하지 못하도록 지키셨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관점에서 지금 설명하느냐 그런 이야기지요. 그러면 왜 이것을 일천 이백 육십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그런 말을 사용하는가? 제일 처음 나타나는 일천 이백 육십일은 열왕기상 17, 19장 그 부근에 나옵니다마는 엘리야 당시 삼년 육개월입니다. 그 이야기는 야고보서에서도 말하고 있지요. 엘리야가 기도하니까 삼년 육개월 동안 비가 아니오고, 또 엘리야가 기도하니까 하늘이 문을 열고 비를 주었지 않느냐? 엘리야가 기도하니까 삼년 육개월 동안 비가 안왔어요. 그 삼년 육개월은 어느 때냐? 아합의 부인이 이세벨입니다. 그 두 사람의 핍박 때문에 이스라엘은 바알의 왕국이 되고 거기 하나님의 종들은 완전히 끊어지고 엘리야가 하나님 앞에 가서 하나님, 나만 남았습니다. 인제 이스라엘을 죽여야 되겠습니다. 이스라엘이 끝날 때에요. 물론 하나님이 누구를 지켰습니까? 남은자 7천이 있었지요. 그런 모델들을 사용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어요. 그래서 삼년 반이 남자로 계산하면은 일천 이백 육십입니다. 보호 쪽에다 강조를 두면은 일천 이백 육십일을 양육을 받어라. 처음에 그렇게 했지요. 그러나 사단이 자기 때가 얼마 남지 못한 것을 알고 극하게 핍박한다. 강물을 토한다. 구약에서 가장 큰 환난은 무엇입니까? 홍수 핍박이지요. 노아 홍수가 나면은 온 세계는 쓰러지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용이 강물을 홍수처럼 토해내는데,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간섭은 고라가 땅이 갈라져 죽었던 것처럼 하나님이 땅을 갈라서 물을 삼키니까 여자가 보호를 받아요. 이런 핍박을 모델로 했을 때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그런 단어를 씁니다. 한 때 두 때는 성장하는 때고, 반 때는 끊어지는 때에요. 그 대단한 기세로 성장했지마는 끊어질 것이라. 그 똑같은 말을 일천 이백 육십일, 마흔 두 달, 또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삼일 반, 이런 여러 표현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에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이제 직접적인 이 언어를 쓰고 있는 것은 다니엘서입니다. 거기 7장에서는 마지막 적그리스도의 핍박을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그렇게 설명하고 그리고 12장 같은데서는 그것은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마지막 시대지요. 이제 예수님 오시기 전에 하나님의 성소를 훼파하고 더럽히고 했던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4세 그 때의 핍박을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똑같은 단어를 사용해서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 때는 성도의 권세가 깨어지지마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보호합니다. 이 여자는 광야에 있으니까 안보이겠지요. 그만큼 성도의 깨어집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보호하신다는 이야기지요. 그 다음에 보면은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교회는 보호받는 것이 삼년이고, 또 분노의 대상이 되어서 싸웁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누굽니까?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 그러니까 신약 교회와 싸우고 있는 것들을 그렇게 하고 있는데, 어떻게 싸웁니까? 자기 종들을 불러내서 싸웁니다. 하나님이 자기 종 그리스도를 보내서 싸우고 승리했던 것처럼 이제 용도 자기 종들을 불러서 싸우는데 13장에 두 짐승이 나옵니다. 이 두 짐승은 세상의 권세와 그리고 세상의 권세에 힘을 실어주는 거짓된 종교를 말하고 있는 것인데, 그런 것을 통해서 싸우는데, 지금 이 게시록을 받고 있는 교회가 싸우고 있는 것이 곧 로마 정권, 로마 종교 그런 것을 대항해서 싸우고 있는 것이어요. 그것을 여기서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설명은 항상 계시록은 마지막 시대의 싸움에다가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이스라엘 백성의 마지막 멸망은 바벨론 구대가 처들왔을 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소가 무너지면 망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소를 측량하면은 그들은 바벨론에 던져저도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안망합니다. 남은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언어들을 사용해서 지금 여자가 나은 아이가 올라가고 이제 용이 내어 쫓겨서 분노합니다. 교회가 핍박을 받습니다. 자기 부하 짐승들을 불러내서 싸웁니다. 로마 정권도 용이 불러낸 짐승입니다. 거기도 지금 교회가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핍박들이 예수님 재림할 때는 더욱 극대화 되겠지마는 이 모든 시대를 포함하고 있는 말이지 마지막 어느 시점을 설명할려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그런 것을 이해하시면 요새 나타난 여러 종말론 이단들에 대해서 소지 않을 수 있을 것이어요. 그들은 계시록을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이 나타나느냐? 그러니까 지금 마지막 때가 아니냐? 그런데 666 컴퓨터가 어쩌고 시내 버스만 666이어도 야단이 나요. 그래갖고 지금 온다. 그러니가 지금 주식 다 팔고 준비해라. 하고 사람을 미혹하거든요.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 초림 때부터 재림까지를 고난의 시대, 어린 양과 싸우고 사단이 싸웁니다. 내어 쫓겨서 마지막 분노로 싸웁니다. 그런 모델을 가지고 성도의 권세가 깨어지기까지 싸웁니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그렇게 싸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고 승리하실 것입니다. 그런 것을 메시지로 담아서 그 당시 로마 정권 밑에서 핍박을 받고 있는 교회를 격려하고 주님 오시도록까지 세상의 어두움과 싸워서 교회가 승리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백성들만 해도 먹고 마심이 사라지면은 그들은 근심합니다. 하늘에 만나가 내리지 안해요 그들은 왜 우리가 애굽에서 나왔는고, 차라리 바로의 종으로 밥먹는 것이 좋았는데,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는 축복이 옛 질서의 축북이어서 가나안 땅의 생명의 장수, 안식, 그런 것이 복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복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사라지면은 그들은 근심하고 그런 것을 풍성히 가지고 있는 이방의 권세들을 사모하고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런 것 때문에 하나님은 어떤 의미로 참소를 받았고, 또 이스라엘 백성도 하나님 앞에 참소를 받는 그런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일원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들을 다윗의 후손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는 자기 몸의 죽음에서 하나님께서 완전한 승리의 나라를 세우기를 기뻐하셨을 때 그는 죽음에 이르도록 하나님을 시인하셨고, 하나님은 그의 순종의 죽음을 통해서 이제는 죄와 사망을 통해서 사람을 미혹하는 어두움의 권세를 끝내셨습니다. 죽을까 두려워서 일생에 매어 종노릇하는 그런 어두움의 시대를 끝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하늘에 속한 권세의 왕국을 세우셨습니다. 그가 우리를 부르셔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에 앉아계시기 때문에 신약의 교회는 하나님 앞에 참소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의를 입었기 때문에 주님과 함께 하나님 우편에 앉고 주님과 하나님 품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를 참소할 어두움의 세력은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영광의 얼굴을 뵙고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즐거워하지 죄 중에 두려워 떨고 양심의 송사를 받고 사람들의 송사를 받고 그렇게 살지는 않습니다. 이제 교회는 완전한 승리의 교회입니다. 그가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셔서 이제는 이방의 권세에 대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부인하는 이 어두움의 세력, 공중의 권세잡은 자와 싸울수 있도록, 혈육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공중의 권세잡은 자와 싸울 수 있도록 우리를 영광스러운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죽음을 통해서 이 싸움을 승리로 이끌 것입니다. 구약 백성은 죽으면은 하나님의 승리가 무너진 것 같았지마는 예수께서 죽은자 가운데 부활하셨기 때문에 신약의 교회는 죽을까 두려워서 일생에 매어 종노릇하는 미혹하는 세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약의 교회는 죽어도 살고 또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고 했기 때문에 우리의 죽음은 조상의 어두운 묘실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죽음은 주님의 영광스러운 얼굴을 뵙는 것이어서 결단코 우리는 죽음의 어두움이 없습니다. 주님 오시도록까지 우리들이 주님께서 먼저 가신 승리의 길, 그가 신실한 증인으로 죽은자 가운데서 먼저 일어나셔서 이제는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그가 이 죽음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대표가 걸었기 때문에 우리들도 그 승리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이 부활하기 전에는 그 길을 걷지 못했지마는 예수님 부활하신 뒤로는 그 길을 걸었습니다. 생명의 주께서 우리 앞장 서서 가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이 주님을 믿고 우리들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이런데 매이지를 말고 참으로 예수께서 주되시고 승리한 사실을 만민에게 증거해서 모든 사람이 우리의 증거를 통해서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그 계명을 순종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도록 주님께서 만국을 철저하게 철장의 권세로 다스리는 그날까지 우리들이 그 영광의 나라를 봉사해서 참으로 하나님의 승리의 나라를 건설하는 그런 믿음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셔서 하늘에 권세있는 나라를 섬기도록 복을 주셨으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들도 이전에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아래 있어서 이 세상 풍속이 끄는 대로 갔고 우리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아서 본질상 진노의 자식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아들은 죽음에 이르도록 하나님을 증거하고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해서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셔서 이제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하늘에 속한 생명과 영광과 권세있는 나라를 세우시고 우리를 부르셔서 그 영광을 봉사할 수 있도록 복을 주셨으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도 세상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이것으로 구원을 노래하고 이것을 위해서 세상에 영웅들을 만들어내고 또 세상의 지도자들도 이것을 백성에게 약속함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시대를 당했습니다. 심지어 교회까지라도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상을 축복해야 되겠는데, 교회까지라도 여전히 은과 금을 자랑하고 그렇게 해서 붉은 짐승을 탄 여인을 자랑하고 많은 영혼들을 미혹하는 그런 시대를 당했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이 악한 시대에 우리를 부르셔서 죽은자가운데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과 권세를 봉사해서 오직 예수의 주되심을 만민에게 증거해서 주님 앞에 만민이 복종하도록까지 그 영광의 나라를 봉사할 수 있도록 우리를 부르셨사오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우리를 사랑해서 몸을 주신 주님을 기억하고 우리의 먹고 마시는 모든 삶을 주님의 몸과 주님의 지체로 이해하고 우리의 먹고 마시는 모든 삶에서 주님의 생명의 권세를 의지하고 날마다 주 예수를 증거하는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오늘도 이 생명의 복으로 주의 백성들을 더욱 새롭게 하실려고 영광의 주께서 부활하신 날에 우리를 주님의 상으로 불러 모으시고 우리를 사랑해서 몸을 주신 주님의 살과 주님의 피를 우리의 양식으로 취할 수 있도록 주시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오시도록까지 이 생명의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 오시도록까지 이 주님의 생명의 사랑으로 주님의 영광의 나라를 힘있게 봉사하는 귀한 백성들이 될 수 있도록 날마다 승리케 하시고 주님의 부요하심으로 저들을 넘치게 복주시옵소서. 거룩하신 아버지, 주님께서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키시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품 안에 두셨사오매 어두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하며, 교회를 손대지 못한 줄 믿습니다. 우리들이 많은 환난을 당할지라도 주와 함께 고난을 당하면은 주와 함께 영광을 받을 줄 알고 날마다 세상을 부인하고 오직 주 예수를 신인하는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주의 교회를 항상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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